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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7장1-14 / 누구를 위한 금식이냐?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9월15일(목)■
 
(스가랴 7장)
 
1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2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7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8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14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묵상/슥 7:1-14)


◆ 문제의 핵심


(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다리오 왕 4년 9월 4일(오늘날 11월)에 벧엘 사람이 자기 부하들을 보내어서 5월에 울며 금식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본래 7월 10일은 속죄일로서 스스로 괴롭게 하는 날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하셨다(레 23:29).  그런데 5월은 성경에서 정한 날이 아니다. 그런데도 5월에 울며 괴롭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루살렘 성전은 5월 10일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파괴되었다(렘 52:12-13). 아마도 이것을 기억하며 스스로 괴롭게 하는 날로 잡았던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지금이 9월인데, 왜 5월에 금식해야 할지를 물었을까? 그것은 4월에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9월에 그것을 물은 것은 아마도 사람들 사이에서 성전 문제가 토론 주제가 되었던 듯 하다.  이제 성전을 다 지어가는 마당에 여전히 성전 파괴되었던 과거를 기억하며 금식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것을 질문하는 것을 보면 이들은 꽤 신앙이 깊은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에 엉뚱한 것으로 대답하신다.
금식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하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금식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하신다.


이들은 금식을 왜 하는지 그 목적을 잃어버렸다.
금식의 목적은 무엇인가?




◆ 누구를 위한 금식인가?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라는 하나님의 책망은, 금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금식의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믿음의 회복이다. 그래서 순종이 이루어지는 삶이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목적이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금식은 하나님께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바치는 뇌물처럼 여겨졌고, 복을 얻어 내기 위해 하나님께 생색내는 것이 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사 58:3)


이뿐 아니다.
신약시대에서는 금식이 '자랑거리'가 되었다.
바리새인들이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으며(눅 18:12). 금식할 때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얼굴에 슬픈 기색을 내어서 사람들이 자신의 금식을 알아주기를 바랐다(마 6:16).


아! 자기 영광을 추구했던 삶을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어야 할 금식의 목적이 '자기 자랑'이고 자기 영광 추구라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우리의 종교적인 삶은 이런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들을 한다.
회사에 일이 있으면 주일 예배를 빠져도 되는지?
약간의 술은 먹어도 되는지?
십일조를 안 해도 되는지? 등등


언뜻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법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답하시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하신다. 누구를 위한 예배인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종종 목적을 잊어버린 금식을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굶식'이라고 한다. 아무 의미 없는 굶주림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목적을 잃어버린 금식은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될진 몰라도 영적으로는 안 좋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목적을 알고 금식한다면 금식은 여러 가지로 유익하다. 우리가 믿음이 약화되었을 때, 회개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해야 할 때, 금식은 무언의 울부짖음이며, 절박한 기도다.


하나님께서는 금식보다 더 원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실한 재판, 인애와 긍휼,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이다(9-10).


삯꾼 목자들은 교인들에게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신앙인의 가장 큰 의무인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를 종교인으로 키운다. 오늘날 이런 종교인이 얼마나 많은 지...
주님께서는 십일조 같은 것이 하루살이에 불과하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약대와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마 23:23-24).


이사야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이런 것을 무시한 채 주일 예배, 교회 봉사, 십일조 등만으로 자신이 꽤 훌륭한 신앙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있는데, 이들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라 단순히 종교인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종교인이 되면 사람은 마음이 금강석처럼 굳어진다. 즉 고집이 세지고 오만하게 된다.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주님, 제가 마음이 금강석처럼 굳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선하심을 매일 맛보고 주님의 선하심을 이웃과 형제들에게도 베풀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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