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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한계시록 19장1-10 / 큰 우렛소리와 같은 허다한 무리의 외침

by 【고동엽】 2022. 11. 17.
■2022년 8월23일(화)■
 
(요한계시록 19장)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묵상/계 19:1-10)


◆ 허다한 무리의 찬양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허다한 무리의 찬양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를 가면 목청 터지도록 노래를 부르며 그 가수 일거수 일투족에 열광한다. 솔직히 그런 열광을 나는 이론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에는 와닿지 않는다. 반대로 세상 사람들도 성도들의 이런 뜨거운 찬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가끔 나는 예배드릴 때 찬양하면서 천국에서 하나님을 향해 열광하며 찬양하는 저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마치 천국이 본선 무대라면, 지금은 예선 무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진심으로 찬양하는 자들만이 예선을 통과하리라. 우리의 예배는 천국을 지상에서 경험하는 셈이다.


만일 지금의 예배나 찬양이 의례적이고 지루한 것으로 느끼는 자라면 천국의 허다한 무리의 열광적인 찬양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허다한 무리의 찬양 가사를 살펴보라.


"할렐루야" - 이 말은 히브리어로서 회중을 향할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라(Praise the Lord!)'는 명령형 권유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향할 때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는 감격스러운 고백이기도 하다.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1)
구원받은 자들이 목청 높여서 찬양하는 이유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무사히 건너고 그들을 죽이려고 따랐던 애굽의 군대가 홍해에 빠져서 죽자 구원의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90살이 넘은 미리암이 작은 북을 잡고 앞장섰다. 그리고 껑충껑충 뛰면서 찬양했다. 그러자 모든 이스라엘 여자들이 춤추면서 그 뒤를 따랐다(출 15:20).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기쁨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춤이고, 자발적인 찬양이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정말 기뻐서 덩실덩실 춤추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우리의 구원을 이렇게 기뻐해 본 적이 있는가?


얼마 전에 식구들과 어머님 추도식을 했다. 어머님을 회상하는 중에 나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고생하고 치른 희생이 많았음을 인정하지만,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내가 어렸을 때 내 손을 붙잡고 교회에 데리고 간 것이라고 했다. 만일 어머니가 다른 종교를 믿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어머니 신앙 덕에 내가 다른 우상을 섬기지 않고 이렇게 구원받고,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추도식 하다 말고 나는 목이 메어서 울었다.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할렐루야라고 외칠 때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갔다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하나님께 향기가 되어서 하나님을 세세토록 기쁘시게 함을 의미한다.


이십사 장로나 네 생물은 사람이 아니라 천상의 존재다.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성도들의 찬양에 "아멘, 할렐루야" 하며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한다.


보좌에서 음성이 난다.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그때가 되면 목사, 선교사, 장로, 집사 그런 타이틀을 다 내려놓고 모두 하나님을 향할 것이다. 찬양을 인도하겠다고 앞에 서 있는 사람도 없고, 성가대도 따로 없으며, 모두가 하나님을 향해 있을 것이다. 우리를 향해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허다한 무리가 또다시 외친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와 천사들과 모든 이들이 함께 하는 외침일 것이다. 
이 소리가 많은 물소리 같고, 우렛소리와 같다고 했다. 엄청나게 많은 무리들이 한 마음으로 외치는 소리는 상상만 해도 전율이 인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6)


하나님의 통치는 이 우주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하나님 나라는 공간으로 제한되지 않고, 통치로 제한된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배제될 것이다. 지금은 이런 자들이 많지만, 곧 사라지고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올 것이다.




◆ 어린 양의 혼인 잔치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으로 표현되었다.
꽤 성공한 사람 중에는 과거의 친구들이 전과 같이 자기를 부르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자신을 '어린 양'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셨다. 어린 양은 결코 영광스러운 이름이 아니다. 유월절에 사람들은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구원받았다. 사람들을 위한 희생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님은 스스로 그 이름을 취하셨다.


창조주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그런 전능하신 분이 자신을 연약하고 희생제물로 쓰이는 어린 양으로 칭함을 허락하심은 감당할 수 없는 은혜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심을 후회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기뻐하심을 말해준다.


◆ 성도가 입은 세마포 옷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세마포(fine linen)란 아주 얇은 실로 짠 베 옷인데 당시에 제사장들이 입었었다.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했다. 어린 양의 신부는 '교회'다. 그리고 교회란 어떤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바로 성도들이다.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다.
세마포는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아내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이 땅에서 입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사상에 맞추어서 세마포 옷을 입음으로써 옳은 행실을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옳은 행실을 한 성도에게 주어지는 세마포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그것이 7절에서 아내가 자신을 준비했다는 말과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하면 마치 우리의 선한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처럼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의 기본 진리가 손상된다(갈 2:16). 십자가의 은총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옳은 행실'은 원어에는 디카이오마타(δικαωμτα)라고 했는데, '디카이오마'가 원래 은혜로 얻은 '의'로 쓰이기도 한다(롬 5:16).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복수형으로 쓰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나온 그 행실들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의 자기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의란 애초에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선해보았자 자만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한 옳은 행실이란 자기 의가 아니라, 자만심과 자기 자랑, 그리고 세상의 각종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의 선한 싸움의 결과다. 주님께서는 계시록 2장에서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계 3:5)라고 하신 것과 같은 의미다. 


어린 양의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다.
우리가 그러한 자다.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할 일도, 세상 사람들이 진정으로 부러워할 일도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 받은 것이다.


◆ 경배 받기를 거절한 천사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하자 천사는 즉시 말린다.
너무나 당연하다. 사도들도 자기들에게 경배하려고 하는 자들을 말렸다.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하자 베드로는 '나도 사람이오'라고 하며 말렸다(행 10:25-26).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하려고 하자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 옷을 찢으며 말했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오'(행 14:13-14).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당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사이비 이단은 오히려 사람들의 경배를 유도하며, 자신을 높이려고 애쓴다. 설교자가 자기 자랑을 하며 자신을 높인다면 그는 하나님도, 자신도 어떤 자인지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셈이다.


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저를 찬양의 무리에 넣어주심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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