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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한계시록 18장20-23 / 큰 성 바벨론의 결말

by 【고동엽】 2022. 11. 17.
■2022년 8월22일(월)■
 
(요한계시록 18장)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묵상/계 18:20-23)


◆ 성도들의 기쁨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바벨론의 몰락은 성도들의 기쁨이다. 이전에 세상 사람들은 두 감람나무라고 불리는 두 하나님의 선지자가 죽은 것을 즐거워하며 서로 예물을 보냈다(계 11:10). 이제는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성도들이 바벨론이 심판당함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당했던 조롱과 핍박과 설움에 대해 하나님께서 단번에 갚으심을 보고 우리가 참고 참았던 것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성도들의 즐거움은 단순히 원수 갚음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감사이며, 의로우신 심판에 대한 찬양이다.


만국을 미혹해서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했던 원흉이 제거된 것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책망했던 두 선지자가 세상을 망하게 하는 원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바벨론이 세상을 망하게 한 원흉이다.


◆ 바벨론의 미혹


(23)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복술(卜術 sorcery)'이란 헬라어 파르마케이아를 번역한 것인데, 파르마콘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파르마콘은 '약'이란 의미인데, 파르마케이아는 약을 복용한 후에 몽롱한 가운데 점을 치는 데서 온 단어다. 마약을 먹어서 정신이 혼미하고 망상에 빠져있는 상태에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상태를 가리킨다.


바벨론은 전 세계에 이런 마약성 사상과 철학, 정치, 문화들을 퍼뜨린 주범이다.


바벨론은 수많은 영역에서 이미 우리들 곁으로 침투해서 신자들의 믿음을 밑동부터 흔든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았어도 믿음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정신적인 부활만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너무 멋있게 들린다. 그러나 바벨론의 논리일 뿐이다.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부활하지 않을 것이며,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이 될 것이다(고전 15:19).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실상은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활에 불과하다면 공자도 부활했고, 석가도 부활했고, 노동운동가 전태일도 부활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단지 정신적인 부활에 불과하다면 나는 당장 기독교를 떠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진짜로 육체가 부활했으며 제자들은 목숨 걸고 증언했다. 나는 이런 부활을 믿는다.


바벨론은 우리를 속이는 각종 사상과 종교의 본산지다. 바벨론은 마지막 때가 되면 더욱더 강하게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미혹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바벨론의 논리와 작품들이 즐비하다.


인권이란 명목으로 버젓이 행해지는 죄악들은 어떠한가?
바람피우는 것을 행복추구권이라고 말하고, 동성끼리 성관계하는 것을 성 소수자 인권이라고 말한다. 바람피우는 것을 아름다운 로맨스로, 동성끼리의 사랑을 애틋한 사랑으로 그린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정을 파괴하고, 각종 질병과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킨다.


바벨론의 영향력이 교회에도 미쳤다.
오늘날 수만 명의 교회일지라도 단 한 사람도 진실한 신자가 없는 곳이 있을 수 있다. 설마 수만 명 중에 단 한 명도 없겠는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선지자와 제사장이 몰려있던 예루살렘에 진실한 신자 단 한 명이 없어서 몰락했음을 기억하라.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오늘날 교회라고 예외이겠는가? 당장 계시록 2장, 3장에서 소개된 일곱 교회만 해도 주님께서 내치시겠다고 경고한 교회가 여럿이다.


성경에서 벗어난 교리를 전하는 교회만이 사이비 이단이 아니다. 분명히 성경에 있는 가르침이지만 우선순위를 바꾸어도 사이비 이단이다. 멀쩡한 정통교단 이름을 걸치고도 사이비 이단이 될 수 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할 때 그랬듯이, 성도들에게도 언제나 성경을 들고 나타나서 미혹한다. 그러나 그들은 때에 맞지 않는 적용과 우선순위를 바꿈으로써 미혹한다.


나는 마태복음 23장 23에서 십일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교하는 자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 그 말씀은 십일조를 강조하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십일조를 최고 신앙인듯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이다. 어떻게 거기에서 십일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끄집어내는가? 놀라운 궤변이다. 주님께서는 십일조가 하루살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약대라고 가르치셨지만(마 23:23-24), 그들은 우선순위를 교묘히 바꾸고 있다.


내가 어떤 사이비 교회를 관찰하기 위해서 그들의 예배에 참석해본 적이 있다. 손뼉 치며 찬양을 부르고, 거대한 성가대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하고, 통성 기도 소리가 우렁찼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릴 정도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가 나와서 하는 설교가 하나님이 자기를 특별한 사람으로 세웠다는 증거로 해 주변에 무지개를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그런데도 그 교회 교인들은 그것을 믿었다. 예배 후에 해 주변을 열심히 살피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원래 햇무리라는 것은 창세 이후로 있어오지 않았는가? 그것을 믿는 교인들이 한심하지만, 거기에는 교수도 있고 꽤 높은 권력을 가진 정치인도 있다.


너무나 명백한 말씀을 보면서도 설교자의 궤변에 설득당하는 자들을 보면, . 헌금도 공동체의 예배도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의 종교적인 행위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묵상하는 진실한 신자를 정말로 싫어하고 꺼린다.


◆ 바벨론의 결말


(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큰 성 바벨론의 몰락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만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역과 그들의 모든 영향력이 몰락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바벨론의 마지막 결말을 마음에 새기고 잘 기억해놓아야 한다. 결말을 안다면 과정에서 흔들릴 일이 없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이 주인공이 승리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아무리 위기를 맞이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오늘날 바벨론이 살포하는 사상과 문화의 마약이 무서울 정도다.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 기준을 버리는 순간 결국 바벨론의 마약을 먹게 될 것이다.


주님,
성경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잘 붙들고 이 악한 세대를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게 해주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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