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창세기 45장1-15 / 요셉의 용서와 사랑

by 【고동엽】 2022. 11. 16.
■2022년 6월17일(금)■
 
(창세기 45장)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12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13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묵상/창 45:1-28)


◆ 요셉의 용서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고, 마침내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 첫마디가 바로 이것이다.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자기를 배반하고, 죽이려고 했으며, 결국은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이다. 엎드려서 빌어도 용서가 될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요셉은 이들이 용서를 빌기도 전에 이미 용서함을 선포한다. 우리는 언제나 '그가 용서를 빌면'이라는 조건으로 용서할 마음을 갖는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선심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들이 용서를 비는 여부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용서를 선포한다.


어떻게 이렇게 무조건 용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노예로 팔리지 않았으면 이렇게 애굽의 총리가 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독한 흉년 속에서 자기 식구들을 살릴 길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임을 알게 된 요셉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신 것은 당시 야곱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는 목적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들이 애굽에 터를 잡고 살다가, 무려 400년 후에 거대한 민족이 되어서 애굽을 떠나게 될 때, 출애굽 과정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배우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위대한 하나님 나라 국민이 되게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8)
하나님을 아는 세계관을 가진 성도들은 이렇게 요셉처럼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신앙적인 해석을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엄두도 못 내는 용서와 관용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결과가 좋다고 해서 형들의 배신이 감사받을 일이나 자랑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이들은 악을 행했지만, 그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위대하실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미움과 배신조차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이해한 요셉의 용서가 귀하고 아름다울 뿐이다.


이렇게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는 매우 중요한 신앙적 행위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데 엄청난 장애가 됨을 알고 있는가?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합당한 자가 아님을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마 18:35).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용서로 나를 받아주셨는지를 묵상할 때, 용서의 용기를 얻게 된다(골 3:13).




◆ 요셉의 사랑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지독한 흉년이 아직 다섯 해나 남았다. 그대로 두면 모두 굶어 죽을 판이다. 왕복 수십 일이나 걸리는 거리를 매번 오갈 수는 없다. 요셉은 식구들이 모두 애굽으로 이주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들을 모두 부족함이 없도록 돌볼 것임을 약속했다.


이 기가 막힌 반전에 형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자기들이 악을 행한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을 기뻐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일단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은 무척 다행이다. 자기 동생을 노예로 판 데서 온 그동안의 무거운 죄책감을 다소나마 덜 수 있을 것 같다.


요셉이 이들을 붙잡고 입 맞추며 안고 울자 얼어붙었던 형들도 요셉의 용서를 믿고 마음을 열었다.
이들은 요셉의 용서를 받았지만, 평생에 그 원죄에 대한 죄의식을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후에 야곱이 죽은 후에 요셉에게 가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줄 것을 다시금 호소한다 (창 50:15-17).


우리는 요셉의 형들처럼 시기나 감정적인 문제로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거나 공격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 그것은 평생에 후회할 일이다.


자존심이나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형제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에 관계를 끊으며 원수로 돌변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부끄러운 일이다. 겉으로는 성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이다. 적어도 성도라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벧전 2:19)


우리는 요셉의 용서와 사랑이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온 것임을 본다.
이처럼 사랑과 용서는 신앙을 가진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총이다.


주 예수님,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의 성품이 제게 흘러들어오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주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용납하신 것처럼 용납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4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