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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로마서 11장11-24 / 믿으려고 애쓰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믿음을 지키려는 싸움이다

by 【고동엽】 2022. 11. 14.
■2022년2월3일(목)■
 
(로마서 11장)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묵상/롬 11:11-24)


◆ 유대인과 이방인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사람들은 오늘 본문을 읽을 때마다 '하물며'라는 말이 너무 어색하다고 느낀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성공이 어떻게 이방인들이 더 풍성하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모순 아닌가?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의미가 들어있다.
이 말씀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구원에 부요하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계획이 들어있다.


본래 유대인을 구하시고, 그 후에 이방인을 구하려고 하셨는데, 유대인이 거절하는 바람에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음으로써 유대인들이 누려야 할 복을 먼저 누리게 되었다. 이것은 유대인들로 시기 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시기는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본받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이방인의 실패가 아니라, 놀라운 풍성함이 될 것이다.




◆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방인은 돌감람나무 가지에 비유되고 유대인은 참감람나무 가지에 비유된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는다는 것은 이방인이 유대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참감람나무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 나무를 만드셨다. 유대인들이 원가지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원가지였던 유대인들도 믿지 않으니까 가차 없이 꺽였다. 그렇다면 돌감람나무에서 접붙임을 받은 자가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꺾인다.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라는 말씀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구원의 영원성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난해 구절이다. 구원을 잃을 수 있을까?


알미니안 주의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며, 켈빈주의자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과거에 믿었다가 이제는 안 믿는 사람을 켈빈주의자들은 '애초에 구원받은 적이 없다'라고 말하고,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구원을 잃었다'라고 말한다. 둘 다 성경을 인용하며, 나름대로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걸 어떤 논리로 설명하든, 둘은 공통된 결론을 가진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 구원은 없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구원을 어떤 물건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구원받았다고 함을 마치 내가 구원을 '소유'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물건이 아니다.


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댈 때, 어떤 배가 와서 나를 건졌다. 구원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가 마침내 자신이 구원을 '소유'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구원을 소유했으니, 물에 빠져도 죽지 않을 것으로 믿고 바다에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배 안에서야 넘어지고 깨지고 쓰러져도 물에 빠져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배에서 뛰어내리면 문제가 달라진다.


칼빈주의자들은 이 배가 사람이 뛰어내릴 수 없는 구조이기에 저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은 애초에 배에 탄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배에 탔지만 뛰어내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사실은 똑같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버리면 안 된다.




◆ 인자하심과 엄위하심


(22)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인자에 머물 것인가, 준엄하심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복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율법은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총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트집 잡는 분으로 오해하고 매일 두려워 떨며 종의 마음으로 사는 자는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두려워하는 종으로서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감사하며 찬양하는 아들로서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말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오늘 본문에는 '믿는 자'라고 하지 않고, '믿지 않는데 머무르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같은 말 같지만 사실은 다른 말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믿음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믿지 않음이 부자연스러운 것임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믿음을 부어주셨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우리가 만든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이제는 믿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을 믿으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는다. 이미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을 가지려는 싸움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려는 싸움을 해야 한다.
믿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려고 애써야 한다.
믿지 아니하는데 머무르지 말자!
각종 의심, 트집 잡는 마음들을 버리고 믿음을 지키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자.


주님,
주님께서 제게 주신 믿음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
각종 의심과 정욕에 의해서 믿음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평생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 속에서 살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무르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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