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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나의 개인적 종말인 이유 딤후4:8

by 【고동엽】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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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나의 개인적 종말인 이유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8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부토 여사처럼 하루아침에 죽을 수 있으므로

항상 오늘을 ‘나의 개인적인 종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약간 색다른 각도에서,

<오늘이 나의 개인적 종말>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연말은 평소와 똑같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해의 마지막이 되면,

내 인생의 마지막 때를 어렴풋이 가늠해 보게 된다.

연말이나, 내 인생의 마지막이나

둘 다 ‘마지막 시기’라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마다 연말을 지내보지만,

연말이라고 특별히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빵빵거리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긴다.

 

지금 연말이... 그냥 평소의 연중 어느 날과 똑같이 지나간다면,

내 인생의 종말도... 그냥 평소의 날과 똑같이 지나갈 것이다.

나는 종말을 맞더라도, 여전히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빵빵거리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길 것이다.

 

최근에 소천하신 분을 예로 들어보자.

그 분이 소천하신 후에도 세상은 어제와 똑같이 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어느 평범한 오늘이나, 내 인생 종말의 날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여전히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빵빵, 사람들은 분주하게 걸어 다니고

그렇지만 나는 종말을 맞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오늘

내 인생의 종말을 맞는 기분으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날도 그랬다.

1999년 말에, 워낙 언론이 떠들어서 그랬는지,

모두 마음에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었다.

 

이제 2nd 밀레니엄(천년시대)이 지나가고

2000년1월1일부터 3rd 밀레니엄이 시작될 때

그 때는 뭔가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천년시대를 경험하는 행운아’로 묘사하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폭죽을 좀 더 많이 터뜨린 것 외에는

새로운 천년시대라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 실망했다.)

여전히 거리에는 차들이 빵빵, 길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어 다니고...

2nd 밀레니엄의 종말은, 그냥 여느 보통 날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종말의 날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차들은 빵빵, 사람들은 분주하게...

 

▲오늘이 나의 개인적 종말이다

이 글의 포인트는,

그러니까 오늘 하루를 - 내 인생의 종말을 맞는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오늘 당장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종말일 뿐만 아니라,

내가 죽는 날이 특별할 게 없고 오늘과 똑같기 때문에... 오늘이 내게 종말이다.

 

오늘 내가 밥하고 빨래했다면.., 나는 밥하고 빨래하다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오늘 내가 복음전하고 충성했다면... 그렇게 하다가 나의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이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원래 기독교의 핵심 목표가 ‘복된 소망 blessed hope’ 즉 내세 천국을 기다림에 있다.

이 세상이 종착지가 아니고,

‘복된 소망’을 기다림이 원래 기독교가 말하는 신자의 삶이다.

 

오늘 당신의 삶이 허무한가? 금년의 당신의 삶이 허무했는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당신은 허무하게 이 생을 마감할 것이다.

 

오늘 하루 당신의 삶이 감격스러운가? 금년이 당신 인생의 최고의 해였는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당신은 감격스럽게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나는 오늘처럼 살다가 오늘처럼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내 개인적 종말의 날처럼,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살아야 한다.

사실 우리가 일 할 수 있는 기회는 '오늘' 뿐인 것이다. (죽은 후에는 못 한다는 뜻)

 

덧붙혀서, 내 지상의 삶의 목적을, 언제나 저 천국에 두고 살아야 한다.

(이 '천국'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함. 뭘 구체적으로 알아야 소망을 두고 목적을 삼으니까...)

  

 

▲참고 : 언제부터가 말세인가?

신학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를 ‘말세’로 정의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취하신 가장 마지막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예언된 구세주의 탄생, 수난,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은

앞서 모두 성취되었다. 이제 오직 ‘재림’만 남겨놓고 있다.

그래서 ‘남은 재림만 기다리는 시기’ ‘말세’인 것이다.

 

이제는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안 믿으면 멸망 받는다는

‘종말적 심판’만 남아있다.

 

일반 사람들은, 신학적으로 말하는 ‘말세’가

지난 2천년 동안이 너무 길기 때문에

‘지금이 과연 말세, 종말의 시기가 맞는가?’ 질문하지만

신학적으로는 지금이 ‘말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재림뿐이다.

<김지윤

 

 

 

▶일생 중 단 하루만이라도! 

어느 회사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여직원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자질을 가졌거나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여인이 되었을까?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날 내 인생이 변화되었어요.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단 하루 동안이라도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고 믿음을 실천하여 보라'고 하셨어요.

 

사람은 일생 동안 약 50만 시간을 산다는데 그 많은 시간들 가운데 <24시간 하루>

만이라도 온전한 믿음으로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그렇게 해 보기로 결심했지요."

 

그녀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성경 몇 구절을 읽고, 그 날의 모든 악한 생각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는 예수님 처럼 생각하고 믿음을 실천하겠다"고

되새기면서 그 날 아침의 일을 시작했다.

 

불친절한 말이 입술까지 나올 때마다 짤막한 기도를 하며 물리쳤다.

어떤 두려움이 닥쳐올 때는 다시 기도하고 하나님을 신뢰했다.

게을러지려는 유혹이 들 때는 "만일 주님께서 이 자리에 계셨다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실까?"를 자문하면서 그 날을 내내 그렇게 보냈다.

 

하루만 더!

그 날 저녁 그녀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행복하고 만족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둘째 날에도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살았다.

마침내 그것이 그녀의 일생의 삶의 철학이 되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는 믿음을 실천하며 살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더 쉬워졌고,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3530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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