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prehensive◑/Seonhee

-[2021년 12월 12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롬 10:9~15)(성서주일)

by 【고동엽】 2022. 10. 22.

[2021년 12월 12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롬 10:9~15)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X15IQ0t-bgw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특별히 성 소수자의 주일을 당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10장 9절로 15절에 있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 253면입니다. 253면 로마서 10장 9절로부터 봉독하겠습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아멘.

사람은 듣는 대로 변화하고 느끼는 대로 달라지고 경험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인생을 사는 동안에, 또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말을 듣고 자라느냐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가령, "감사하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는, 그렇게 성장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그런가 하면 욕설만 듣고 자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망 불평만 들으면서 산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저는 기가 막힌 청년을 한번 만나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남대문 부근 교회의 부흥회 인도 갔을 때, 그 교회의 청년 한 사람이 제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무릎 꿇고 울면서 참회하고 뉘우치는 그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청년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남대문통에 있는 창녀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창녀의 아들로, 그리고 자랄 때 그 창녀촌에서, 그 창녀들 속에서, 그걸 보고, 그걸 듣고, 그 욕설을 듣고 싸우는 속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좀 이제 좀 크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가 답답해하는 것은 이겁니다. 어릴 때 자랄 때 듣던 이야기, 보던 것이 자꾸 생각나서 미칠 것 같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통곡하는 청년을 만나 보았습니다.

여러분, 아니 생각해 보세요. 사람은 듣는 대로 운명이 갑니다. 생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고 어떻게 그 인격이 설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듣느냐,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사느냐, 또 어떻게 경험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내 운명이 바뀝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오래 오래전에 중국 마오쩌둥 어록집을 읽는 일이 있었습니다. 3권을 읽었는데요, 거기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가 공산주의자를 만들려고 할 때 방법이 있습니다. 그 소위 세뇌교육이라 그럽니다. '뇌를 바꿔 놓는다'고 합니다.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 가지 진리를 반복, 속도, 지속. 반복, 속도, 지속. 한 가지 이야기를 자꾸 들려주는 거예요. 똑같은 말을 자꾸 들려줘서 지겨울 정도로 자꾸 들려주고, 빨리 빨아들이게 할 목적으로 이 속도를 내서 그것만 듣게 합니다. 다른 말은 못 듣게 해요. 아무것도 못 듣게 해요. 여기서 지시하는 말만 듣고 이걸 반복, 지속, 속도. 이렇게 해 놓으면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거예요. 이 세뇌공작입니다. 즉 뇌 공작입니다. 사람이 바뀝니다. 사상이 바뀝니다. 듣는 대로 달라지니까요.

지극히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에 TV가 없을 때, 텔레비전이 없을 때 라디오밖에 없었지요. 그 라디오 방송을 열심히 열심히 그때는 귀담아듣고 있었는데 그 중간중간 광고가 나오거든요. 소화제는 활명수, 소화 캡슐은 훼스탈. 지겨워요.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할 때 훼스탈". 그러다 어느 날 배가 아파서 약방 문을 들었어요. 약방 할머니가 "무슨 약을 드릴까요?" "배가 아파요" 했더니 말이야, 듣던 대로 나오는 거예요. 듣는 대로 반응해서 나오는 게 아니죠. 얼마나 중요합니까?

변증법적 유물론 하는 것이 무서운 겁니다. 이 공산주의 철학의 기본입니다. 이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세상은 싸움이다. 약육강식이다. 적자생존이다. 이겁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수없이 들은 얘기입니다. 생존 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 강한 자는 이기는 것이고 약한 자는 밟히는 것이다. 세상은 싸움이다. 세상은 싸움이다. 이걸 계속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살아남으려면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혁명 정신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말씀이 "The ends justifies the means."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한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 요새도 많이 듣고 있지요. "거짓말은 죄가 아니다. 결과만 좋으면 돼. 결과만 좋으면 방법은 다 정당화되는 것이다." 이게 공산주의 철학이에요. 공산주의 방법론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계속 이것만 듣게 하면 이것만 듣게 하면 공산주의자 되는 겁니다. 이런 말, 아 무서운 얘기입니까?

세상은 전쟁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전파하라 하는 말입니까? 복음을 듣게 하라는 거죠.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은 복음을 듣게 하라. 계속적으로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 복음을 전하라. 놀라운 진리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불행한 것은 복음을 들은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바가 없는 인생, 불행합니까? 단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어요. 복음을 들은 바도 없고, 사랑을 느낀 바도 없고, 사랑을 체험한 바도 없어요. 그러면 그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운명이 가장 불쌍한 것이 이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을, 다른 말로 말하면, 복음을 듣지 못한 자가 없도록 하라. 단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자가 없도록 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듣게 하라. 느끼게 하라. 체험하게 하라. 이것이 선교입니다. 아주 귀중한 말씀입니다.

본문 14절에 말합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을 어찌 부르리요.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같이 못한 복음, 어떻게 믿으리요. 가장 불행한 것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귀중한 일입니까? 복음은 입으로 전파합니다. 그다음에는 행위를 통해서 복음을 느끼게 합니다. 희생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말로만 전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든지 범사에 감사하고 웃고만 있으면, 행복한 얼굴로 웃고만 있으면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에요. 또 내가 어떤 어려운 고난을 당하더라도 잘 참고 범사에 감사하며 잘 견뎌내요. 원수를 사랑해요. 이런 것을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것이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사실이죠.

스데반을 보세요.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순교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사울이라는 청년은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사람이 저렇게 아름답게 죽을 수가 있는가." 순교 그 자체가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헬라어에는 특별히 마르투리아(Marturia)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을 증거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조금 변형돼 가지고 마터(Martyr) 가 됩니다. 마터라는 말은 순교자입니다. 순교는 뭐냐? 복음을 증거하는 자, 증거는 곧 죽음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할 때 말로만 전하는 거 아니죠. 유명한 얘기가 있죠. 성 프란치스코가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야, 오늘 돌아다니면서 복음 전하러 가자." 그러니까 제자들이 수십 명이 따라 나섰어요. 한참이 도읍지를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저녁에 돌아올 때 "아니, 복음을 전하자고 하는데 복음을 한 번도 전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야, 이놈아! 말로 전해야 되냐? 우리 얼굴 보면 알지." 복음은 말로만 전하는 게 아니에요. 얼굴빛으로 전하는 거예요. 그러나 바울의 생활을 통해서, 위에 극단적인 희생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큰 불행은 한 번도 복음을 들은 바 없다는 불쌍한 사실입니다. 복음을 한 번도 느껴본 일이 없다. 구속주의 사랑을 한 번도 체험한 바 없다. 참으로 불쌍한 사실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북한에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해 가지고 고향을 방문했는데, 옛날에 있던 저희 내가 나가던 교회는 다 불타 버려 없어요. 교회 터만, 터만, 터만 이렇게 남아 있는데 감개무량해서 그 자리에 서서 한참 서서 기도하고 있는데 그 마을 이장과 공산당 책임자가 두 사람이 가까이 오더니 "선생님, 왜 여기서 계십니까?" "여기가 특별한 장소가 돼서 내가 서 있지." 했더니 "우리 동네 어른들이 말하는데, 여기가 옛날에 예수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합니다." 교회라는 말도 몰라요. "예수 하는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라고 합니다." "동무 말이오. 그래서 내가 여기서 있는 거예요. 내가 여기에 있던 교회의 옛날에 다니던 사람이요. 그래서 서 있는 겁니다." 보세요. 이 청년의 마음속에 "예수 하는 사람들이 오던 곳"밖에는 복음을 들은 바 없어요. 이래 가지고 되겠습니까? 얼마나 아픈 일이에요.

제가 보통강 호텔에서 자면서 새벽 일찍 일어나 가지고 보통강변에 한번 산책을 했습니다. 안개가 뽀얗게 끼었는데, 한참을 지나는 장엄함이 지나가다가 뭐 좀 재미가 한마디 딱 했어요. 돌아보더니 "아, 목사님이시군요." "어떻게 아세요?" "매일 새벽 5시만 되면 10년 동안 목사님 설교를 방송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했더니 그 다음 말이 "빨리 지나가세요. 뒤에 감시자가 있습니다." 내가 그래서 "그 후로 어떻게 되든 이제 내가 이 북한을 위해서 더 크게 일해야겠다" 하는 다시금 말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듣는다. 방송을 통해서 새벽 5시마다 듣는다. 그 이튿날 아침이 되면 방송 전파 약해집니다. 꼭 새벽에만 들립니다. 그 극한의 탄압 속에서, 그 위험한 가운데서 복음을 듣습니다.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그러다가 발각되면 안 되죠. 그걸 어떻게 아느냐? 가르쳐 줘도 돼요. 라디오를 조립해서 듣다가 설교만 다 들은 다음에는 라디오를 분해해요. 분해해서 나누어 가지고 따로따로 이제 부속으로 뒀다가, 그 시간만 되면 다시 조립을 해 가지고 들어요. 우리는 틀어놓고 듣고 들으면서도 안 듣는데, 이렇게 목숨을 걸고, 귀중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애쓰는 분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여,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셔서, 복음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그날이 속히 오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성경은 바로 복음입니다. 성경에는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합니다. "성경은 마굿간이요, 이와 같이 아기 예수가 담겨 있는 구유다"라고 말합니다. 방송을 통해서, 우리는 유튜브를 통해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여기서 지금 여기에 여러분 앞에 설교하고 있습니다만은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시간에 4,000명이 지금 유튜브를 통해서 설교를 듣습니다. 다시 조사해보면은 일주일 동안에만 50,000명이 이 방송을 듣습니다. 지금 저는 15,000명 이상을 상대로 지금 설교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설교합니다.

여러분, 듣는다!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시편 119편에서 말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나이다."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 말씀을 구하는 자,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듣게 하라! 믿게 하라! 느끼게 하라! 증거하라! 이 귀중한 뜻, 사명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W. A. Criswell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언제나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난 아침마다 시편 5편을 본다. 시편을 읽어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정립되기 때문에. 그리고 잠언 1장을 꼭 본다. 왜? 잠언을 읽어야 내가 인간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임종이 가까운 시간에는 오로지 성경만 읽는 잘 아는 박근식 장로를 알고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제 외삼촌입니다. 제 어머니 오빠입니다. 재벌 아주 유명한 의사입니다. 근데 다 정리하고 은퇴한 다음에 저 양천에 계실 때 제가 방문해 보니까 그렇게 책이 많고 항상 말씀이 있고 책을 많이 읽는 분이에요. 책이 싹 없어요. 다 치웠어요. "삼촌, 책 다 없을 었습니까?" "이제 내게 무슨 책이 필요하냐." 아흔두 살입니다. 책상 앞에는 성경책 하나만 놓여 있습니다. "난 성경책 하나. 지금은 이 성경책 하나뿐이다. 라디오도 필요없고, 텔레비전도 필요없고, 신문도 안 본다. 오로지 성경!" 아, 그래서 시편, 잠언, 로마서, 요한복음을 다 외워요. 줄줄 외워요. 외우는 재미가 있대요. 빨리 집에 갈 때 버스를 타고 잠언을 다 외우면 도착한대요. 그렇게 하나님, 여러분, 많이 들으면 이제 세상 것 안 봐도 돼요. 코로나가 어디로 가는지 그거 뭐,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말씀이 가까워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가까이, 집중적으로 가까이 해야죠. 유명한 신학자가 Karl Barth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초청을 받아서 시카고 대학에 가서 신학 강연을 했습니다. 2시간 강의를 마치고 나서 강단을 내렸을 때 학생 하나가 따라와서 "교수님, 평생토록 수많은 책을 쓰시고, 신학 강의를 많이 하시고, 위대한 신학자로 오늘까지 살아 왔었는데, 그걸 다 조합하면 딱 한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노신학자가 Barth가 말했습니다. "Jesus loves me, this I know, for the Bible tells me so."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 사랑하심은 그 찬송, 찬송가 가사입니다. "Jesus loves me, for the Bible tells me so." 여러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합니다. 성경적 증거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 사랑의 음성을 듣고, 그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 잠겨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 속에서 중생하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임종이 가까웠습니까? 종말이 가까웠다고 느낍니까? 더 성경에 가까이 해야 됩니다. 더더 성경에 가까이에서 여러분, 우리가 세상 떠날 때, 요단강을 건너갈 때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이 뭐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야, "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음성을 듣고 요단강을 건너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 더 부지런히, 더 반복적으로, 더 지속적으로, 더 열심히 듣고 사모하고 묵상. 우리 뭐 복잡한 생각나지 않고, 그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우리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 "예수 사랑하심, 예수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집착하고, 중심하고, 열중하고, 헌신하는 그 신앙생활이 되어야 할까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특별히 성 소수자의 주일을 당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과 그 생명력과 그 놀라운 역사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가까이에 말씀이 있건만 말씀을 소홀히 하는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기도의 응답이 여기 있건만 성경을 떠나서 응답을 구하려 했던 것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지 못한 모든 것을 사해 주십시오. 오늘부터 새롭게 이 세상 다하는 , 그날까지 말씀을 갖고, 말씀으로 더 가까이 가고, 더 집중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아니 말씀을 기뻐하고, 말씀 안에 행복하고, 말씀을 찬양하면서 살아가는 남은 생애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 내용 상세 요약: '듣는 대로 변화하는 삶과 복음의 중요성'

이 설교는 성 소수자의 주일을 맞아 로마서 10장 9절로 15절 말씀을 중심으로, **'무엇을 듣고 사느냐'**의 중요성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 본문 말씀 (로마서 10:9-15)의 핵심

  • 구원의 확신: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 믿음과 시인: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 차별 없는 구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 없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 전파의 중요성: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를 어찌 부르며,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 '무엇을 듣고 자라느냐'의 중요성

  • 운명 결정: 사람은 듣는 대로 변화하고, 느끼는 대로 달라지며, 경험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 성장 환경의 영향: 태어나서 어떤 말을 듣고 자랐는지가 인격 형성에 매우 중요합니다.
    • 부정적 사례: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 욕설, 원망, 불평만 듣고 자란 사람은 인격이 서기 어렵습니다.
    • 충격적 예시: 창녀촌에서 태어나 욕설과 싸움만 듣고 자란 청년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나, 어릴 때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듣는 것의 무서운 영향을 강조합니다.
  • 세뇌 교육의 원리: 공산주의의 세뇌 교육은 **'반복, 속도, 지속'**을 통해 한 가지 사상만 끊임없이 듣게 하여 뇌를 바꾸고 사상을 변화시키는 무서운 공작입니다.
  • 세상의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은 '세상은 싸움,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가르치며,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한다 (The ends justifies the means)"**는 위험한 철학으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만듭니다.

3. 🕊️ 복음 전파와 듣는 것의 사명

  • 가장 불행한 것: 가장 불행한 인생은 복음을 단 한 번도 들은 바 없는 인생입니다. 사랑을 느끼거나 체험한 바 없는 인생은 불쌍합니다.
  • 예수님의 명령: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여 복음을 듣지 못한 자가 없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듣게 하라, 느끼게 하라, 체험하게 하라'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 복음 전파의 방법:
    • 입으로: 복음을 말로 전파합니다.
    • 행위와 희생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웃는 행복한 얼굴, 어려움 속에서도 잘 참고 견디며 원수를 사랑하는 모습행위를 통해 복음을 느끼게 하고 희생을 통해 증거합니다.
    • 순교 (마르투리아/마터): 순교 그 자체가 복음을 증거하는 행위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천사 같던 얼굴이 사울(바울)에게 큰 충격을 주었듯이, 복음은 얼굴빛과 생활을 통해 증거됩니다.
  • 목숨을 건 청취: 북한에서 극한의 탄압 속에서도 새벽 방송을 통해 설교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조립하고 분해하며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복음을 듣는 것의 소중함을 역설합니다.

4. 💖 말씀과 가까이 하는 삶

  • 말씀의 가치: 성경은 복음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시편 119편의 고백처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며,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나이다."
  • 신앙인의 자세: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며, 구하고,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 임종의 준비: 종말이 가까울수록, 임종이 가까울수록 더 성경에 가까이, 집중적으로 해야 합니다. 다른 세상적인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 칼 바르트의 고백: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그의 평생의 신학을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는 질문에 찬송가 가사로 대답했습니다.
  • "Jesus loves me, this I know, for the Bible tells me so."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는 성경이 나에게 말해 주기 때문이다.)
  • 마지막 소망: 요단강을 건너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말씀을 더 가까이, 더 부지런히, 더 반복적으로 듣고 사모하여 말씀 안에 행복하고 말씀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지 못한 것을 용서 구하며, 남은 생애 동안 말씀을 기뻐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설교를 마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