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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침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by 【고동엽】 2022. 10. 20.

릭 워렌  

침체와 우울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감정적 질환의 일반감기로 불리워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침체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거의 항상 영적침체 가운데 빠지기도 하였는데, 그 좋은 예가 엘리야일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위대한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는 3면 동안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일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여러 가지의 많은 기적들이 있었으며 이방 우상을 쫓아내는 영적각성 운동이 엘리야의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 국가 전역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좋아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왕후 이세벨은 사악한 여자로서 엘리야를 미워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야가 특별히 위대한 기적을 베푼 사건이 있은 다음에 이세벨의 남편인 아합왕은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들을 이세벨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이세벨로 분노하게 만들어서 그녀는 엘리야에게 사자를 통해서 “내가 내일 이 맘 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삼상 19:2). 이 여자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만일 24시간 내에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 여기에 엘리야는 두려움을 모르고 3년간을 일하였지만, 이제 한 여자로 인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두려워 광야로 도망 나가서 깊은 영적침체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3-5절).



그는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원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영적침체의 최초의 지원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육적으로 피곤하였고, 감정적으로 고갈되었고, 그리고 그의 생명은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두려움, 분개, 죄책감, 분노, 고독, 그리고 염려가 몰려왔으나 하나님은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약 5:1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이 경우에서 그는 영적 침체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너무도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러한 감정적인 혼란 속에 자신을 내어 던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그릇된 생각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침체적인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감정은 당신이 삶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삶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본다고 하면 당신은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생각하는 법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성경은 당신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12:2). 영적 침체를 극복하고 이기기 위해서 당신은 삶에 대한 옳지 못한 마음의 자세를 고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올바른 관점에서 사실들을 본다면 당신은 영적인 침체에 빠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엘리야가 영적인 침체에 빠졌습니까? 그는 우리가 침체에 빠질 때 생각하는 것과 같이 네 가지 정신적인 활동 때문이었습니다.



감정에 집중하지 말고 사실에 집중하십시오.



그 첫번째는 3절에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로뎀나무까지 와서 그 아래 앉아서 죽기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이제 넉넉합니다. 나는 이제 충분합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제 허송 세월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도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이제 포기 합니다.” 그의 첫번째 잘못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침체 가운데 빠지면 같은 잘못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실보다는 감정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침체에 빠지면 언제나 이렇게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존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집중하고 살아갑니다. 엘리야가 실패자와 같이 느끼고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 사건이 그를 놀라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나 같은 겁이 많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그는 실패자와 같이 느끼고 있었고, 그는 실패한 사람으로 자신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감정적 추리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파괴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아이디어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니, 그것은 진리가 되어야 한다” 음악인들, 체육인들, 텔레비전의 배우들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연주와 경기와 연극이 끝난 다음 마치 실패한 사람과 같은 허무를 느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러한 감정이 언제나 사실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을 무시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감정은 사실이 아닙니다. 감정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케이와 결혼을 한 몇 주 후가 된 어느날 아침 일어나서 “여보 당신 알어, 나 결혼한 것 같은 느낌이 없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때 제 아내는 “여보, 그 감정이 무슨 문제예요. 당신은 결혼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여져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인으로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감정에는 때로 거짓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실보다 검정에 집중한다고 하면 우리는 문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실수를 하면 우리는 삶에서 완전히 실패자가 되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실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삶의 한 영역에서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패자가 되어 버리고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외부로 발산하는 것이 건강의 한 가지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아 두십시오. 당신의 감정을 외부로 발산하십시오. 감정을 밖으로 내 보내십시오.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대답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감정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은 감정으로 살지 말고 진리와 함께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 엘리야가 잘못한 것은 다음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왕상 19:4)



우리가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되는 두 번째 잘못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만일 내가 누구와 같다고 하면 나는 좀더 행복할 텐데.” 라고 생각하는 함정 가운데 지금까지 빠져 왔습니다. 당신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곧 문제를 자청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지혜롭지 못하고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고후 10:12) 당신 자신을 다른 어떤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각각 유일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하나 있다고 하면 바로 그 사람은 당신인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을 언제나 모방하고 그 사람과 같이 행동한다고 하면 침체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이 모두 이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또다른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약점을 다른사람의 장점과 비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약한 부분에 우리가 오히려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자신을 비판하고 정죄함으로 우리 자신에게 동기의식을 불러 일으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을 가지려고 합니다. “나는 반드시 그 사람과 같이 될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그것을 성취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중단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마치 우리 자신이 우리의 입에 회초리로 매를 들어서 우리 자신에게 동기의식을 불어 넣으려고 하는것과 같습니다. 다른사람에게 동기의식을 부여할 때는 잔소리를 가지고도 되지 않고, 또한 자신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일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내 아내는 기독교인 컨퍼런스에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운전을 하고 가면서 내 아내의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바꾸기 위해서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성경을 읽으므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면 성경을 읽는 것이 나에게 어떤 부담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강박관념을 가지고 하는 일에는 일반적으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밀면 나도 다시 그 사람을 밀고 싶은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며, 어떻게 사랑하며, 얼마나 은혜가 많은 분인가를 이해하고 싶기 때문에 성경을 읽기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침체할 때 또 빠지기 쉬운 함정은 우리 자신을 분류하고 명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실수하였구나”라고 말하는 대신에, “나는 완전히 실패한 자다”라고 말합니다. 또 “사고로 과오를 범하게 되었구나”라고 말하는 대신에 우리는 “나는 바보구나”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무 많이 먹었구나”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는 “나는 돼지구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명칭을 붙여 분류할 때, 이것은 오로지 문제를 더욱 가중하게 만들고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책임을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엘리야의 세 번째 잘못은 그의 잘못 때문에 일어나지 아니한 부정적인 사건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10절)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사실, “나는 3년동안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당신에게 가까이 나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과거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 엘리야는 영적인 침체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침체의 세 번째 원인은 우리가 책임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책임을 잘못 생각하면 언제나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지 않은 책임을 우리의 책임처럼 착각한다고 하면 우리는 너무도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습관이 있다고 하면, 당신의 자녀나, 친구나, 배우자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당신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대로 당신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르게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모든 반응에 책임을 다 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 당신은 침체라는 부담을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들을 통제하거나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결정은 그들의 것입니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일로 침체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부정을 과장하지 마십시오.



엘리야가 네 번째로 잘못한 것은 그가 부정적인 것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입니다. 그는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10절)라고 말했다. 엘리야는 여기에서 자신을 위한 조그만 처절한 잔치를 벌리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반대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이 강렬하게 그를 반대하고 있었고 이세벨의 위협은 진정한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엘리야가 그의 감정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그대로 생각만 하고 나갔다고 하면 이세벨이 감히 그를 죽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물론 이세벨이 사신을 보내 “내일 이맘 때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고 위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세벨이 참으로 엘리야를 죽이기로 결심했다고 하면 그에게 사신을 보내어 경고하지 않고 그를 쳐 죽일 사람을 보내었을 것입니다. 이세벨은 엘리야가 스스로 죽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 여자는 엘리야 능력의 영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엘리야가 죽임을 당하면 순교자가 될 것이고, 그러면 그의 영향이 더 커져서 이스라엘 나라에 대혁명이라도 일어날 걱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세벨은 또한 자기가 엘리야를 쳐서 죽이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그에게 임할 것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세벨은 말로만 엘리야를 협박하게 된 것입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광야로 내어 보낸 것은 자신이 그를 직접 죽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모든 민족 앞에서 겁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도중에 이 이세벨의 위협을 평가해 보지 않고 광야로 도망쳐 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침체 가운데 빠지면 부정적인 것들을 언제나 과장합니다. 모든 것들이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침체에 빠지면 온 세상이 다 망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엘리야만이 하나님 앞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신실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한 7천명의 선지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18절). 엘리야는 문제를 과장하였고, 그 과장이 그의 침체를 더욱 악화시킨 것입니다.



육신의 필요를 돌보십시오엘리야의 침체를 위한 하나님의 구제책은 무엇이었습니까? 이것은 당신도 침체기에도 사용할 수 있는 구제책입니다.



육신의 필요를 돌보아야 합니다.



당신의 침체를 위한 첫번째 구제책은 육신의 필요를 돌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엘리야가 나무아래 누워 잠이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주위를 돌아 보았더니 그의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워 잤습니다. 천사가 두 번째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일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고 말합니다(5-8절).

엘리야 침체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구제책은 안식과 음식과 휴식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룻밤의 참된 안식이 당신의 마음에 새로움을 주기도 합니다. 육신적으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지쳐있을 때, 당신은 곧 침체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얼마나 부드럽게 다루는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에게, “야 이 겁쟁이야, 이 광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말하면서 야단을 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무시하거나 정죄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이란 음식을 주고 안식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신적으로 엘리야를 다시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침체에 빠져있다고 하면 회복의 첫 단계는 육신적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건강의 필요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아마도 체중을 좀 줄여야 하거나 잠을 더 자야 하거나, 또는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육신적인 건강은 당신의 감정에 깊은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당신의 좌절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당신의 침체를 위한 두 번째 구제책은 당신의 좌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후에 굴로 들어가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주님께서 그에게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9-10절)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마음 속에 있는 그의 모든 느낌들을 다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있는 것들을 모두 쏟아 내어버리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엘리야의 불평에 하나님은 전혀 놀라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네가 곤경 가운데 있을 때, 내가 너희 모든 내적 감정을 들어주겠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고, 나는 그들로 인해 놀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그의 억압된 감정을 다 발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다른 그리스도인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자주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감정의 정화입니다. 당신의 속에 있는 것들과 침체의 원인이 되는 모든 것들을 내어버리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가졌던 여섯 가지 감정을 살펴보십시오. 첫째, 엘리야는 형편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3절). 그 다음에는 분개하고 있습니다(4절). 그는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과소적인 자존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엘리야는 그가 열심히 일한 결과가 아무 것도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10절). 그는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 나만 남았거늘”이라고 말하였습니다(10절). 그는 고독했습니다. 마지막은 그는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는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분개, 두려움, 죄책감, 분노, 고독, 그리고 염려를 결합하고 있다면 영적인 침체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내어 버리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야, 너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를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침체 가운데 있을 때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고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깨닫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새로운 깨달음당신의 침체에 대한 하나님의 세 번째 구제책은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11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다음에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지진이 있었으나 지진 가운데도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었으나 불 가운데도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 소리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는 주님이 계신 줄 알고 그는 밖으로 나가서 굴 어귀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람과 지진과 불을 보여주셨지만, 그 어느 것으로도 주님을 엘리야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야의 관심사는 오직 고요함, 작은 목소리, 즉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고요한 가운데, 그리고 조용한 가운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나 불과 같은 크고 극적인 것들을 통하여 말씀하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주님이 그의 곁에 여전히 조용하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영적인 침체에 있다고 하면, 성경을 가지고 바닷가나 호숫가, 또는 교외 밖으로 나가십시오. 거기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말씀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채우시고, 하나님의 임재를 당신 자신이 느끼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과 교제하며 교통하는 것보다 영적 침체를 이기는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당신 삶의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게 하십시오.



당신의 삶을 위한 새로운 방향침체를 이기는 네 번째 구제책은 하나님으로 인해 당신의 삶이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고”(15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침체를 이기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기 동정에 빠져 그대로 주저 앉아 있지 않는 것입니다. 관심을 당신 자신에게서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찾아보기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현재 사역하고 있는 곳에서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역에 헌신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자신의 모습만 생각하고 바라본다면 당신은 실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마 16:25).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참여하십시오.


우리가 침체에 빠지면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사용하실까? 나는 그런 실패자다. 나는 늘 실수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실망시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당신은 절대로 하나님을 실망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망은 실제로 당신이 하는 일과 다르게 어떤 일을 할 것을 어떤 사람이 기대하는 경우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은 당신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이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러한 일이 발생하여도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인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으셨기에 당신에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당신에게 새로운 목적과 새로운 방향을 인도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아직 당신과의 일을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포기하였습니까?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그 문제를 맡기면, 하나님은 당신을 들어서 그 일을 다시 시작하게 하실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나(또는 백 번) 당신의 삶에는 무의미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침체 속에 빠진 당신을 다시 올리시기를 원합니다. 그는 당신을 도울 수 있고, 그는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는 당신을 침체에서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감정의 속임으로 고통을 받는 삶을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의 감정은 당신의 생각에 의해 조정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당신의 생각을 당신이 직접적으로 지배하지 못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의 변화를 당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해로운 오해들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즉, “만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난한다면, 나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뜻이겠지.” “나는 삶의 만족을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나의 어떤 연약한 면들도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실패자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들이 침체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른 생각이 중요함을 아시고 “너희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당신은 더욱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시작해야 합니까? 먼저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함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로, “다시 거듭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듭난다고 당신의 모든 침체가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삶에 그리스도가 없이는 당신은 삶을 변화시킬 능력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맡기시면 주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한 번 당신의 삶에 주님이 들어오시면 당신에게 새로운 목적과 삶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을 그리스도에게 요청하십시오. 자신들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침체할 수 밖에 없는 삶을 보장 받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에서 당신을 잡아 끄는 더 위대한 그 무엇이 당신에게는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강하신 아들, 그리스도와의 생명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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