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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독교학교와 홈스쿨 운동의 회고와 전망(1)

by 【고동엽】 2022. 10. 19.

Bill Apelian (Director, Bob Jones University)

번역: 김선요(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희영(총신대학교 교수)


안녕하십니까? 미국의 밥 존스 대학의 총장님과 교직원 그리고 밥 존스 대학의 출판국을 대신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인사를 드립니다. 먼저 한국의 제1회 전국 기독교 교육회의에 저희 기독교 교육사례를 발표할 수 있도록 저를 초청해주신 서울여자대학교 지도부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자리를 함께 하는 동안 저는 세 가지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첫째는 기독교 교육을 위한 위임입니다. 둘째는 기독교 교육의 정의로서 기독교 교육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떠한 것인가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기독교 교육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I .여러분이 성경을 갖고 계시면 저와 함께 신명기 6장을 보실까요? 저는 여러분께 당시 모세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스라엘 자녀들에 대한 모세의 말을 몇 구절 읽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 안에서 교육에 대한 위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명기 6장 4절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먼저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할 책임이 주어졌는데, 그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선민이 되게 하기 위해 그의 백성을 불러내신 분이며, 신앙을 전수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시기를 계속하시며 그들에게 주시고자한 땅에서 그들의 자녀들이 거룩한 증인이 되도록 준비시키기를 계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교육을 위한 위임입니다.

그는 6절에서 계속해서 이르기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이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이것이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권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자손이기에 앞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는데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은 도대체 누구이며, 왜 그는 하나님께서 택하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자하는 씨앗을 품은 자로 삼을 만큼 특별한 존재였을까 하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여러분들께 언급한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8장 18절, 19절로 되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창세기 18장 18절과 1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그들의 사악함을 인하여 그들을 멸하시려고 하고 17절에서는 주와 두 사람이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에게 와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하는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주께서는 이 광야의 두 도시의 사악함을 인하여 멸하고자하는 나의 의도를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18절에서 계속해서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을 그를 인하여복을 받게될 것이 아니냐?"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민은 그를 통하여 축복을 받게되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친구라고 부른 아브라함은 누구입니까? 그는 이 방에 있는 우리들과 흡사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추천할만한 어떤 특별한 것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어느 누구나 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은 그의 가슴속에 있는 것이 남 다르다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자녀를 신앙적으로 가르쳤는데, 그는 단지 세상의 지식이나 교과의 학습이나 훈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숙련과 훈육의 모든 면을 보여줌으로서, 즉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자녀들에게 성경적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교도 문화와 본토를 떠나도록 부르셨을 때 믿음으로 순종하여 갈데아 우르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고자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에 따라 행동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을 받은 사람이며 로마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를 의롭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할례의 표징을 받았으며, 성회를 받아들였으며,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드리도록 부름을 받았을 때에도 순종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자리에 숫양을 대신 내려주심으로 성스러운 후사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의 충성스러움이었습니다. 그의 머리가 아니라 그의 가슴, 그의 속 사람, 그의 동기가 자리잡고 있는 자리, 즉 그의 참 자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그의 뒤를 잇는 자녀들에게 우주 가운데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도록 지시할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기독교 교육을 위한 위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참교육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정도의 학습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막혀있고 제한적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창조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지 않고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도 없습니다. 성스럽게 위임을 받은 세 기관이 있습니다. 첫째는 창세기에서 일찍이 발견할 수 있었던 가족 그 자체입니다. 둘째는 신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회로서 집회라고 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실천에 있어서는 교회를 앞선다고 볼 수 있지만 물론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셋 중에서 교육을 위해 고유하고도 포괄적인 위임을 받은 두 기관은 바로 가족과 교회일 것입니다. 정부는 성경적으로 볼 때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데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교육은 가족과 교회 사이의 연합입니다.

성경에는 신명기 6장에서 볼 수 있듯이 자녀들을 교육시키는데 아버지가 가장으로 자녀교육의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에게 교육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정부에 의해 지배되는 교육 현상을 목격할 수 있지만, 이는 성경적으로는 올바른 모형은 아닙니다. 부모는 시민으로서 확실히 교육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으로서 교육의 방법을 현명하게 선택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이 강해지길 바란다면, 기독교 정신이 성장하길 바란다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 지상에서 믿음을 바란다면 우리는 젊은 세대들이 효과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마스터해야하는 여러 학문 영역을 통해 우주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성경적으로 통합된 기독교 교육을 수행하기 위해 교회로서, 가족으로서, 교육기관으로서 연합해야만 합니다.

1.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세상에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2. 그들은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문제 해결사가 될 수 있습니다.
3. 그들은 전일제 사역이든 세속적인 취업이든 그들이 선택한 직업의 위치에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4. 그들은 기독교 정신의 유익함과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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