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Apelian (Director, Bob Jones University)
번역: 김선요(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희영(총신대학교 교수)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기독교 교육의 실천 문제를 다루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미국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세계 어느 민족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미국은 선교적 기독교 국가로서 세워졌습니다. 유럽의 최초 정착민에서부터 미국에 온 이민자들은 정부의 억압 없이 자유로운 가운데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에 왔던 것입니다. 교육을 시켰던 일차적 기관은 가정과 교회였습니다. 미 대륙에 최초로 세워진 대학은 젊은이들이 성경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세웠습니다. 식민지 시대와 시국의 초기 어설픈 학교 제도의 목적은 사람들이 완벽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이 우주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이해시키기 위해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순례자 선조들은 국가 교회의 압제와 처형을 피하기 위하여 해변가로 모여들어 그들의 양심과 성경이 지시하고 있는 성경적 종교활동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미국 교육사는 독특하고 교육적입니다.
유럽민 정착 150년동안 북미의 모든 교육은 기독교 교육이었습니다. 종교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던 식민지 개척자들은 종교야말로 수행되는 모든 학습의 주춧돌이자 목적이었습니다. 사실 성경은 일차적 교과서였습니다.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은 가정과 교회 지역사회의 어린이들이 서로 알 수 있고 성경과 하나님을 배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구목사는 종종 마을 교장이었지만 가정교육이 규칙이었습니다. 이러한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어서 식민지 시대의 문해율은 매우 높았습니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지역사회가 늘어나게 되었고 국가가 성장하자, 공식적 교육제도의 필요가 분명해졌습니다. 마을 학교는 차츰 기구화되어 갔지만 여전히 기부금 지원을 받았고 그 성격에 있어서도 기독교적이었으며, 18세기 중반까지 크고 작은 도시에서 교사(校舍)는 여전히 이정표였습니다. 상당한 정도의 교육은 특히 국경지역에서는 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졌으나, 점차 더 많은 가정, 교회, 지역사회가 합쳐서 더 많은 공식적 환경에서 학습을 시켜왔습니다.
미국 혁명기라고 볼 수 있는 19세기의 50년간 이러한 시나리오는 정부 후원 아래 교육을 표준화시켰다는 일부 주장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국가 전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후 1850년대에 첫 번째 공립학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저기 지방자치 단체에서 한때 가정과 교회의 권한이 지방 자치 정부에 의해 잠식되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교육은 지역사회의 생존과 번영에 너무나도 필수적인 것이므로 아마튜어의 손에 남겨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호레이스 만(Horace Mann)과 다른 전문적(그리고 주로 세속적) 교육가의 영향 아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두 기관인 가정과 교회의 다정한 맞물림은 비집혀 열리게 되었습니다. 계시와 동떨어진 지식을 강조하는 이성주의, 공리주의, 그리고 세속주의는 점차적으로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정부학교와 국가 어린이 교육을 통제했습니다. 존 듀이(John Dewey)의 지도력과 컬럼비아 대학교를 통한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진보주의 교육과 세속적 인본주의는 공립학교의 지배적인 철학과 신념체계 (종교)에 끝내 승리의 개가를 올렸습니다. 이러한 일을 자행하는 국가에 대해 가족과 국가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일찍이 1920년대 중반에 매우 작은 분리적이며 독특한 기독교 학교가 생겨났습니다. 밥 존스 아카데미(Bob Jones Academy)가 1927년에 세워졌습니다. 정부는 기독교 정신에 대해 묵시적으로 인정을 하고 학교는 여전히 지역사회 중심적이었고 교사는 명목상으로만 기독교 윤리를 채택했기 때문에 이 운동은 공립학교의 유해한 경향을 볼 수 있었던 소수의 교육적 몽상가들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1963년에 대법원이 교실에서 기도와 성경을 없애라는 결정이 내리고 나서야 기독교 공동체는 자녀들을 세속화시키고 인본주의화시키려는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를 성취시키기 위한 작업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지만, 무감각과 무간섭으로 인해 사실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한심하게도 강제적인 인종차별 대우 철폐와 강제 버스 통학운동이 이러한 새로운 대안교육 운동으로 추진력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어떠한 이유든 간에 그들은 1만 2천개교의 기독교 학교와 3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매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 학령 어린이 중 7%가 기독교 학교에 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1970년대 후반에 다른 형태의 기독교 대안교육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과격한 운동으로 보인 홈스쿨링이 전통적인 크리스천 및 세속적인 교육자들에 의해 폭도들의 피난처와 같이 즉각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성경적이며 성공적인 선례로서 홈스쿨링의 타당성을 인식한 몇 안 되는 기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밥 존스 대학입니다. 여론과 대부분의 교과서 출판사에 의해 외면당하고 그리고 매우 영향 있는 교육기관, 대학, 교육자 연합회 등에 의해 통렬히 비난받은 호스쿨 운동은 밥 존스 대학과 그의 교육 출판사인 밥 존스 대학 교육 출판에 의해 돌보고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운동이 개시된 이후 가정교육에 대한 여론이 드라마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주로 홈스쿨 운동가들의 열렬한 로비에다 홈스쿨러들의 급격한 증가 추세 (대략 2백만 명에 연15%의 증가),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의 성공 등에 크게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설치자들이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수많은 전국 학업 상을 수상하고 평균적인 표준화 검사점수에 있어서도 더 높았으며, 지명도가 높은 대학으로부터 입학을 허락받았으며, 이 운동의 비판가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지도자로서의 기능과 사회화 정도를 발휘하였습니다. 홈스쿨링 즉, 가정학교는 어린이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의 하나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입증된 셈입니다: 학문적으로나 성경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그의 효과는 매우 가깝고 강한 가족단합을 생기게 하고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기독교 공동체와 국가를 전체적으로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미래를 논의하기에 앞서 한가지 주제를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거짓의 이분법, 즉 전통적인 학교 대 홈스쿨입니다.
미국에서는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홈 교육은 홈 교육이고 전통적인 교육은 전통적인 교육이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으며, 이 양자는 만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합니다. 물론 이들 상당부분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발상은 부적절하고 달성할 수 있고 또 달성해야하는 이상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은 '내' 홈스쿨이거나 기독교 학교에 '내가' 보내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두 방법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그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훈계하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부모가 처리해야하는 단지 도구일 뿐입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이거나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게임이 아닙니다. 앞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더 높은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교육의 연속체는 기독교 가족으로 하여금 새 천년의 그리스도를 위한 세계에 영향력을 갖는 자녀들을 준비시키는 믿을 만한 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잘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기독교 교육이 전통적인 교육과 가정 교육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경계에 의해 나누어졌지만, 이제는 모든 자원이 하나님 중심의 성인으로 키울 수 있는 목표에 근접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상호 경계를 여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합니다. 이는 성경을 믿는 교회, 성경적으로 통합된 커리큐럼, 성경적으로 건전한 전통적인 학교, 기독교 가정교육을 지원하는 단체, 참 그리스도 중심의 고등 학습기관, 전념하는 기독교 교육 지도자 그리고 관심을 가진 크리스천 부모가 포함됩니다.
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기는 하나 이러한 모델 하에서 그들은 그들이 관심을 두는 것 이상의 혹은 이하의 실제적인 가르침을 가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어떤 부모들은 전통적인 기독교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에 완전히 맡기는 것을 선택할 것이며 어떤 부모는 전적으로 가정에서 교육하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것은 부모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 방법을 결합하여 양쪽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한 가족은 가정에서 초등교육을 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을 수도 있으나 중등교육 수준의 특정 과목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도움은 주변 기독교 학교나 지역의 홈스쿨 지원 단체 혹은 기독교 대학이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적합한 기독교 교육 산하 단체가 있다면 전국적으로 쉽게 이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특정 도시나 지역에 한정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현명한 지도력과 지침아래 급속히 확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하부 구조에 대해서 밑에서부터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개별적인 홈스쿨 가정입니다. 이들은 가족 전체가 참여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자녀에게 기독교 교육을 제공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는 신명기 6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유형에 가장 근접하는 모델입니다. 이러한 가족들은 BJU출판사와 같이 성경적으로 통합되고 학문적으로도 안전한 교육과정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에 부모들 스스로가 교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러한 가족 내의 교사들은 미리 수업할 것을 읽어 둠으로써 교재를 만든 저자들의 도움을 받아 매우 효과적인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를 촉진시키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교사-학생간의 상호작용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호주의적인 가르침은 교사가 문자적인 단순한 것으로부터 해석적이고 고차원적인 수준의 매우 중요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의 질문을 하게 될 때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양산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원리에 따라 추론을 발달시키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홈스쿨의 환경 안에서 아이들은 교사가 바로 자신의 양육자인 엄마 또는 아빠라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은 그들에게 이전에 습득된 지식에 근거한 원리들을 명확히 말하도록 요구하는 질문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이러한 접근은 문제해결이 필요하고 독립적인 결단이 필요한 귀납적 추론을 촉진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육의 문제는 가르침이 어떠한 사실을 말을 통해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고 그 사실들을 훈련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혼자 힘으로 사물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통해 흥미를 느끼게 되며 이러한 경험은 그들을 평생동안 학습자로서 배우는데 힘쓰도록 만듭니다. 어떠한 학습환경도 홈스쿨과 같은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가 힘듭니다.(홈스쿨이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어떠한 학습환경보다 가장 효과적입니다)
또한 홈스쿨은 전통적 교실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들을 가르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명한 부모들은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정활동에서 이러한 기회를 찾을 것입니다. 식품점 장보기는 수, 화학, 생물학 혹은 소비자학에 대한 학습장이 될 수 있습니다. 요리는 요리법을 가르칠 뿐 아니라 화학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지리학은 가족과 함께 친척집을 방문하는 것과 결합될 수 있으며 물리학은 차를 운전하는 것이나 혹은 자전거 타기와 관련될 수 있다.
홈스쿨의 또 다른 중요한 장점은 부모 자신이 자녀를 직접 가르친다는 점입니다. 홈스쿨을 통해 부모들은 자신의 세계관, 문화, 전통을 자녀들에게 심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의 재능이 충분히 개발될 수 있도록 융통성을 가지고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경우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들의 학습경험이 향후 고등교육이나 직업훈련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교육과정에 따라야만 합니다. 특히 그러한 교육과정은 부모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물 가운데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경건성 발달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또한 통합된 교육과정은 여러 과목들이 어떻게 상호관련성을 가지게 되느냐에 대해 볼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부모들이 그러한 가르침을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미국 Bob Jones 대학에서는 홈스쿨 출신의 학생들이 학문적으로 매우 뛰어나며 적응력도 높고 자신감에 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습니다. 물론 홈스쿨의 교육적 경험에 있어 도움의 필요를 느낄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학교, 홈스쿨 지원단체, 교재 출판업자들의 역할이 시작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BJU출판사처럼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해줌으로써 그리고 홈스쿨과 기독교 학교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해줌으로써 부모와 교사들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협력하는 기독교 학교나 지역 홈스쿨 지원단체 역시도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몇몇 부모들이 버거워하는 과목에 대해 지침이나 혹은 실제적인 교수법까지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BJU출판사에서 나온 HomeSat이란 제목의 홈스쿨을 위해 특별히 고안, 제작된 비디오 교육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에 이르는 이 비디오 교육과정은 홈스쿨 현장 안에서 전문 교육자에게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교실을 옮겨 놓은 비디오 테이프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와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며 직접적인 실물학습을 촉진하는 교육자료입니다.
이상적인 기독교 학교는 홈스쿨을 기독교 교육 연장선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며 이러한 교육적 선택을 지지하는데 있어 나름대로의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앞서 이미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이러한 기독교 학교는 홈스쿨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스포츠, 견학, 음악합주 등과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록을 남기는 것과 표준화된 시험을 실시해 줄 수도 있습니다. 헌신된 교사들과 행정가들 역시 부모들의 교수방법이 향상될 수 있도록 지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교수방법을 위한 저녁강좌를 개설해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역의 홈스쿨 지원단체 역시 홈스쿨과 가정의 교육적 방법에 대해 개별적인 경험에 근거한 조언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러한 필요의 많은 부분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홈스쿨 지원 단체들은 학교를 설립함으로써 가정을 도울 수 있으며 가르침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을 해 줄 수도, 교육과정 선택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도, 학생들의 진보를 측정해주고 기록을 보존해주는 역할을 통해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단체는 표준화된 검사를 집행할 수 있는 면허가 있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학습장애를 진단하며 어려움에 처한 학습자를 돕는 방법을 고안함에 있어 부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개인 교사 서비스는 이러한 원조단체에서 흔히 이용할 수 있는 도움입니다.
홈스쿨 지원단체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홈스쿨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초기에 이러한 대안 교육 방법의 창설을 위해 일했으며 그 다음에는 정부와 대중의 인증을 받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들은 정부로 하여금 홈스쿨을 극단적으로 규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서울여대와 Bob Jones대학과 같은 대학들이 이러한 청사진에서 감당해야 할 부분은 과연 무엇일까요?
1. 이해와 중대한 사고기술을 강조하는 성경적으로 통합된 기독교 교육 장려
2. 뛰어난 학문성뿐만 아니라 이러한 목표들을 원조하는 자료 제공
3. 홈스쿨과 전통적 학교에서의 기독교 교육발달을 위한 지도력 제공
4. 한국에 기독교 교육 운동이 활성화되도록 교사와 원조 단체 지도자에 대한 훈련
5. 한국의 기독교 교육 산하단체의 발달을 도움
a. 전통적 학교에 기독교 학교체제가 확립되도록 도움
b. 홈스쿨을 위한 지역 원조단체 설립
c. 목회자와 지역교회를 통해 모든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교육에 참여토록 장려
6. 기독교 학교와 기독교 홈스쿨의 졸업자들을 대학에 받아들여 그들을 잘 훈련시키고 그들이 하나님을 위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파송
마지막으로 지역교회에 대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담당해야 할 분야는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는 결코 하찮은 문제가 아닙니다. 노예를 해방시켰던 미국 대통령 Abraham Lincoln은 한 세대의 교육철학은 다음세대의 정치철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습니다. 미국 교실의 세속적인 인본주의와 무신론자들의 반 기독교적 철학들은 공립학교가 황폐되도록 했으며 이는 미국 사회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상황 역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이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강력한 기독교 교육체계를 확립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한국과 한국 교회를 축복하시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비젼을 품어야만 합니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그들의 자녀를 위해 기독교 교육을 추구하도록 권고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단들은 전통적인 학교 혹은 홈스쿨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2)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6-7)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세기 18:18-19)
진정한 기독교 교육에 대한 전망은 매우 밝습니다. 사실 홈스쿨이건 혹은 전통적인 학교이건 간에 헌신된 기독교 교육자들에게는 20년 전 만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그들 나름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있습니다. 완전히 성경적으로 통합된 교육과정, 인터넷, 도서관, 교육적 비디오, 원거리 학습, 지원 산하 단체를 위한 효과적인 모델, 그리고 한국의 서울여대와 미국의 Bob Jones와 같은 대학들의 후원 등이 바로 그러한 자원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의 원리에 헌신될 수 있다면; 만약 우리가 가족, 크리스천 가족, 성경 중심의 교회, 홈스쿨, 전통적 학교, 자원제공자, 대학들 모두가 성경을 중심으로 협력하는데 동의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놀라운 일들에 제한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이킬 세대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극복해야 할 장애들이 있기는 합니다. 험담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낙심케 하고 곤경에 빠지도록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과 승리 그리고 풍족한 열매 역시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혼자서 할 수도 없을뿐더러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신실하다면 우리는 경이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과 물적 자원, 비전 그리고 열정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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