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환목사 (수서교회)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 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창 41:46-57)
어떤 통신회사의 기술자 한 사람이 이사로 승진한 후 두 달만에 심장마비를 일으켰습니다. 나이가 서른 여덟밖에 되지 않았고, 평소에도 건강했고, 가족 중에도 심장마비를 앓은 사람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의사들은 최근에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기 기술자 일을 좋아했고, 또 능력도 있었기 때문에 서른 두 살이라고 하는 젊은 나이에 그 회사의 수석 전기 기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의 아내는 말하기를 "우리 아이들을 잘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보수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좀 잘 해 보세요." 그러한 주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말을 마음에 담고, 두 가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독립해서 회사를 차릴까?''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너무도 위험하고, 먼저 차린 사람들이 안정되지 못한 가운데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도무지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길은 하나, 그 회사에서 승진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승진을 위해서 몸부림치며 노력했고, 마침내 승진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승진한 후부터 그가 맡은 부서는 경직되기 시작했고, 능률은 떨어졌고, 개인적으로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 계속되는 회의와 서류 작성과 보고서와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라고 하는 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회사에서는 당신이 잘 하는 것 같지 않으니 경영에 대해서 좀 배우라고 하는 요구와 함께 세미나 참석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경쟁과 팀웍에 대해서 배우고, 계획 수립과 전략에 대해서 배우는 등 많은 것들을 배워야 했습니다.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압박감 속에서 배웠습니다만, 돌아와서 그는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었노라고 거짓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비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벽에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병원으로 실려 왔습니다. 6주일 동안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이렇게 회사에 요청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원래 제가 있었던 수석 기사 자리로 내려 주십시오."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그 자리에 복귀한 그는 마치 구원받은 기쁨을 누리게 되었고, 건강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다음부터 경영진을 부러워하지 않았고, 적은 보수에도 만족했습니다. 프랭크 프랜세타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오늘도 성공을 바라고 있고, 성공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것이 성공이라고 정확하게 답변하는 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공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적당한 명예와 지위와 재물을 얻어서 남들보다 좀 더 나은,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살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단히 많습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자기가 놓여져야 할 곳에 놓여지는 것이라고.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나의 소원,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야심인 ''ambition''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가지고 계시는 나에 대한 소원인 ''vision''을 이루는 것이 바로 성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잘 깨달아서 그것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지요. 그러므로 그는 꼭 지위가 높을 필요도 없는 것이고, 돈이 많아야 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런 저런 직종에 종사해야만 성공한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놓일 곳에 놓여진 사람, 그래서 그 일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그 일을 통하여 봉사하며, 그 일 속에서 성숙해나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게 꼭 맞는 직위, 꼭 맞는 직업은 무엇일까요?" 그렇게 묻는 분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잘못된 접근 방법입니다. 이렇게 기적적인, 단순한 해결책은 많지 않습니다. 사실은 시간을 두고 겸손히 능력을 배양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리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거치면서 사람은 자기의 길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나의 사명,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vision을 찾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착각''입니다. 위대한 일을 수행할 능력을 배양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데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소명에 대한 예감 때문에 흥분해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우월성이 아닌 자신의 평범함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충동''이 문제입니다. 남들에게, 자신에게 자신이 어떠한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욕망에 사로잡혀서 이것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주장을 합니다만 사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 아니라 충동일 때가 많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미리 두려워해서 도전도 못해보고 좌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충동과 착각,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진지하게, 정직한 자세로 내게 주신 생의 과정에 성실히 임하면서 나갈 때, 그는 한 걸음씩 자기의 해야 할 일에 접근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신분이나 권력이나 물질 자체에 대한 갈망을 일단 내려놓고, 내가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갈망하며 나갈 때, 그는 자기의 사명에 가장 쉽게 접근하고, 그 일을 발견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공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당신의 계획을 꿈을 통하여 알려 주셨고, 그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번민하는 바로에게 요셉은 정확한 해석을 해 주었고, 또한 탁월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들으면서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은 감동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어디서 이렇게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고 감탄하면서 그를 총리로 기용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제 그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는 그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면서 발전해 나가는가 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름뿐인 총리가 아니고 아주 실세를 쥔, 전권을 위임받은 총리가 되었음을 성경을 말씀합니다. 41장 42절입니다. 봉독합시다.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바로의 손에 끼어 있던 인장 반지, 어인이 새겨져 있는 반지를 빼어서 요셉의 손에 끼워 주었다.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어떠한 조서나 칙령에도 요셉 마음대로 왕의 이름으로 허가할 수 있는 결재권을 위임했다, 그런 얘기지요.
또한 그 다음절에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고 행진을 함으로써 바로 이외에 이 나라에 요셉보다 더 높은 자가 없다는 것을 공식 확인해 줍니다.
또한 45절을 봉독합시다.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요셉의 출신이 애굽사람이 아닌 것을 배려해서 애굽식 이름으로 왕이 직접 이름을 주어 하사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애굽의 귀족 계급들과 더불어 일하는 데 방해가 될까 해서 애굽의 최고 가문인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가문과 결혼을 시킵니다. 명문댁 규수와 결혼케 함으로써 귀족 계급의 반발과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엄청난 배려를 바로가 해 주었습니다. 요셉에게는 이러한 엄청난 변화가 왔습니다.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와 환경 속에 놓여지게 된 것이지요. 우리들의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성공을 했습니다.
자, 그는 이제 이 성공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고 있는가?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먼저 그는 성공 속에서 아주 충성되이 열심히 일합니다. 45절, 46절 두 군데서 그가 애굽 온 땅을 순찰했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그냥 유람을 다닌 것이 아닙니다. 애굽 땅 전역을 조사하면서 적어도 세 가지를 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토지 조사 사업이요, 둘째는 농업 수급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느 지방에 토질은 어떠하고, 그 지방에 맞는 특산물은 어떤 작물이 맞는지, 그리고 어떠한 양이 산출되어야 하고, 이것을 어떻게 보관하고, 운송하며,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마늘 파동이 있었습니다. 원래 농업이라고 하는 것이 수급 정책이 어렵거든요. 올해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 내년에 그 풍종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농민들이 생각 없이 그 품종만 막 만들다가 손해보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그 넓은 애굽 땅 전체에서 균형 잡힌 곡물의 수급 정책을 편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셉은 그것을 관리하고, 지도하고, 권면해서 정책에 반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같이 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특성에 맞으면서도 그 지방마다의 균형 있는 곡물의 수급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일에 그가 몰두했음이 성경에 잘 나타납니다.
또한 그는 5분의 1을 거두어서 모아야 된다고 했는데, 5분의 1이라고 하는 것은 20%입니다. 그 당시의 세금이 일반적으로 10%였는데 두 배로 올렸다는 것이거든요. 여기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이라고 하는 것은 가히 예상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 저항을 잠재우고, 백성들을 설득하고, 신뢰를 쌓아 가는 작업이라고 하는 것도 또 어려운 일이지요. 이것을 요셉을 감당해 나갑니다. 이 세금의 증세가 바로 백성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지역마다 그들의 곡물을 쌓을 수 있는 창고를 만들게 되고, 평민과 귀족과의 여부를 떠나서 공평한 세수 정책을 폄으로써 백성들의 의심을 제거하고 신뢰를 확보하는 일에 그는 몰두하게 됩니다. 이 모든 얘기가 바로 온 땅을 순찰했다는 말속에 들어 있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일했다, 그런 얘기올시다.
정말로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인지 충성스러운 사람인지는 하나만 보면 압니다. 내가 모시는 그 분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실망한다거나 내가 열심히 땀 흘려 일했는데 내가 기대한 만큼의 보수가 직접 오지 않을 때 낙심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바로를 섬기지만 그 바로 뒤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예요. 바로가 보건 안보건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마음, 당장 보수가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든, 합당할 만큼 만족스럽든 만족스럽지 않든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자세로 열심히 일하는 자, 그가 바로 충성된 사람입니다. 누가 순찰을 가라고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본분을 마땅히 다 해야 되므로 그는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어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한 후에는 일하기를 게을리 할 때가 많습니다만 성공은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더 큰 일을 위한 수단이요, 게으름을 합리화해주는 것이 아니올시다. 성공한 후에는 사실 할 일이 더 많은 것이예요. 요셉은 열심히 자기의 일에 충성을 했습니다. 그것이 성공한 자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두 번째 요셉은 용서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요셉에게는 아들 둘이 태어났는데 자기의 아들을 이름 붙이는 데에 그의 마음의 깊은 속이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51절, 함께 봉독합시다.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요셉은 ''므낫세''라고 첫 아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므낫세''란 ''잊어버림''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잊어버렸다는 말입니까? 과거를? 이미 기억된 과거를 어떻게 잊어버려요? 여기서 잊어버렸다는 것은 과거 사건 속에 들어있는 모순과 죄악과 분노와 원망과 쓰라림... 같은 독소들을 잊기로 결심했다는 말입니다. 왜 잊어버려야 했습니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나에게 잘못하고, 해코지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러나 그 사건 뒤에 나를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더 높고 위대한 경륜을 믿었기에 그는 잊어버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내가 성공한 후에 보복하리라, 반드시 한 번 손을 봐 주지."라는 마음을 싹 비웠다는 말입니다.
사실로 상처받기로 말하면 요셉같이 상처가 많은 사람이 없어요. 요셉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또한 형들에게 배신 당해서 노예로 팔려 옵니다. 10여년 간 열심히 섬긴 주인과 아내로부터 처절하게 배신을 당합니다. 감옥에서도 철썩 같이 약속한 사람들에게 또 배신을 당합니다. 요셉만큼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말로 상처 덩어리의 가슴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혹시 마음 속에 상처가 있으십니까? 이것이 치유되기를 원하신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용서와 잊음을 통하지 않고는 치료되는 방법이 아무 것도 없어요.
요셉은 그러므로 이제 미움과 원망과 분노, 보복의 감정들을 절대로 기억하지 않기로 결심을 합니다. 아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므낫세야, 므낫세야'' 하면서, 모든 부정한 감정, 어두움의 감정들을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서 정리하고 용서하며 살기로 결심을 합니다.
두 번째 아들의 이름이 52절에 나옵니다. 봉독합시다.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에브라임은 ''창성함, 엄청나게 번영함'', 그런 뜻입니다. 내가 고생만 할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이 고생을 다 물러가게 하시고, 내게 엄청난 부요함과 평안을 주셨도다. 그 평안함과 창성함에 이유를 묻고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잊고 용서해야만 창성해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아들의 이름을 해석하는 구절, 51절과 52절에 똑같이 나타나는 강조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나로...''라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을 잊게 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공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는 것입니다. 성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했다는 그런 말이올시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겠다고 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그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고비가 지나가고 나면, 평안이 찾아오고 번영이 찾아오면 다 내가 잘해서 된 것 같이 고개를 살살 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 이 고비만 넘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하는,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정말로 그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 하나님 앞에 행동으로 돌려야 영광이 됩니다.
여러분, 절대로 한평생 사는 동안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지극히 높일 때, 사실은 그 때에 진정한 기쁨이 오도록 그렇게 되어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왜 미운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렇죠? 요셉처럼은 살지 않았다고 해도 오늘, 우리가 이 형편까지 열심히, 이를 악물고 달려오는 인생살이 속에서 미운 사람이 없겠어요? 있지요. 나를 견제한 사람도 많고, 방해한 사람도 많고, 음해 공작한 사람도 많고, 고의로 함정 판 사람도 많고... 미운 사람이 항상 있는 법입니다, 여러분.
이제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요셉은 용서했어요. 그리고 오늘까지 열심히 살아 왔지만, 나도 수고했지만 내 힘으로 어찌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요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오늘이 있음은 아버지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성공한 사람의 두 번째 모습 아닙니까?
세 번째 모습이 56절에 나옵니다. 봉독합시다.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창고를 열고, 곡식을 나누어줍니다.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창고에 모을 때가 있고, 쌓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만 베풀고 풀어놓을 때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 잘 보면 요셉이 아무렇게나 막 풀어놓지를 않습니다. 왜요? 막 풀어놓으면 남아날 것이 없잖아요. 낭비하게 되고, 돈 받는 사람들이 게을러지게 되고, 쓸 데 없는 욕심을 자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나누어줍니다. 소위 나눔의 기술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돈 있는 자에게는 양식을 팔기도 하고, 돈 없는 자는 나라에 부역에 동원시켜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한 뒤 곡식을 나누어줍니다. 쌓은 다음에는 나누는 것이지요. 소유도, 은사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는 성공한 후에 열심히 일했고, 과정 속에 있는 모든 미움을 다 용서하고, 오늘이 있음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리고 축복을 나누는 삶, 은사를 분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는 더욱 성숙해지고, 고결해지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신뢰를 얻어 가면서 애굽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과연 성공한 사람이지요.
우리는 때로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아니예요. 가난하고 힘들 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없으면 못산다고 고백을 해야 되겠지만, 내가 이만하면 괜찮고, 지위도 올라갔고, 돈도 벌었다 할지라도 그에게도 역시 하나님은 간절히 요청되어야 할 그의 아버지이신 것을 요셉의 사건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요, 인기에는 겸손이 요구되는 것이요, 번영에는 욕심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마음을 어디서 공급받을 수 있느냐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번영 속에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입니다.
번영과 성공 속에서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성공을 나에게 왜 주셨습니까?" 이것을 묻지 않으면 반드시 세 가지에 빠지게 되어 있답니다. 첫째는 권력 혹은 소유의 남용이 일어나게 되고, 둘째는 탐욕과 교만에 빠지게 되고, 셋째는 그 속에서 성숙해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루었을 때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용하지 않고, 교만에 빠지지 않고, 그 속에서 계속 더 아름답게 성숙하고 발전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요셉의 성공 사건을 왜 성경은 이렇게도 자세하게 기록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그 백성을 인도하는 방법이 여기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때로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을 만납니다. 그 속에서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높고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 그늘 속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형통하고 성공하게 되었을 때에도 부지런히 일하고, 용서하고, 영광을 돌리며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교우님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어찌 이렇게 작은 교회 안에 이렇게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까? 가진 자도 있고, 가지지 못한 자도 있고, 높은 자도 있고, 낮은 자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다 사람을 기준으로 볼 때의 얘기예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성공 여부를 물을 때는 옆 사람과 비교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예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느냐를 물어야 할텐데, 사람들은 이것을 묻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합니다. 그러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열등감에 빠지고, 패배자 의식에 빠지고, 혹은 교만해지고... 이러한 모순 속에 갈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다 지워버려야 되겠습니다.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돈과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각자 다 나름대로 다르게 세우셨어요. 그러므로 주어진 처지를 인정하는, 그러한 진실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남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또한 부자에 대해서 시기, 질투할 것도 없어요. 그들의 풍요를 정죄하지 마세요. 어느 시대는 골프 치는 것을 정죄했어요. 그것은 잘못이예요. 왜 정죄한다는 말입니까? 그 속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기, 질투할 것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어요. 또한 무시하고 깔볼 이유도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나는 바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차이가 많지만, 우리는 가진 것 차이를 다 극복하고, 이 모습 이대로 속에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남은 생애를 추스려서 내 처지가 어떻든 간에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매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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