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18-21
"고민과 황홀"이라는 소설을 쓴 어빙스턴은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조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거인 골리앗에게 도전한 씩씩하고 용감한 조각상을 성서의 모형에서 땃다"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언제 다윗이 거인이 되었는가? 골리앗을 죽인 다음인가? 혹는 자기가 반드시 처치하겠다는 결단을 하는 순간인가?"라고 물으며, 다윗이 거인이 된 것은 골리앗을 죽인 이후가 아니라 그를 처치하겠다고 결단을 내렸을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연한 결단은 가장 약한 인간을 거인으로 만듭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다메섹이나 안디옥이나 로마에서가 아니라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뒤 사막에 들어가 무더운 모래지열에 시달리면서 예수의 복음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장래 일의 승패는 어느 한 순간의 결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래서 링컨은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경건하게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최선이 방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혜를 다 짜내도, 주변사람들의 지혜를 다 모아 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대책이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도 정치, 경제, 사회적인 어두운 현실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불행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고 대책없이 살아가다가 해외로 도피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들이 체험한 절망감은 이보다 더 극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책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로 생활은 장기화되었고, 조국의 자유를 회복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스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래의 꿈조차 잃어버렸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대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단 뿐입니다.
오늘날 처럼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새로운 결단을 하여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적 속에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애굽의 집권자인 바로 왕은 국고성 비돔과 라암 셋을 건축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원하였는데, 그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번성하고 창성하였습니다.
이를 불안하게 여긴 바로는 산파들에게 명령하여 이스라엘 여인들이 남아를 낳으면 죽이고, 여아는 살려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선택하여 출애굽의 대역사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셨고, 광야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으며 반석에서 생수는 내는 등 놀라운 일들을 통해 그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도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한 행태를 보이기 일쑤였습니다. 급기야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철퇴를 가하여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성전은 무너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하고 자녀들에게 철저히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이 뉘우치고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오늘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되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 43:18)
여기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와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같은 의미입니다. 이처럼 강조를 위해 동의어를 두 번 사용하는 것을 "동의적 평행법"이라고 하는데, 이와같은 방법으로 강조하면서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한 '이전 일' '옛적 일'은 바로 출애굽 사건을 가리킵니다.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도 모자를 정도인데, 어째서 이 일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반어적인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의 놀라운 사건과 현재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옛적에는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대역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왜 아무 일도 없는 것인가?'라며 한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았습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한탄하면서 자포자기에 빠져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지나간 과거에 얽매어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는..."하면서 화려했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의 부족함을 변명하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옛날에는 참 봉사 많이 했는데..." "옛날에는 신앙생활 잘 했는데..." 하면서 자신의 식어버린 열정을 한탄만 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 간 과거는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의 결과를 바꿀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공했건 실패했건 그 안에서 무엇인가 깨닫고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가끔 배우자를 잃고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매일 울면서 방황하는 이들을 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때에도 배우자의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기에게 남겨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찾아 그 일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 버마 아웅산 폭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세상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이범석 외무장관이 있었습니다. 남편 품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그 분의 부인이 겪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신앙 안에서 그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까지 남편 품에서 행복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남편이 못다한 하나님의 일을 자신이 해야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고 봉사활동으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매어 살면 안됩니다. 어떤 사건이든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찾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매여 살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9)
바벨론 포로의 고달픈 삶 속에서 과거만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보다 더 큰 역사를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전 일, 옛적 일은 기억나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출애굽 때는 바다에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 이번에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9-20)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길을 통해서 바벨론 포로에서 귀향할 것이고, 그 사막길을 가는 동안 목마름이 없도록 사막에 강물이 흐르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과 같은 어두운 현실에 포로로 잡혀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위해 새 일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 일은 모든 들짐승들 조차도 찬양할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절망하지 말고, 또한 과거의 영광만 그리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베푸실 '새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저는 예루살렘에 가서 "야드바샘"이라는 전쟁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6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전쟁 기념관은 그들의 아픈 기억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은 독일 사람들을 향해 보복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고, 다시는 이 땅에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새 일'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이라도 당장 결단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행하시는 새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그의 마지막 생일에 확신과 기쁨에 차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늙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늙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밝은 희망과 멋진 미래를 갖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친구가 말하기를 "자네는 한참 자라고 있는 늙은이일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는 항상 밝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어두움에 싸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
무신론자 토마스 홉스는 인생을 마치면서 "이제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구나"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너무 밝습니다. 주께서 새 일을 행하십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킨 이유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었고 이번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귀환 목적도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장로교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이 "사람이 사는 제 일 목적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핵심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요 4:24). 예배에는 진실이 있어야 하고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는 예배하러 가실 때 시골에서 목욕탕 같은 것이 없는데도 부엌에서 목욕을 하시고 깨끗한 옷과 헌금을 준비하셔서 주일 하루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어머님을 보고 배운 것이 정성어린 예배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일에 자기가 나타내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서도 결코 인간의 공적이 나타나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나타나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고레스'라는 바사 왕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는 단지 하나님의 도구였을 뿐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진 것 뿐입니다. 결코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광 돌리는 도구로써 만족해야 합니다. 그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영광과 자랑, 혹은 실패와 좌절에서 벗어나 우리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롭게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일에 나도 한 몫 끼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축복된 삶, 위대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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