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40:1-11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39장은 머지않아 유다왕국에 덮칠 어둠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5-7절을 보면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장차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모든 보물과 함께 많은 백성이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될 것임을 히스기야 왕에게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 39장과는 판이하게 대조적인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39장에서의 예언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거기서 오랜 세월을 고되고 비참하게 살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올 영광의 빛을 약속하시며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절을 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기서 첫 부분"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할 때의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할 때의 "너희"는 예언자 또는 예언자의 무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백성을 어떻게 위로하라는 것입니까?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기쁜 소식을 외쳐 알리라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닿도록" 외치라 한 것입니다. "마음에 닿도록" 무엇을 외치라는 것입니까? 역시 2절에서 읽듯이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으며,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다"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불충함으로 말미암아 받는 고난과 비천과 치욕의 삶을 끝내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지은 모든 죄로 말미암아 치러야 할 죄값을 두 배나 치른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이스라엘 백성의 위로의 근거와 이유입니다.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로 자신들의 죄값을 두 배나 치른 것은 아닙니다. 두 배는커녕 본래의 죄값도 다 갚을 수 없는 이스라엘입니다. 다만 그들이 갚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겠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왜 두 배나 갚은 것으로 여기시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고난과 비천과 치욕의 삶을 끝내시고 해방과 자유와 회복과 영광의 날을 허락하시되 그 기쁨이 전의 배가 되게 하시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일뿐입니다. 여기에 크나큰 위로, 넘치는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하나님의 계획을 외쳐 알림으로써 백성을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5절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었고 예루살렘성의 파괴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떠났었는데 그 회복의 날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다시 임하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 이제 제거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이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실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어떻게 예비하라는 것입니까? 그 다음 말씀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한 것입니다. 옛날의 사막이나 골짜기나 산이나 언덕이나 험한 곳은 모두 길이 없거나 통행을 어렵게 만드는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을 힘들게 하는 장애요소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들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고르게 하고 평탄하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대로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5절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한 뒤에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는 말을 덧붙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고난과 비천과 치욕의 삶을 살고 있을 백성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외치는 것이 공연한 말이나 헛된 약속이 아님을 확인시키시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므로 확실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는 말을 받아 다시 그 약속의 확실함을 강조한 것이 8절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는 말씀입니다. 6-8절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사람의 말과 약속과 공언은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들듯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믿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될 날은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힘껏 그 아름답고 기쁜 소식을 소리 높여 외침으로써 백성을 위로하라고 다시 명령하십니다. 9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5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의 의미를 2절에 의해서는 "노역의 때가 끝나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으며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10-11절에 의해서는 보다 긍정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한 것입니다.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주권자로 오시고 의로우신 심판자로 오시며 선하신 목자로 오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남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약속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위로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와 그로부터 얻는 모든 위로를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힘껏 외치고 열심히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아름다운 구원의 소식을 널리 알리며 온 세상이 그 위대한 은혜의 선물을 주신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세상을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든 말씀은 우리 민족을 향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며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향하여 주시는 위로자로서의 소명의 말씀입니다. 특히 1절과 3절과 9절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에 와 닿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오늘날 많은 국민들이 우울하고 평안하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던 국민들이 한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며 큰 위로를 얻는 것 같다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허탈감과 국제적 수치심에 사로잡히게 만든 사건까지 터졌습니다. 황우석 사건으로 온 국민이 엄청난 충격을 받고 크나큰 배신감과 분노를 삭이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지금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국에 누가 이 국민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그 위로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우리가 어디서 위로를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에게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하기를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후1:3)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인 줄 알았다가 얼마 안 가서 거짓으로 드러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조작이나 속임수가 없으시며 우리를 허탈감에 빠뜨리는 일이 결코 없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게서 위로를 얻고 그 위로를 세상에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극치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내놓으시고 그로 하여금 우리가 우리의 죄값으로 치러야 할 모든 고난을 대신 짊어지게 하신 일입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고난 때문에 우리가 받는 위로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후1:5)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속을 염려 없이 안심하고 따를 수 있는 참 생명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시기에 그는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써 우리의 참 선한 목자이심을 증명해 보이셨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넘치는 위로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고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 20)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위로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는 모든 위로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는 심판으로 이스라엘을 벌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용서를 예비하셨고 구속의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용서와 구속의 계획이 바로 옛 이스라엘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위로의 근거이고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념적 혼란과 정치부재와 경제불황과 사회적 갈등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위로와 구원의 계획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언자는 오늘의 교회이고 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의 계획에 대한 믿음 안에서 위로를 얻고 그 복음을 힘 있게 널리 외쳐 전하여 세상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불안해하며 고통 가운데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셨는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첫 번째 방법은 회개일 것입니다.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사명을 가장 모범적으로 수행한 이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외친 것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3:8)는 것이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다가오시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 모든 장애를 없애는 일이 주의 오심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그 모든 장애를 없애는 첫 번째 일이 바로 회개일 것입니다.
그리고 힘껏 외쳐야 합니다. 위로와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높은 산에 올라 힘써 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온 세상을 향해 "우리의 하나님을 보라" 외쳐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에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것이 진정 백성을 위로하는 일이며 교회가 세상의 위로자가 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위로한다"는 동사는 "다시 숨쉬게 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숨을 내쉬고 소생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의 모든 사태로 말미암아 질식할 것 같이 답답해하던 우리 국민이 시원하게 숨쉬며 소생하게 하는 위로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 교회와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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