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고린도전서 15:9-11)
청솔모라는 짐승이 있습니다. 다람쥐같이 생겼는데 다람쥐는 좀 작고 줄무늬가 있고 귀엽고 이쁘지요. 청솔모는 좀 큰데다가 새카맣고 성질이 좀 난폭합니다. 그래서 청솔모는 별로 그렇게 귀여운 구석이 없습니다. 남한산성에 다람쥐가 꽤 많이 있었는데 청솔모가 나타나면서부터 어디갔는지 다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청솔모가 얼마나 고약한지 사람은 잣을 구경도 못해봐요. 자기가 다 따먹기 때문에 뭐 씨를 남기지 않습니다. 참 고약하다는 생각을 가지는데, 이 녀석이 먹을 것이 많을 때 먹고는 남는 것을 여기저기 숨겨놓는데 그 다음에 겨울에는 어디다 숨겼는지 몰라서 많이 죽는답니다. 겨울에 눈이 오고 그러면 먹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좀 애처로운 생각이 들어서 제가 먹을 것을 좀 내다가 주었습니다. 잡식성이라서 뭘 줘도 잘 먹기 때문에 빵을 줘도 잘 먹고 떡을 줘도 잘 먹고 잘 먹어요. 그래서 내다 주면 와서 열심히 먹는데, 그 먹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가까이 가면 고맙단 인사도 없이 그냥 도망을 가는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뭐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제가 은혜를 베풀어서 그 먹을 것을 갖다 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참 먹다가 다른 녀석이 오면 같이 먹는 법이 없습니다. 싸워서 쫓아버려요. 제가 많이 주었기 때문에 자기 혼자 다 못 먹거든요. 넉넉하게 주었어요. 자기 혼자 다 못 먹고 둘이 먹어도 남을 그런 양을 주는데도 다른 녀석이 와서 먹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는지요. 그래 그 싸우는 모습을 보니까 정이 똑 떨어졌어요. 너무 욕심이 사납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청솔모라는 짐승은 짐승이니까 은혜를 모르지만 사람들 중에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감사하지 못하고 혹은 싸우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우리 옛말에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조상탓이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감사라든지 은혜라든지 이런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경말씀을 보면 바울이 자기의 생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묵상해 보겠습니다.
I. 바울의 인간됨 (8)
1. 사도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굉장히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1)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 가운데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또 그는 유대인으로서 학벌이 좋았습니다. 예루살렘의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힐렐학파의 당대 최고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 문하에서 공부를 한 아주 훌륭한 율법선생으로 죽 성장을 했습니다.
3) 또 그는 다소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 다소라는 곳은 희랍문화와 언어와 이 모든 것이 통용되는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면서 유대문화, 헬라문화, 로마문화 이런 여러가지 문화들, 철학과 언어와 법과 이 모든 것들을 배우면서 성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잘 쓰는 말로 하면 국제화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학문적으로 굉장히 우수한 사람이었습니다.
4) 초대교회의 사도들이나 여러 교회지도자들 중에서 사도바울 만큼 학식이 많고,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신학을 잘 정리한 사람이고 그 당시의 세속적인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단교리에 대항해서 기독교신학을 수립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우리 기독교를 예수교라기 보다는 바울교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교훈하시고 말씀하셨지만, 바울이 그것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았으면 기독교신학이 탄탄하게 서지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신학이 광범위하게 펼쳐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 마저도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역사를 통해 볼 때에 바울은 초대교회의 가장 최고의 지식인이고 신학자고 전도자고, 바울이 없었으면 기독교가 이만큼 강한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2. 바울이 이렇게 훌륭한 분인데,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에 여러가지 단점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 장점만 있겠습니까, 단점도 다 있는거지요. 그런데 여러가지 단점들을 가지고 있었스니다.
1) 8절말씀에 보면 바울 자신도 스스로를 자기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8) 사람이 좀 모자라서 똑똑치 못하고 변변치 못한 사람을 우리가 팔삭동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열달을 다 채워서 태어나지 못하고 여덟달만에 나와서 좀 변변치 못할 때에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겸손해서 하는 이야기이겠습니다만 자기는 팔삭동이다, 변변치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 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이 외모에 있어서 남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잘생기지 못하구요, 체구가 작은 데다가, 체구가 균형이 잡히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호감을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혹은 안질인지 간질인지 모르겠지만 질병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일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3) 바울은 또 언변도 별로 좋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달변인 사람은 진실성이 모자란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언변이 좋지 못하고 눌변인 것도 큰 흠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러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언변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결정적인 단점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바울은 또 아주 직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그냥 참지를 못했어요. 그것을 좀 포용하고 또 무슨 문제가 있을 때에 참았다가 나중에 따로 지적한다든지 이렇게 하지 않고 여러 사람 있는데에서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하는 일들을 했던 사람입니다. 자기를 교회에 인도하고 소개하고 같이 사역으로 이끈 바나바하고 심히 다툰 사람이었구요, 그래서 결국 갈라진 사람이었고, 초대교회의 제일 수장격인 베드로를 지적하고 그가 외식한다고 비난하고 정죄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편안하게 같이 지내기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이지요. 같이 지내기는 너무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적용 : 저는 바울을 이렇게 생각해보면서 만약에 우리교회 목사님 청빙을 하는데 바울이 응모를 했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저 혼자 해 봤습니다. 우리교회 목사님 전도사님들 청빙할 때에 같이 대화를 나눕니다. 여러가지 대화를 나눠보면 우리 교회에 오시는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다 얼마나 외모로도 준수하고 또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얼마나 다 우수한지 그런 것들을 보면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바울이면 어떨까? 바울은 우선 외모에서 별로 호감이 가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같이 만나서 면접을 해본다 하면 조금 걸리겠다는 생각을 가져보구요, 좀 사람이 직선적이기 대문에 뾰족뾰족하게 말하기 시작하면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는데 적절하지 않겠다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사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별로 매력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II. 바울의 진실성 (9)
1. 정통성 – 바울이 또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데 사도로서 그 사역을 감당할 때에 여러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바울은 정통성이 늘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 같이 그 말씀을 들었다든지, 같이 예수님과 사역을 했다든지 그런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교휸을 받고 같이 사역을 한 직접제자들이라고 한다면 바울은 직접 예수님의 제자라기 보다는 뒤늦게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사도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서, 그 사도의 정통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바울서신에 보면 자기가 사도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시를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또 오늘 본문말씀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자기가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는 말을 하는 것 같이 사도로 치면 서열로 제일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일 후배고 제일 말단이고 그렇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3. 바울에게 있어서 사도로서 주의 일을 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를 핍박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데 제일 앞장 섰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현장에서 제일 앞장 선 사람이 바로 바울이구요, 예루살렘 교회에서 핍박할 때에 더 나아가서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이를테면 바울은 교회의 원수같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초대교회 교인들로서는 공포의 인물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바울이 예수를 믿고는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옛날에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 복음을 전하다 보니까 늘 교회 안에서 그것이 사도 바울의 약점으로 생각이 됐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자기 자신의 모든 모습을 돌아볼 때에 장점도 많이 있고 약점도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돌아볼 때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사람이고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나는 무익한 사람인데, 나는 주의 종으로서 가치가 없는 사람인데, 그런 고백을 늘 하고 있습니다. (롬3:10-18, 시14:1-3)
III. 하나님의 은혜 (10) – 자기가 무익한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면서 10절 말씀에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10절 말씀을 보십시요. 10절 말씀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자기 자신의 모든 일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1. 존재 (10a)
1) 우선 첫째로는 나의 나된 것, 나라고 하는 사람, 나의 존재,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죄 가운데에서 구원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뭐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도 죄 가운데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자들이었지만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음심으로 우리가 그 피값으로 인해서 죄에서 구원받고 새생명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내 신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내 신분, 오늘 내가 나된 것, 나의 존재 자체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 바울은 또 사도로 택함을 받아서 주의 일을 했는데 사도로 부름받고 택함받고 세움받고 그래서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고 그들을 주의 사랑으로 돌보는 놀라운 일들을 했습니다.
적용) 그런데 주께서 나를 사도로 부르시고 세우시지 않았으면 내가 오늘날 사도가 될 수 있었겠느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렇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요. 만약 바울이 예수를 믿지 않고 사도가 되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됐을까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요. 예루살렘에 앉아서 율법을 들춰가며 이 사람 저 사람 잘못한 것 지적하면서 꼬장꼬장한 학자, 꼬장꼬장한 율법선생으로 있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혹은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니면서 핍박하면서 피에 굶주린 살인자로 명성을 떨쳤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지 않았으면 그는 그렇게 인생을 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예수 믿지 않았으면 여러분이 5년 전에 10년 전에 30년 전에 예수를 믿으셨을텐데, 예수 믿지 않았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요.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그런 고백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내가 예수 믿지 않았으면 지금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마 말할 수 없이 흉칙한 사람이 됐을 것입니다.’ 그런 고백을 종종 우리가 듣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예수 믿지 않았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제가 잘 아는 장로님, 은퇴하신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 장로님은 자그마한 분이신데, 젊을 때 술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그래서 술을 쥐고는 못가도 먹고는 간다고 하는 분이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뭐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그래요. 그 부인되시는 권사님이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 참 대단하구나, 저 자그마한 분이 저 몸에 무슨 술이 그렇게 들어가겠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술을 좋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예수 믿고 변화가 됐어요. 주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장로님으로서 은퇴를 했습니다. 참 건실하고 바른 분입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얼마 있다가 그 다음에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을 받으면서 개복을 하고 다 치료를 했는데, 의사선생님이 그러더랍니다. 그래도 술을 안 잡숴봐서 그 속을 열어보니까 깨끗합니다,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그 장로님이 뭐라고 말씀하냐면, 예수 안 믿었으면 내가 속이 다 썩어가지고 여지껏까지 내가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수 믿었으니 생명도 있고, 예수 믿었으니 건강도 있는 것이지, 에수 안 믿었으면 생명, 건강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 안 믿었으면 내가 영원한 생명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을 봤습니다.
2. 공적(10b) – 봉사, 사역
1) 바울은 또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일을 감당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됐을 뿐만 아니라 그 사도로서 여러가지 일들을 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바울만큼 많이 수고하고, 바울만큼 많이 일하고, 바울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만큼 많은 선교 여행을 다닌 사람이 없을 것이구요, 바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만큼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만큼 많은 서신을 저술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신약성경을 보면, 바울서신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요. 바울은 그렇게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훌륭한 전도자요, 훌륭한 학자요, 그 귀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매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히고, 풍랑을 만나고 수고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2)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다 되돌아보면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이 바울 자신의 능력이나 결단으로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백하기를 “내가 이 일을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10b)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일을 감당했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이런 공적이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수고하고 여러가지 업적을 남긴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익하고 무가치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사도로 세우시고 일을 시키시고,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귀한 일들을 감당했다고 하나님 은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용)여러분 이제 2000년 제일 마지막에, 연말이 왔는데요, 지난 일년동안 여러분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뉴스가 뭐였습니까? 연말 되면 신문사마다 금년의 10대뉴스, 국내10대뉴스, 국외10대뉴스 이렇게 선정을 하지 않습니까? 국가적으로 10대뉴스 가장 톱뉴스라면 아마 남북 정상이 만난 것일 겁니다. 교회적으로, 우리 교회 교회적으로 가장 톱뉴스라면 우리 원로목사님 한목사님이 소천하신 것일 겁니다. 국민일보에서 한국교회의 10대뉴스를 뽑는데, 그 톱뉴스로 한목사님 소천하신 것을 세운 것을 봤습니다. 가정의 톱뉴스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식구들마다 금년의 최고의 뉴스가 뭐냐 각자, 그런 것을 한번 선정해 보십시요. 어떤 집에서는 꼬마가 금년에 최고의 뉴스는 처음으로 이빨 빠진 것이라고 한답니다. 조금 큰 아이는 자전거 사가지고 자전고 탄 것이 최고의 뉴스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정마다 아마 취직한 일이 있으면, 혹은 학교에 입학한 일이 있으면 그것이 최고의 뉴스가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 최고의 뉴스가 뭡니까? 직장에서 실적이 제일 많이 올랐다든지, 진급을 했다든지 이런 것들이 최고 뉴스로 올라갈 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서 최고의 뉴스를 꼽아보면 한 해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 지난 한 해동안의 모든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우리가 고백할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게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III. 결
사랑하는 여러분들, 오늘날 현재 내 모습, 죄 가운데에서 구원받아서 새생명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내가 여러가지 일들을 많이 하고, 혹은 공적과 업적을 쌓아놨지만, 그 모든 것들도 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바울같이 한번 고백을 하십시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고백하십시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감사를 하십시요.
사랑하은 여러분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주일날에, 오늘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되새겨보고 감사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이제 새해가 시작될텐데 그 한해는 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여러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낌없이 붓는 사랑 (마26:6-13) (0) | 2022.09.21 |
---|---|
참 이웃 (누가복음 10:30-37) (0) | 2022.09.21 |
함께 계셔 일하게 하시는 주님 (사도행전 18:5-11) (0) | 2022.09.21 |
신앙공동체 안에 계시는 하나님 (마18:19-20) (0) | 2022.09.21 |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고린도전서 6:9-11) (0) | 2022.09.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