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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함께 계셔 일하게 하시는 주님 (사도행전 18:5-11)

by 【고동엽】 2022. 9. 21.

 함께 계셔 일하게 하시는 주님  (사도행전 18:5-11)

논지 :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므로, 낙심과 좌절에서 다시 일어나, 활기차게 계속해서 일할 수 있다.

1. 새로운 출발 (5)
1)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실패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바울선생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주의 뜻대로 주의 사역을 하지만 그러나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고린도에 오기 전에 벌써 다른 도시에서 주의 일을 하다가 배척을 받아 쫓겨났습니다. 옮겨 간 곳에서 또 배척을 받아서 또 쫓겨났습니다. 또 다른 곳에 옮겨가서 거기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어서 그만 실패하고 또다시 옮겼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쳐서 고린도라는 도시에 왔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에 와서 다른 한편으로는 천막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복음 전파하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전념을 하지 못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천막을 생계를 유지하고, 시간이 그만 나뉘어지고 관심도 나뉘어지는 형편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왔습니다. 바울과 합류했습니다. 혼자서 조심스럽게 한편으로는 생계도 유지하고 한편으로는 복음 사역도 하다가, 좋은 동역자들이 옴으로 인해서 이제는 백만원군을 얻은 것 같이 됐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올 때에 그냥 오지 아니하고 북쪽 지역에 있는 교회로부터 헌금한 것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이제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어졌습니다.
2) 그래서 이제는 생계유지하느라고 천막만들고 하는데 시간 사용하던 것을 저버리고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전념해서 일을 하게 되엇습니다. 여러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신나는 일입니까? 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할 때에는 할 수 없어 마지못해 하는 일이지만, 그러나 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는 정말 신바람이 나는 것이지요. 사도바울이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온전히 거기에만 전념해서 신바람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었습니다. 주께서 바울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을 했을 때에 그 명령을 받아서 그 마음에 불이 탔습니다. 자기 인생을 다 드려서 자기 생명까지 다 바쳐서 복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어서 그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그 마음 가운데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지요.
3) 그가 전한 복음은 단순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십니다. 그 하나입니다. 나사렛의 예수, 천하게 삶을 살았고 비참하게 죽은 예수,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이시고, 그 분이 바로 나를 죄 가운데에서 구원하신 생명의 주인이시고, 그 분이 바로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강하게 전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그 분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것을 전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은 복음 중에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체험했고, 그리고는 그 복음을 증거함으로 자기 사명을 삼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생명을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인격과 성품이 완전히 변해서 새사람이 되고 예수그리스도와 교제하며 동행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그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간 것이 바로 바울입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그 말씀을 전했습니다.

2. 반대(6)
1)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사람들이 그냥 뭐 그런가보다 하고 사람들이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복음 전파하는 일에만 전념을 해서 열정을 다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니까 그만 반대와 장애물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는데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나사렛의 목수, 그 처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 어떻게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은 그 예수가 어떻게 우리 생명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느냐,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것을 배척하고 반대하고 중상모략을 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거기 있던 사람들은 자기 의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만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만 선하고 자기만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와 다른 생각 가진 사람을 포용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참지 못했습니다. 자기 틀을 딱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틀과 다른 사람, 그런 사람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공존할 수 없었습니다. 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와 같지 않으면 그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을 쫓아내려고 하고 매장시키려고 하는 것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바울을 공격했습니다. 궤변으로 억지논리로 공격을 했습니다. 뭐 별로 중요치도 않은 작은 일을 가지고 침소봉대해서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같이 그렇게 공격을 했습니다. 없는 일도 말을 만들어서 공격을 했습니다. 회당 안에 여러 순진한 사람들을 선동하고 유혹해서 그들을 또 같이 공격을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조직적으로 집요하게 공격을 했습니다. 어떤 작은 일을 가지고 소리를 높이면서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 같이 회당 안에서 요란을 떨었습니다. 때로는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기도 하고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한참 전하고 있을 때에는 한 쪽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방해를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난 다음에는 뒤에서 바울에 대해서 많은 중상모략을 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2) 도저히 바울이 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없게 됐어요. 결국 바울은 그 회당안에서 유대인들 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겠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 이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 포기하겠습니다, 나는 이제 이방인들에게 가겠습니다, 선언을 했어요. 다시 말하면 바울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만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몇몇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굴복하고 그래서 그 회당 안의 많은 양떼들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은 소수고, 회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소수의 반대자들 때문에 거기에 굴복해서 다른 많은 사람들을 그만 포기하고 만 것이지요. 복음 전도자로서, 목회자로서, 많은 양떼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목회자로서, 복음 전도자로서, 공인인데 공인이 자기 사명을 포기할 때에, 자기 사명을 감당 못한 죄책감 때문에 바울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불량한 반대자들에게 굴복한 좌절감과 낙심으로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반대하는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분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회당에서 나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러 가기고 작정을 했습니다. 회당에서 나올 때에 바울의 마음은 낙심과 좌절과 울분과 참담함, 그런 마음을 가지고 회당에서 나와서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3. 성령의 인도 (역사) – 하나님의 예비하심 (7-8)
1) 회당에서는 실패하고 쫓겨났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자비로우신지, 회당 옆에 있는 집에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7) 그래서 회당에서 쫓겨나가지고 그 옆집의 이방인 집에 갔는데, 그 집으로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그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여 그 집에서 예수 전도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당이라는 공적인 장소에서는 쫓겨났지만 그 옆의 가정집에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서는 쫓겨났지만, 그러나 이방인 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시고,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이지요.
전도를 하다보면, 참 재미난 일이 많습니다. 전도를 하기위해서 미리 작정한 사람이 있었어요. 미리 계획을 세워놓습니다. 미리 약속을 해놓습니다. 몇일날 몇시에 갈 테니까 기다리십시요, 만나십시다, 이렇게 철썩같이 약속을 해 놨어요. 그래서 가서 그 집에 가서 벨을 누르는데 암만 눌러도 안 나와요. 그만 피해서 가버린 것이지요. 얼마나 낙심이 됩니까? 얼마나 배신감이 듭니까?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그렇게 철썩같이 약속을 해놓고 없어져버리면 어떡하나, 참담한 마음이지요. 그래서 그 참담한 마음으로 배신감으로 분노를 가지고, 그리고는 돌아서 나올 때에 성령께서는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예비해 놓으셔서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그 사람이 이미 복음을 받기로 예비되어 있는 사람이라, 그래서 복음을 전하니 바로 예수 믿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를 해 놓으시고 성령께서 인도를 하신 것이지요. 바울이 회당에서는 쫓겨났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집으로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2) 그 뿐만 아니라, 회당장 그리스보라는 사람과 그 온 집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고린도 사람들 여러 사람이 따라서 같이 예수 믿고 세례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8)
여러분 너무나 이상한 일 아닙니까?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배척을 받아 나온 다음에, 그 회당의 회당장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이지요.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하는 사람들이 훼방하고 배척하는 일을 할 때에 회당장도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쫓겨나왔어요. 그런데 복음의 씨를 뿌린 것이 헛되지 않아서 열매를 맺었는데, 회당장이 예수를 믿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회당 안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배척해서 쫓겨나오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 회당 안에 예수 믿기를 원하는 사람들, 예수 믿도록 예비해 놓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복음의 씨를 뿌렸을 때에 이미 그것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회당장이 예수를 믿게 됐을 때, 복음 전파하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더 아마 화가 났을 것입니다. 회당장 마저 예수를 믿으니까 이건 더 이상 놔둘수가 없겠다, 저 바울이라는 사람을 이 도시에 두었다가는 큰일 나겠다, 그 사람들이 더 극렬하게 반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냥 놓아두면 회당장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게 되면 반대하던 자기들의 위치가 애매하고 위태롭게 되지 않겠습니까? 더 극렬하게 반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규합하고 조직하고 반대했을 것이고, 혹은 고소도 하고 편지도 하고 신체적인 위협도 가하고 극렬하게 바울을 공격하고 그 도시에서 완전히 쫓아내려고 작정을 했을 것입니다.
예) 얼마전에 북한의 민주화운동을 하는 단체에 소포가 배달됐는데, 그 소포 안에 죽은 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자기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데 그렇게 극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악랄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게 뭡니까? 당신 가만 있지 않으면 이 쥐같이 된다, 죽는다는 뜻 아니겠어요? 너무나 악랄한 방법이지요.
반대하는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해서 바울을 반대했습니다. 배척했습니다. 바울에게 여러가지 위협을 가했습니다. 바울이 그만 완전히 낙심이 됐습니다. 회당에서 쫓겨나고 이제는 고린도 도시에서도 쫓겨날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 마음 가운데 좌절감과 분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굉장히 위험한 일을 겪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 일한 결과가 그만 계속된 반대로 나타났을 때에, 바울이 탈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린도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고자 하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는 복음 전파하라고 내가 사명을 받았는데, 이 사명이 과연 제대로 된 사명인가, 자기 사명에 대한 회의와 의심마저도 일어났습니다. 바울의 눈에는 반대하는 사람만 보였던 것입니다. 반대하고 배척하고 공격하는 사람만 보인 것입니다. 험악하고 나쁜 상황하고 환경만 보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상황만 보인 것입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낙심하고 좌절해서 자포자기하고 의심하고 탈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완전히 탈진이 되면 무슨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지요. 완전히 탈진하고 낙심과 좌절이 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생각도 잘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완전히 낙심되고 좌절될 때에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어떨 때는 기도할 말 조차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기도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그저 조용히 앉아서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그 기도만 합니다. 계속해서 반복해서 그 기도만 합니다. 바울이 완전히 낙심이 됐어요. 좌절이 됐어요. 쓰러졌습니다.

4. 주님의 위로와 격려 (9)
1)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바울을 잊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환상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시고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에게 격려했습니다. 9절 중간의 말씀을 보면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며 말하라” 우리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낙심하고 좌절해서 탈진해 있는 바울에게 우리 주님의 크고 부드러운 손으로 어루만지셨습니다. 넓고 푸근한 가슴으로 품으셨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위로하시고 격려를 하셨습니다.
2) 그리고는 바울에게 그 소명을 재확인시키셨습니다.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지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주님 주신 명령이 포기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복음은 전파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반대와 배척을 받아도, 찢겨지고 상처를 받아도 괴롭고 힘들어도 중단되어서나 포기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의 뜻은 낙심하고 좌절해서 쓰러져 있는 바울에게 다시 일어나서 나아가서 일하라, 그것이 우리 주님의 뜻입니다.

5. 주님의 약속 (10, 11)
1) 우리 주님께서는 다시 일어나서 일할 수 있도록 약속하셨습니다.(10a) 10절 말씀을 보십시요. 10절 말씀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지금 바울을 공격하고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두려워하고 낙삼하며 쓰러져 있는 그런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일하도록 뜻을 보여주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바울로하여금 다시 한 번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임재하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나와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 주님께서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2)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게 되면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거나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피난처가 되시면, 나의 요새가 되시면 나의 반석이 되시면, 어떤 사람도 나를 공격하여 해치지 못할 것이지요. 로마서 8장 31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고백하기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8장 39절 말씀에는 “세상의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 고백을 합니다.
3)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리 극렬해도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 다 그 사람들 아무것도 아니다, 별것 아니다, 네가 지금 굉장히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지만 굉장히 낙심하고 좌절하는 상황 가운데 처해 있지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 그것은 다 아무것도 아니다, 낙심되고 좌절되는 상황을 보지 말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나를 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느냐,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고린도 도시 안에 주의 백성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10 c) 바울은 그 눈에 반대하는 사람만 봤어요. 나쁜 환경만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그 사람들 말고, 그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많이 예수 믿어야 될 사람이 이 도시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네 편이 더 많다, 네가 일해야 할, 네가 복음 전해서 예수 믿어야 될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지요. 바울에게 희망을 다시 주신 것입니다. 일해야 될 동기를 다시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누가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고, 그리고 이 도시 안에 일해야 될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바울이 다시 일어섰습니다.(11)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면서 다시 재기했습니다. 여러분, 반대자가 없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환경이나 험악한 상황이 지금 사라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들은 그대로 다 있어요. 그대로 있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이제는 나쁜 상황만 보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봤고, 그리고는 예수 믿을 많은 주의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나쁜 상황이나 나쁜 환경들을 뛰어넘어서 많은 가능성을 보고 힘차게 다시 새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에 여러가지 나쁜 상황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이 바울을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을 거꾸러뜨리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발목을 잡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같이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했기 때문에 그 나쁜 환경과 상황들을 극복해서 힘차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활기차게, 능력있게 사역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담대하게 자신있게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어느 도시보다도 고린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활발하게 성장하는 교회로 다시 세웠습니다. 반대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는 그 곳에서 끝내 주께서 주신 사역을 완성을 한 것이지요.

6. 결
여러분, 성탄절, 우리 주님이 오셨을 때에 이 성탄절은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성취된 절기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가운데 나쁜 환경과 어려운 상황들 있어서 낙심하고 좌절한 분들 계십니까? 탈진해서 포기상태에 있는 분들 있습니까? 주저앉은 분들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계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들,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주님과 함께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다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탄절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그런 절기가 되시기를 바라고, 그래서 이 성탄절에 주님과 함께 다시 일어서서 다시 일을 시작하는 새출발의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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