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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도 임직 (마가복음3:13-19)

by 【고동엽】 2022. 9. 21.

예수님의 사도 임직  (마가복음3:13-19)


우리 교회는 다음 주에 임직을 위한 임직자 선거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일은 교회에서 다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고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하고 귀한 일인만큼 이런 일들은 사탄의 극심한 방해작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함께 치룰때 함께 기도하면서 조심스럽게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 귀한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임직자를 세우는 일은 어떤 한 사람에게 명예를 주는 일도 아니고 어떤 한 사람을 높이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군으로 임직을 하는 것은 주님의 나라를 향한 선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감정과 입장으로 보면 안되고 교회를 중심으로 한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강동교회의 경우 장로님과 안수집사 임직은 약 10년만에 갖는 행사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이 세상에 힘들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운동을 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돈을 버는 것 정말 힘이 드는 일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얻는 것은 없습니다.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바로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사람을 바로 세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가장 보람있고 가장 가치있는 일이 바로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워가는 일은 결국 이 사회를 국가를 세계를 세워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사건을 우리는 잘 압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자신을 포함하여 33명이 죽었고 15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미국 건국이래 총기사건으로는 최대의 사건이요 세계적으로도 한 사람에 의해 일어난 총기사건으로는 최고의 사건입니다. 버지니아공대를 들어갈 정도면 그래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고 대학생이면 그래도 지성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조승희의 충격적인 총기난사사건은 어릴 때부터의 자폐증, 대인기피적인 과대망상증과 미국 사회의 냉대가 맞물린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그의 할머니에 의하면 "조승희는 어릴 때부터 무척 차가운 아이였고 부모가 무슨 말을 시켜도 잘 하지 않는 등 자폐증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의 가장 문제는 "친구들과 교제를 할 수 있었는데도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혼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외톨이로 자랐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승희와 친구라고 밝히고 나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만 봐도 조승희가 얼마나 '외톨이'로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해 왔고 그 과정에서 세상과 부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조승희는 20여 년 동안 간직하며 키워 온 성격적 결함과 정신적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자신만의 '악마'를 배양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노스이스턴 대학교 범죄 박사인 제임스 알랜 폭스 박사는 말했습니다.안타까운 것은 그의 그런 성격적인 결함 정신이상자의 증상을 보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잘 치유받지 못하고 그냥 두었습니다. 물런 거기에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혹시 우리 교회 속에 이런 영적인 외톨이가 없는가를 한번 생각하엿습니다. 우리가 서로 마음을 조금 더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 중에서 이런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을 조금만 더 넓히고 한 주님의 가족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세워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교회가 가장 집중해야 할 일 오늘 우리 자신들이 먼저 집중해야 할 일 바로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져가는 일입니다. 이땅에 오셧던 우리 주님이 가장 집중하셨던 일은 바로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사도를 세우십니까? 왜 주님은 이 일을 행하시는 것일까요?

1. 예수님의 원하는 자들을 임직하심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사도들을 세울때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어떤 사람들을 원하셨는가 그 기준이 정확하게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누가복음 6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 가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난 뒤에 밝으매 12명을 부르사 사도로 임명하셧다고 합니다.
12명의 사도를 임명하시되 12명이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12명을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주님의 일꾼들을 세우셨습니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12명을 불렀을까요? 주님이 부르신 12명의 사도들의 이름이 소개됩니다. 12명의 사도들을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별볼일없는 사람들이었다는 특징입니다. 당시에 갈리리 바다에서 고기잡던 어부출신이거나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세금을 받아내던 세리인이거나 지극히 알아주지 않던 무명의 사람들을 선택하여 불렀습니다. 특히 세리같은 직업은 그당시에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던 직업이었습니다.그래서 세리같은 직업은 종교단체의 어떤 조그마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세리의 증언은 유대법정에서 받아주지도 않을 정도로 증오하였습니다.
이 12명의 이력를 기초로 분석해보면 성인들 성숙한 자들과는 거리가 먼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사도로 원하셧고 임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몇몇 제자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셧습니다.
먼저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본명은 시몬이고 베드로가 새이름입니다. 베드로란 이름의 뜻은 반석입니다. 반석이란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돌입니다. 그러나 4복음서의 베드로를 보면 아주 성격이 급하고 변덕스럽고 저녁가 아침이 다른 정도로 잘 변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반석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시몬을 반석으로 변화시켜서 반석으로 그를 쓰실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무명의 사람을 들어서 유명한 사람으로 쓰시는 분이십니다. 시몬을 불러서 베드로 이름을 주시고 반석같이 베드로를 세워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예수님의 다른 사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소개됩니다.
이 두사람은 형제입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을 부르신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새롭게 주셨습니다. 여기 보아너게라는 말은 ‘우뢰의 아들’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우뢰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의미로는 하늘의 메신저라는 의미도 있지만 부정적으로는 사물을 파괴시키는 벼락의 이미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야고보와 요한이 성격이 벼락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추리해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성격적으로 분명히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벼락같이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안좋은 성격의 사람들이 주님의 부르심받아 세워지게 되면 불같은 성격은 불같은 성격대로 불같은 열정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사용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 사도를 불러 세울때 약점고 있고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불러서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비록 약점이 있지만 비록 문제가 있지만 그 약점과 문제를 넘어선 변화의 귀한 계획을 갖고 그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다음 주에 임직을 위해 이렇게 우리가 세우기를 원하는 자들을 당회에서 추천하엿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사람 올려놓고 이렇게 저렇게 재어보면 약점없는 사람 문제없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만약에 이들을 과거를 보고 이들의 현재적인 약점만 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실망할 수 잇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잠재된 많은 가능성 큰 장점들도 있습니다. 이제 문제는 목적을 따라 사명을 따라 주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어지면 놀라운 변화와 능력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약한자를 들어 강하게 하시는 주님 없는 자들을 들러 부요하게 하시는 주님 무능한 자들을 들어 능력있는 자들로 사용하시는 우리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의 손길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될 귀한 사람들을 통하여 지금도 일하시는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이 주님이 사도로 부를때 순종하였습니다.
갈리지 바다에서 고기잡던 베드로는 배와 그물를 버려두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레위는 세관에 있다가 주님께서 부르실때에 그 부르심 앞에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이들이 즉각적으로 주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였을까? 어쩌면 주님은 이들이 갖고 있던 지식보다도 가문보다도 실력보다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중심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주님의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그 부르심 앞에 온전히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임직하심
14절에 예수님께서 사도로 임직하실때의 목적은 바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이 사도를 임직하심은 바로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땅에 오신 우리 주님은 외톨이로 계시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능력의 주님 그 풍성하신 주님에게도 교제할 사람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12명을 선택하여 교제의 관계를 갖는 소그룹을 원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선택하여 사도로 임직한 이들과 함께 3년동안 함께 하셨습니다. 잠잘때도 함께 하셨고 밥을 먹을때도 함께 하셨고 사역을 할때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은 12명의 사도들을 선택하시어서 함께 하셨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 주님이 선택한 자기 백성과 일꾼들과 함께 하시면서 교제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고전1장 9절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미쁘신 우리 주님은 이 시간도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소원하십니다. 우리같이 불성실하고 약한 자들을 불러서 우리 주님은 이 시간도 함께 하면서 교제하시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특별히 교회에서 목사로 장로로 집사로 권사로 임직받는 것을 단지 일하기 위한 일꾼으로서만 부름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먼저 주님과 함께 있어 깊은 교제를 갖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으로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직분자들은 교제의 소명을 갖고 더 예배의 자리로 더 기도의 자리로 더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직분은 계급은 아니지만 마치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함께 하다보면 성숙해지고 함때 하다보면 더 이해도 되어지고 함께 하면 더 깊은 관계가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
주님께서 12명의 사도와 함께 하는 것은 교제의 차원을 넘어선 그 이상의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갚은 있음으로 인해서 그들을 훈련하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12명의 사도가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주님의 마음 주님의 생각 주님의 행동을 닮아가시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말씀들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기적과 능력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본들을 보여주셧습니다. 바로 주님의 제자로 세워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제일 기대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주님닮은 제자가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에게 하시는 말슴을 들어야 하고 내가 그 말씀을 우리가 듣고 순종할 때 우리에게는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주님과 함께 하면서 그분을 가장 경험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면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그래서 우리가 제자훈련을 할때 가장 강조하는 거이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 음성을 들을때에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금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객관적인 증거는 바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주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 주님의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요한복음10장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먼저 주님의 말씀 주님의 음성을 잘 듣기를 바랍니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것은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3년동안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말씀을 들려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이 항상 주야로 우리 안에 거할 때에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죄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 모든 교회의 직분자들이 먼저 항상 말씀가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항상 말씀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뜻을 따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잘 점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매일 24시간 중에서 얼마나 말씀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까? 하루에 몇분이나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두기 위한 시간 그 말씀을 듣기 위한 시간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단들에게 배워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열심입니다. 강릉에 어떤 이단은 주중에 매일 3시간씩 4일간 말씀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것도 밤낮으로 열심히 그것을 좇습니다. 물론 그들은 너무 극단적이고 치우친 삶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있습니다.그러나 기성교회 성도들이 이부분에 있어서 반성할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깊이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말씀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라면 기도는 주님께 말하는 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주님께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령 내가 1시간 성경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면 내가 1시간 주님께 말하는 기도의 시간을 갖아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균형잡힌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져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종종 보면 성경은 많이 알고 주님의 뜻은 많이 아는데 기도가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말만 앞서고 이론만 난무하게 됩니다. 반대로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말씀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자기 욕심 자기 생각 자기 의지대로 잘못 기도함으로 주님의 응답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뜻을 갖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요즘 우리 교회가 새벽을 깨우면서 함께 새벽기도축제를 합니다. 이런 기회는 평상시에 새벽기도를 하지 못하던 분들도 작정을 하고 한번 도전하여 영적도약의 경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삶의 기준과 습관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평생 그 기준과 습관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나는 절대로 새벽에는 일어날 수 없어’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새벽에 함깨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평생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밖에는 용량이 자라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 한다면 그 시간이 밤이 늦더라도 새벽이더라도 한낮이라도 한번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와 도전과 순종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이 함께 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추운 시간이든 더운 시간 한번 함께 하는 드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 전도와 선교를 위해 임직하심
14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라고 합니다.
주님이 함께 있으므로 교제도 하고 훈련도 하는 것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친교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훈련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주님이 교제하고 함께 하시고 훈련하시면서 함께 하시고 난 뒤에 사도들에게 원하는 궁극적인 뜻은 바로 세상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전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귀를 물리치고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땅에 오신 주님은 이 세상을 부정하지 않앗습니다. 이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할 곳으로 이해하셨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곳은 유대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이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이 복음으로 세상으로 나가시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불러 세워 세상으로 사도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냥 내보내시지 않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10장 1절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능으로 마귀가 물러가며 귀신이 쫓김을 당합니다.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질병이 고침받고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주님의 일꾼으로서 가장 본질적인 사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합니다. 사도행전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교회 속에서 훈련받고 세워진 주님의 일꾼들이 이 세상을 향해 나가서 전도하고 선교할때에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천하에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의 직분자들은 단지 교회당 안에 갇힌 일꾼들이 아닙니다. 더욱 세상을 향해 거룩한 선교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강동교회가 무엇보다도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사를 지원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저는 우리 교회가 이 강릉의 십일조를 담당하는 복음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든 세대에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지도록 전도하는 교회를 만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특별히 교회 제직들은 교회에서 함께 하고 있는 목요전도학교,열린모임,이웃초청축제와 같은 날을 행사로 여기지 말고 우리의 사명으로 여기시고 함께 동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도 선교가 우리 지역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계를 향해 항상 세계적인 안목을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꿈꾸고 있는 선교지는 한 나라가 미국이고 다른 한 나라는 중국입니다. 왜냐하면 세계를 움직이는 두나라가 저는 이 두나라이다고 봅니다. 그래서 할수있는 데로 미국과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를 실천하고 싶은 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미국은 글로발시대에 아직까지는 세계적인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그 실체를 우리가 인정하고 그곳에 들어가서 복음으로 선교하면서 부딪힐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또한 그렇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부딪히면서 복음을 증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개인적으로는 그런 기도를 드립니다. 미국 중에서도 뉴욕은 미국의 중심이고 세계의 중심지입니다. 그곳에 우리의 지교회를 개척하여서 복음으로 훈련된 우리의 젊은이들을 파송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세계적인 선교사로 키우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영어를 훈련하고 말씀으로 훈련되어 그곳에 복음을 증거하고 그곳에 선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복음의 비젼을 갖고 있는가 얼마나 선교의 마인드가 있는가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일꾼들이 세상에 거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에수께 받은 사명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노라“고 고백했습니다.그래서 그는 눈을 들어 아시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눈을 들러 유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눈을 들어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너무나도 일할 것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이 없음을 탄식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임직자들을 세움으로 인해서 더욱 복음이 확장되는 교회로 세계에 복음을 수출하는 교회로 하나님 앞에 세워져가기를 축원합니다.

나가는 말 ))))
오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꾼을 세워서 지금 여기서 일하십니다. 이땅에 오신 주님은 12명의 사도를 임직하되 부족하고 연약하고 흠이 많고 약점이 많은 사람들을 임명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친히 몸된 교회를 위해 귀한 주님의 일꾼을 세워 함께 동역하시고 그 일꾼들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아무쪼록 임직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더욱 귀하게 쓰임받는 임직자로 세워져가고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일꾼으로서 한 세대에 귀하게 쓰임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춘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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