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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교회의 증거 (에베소서4:11-16)

by 【고동엽】 2022. 9. 21.

성숙한 교회의 증거 (에베소서4:11-16)

20세기까지 교회가 가장 많이 사용하던 단어는 교회 성장이었습니다.
그런데 2천년대가 되어 21세기가 되면서 요즘 교회들마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교회 성숙입니다.
20세기에는 양을 중심으로 한 교회성장을 강조했지만 이제 21세기는 질을 중심으로 한 교회성숙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닌 하나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진정한 성숙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또 진정한 성숙은 진정한 성장을 낳는 것입니다.
2005년 한국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란 한미준에서 한국갤럽에 의뢰해서 교회 안팍에서 본 교회의 객관적인 모습에 대한 설문지를 조사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질문 중에서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의 그리스도인들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동일한 질문으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과제 또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만 말씀하여 주십시오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교회 속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 양적 팽창 외형에 너무 치우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밖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일반 사람들도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양적성장과 팽창주의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앞으로 가장 변화해야 할 중요한 것으로 교파를 축소하고 외형에 치우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이제 21세기 한국교회의 과제는 성장된 교회를 이제 성숙한 교회로 세워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강동교회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양적으로 더 성장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 이전에 우리 자신들이 먼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되어지는 증거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7대사역목표를 보십시오. 그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성숙한 평신도가 재생산되는 교회입니다. 다른 어떤 것들도바도 우리자신들이 먼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교회 공동체도 성숙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성숙은 우리 주님이 교회를 향하신 목표입니다. 지구상에 많은 교회들을 향하신 주님의 목적은 교회가 성숙하게 세워져가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진정한 영성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그 교회가 성숙한가 아닌가는 얼마나 주님닮은 인격의 증거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작은 예수님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건강한 믿음인가 아닌가는 얼마나 변화된 인격의 증거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그 인격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몸의 근육이 반복적인 운동을 통해서 단련되어지듯이 우리의 마음의 근육도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들이 인격 성숙의 비젼을 갖아야 합니다. 인격변화에 목표를 두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교회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까? 그리고 성숙한 교회의 증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1.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되는 증거가 있습니다.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예수님을 믿는 것 예수님을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목표 아는 일의 목표는 바로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람과 관련하여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과연 온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데까지 이른 사람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그 교회가 성숙한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른 사람인가? 과연 온전한 사람인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누가 온전한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가치를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비젼을 닮은 사람입니다. 생각과 감정과 모든 행동이 주님을 닮은 제자가 바로 온전한 사람입니다.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지금 이시대에 지금 이 교회에 주님이 찾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닮은 제자 온전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가 건강한 증거 교회가 성숙한 증거는 바로 주님닮은 온전한 사람이 있는가?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많은 숫자가 모이는 것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큰 건물의 장소를 갖고 있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모양 저모양 다양한 행사도 하고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 물론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란 본질적으로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하여 주님닮은 사람을 키워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먼저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주님닮은 사람을 세워가는 것이 우선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과연 사람이 변화될 수 있을까?
과연 그 인격이 그 성격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람은 누구나 죄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죄성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로마서1장28절이하 32절을 보십시오.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지만 이런 죄성이 구원받은 순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성은 여전히 우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육신의 소욕이 있고 죄성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도보다 그 정도는 덜하지만 여전히 부분적인 죄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죄성을 갖고 있는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까? 본문에서 바울은 2가지를 우리에게 주문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 온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숙을 향한 마음의 소원을 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먼저 교회 속에서 “하나되는 믿음”을 소유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5-6절을 보십시오. “주도 한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합니다. 이런 모든 기독교 교리에 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창조주되심과 주관자되심과 심판하심에 한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구원자되심에 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구원하심과 내재하심과 인도하심에 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그래서 한 믿음 안에서 함께 주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 온전하게 변화되는 성숙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바로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가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변화되어가는데 있어서 너무나도 주님을 아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빌립보서3장7-8을 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속에서 목사와 교사들은 주님의 말씀 주님의 고상한 지식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 교육가 양육 훈련의 목표가 무엇입니까?교사들이 교회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칠때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중고등부에서 청년목장에서 많은 말씀들을 가르치는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교회의 모든 양육과 훈련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을 닮은 온전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배우고 변해야 할 사람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도 장로님들도 모든 평신도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는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 제가 아직도 미숙하고 불완전함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말씀 앞에 나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고 나를 복종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온전한 사람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
주님이십니다. 끝까지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그 주님처럼 온전하기를 힘써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작은예수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속에 이런 좋은 모델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 속에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변화받는 성숙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음을 바라봅니다. 전혀 주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주님을 믿고 알고 배우고 양육받고 자라서 변화되어 새사람이 된 증거들이 여러분 우리 들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입니다.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이것이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주님 오실때까지 믿는 일과 아는 일에 더욱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2. 요동하지 않는 증거가 있습니다.
14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성숙한 사람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쉽게 요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뜻이 쉽게 요동해서는 안됩니다. 그 교회가 성숙한 교회인가 아닌가는 쉽게 사람들이 요동하는가 아닌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한 교회는 문제가 있어도 쉽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환난이 있어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유혹 앞에서 요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죄악의 유혹 앞에서 요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같은 신앙의 가장 특징은 바로 쉽게 요동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그 마음이 금방 요동치기 때문에 옆에서 어른들이 잘 콘트롤을 해야 합니다.
미숙한 교회들을 미숙한 성도의 특징은 쉽게 요동합니다. 어떤 인간적인 사람들을 따라 쉽게 요동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서로 편을 나누어서 왔가 갔다 하는 것처럼 요동합니다. 우리가 어린시절을 경험하였고 또 가정의 어린자녀들을 양육하면서 경험하는 미숙함의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요동합니까? 아직 마음이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닷물결처럼 항상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 흔들거리는 마음의 요동은 대개 부정적으로 보면 변덕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같이 미숙한 사람의 신앙은 변덕이 죽끓듯하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다보면 금방 웃고 놀다가 금방 웁니다. 금방 순종하다가도 금방 불순종합니다. 이와 같이 미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여러분 그래도 30대까지는 그 마음이 좀 요동치고 변덕스러워도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아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40대가 넘고 50대가 넘어 가는데도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교회생활을 한지다 10년 20년이 되었는데도 그렇다면 빨리 그 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변덕스러움의 중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맞추기 때문입니다 . 어린아이들을 보십시오. 밥먹는 것도 자기에게 맞춥니다. 티비보는 것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합니다. 노는 것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합니다. 그때 성숙한 어른들 부모들은 어떻게 합니까? 자기보다 아기에게 맞추면서 그 아기를 위해 양보하고 잘 맞추어가는 것입니다.
다음 미숙한 어린아이의 특징은 자제력의 부족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깊은 생각보다는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함부로 감정을 표출합니다. 종종 교회에서도 미숙한 성도들은 자기 감정을 조절하거나 절제하지 못하고 함부로 표출하고 함부로 말을 합니다. 함부로 화를 내고 남을 의식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함부로 덕스럽지 못한 말을 합니다. 조금만 절제하고 참으면 될 것을 그것을 참지 못하고 함부로 표현하다가 함부로 말을 하다가 함부로 행동하다가 낭패를 당합니다. 딤후1:7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이리”라고 합니다. 근신하는 마음은 주님의 마음이요 자기를 참고 이겨나가는 마음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근신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때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습관과 훈련이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감정을 잘 다스려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어린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쉽게 속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어린아이의 신앙은 결국 미혹과 유혹으로 마귀에게 빠지고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 말세에 신앙생활을 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사를 하시는 분들은 경험하셨겠지만 어떤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이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현실입니다. 겉은 같은 십자가가 있고 교회같은데 막상 그 안을 들어가보면 “간사한 유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친절을 가장하고 진리를 가장하고 거짓된 이론으로 공격하는 거짓교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극단적인 교훈을 강조하는 거짓 이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에 마음을 요동하는 많은 이단들이 많습니까? 대표적인 이단들의 특징을 보십시오. “극단적인 가르침” “극단적인 행동”으로 위장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요동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일교는 평화와 통일을 가장하여서 합동결혼식을 통해서 얼마나 젊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까? 안식교는 건강을 가장합니다. 누구나 관심있는 건강법을 소개하면서 성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나라의 몰몬교는 영어의 지식을 가장합니다. 무료 영어 교육을 시켜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증인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열심을 앞세워 가장합니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서 얼마나 우리의 문지방을 드나들고 있습니까? 강릉지역에는 무료로 성경을 가르쳐준다고 속여서 주중에 낮반 밤반으로 운영하는 무료성경신학원으로 성도들의 지식의 욕구를 속이며 요동시키는 이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안상홍증인회라고 하는 이단입니다.
문제는 이런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을 받아 영혼을 도둑맞고 요동치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바로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믿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이단들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세속적인 가르침 바르지 못한 처신들이 얼마나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까? 종종 저도 극동방송이나 cbs 그리고 CTS같은 방송을 대하면서 안타까울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참 은혜롭고 유익한 방송이지만 종종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 잘 웃기시고 명쾌하고 시원한 설교로 많은 교회의 초청을 받는 어떤 목사님이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웃기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완전히 어떤 때는 코미디언같기도 합니다. 어느날부턴가 이분이 공중파 티이부이 아침방송에 고정출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위트가 있고 교훈이 되는 귀한 가르침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성경의 원가르침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인기에 편승하여 교훈을 남발할 때 결국 교회는 세속화다 됩니다. 여러분 목회자도 인기가 오면 마음이 요동합니다. 돈이 보이면 요동합니다. 권력이 찾아오면 요동합니다.
누가 요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누가 속지 않고 승리할 수 있노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다시 주님 앞으로 와야 합니다 . 다시 성령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나의 마음이 좁아지고 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님바라보면서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3.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자라가는 교회입니다.
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는 범사에 장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에 모든 일에 장성해야 하는 것입니다.범사에 장성한 사람의 믿음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사랑도 있고 진리도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있는데 진리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은 없는데 진리만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단계” “사랑으로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세상은 사랑을 위하여 진리도 포기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위하여 사랑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랑도 포기할 수 없고 진리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어떻게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잡을 수 있습니까?
우선 분명한 진리의 체계 진리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분명한 진리의 표준을 바로 세워놓는 것입니다.교회는 부드러운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도 바른 진리의 원칙이 필요합니다.보이는 유형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진리의 틀이 있어야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진리가 나의 마음을 감동하고 그 진리의 능력을 느끼게 되면 결국 사랑의 열정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사랑의 선행을 행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선행을 행할 때 그 사람을 결코 정죄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진리 앞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통해 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자 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교회가 사랑해야 한다고 해서 헛되고 거짓된 교리를 말하는데도 사랑으로 감싸주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사랑들은 보통 자기 의를 나타내는 사랑일 가능성이 많고 거짓일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진리없는 사랑을 할때 책임을 묻고 책망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 책망받는 버가모교회를 보십시오. 이단적인 가르침은 니골라당의 교훈을 가르치도록 허용하였습니다 . 책망받는 두아디라교회를 보십시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을 허용하였습니다. 두아디라교회는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도 있었지만 이 거짓된 가르침의 사람을 허용함으로 인해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되고 회개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두아디라 교회 버가모교회같이 거짓된 가르침과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허용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지역교회 속에서 인정과 친분에 매여 인본주의로 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잘못을 보고도 아닌 것을 보고도 좋은게 좋은 식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교회는 신본주의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작은 것일지라도 진리로 행하고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교회는 진리를 붙잡아야 하고 진리를 수호해야 합니다.진리의 말씀이가 우리 속에 충만하도록 그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범사에 힘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면서도 그 진리로 무장된 머리와 함께 사랑의 가슴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로 자라가야 할 줄 믿습니다.

많은 진리의 말씀을 아십니까? 그럼 더 많이 사랑하셔야 합니다.
많은 양육과 훈련을 받으셨습니까? 더 사랑을 실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많은 깨달음이 있습니까? 더 많이 이웃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는 몸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내가 먼저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그 시작을 바로 내가 먼저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깨달은 만큼 머리에 아는 만큼 사랑의 실천의 현장을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진리 위에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시간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물질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수고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댓가를 지불하시면서 은밀하게 행동하시는 여러분들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는 것은 더욱 그런 증거들이 우리 교회 속에 많이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도록 함께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성도가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성도의 사명입니다. 사랑을 명령이요 사명입니다. 사명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주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주보 뒷면을 보십시오.강동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복음으로 전도하고 감동의 예배를 드리며 양육과 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지역을 사랑해야 할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먼저 이 지역에 그리스도의 진리의 사랑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세계를 향한 사랑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이제 이런 풍성한 증거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많이 증거되시기를 바랍니다.


나가는 말)

성숙한 교회는 바르고 합당한 증거가 나타납니다. 그 증거는 바로 먼저 사람을 통해서 인격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 주님의 증거가 나타나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숙한 교회의 증거를 위해 먼저 주님을 믿고 아는 일에 더욱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다스림으로 요동하지 않는 굳고 견고한 마음과 생각으로 말과 행동에 성숙한 증거가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인본주의가 아닌 신본주의의 신앙과 삶의 증거가 되도록 진리 안에서 사랑의 충만하 모습의 증거들이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강동교회가 성숙한 교회로 날마다 풍성한 증거들이 나타남으로 지역과 민족과 세계 속에 주님께 귀하게 인정과 쓰임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춘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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