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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축복의 믿음 (히11:20)

by 【고동엽】 2022. 9. 21.

이삭,축복의 믿음  (히11:20)

여러분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복이라는 말을 대하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복에 대한 극단적인 2가지 잘못된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복주의자들입니다.
매일의 믿음 생활에서 오직 목적이 하나님께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할때도 복을 구하고 헌금할때도 복을 구하고 에배드릴때에도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생활의 목적이 내가 복받고 내 가정이 복을 받는 것이 목적으로 삼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믿고 모두가 생각하는대로 일이 다 잘 되면 이땅에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사업이 잘 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그렇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러니까 복을 세상적인 소유의 개념으로 너무 생각하는 가치관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다.
둘째는 반복주의자들입니다.
이분들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그래서 윤리,도덕을 강조하면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육과 범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신데 너무 한편으로 제한하다보니 이것도 문제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때 반복주의자같은 생각으로 믿음 생활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여 주신 그 복이면 되었지 내 삶에서 또 무슨 복을 구하느냐? 그래서 반대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매사에 복을 구하는 믿음도 문제이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제한하는 믿음도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입니다.하나님은 모든 복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땅의 복도 주관하시고 하늘의 복도 주관하십니다. 복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복된 삶을 살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이 복을 땅으로 너무 제한해서도 안되도 너무 하늘로만 제한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사 땅의 필요한 복도 주시고 하늘의 필요한 복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복은 특별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누구든지 그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믿음의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소개되는 믿음 사람 중에서 평범한 사람같지만 믿음의 일생을 산 대표적인 사람이 오늘 소개되는 이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사실 성경에서 어떤 특별한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삭은 인간적으로 보면 좀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도 하는 약점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너무나도 그 믿음이 크고 칭찬받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이삭의 아들인 야곱은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으로서 우리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믿음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평범한 인생의 여정을 보낸 이삭은 자기 당대에 많은 일은 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복을 많이 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믿음의 가문을 가질 수 있는 귀한 축복을 남겨준 사람이었습니다. 과연 이삭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창26장1절-5절을 참조하겠습니다.
여기 이삭에게 복의 약속을 합니다.창26:3-4에 “이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지금 이삭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이삭이 살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 흉년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만났던 흉년처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흉년 때문에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고자했습니다. 아내와 더불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좀 전에 읽은 축복의 약속을 이삭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끼니가 없고 굶어죽을 상황입니다.애굽나라에 가면 분명히 먹을 것들이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지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삭에게 땅의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삭에게 씨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이삭은 이 명령을 받으면서 ‘하나님 어째서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중요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믿습니까? 믿음대로 우리들 속에 이루어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삭이 흉년을 당할 때 거기에서 이사하지 않고 지켰다는 것은 죽어도 좋다는 심정이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머리로 말로는 아는데 행동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한대로 내가 믿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 그것입니다.

이삭은 자기 주관적인 신앙으로 자기의 생각과 철학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실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삭이 하나님이 머물라고 한 그랄에 그냥 머물렀을때 그에게 온 결과가 무엇일까요?
이삭이 그땅에 머물면서 농사를 짓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해에 백배나 얻게 됩니다.무슨 농사를 지었는지는 모릅니다. 그가 농사를 지은 것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창26:13-14에 보면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창대한 부자,왕성한 부자,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때 우리나라 선전 중에서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부자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자되고 싶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나만 열심히 하면 다 부자가 되는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여러분 이삭의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경험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 기독교 도서로 베스트셀러중에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부르스 윌킨스라는 미국저자가 쓴 책입니다.그 책 내용은 성경에 정말 아주 짧게 소개되는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하여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역대상4:9-10에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합니다.한 무명의 사람이 축복을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야베스가 구하는 대로 축복하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자가 그 책에 마지막으로 야베스의 기도를 나의 것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복을 구하는 야베스의 기도를 당신의 삶을 수놓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왜 저자가 이런 확신의 축복의 삶을 낳는 책을 기록하였을까요? 저자 부르스 윌킨스가 실제로 자기 삶에서 실천을 한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매일 삶에서 드렸습니다.놀라운 것은 책 저자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였는데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을 두고 한편의 사람들은 또 비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책의 저자가 꼭 이런 기도만 드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체험한 기도의 간증을 소개하여 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언약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있는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현재에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힘들고 어려워도 그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우리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고 그 약속의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부모 자식 간에도 부모의 약속을 믿고 따라는 자녀들을 부모들이 외면하지 못합니다. 만유의 하나님 아버지,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가 이땅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때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십니다.
우리모두 하나님의 방식으로 믿고 따르는 삶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삭은 온유함으로 땅의 기업의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창26장17-22절의 말씀을 참조하겠습니다.
이삭이 이방땅에서 큰 복을 얻게 되자 시기를 받게 됩니다. 남이 잘 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도 그렇고 유대인도 그렇고 시기합니다.사막과 같은 곳에서 우물은 그 자체가 생명입의 근원입니다. 많은가축도 먹여야 하고 또 많은 사람들도 먹어야 합니다. 이삭은 생존을 위해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면 그랄 사람들이 와서 시비를 겁니다. 결코 우물을 파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힘들게 고생하면서 파놓은 우물을 내놓으라고 시비를 걸때 그것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 우물을 포기합니다.
그러기를 무려 3번이나 그렇게 합니다.  이삭이 힘이 없거나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결코 싸우거나 해서 우물을 차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혈기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이삭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온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온유하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기에는 연약하다 이미지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요즘같은 강자를 존경하는 시대에 온유한 사람은 별로 매력이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5:5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에서 복을 말씀하시면 거의가 관계의 복,마음의 복,내세의 복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온유한 사람”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물론 여기서 궁극적인 땅의 복은 천국의 복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현세에서 땅의 기업,땅을 다스리고 누릴 수 있는 복을 얻을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사이에서 재산권분쟁이 있을때 온유함으로 대처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롯보다 더 좋은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삭이 온유함으로 그랄 목자들을 대하였습니다. 3번씩이나 우물을 양보하고 나자 하나님이 나중에 이삭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대적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이삭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창26장26절 이하에 보면 이삭을 내쫓았던 그랄의 왕이었던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음으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희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삭에게 우물을 포기하자 더 좋은 우물의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온유함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자리가 온유함으로 연단되어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연 온유하십니까?
언제 우리가 온유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서 온유할 수 없는 몇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모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온유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첫째 억울한 환경 속에서 온유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 나의 재산이 손해보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온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분노가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편37:1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억울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온유함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범한 사람에게 온유해야 합니다.
갈6:1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라고 합니다. 여러분 잘못한 사람을 다루어갈 때 우리는 온유해야 합니다. 야단치고 정죄하여서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문제가 꼬여집니다. 예수님께서는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였을던 베드로를 대할때에 결코 야단을 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온유함으로 베드로를 받아주셨습니다. 베드로가 회복될 수 잇도록 그를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함께 믿음 생활을 하다가 보면 범죄하여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때 인간적으로는 엄청나게 실망이 됩니다. 성도가 넘어지면  그때 가장 힘이 빠지는 사람은 주님 빼놓고는 목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도는 목사의 면류관이요 목사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넘어지면 목사의 고통이요 아픔입니다. 그런데 넘어진 사람에게 실패한 사람에게 절대로 책망하고 야단치는 것이 득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온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분노합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에게 온유하여야 진짜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온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온유한 믿음의 사람들은 반대한 사람에게 온유했습니다.이삭이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온유했습니다. 모세가 자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온유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파는 자들에게 온유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예비하신 모든 복을 받아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삭은 죽음을 극복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히11:20의 말씀을 봅니다.
여기 보면 야곱과 에서를 축복한 내용이 소개됩니다.
여기보면 이름의 순서가 바뀐 것이 보일 것입니다. 본래는 에서가 형이고 동생이 야곱입니다. 그런데 동생 야곱이 먼저 나오고 형 에서가 나중에 나옵니다. 이삭이 야곱이 장자의 복을 받을 것을 믿음으로 기도한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창27장에 보면 이삭이 나이많아 늙어 앞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자식들을 축복하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어느날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말을 합니다.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른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전통과 활을 가지고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을 하는 것을 어머니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그 어미는 몰래 야곱에게 아버지가 에서에게 한 말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염소 떼에게 가서 좋은 것을 잡아오면 내가 별미를 만들어 줄테니 아버지에게 갔다주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갔다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동생 야곱이 형에서인줄 알고 축복하게 됩니다. 야곱이 형처럼 속여서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은 것입니다.

그때 이렇게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창27:27절이하에 소개됩니다.“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의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에서가 고기를 가지고 와서 축복기도를 해달라고 할때 속은 사실을 알게 된 이삭을 보십시오. 창27: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에서인줄 알고 축복기도를 했는데 야곱입니다. 이삭은 속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 이삭은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요? 속은 것에 대하여 분한 감정,괘씸한 심정이 들었을까요? 그러나 이삭이 심히 떨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이삭이 속은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면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 속인 야곱을 불러와서혼을 내고 야단을 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뜻이 야곱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이삭이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비록 자기는 앞으로 죽지만 앞으로 야곱이 장자의 복을 누리며 결국 하나님의 복을 이룰것을 이삭이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그렇지만 그가 나이들어 이제 죽음의 직전에 갔을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상황에서 결국 항복하고 만 것입니다.
이삭이 뒤늦게 자녀들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난 뒤에 이삭은 믿음으로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살았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죽음도 맡기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뭍잡아 겨우 목숨을 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에 부쳐서 아래로 떨어질 것같아서 힘껏 소리쳤습니다.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누구 없어요” 그런데 어디서 작은 소리가 들려왓습니다.
“ 나 여기 있다”
“누구세요“
“나 하나님 네가 믿는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래 그럼 염려말고 손을 놓아라 내가 구원하여 주마 손을 놓아라”
그러나 그는 조금 뒤에 “누구 다른 분 없어요“ 소리쳤답니다.
이삭이 죽음을 넘어선 하나님의 위대한 장래의 계획들이 자녀들을 통하여 확인하고 난 뒤에는 그는 장래에 대하여 미련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절대 주권 앞에서 이삭은 장래를 맡기게 됩니다. 그의 죽음까지도 믿음으로 맡기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소망 중에 맡게 된것입니다.
오늘 나의 믿음은 무엇에 근거한 것입니까?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믿음입니까? 나의 생각이나 이성 경험에 근거한 것입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진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지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믿음은 죽음을 극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믿음은 고난도 극복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믿음으로 인생의 모든 장래를 이겨나가시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깨어짐이 필요합니다. 나의 이성,나의 경험,나의 생각들이 철저하게 깨어지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이 그 은혜를 주실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깊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그런 놀라운 깨달음의 복을 주실줄 믿습니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라 그 뜻대로 현재와 장래가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춘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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