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신앙 (대상16:30-36, 살전5:16-22)
오늘은 서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금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셨
습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가정과 일터, 특히 우리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한해동안 사건과 사고도 많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시간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단지 추수 감사가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한 감사가 넘쳐야 할 줄 믿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내촌감삼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
신다면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 같은 것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감사절을 지키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그러면 감사하는 신앙은 무엇입니까?
(1) 감사하는 신앙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평과 불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곧 우리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들이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의 감사의 싹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막는 요인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늘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평과 불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신앙인들 보다는 매사에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불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이 약화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과 영적인 풍성함을 지니고 살아가게 될 때, 소망이 있고 넉넉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 찬송가에 있는 대로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이런 감사가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감사하는 신앙은 축복 받은 마음입니다.
미국에 감사 청년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청년들은 꿈과 야망이 크기 때문에 현실에 대하여 늘 불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청년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장래가 만리 같은 젊은이에게 그야말로 불행하고 또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다리 하나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정말 앞이 캄캄하였습니다. 자나깨나 없어진 다리 하나 거기에만
집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뜨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아직도 다리 하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인식전환이었습니다. 그랬을 때 저절로 감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없어진 다리 대신 고무 다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다리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청년은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선교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나서 그는 누구도 가기를 꺼려하는 아프리카 식인종들이 살고 있는 곳을 자
원하여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식인종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자신의 고무다리를 빼어 식인종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식인종들이 아무리 그 다리
를 씹어 보았지만 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그 앞에 모두 무릎을 꿇고 마치 신처럼 높이 받들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서 선교사는 비로소 자신의 절단된 다리를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식인종 전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매우 축복된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조건들이 얼마나
편리하고 얼마나 넉넉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들이야말로 무척이나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에게는 과거 가난하
고 어려웠던 시절에 가졌던 그런 감사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늘 불만스럽고, 늘 갈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러므로 감사라고 하는 것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감사하는 신앙은 더 큰 감사를 불러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있는 자에게는 더 주신다"고 하셨듯이 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
사할 수 있는 조건이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게 되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반대로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늘 불평
할 일들만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복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초대교부 중의 한 사람인 크리소스톰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지와 불신앙과 교만의 소치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있는 자에게 더 주신다"고 하신 우리 주님의 은총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축원합니다.
2. 우리는 오늘 구약 본문에서 진정한 감사를 드린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안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왕으로 등극하고 난 후 맨 먼저 한 사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한 것입니다. 이 일을 하고 났을 때 다윗은 감사와 감격이 넘쳐 났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안심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 온 다윗이었기 때문에, 그런 자신이 왕이 되고, 이
제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고 났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감사의 기도와 찬양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만물들을 함께 초대하고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면 이런 진정한 감사의 마음은 어떤 사람에게 주시겠습니까?
(1) 과거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을 자주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지키는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절기가 다 과거를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성만찬을 우리에게 제정해 주시면서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미국 사람들이 지키는 11월의 추수 감사절도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기억하라는 뜻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의 지난 삶의 발자취마다 함께 하시며 베풀어주신 은총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에벤에셀의 은총이요, 에벤에실의 신앙입니다. 우리 찬송가 가사처럼 "지금가지 지나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서부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총을 인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진정한 감사는 현재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하나 없이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나"라고 하는 존재와 삶이 무엇입니까?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고 하는 말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은 "주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삶이요 축복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서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합니다.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에 함께 다니며 간증을 하는 한국 출신 맹인 성악가가 있습니
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맹인인 나를 인도해서 데리고 갈 때 100m 앞에 무엇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발 밑에 물이 있으면 그것을 알려 주고, 계단이 있으면 또 그것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나는 안내자가 알려주는 대로
만 듣고 따라가면 안전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나는 10년 후에 20년 후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순간순간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여 따라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하늘나라가지 안전하게 갈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이 지금 주안에 살고 있다는 이 한가지 사실로
인하여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3) 진정한 감사의 마음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인디언 추장에 나이 많아 병들게 되어서 자기 후계자를 선택하기 위하여 유망한 청
년 세 사람을 불러서 "너희는 저 산너머까지 가서 각각 선물을 한가지씩 가지고 오너라"고해서 보냈습니다. 눈 덮인 산을 넘어 먼길을 다녀 온 세 사람은 각기 자기들이 가져 온 선물을 내어 놓았습니다. 한 사람은 꽃을, 또 한 사람은 청초 한 그루를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셋째 청년은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산너머에는 꽃도 있고 나무도 있었으나 저는 그 보다 더 좋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넓게 넓게 펼쳐진 들판이었습니다. 바로 거기가 우리 부족이 살 곳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추장 님, 어서 쾌유하셔서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이 소망 찬 젊은이가 추장의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지난 날 여러분에게 베풀어주
신 은총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주안에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또 우리 교회를 향하신 미래의 엄청난 계획을 기억하시고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출처/김오동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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