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승리의 비결 (창26:26-3)
(서론) 이삭은 환경을 초월해서 형통한 사람이요, 또한 승리자로 살았다. 그는 한번 형통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형통하였고 승리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면 그의 승리의 비결이 무엇인가?
(一) 형통한 후에 방심하지 않았다.
이삭이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이 시기했다. 창 26:12-15보면 "이삭이 그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100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고 했다. 형통을 추구하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첫째로, 교만한 마음이다.
역경의 때에는 겸손하나 번영의 때에는 교만해지기 쉽다. 교만은 우리가 쌓아온 형통을 하루아침에 능히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다. (잠 16:18)
작은 성공에 너무 일찍 감격해서는 안된다. 성공에 겸손을 겸비하지 못한 사람은 사탄의 도구가 된다. 관자라는 사람은 "모든 일은 계획으로 시작되고, 노력으로 성취되며, 오만으로 망친다"고 했다.
둘째, 방심이다.
고전 10:12에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다윗의 범죄는 방심의 결과이다. 다윗은 방심함으로 나태해졌고, 나태함으로 그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 결과 밧세바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삭은 형통한 후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 성공했다고 긴장을 쉽게 풀어서는 안된다. 깨어 항상 기도해야 한다. 한번의 형통으로 만족하지 말고,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야 형통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IMF를 조기에 탈출한 후 너무 방심해서 지금은 그때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二) 풍부의식을 갖고 살았다.
이삭과 아비멜렉의 싸움은 우물 때문이었다. 누가 승리했는가? 이삭이었다. 그러면 그 승리의 비결은 무엇인가? 풍부의식이다.
아비멜렉은 필절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삭이 잘되는 것을 보고 "네가 우리 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고 했다. (창 26:16)
이 핍절의식은 비교의식에서 나온다. 누가 더 많고, 더 적은가 비교하는데서 나온다. 그리고 경쟁의식에서 나온다. 아비멜렉은 이삭과 경쟁했다.
그러나 풍부의식을 소유한 이삭은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속에 풍부함이 넘친다고 믿었다. 땅도 넓고, 자원도 풍부하고, 기회도 많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풍부의식을 가진 자는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는다. 그는 존재자체가 넉넉 했고, 마음이 풍성했다. 얼마든지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삭은 아비멜렉이 블레셋 땅을 떠나라고 말할 때 미련 없이 떠났다. 왜냐하면 땅은 얼마든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고 그랄 목자들이 자신의 목자들과 다투었을때도 그 우물을 주고 떠났다. 우물 때문에 싸우거나 경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 먼저 풍부의식을 가집시다.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요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부의 추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에머슨은 "부유한 마음이 없으면 부는 추한 걸인이다"고 했다.
골 2:9-10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 하여 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풍부한 자가 되었다. 주님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 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셨다. (마 13:12)
지금 우리의 생활이 핍절하다고 해서 의식마저 핍절의식을 갖고 살아서는 안된다. 풍부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 풍부의식을 갖게되면 우리의 생각은 더욱 풍부해지고 풍부한 환경을 끌어오게 된다.
(三) 집중력이 있었다.
인생의 승리의 비결은 한 우물을 파는 것이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은 한가지 일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이삭이 그런 사람이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은 목표를 세운 후에 모든 지혜와 에너지를 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실패하는 사람은 너무 많은 일을 함으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많은 것을 시도 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도한 일을 통해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도했느냐보다 어떤 일을 성취했느냐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요 15:2)
이삭은 우물을 계속 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물 파는 전문가가 되었다. 인생에 있어서 승리의 비결은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다. 집중할 때 힘이 모아지고, 지혜가 생기고, 구체적인 결과를 보게 된다. 우리는 한가지라도 잘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한가지 일에 지속한다는 것은 반복하는 것이다. 반복이라는 의미는 같은 일을 하되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면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복할 때 대가가 될 수 있고, 그 분야에 실력자가 된다. 그리고 능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한다. 아서 루빈스타인은 "만약 연습을 하루 거르면 나 자신이 알아차린다.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비평가들이 눈치 챈다. 사흘동안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들이 모두 알게 된다"고 말했다.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통달하게 된다.
이삭이 광활한 땅을 얻기까지 여러차례 우물을 파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 결국은 광활한 땅을 얻고 그땅에서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창 26:22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흐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고 했다.
집중력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집중하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 (눅 9:62)
(四) 온유한 성품을 가졌다.
이삭의 승리의 비결은 그의 온유한 성품에 있었다. 시 37:11보면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을 즐기리로다"고 했다. 예수님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마 5:5)
우리가 이삭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화를 내거나 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시작한 일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였다.
그의 온유한 성품은 어떻게 개발되었을까? 핍박을 통해서 개발되었다. 이삭은 태어 나서 이스마엘에게 핍박을 받았다. (창 21:9) 그래서 Paul은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자가 성령을 따라 난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고 말했다. (갈 4:29)
이삭의 온유한 성품은 희롱과 핍박에서 길들여진 성품이었다. 그래서 이삭은 눈부신 끈기를 가지고 우물을 계속 팠다. 그 결과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창 26:26-29) 이삭은 승리했다. 그렇다. 참으면 승리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람이다. 이삭은 싸우지 않고 이겼다. 그는 유연했고, 평화주의자요, 싸우지 않았다. 물처럼 막으면 멈추고 길이 열리면 전진했다. 그는 변화에 잘 적응했고, 환경과 흐름에 반응하는데 탁월했다.
그러나 그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창출했다. 이삭이 우물을 파는 것을 보면 지칠줄 모르는 열정가이다. 그는 많은 장애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물을 팠다. 지칠줄 모르는 그의 열정은 그의 온유함에서 나오는 강력한 힘이었다.
가장 강한 사람은 버드나무가지처럼 유연하다.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최후까지 남아 승리하는 사람은 온유한 성품을 소유한 사람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온유한 성품이다. 그러므로 인내를 통해 온유한 성품을 개발하고 성령충만을 통해 온유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란다.
(결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삭과 같이 인내와 온유함으로 겸손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결핍의식을 떨쳐버리고 풍부의식을 가지고 하는일에 믿음으로 집중하면 형통하며 승리자가 될 줄 믿는다.
출처/원사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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