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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사람의 은혜입니까? (고전 15:9~10)

by 【고동엽】 2022. 9. 16.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사람의 은혜입니까?   (고전 15:9~10)  

  
  어떤 기자가 레바논 폭격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이루트 시내를 지나다가 대문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습니다. 대문 안을 들여다 본 기자는 이상하게 생긴 플루트를 발견하였습니다. 기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 남자는 연주를 멈추고 웃음을 띠우며 악기를 건냈습니다. 기자가 자세히 보니 그 악기는 버려진 총의 총신에 구멍을 뚫어 만든 악기였습니다. 세상은 하늘과 이 땅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고 무기를 만듭니다. 반면 교회는 양끝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 음악을 만듭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영광, 음악, 은혜가 무수히 많습니다.
  세상에는 무엇이든 은혜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무엇이든 원망과 시비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 가운데도 음악이 있고, 싸움 가운데도 은혜는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 만지는 것, 당하게 되는 것 모두가 죄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은혜(charis)란 첫째는 일(erga)의 반대어입니다. 둘째는 ‘카리스’는 ‘카라’란 말에서 나왔습니다. ‘카라’는 기쁨이란 말입니다. 셋째는 은혜의 언약에서 보면 은혜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편입니다. 넷째는 은혜란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입니다. 다섯째는 카리스는 항상 유카리스타(eucharista)라는 답을 요구합니다. 즉 은혜는 감사의 답을 요구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은혜는 은혜가 됩니다. 여섯째는 은혜라는 용어는 ‘분에 넘치는 호의’를 뜻하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야곱은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 사람의 은혜를 반복하면서 은혜를 말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은혜를 압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275회 나타납니다. 그 단어가 그렇게 많은 것은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다시 묵상하고, 하나님의 은혜도 사람의 은혜도 많이 받고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에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합니다. 우리를 지은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10에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고 합니다. 이사야 43:1에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너를 지명하며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여 존귀하게 하신 존재의 은혜입니다.
  우리 가운데 은혜 받지 못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되 특히 사람 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한국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특별히 저에게는 목사가 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참으로 악한 시대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사건과 사고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최근의 화성 여대생 실종 사건도 세상이 악한 것을 여실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도 더욱 잔혹해집니다. 이런 때에 은혜가 더욱 많습니다. 노아는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악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살았습니다. 로마서 5:20에는 말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세상의 죄악이 극심한 때이지만 노아도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인정받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하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노아 못지 않습니다. 악한 시대에 은혜롭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 나오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배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노아에게 주신 은혜를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슬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와 같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459장입니다.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붙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물 붙듯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매 순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전 12:9)고 하는 확인을 받습니다. 누구나 은혜는 족합니다. 누구나 은혜는 풍성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누려야 합니다. 필립 멜랑히톤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은혜를 아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분의 은혜를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다른 모든 은혜의 기초입니다.

둘째, 살아가는 중 많은 사람의 은혜를 입게 하십니다.

  창세기 33:8에는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고 합니다. 33:10에는 “형님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 다음에 형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형님의 은혜를 입으려 하는 야곱의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의 드러납니다.
  창세기 32:14-15에는 야곱이 형님을 위하여 “암염소 200, 숫염소 20, 암양 200, 숫양 20, 젓나는 약대 30과 그 새끼, 암소 40, 황소 10, 암나귀 20, 그 새끼가 10”을 형님께 드리려고 가지고 옵니다. 에서는 “이 떼는 무슨 까닭이냐?”고 묻습니다. 그 때 야곱은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하나이다”고 합니다. 에서는 “나도 족하니 그냥 두라”고 했지만 야곱은 “형님께 은혜를 얻었으면 이 예물 받으소서”라고 합니다. 야곱은 분명히 형님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아직도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더면, 아직도 죽이려 한다면 큰일인데 형님의 마음이 풀어진 것만해도 은혜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셨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은혜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람의 은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은 일제 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년 간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에도 한글 사랑에 일생을 바친 위대한 한글 학자였습니다. 그분이 옥고를 치르고 나온 후의 일입니다. 선생의 집 앞마당은 항상 깨끗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와서 마당을 쓸고 가는 낯선 청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웃 사람이 그 청년에게 까닭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함흥 감옥에서 선생님과 한 방에 있었습니다. 제가 배탈이 나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 굶으면 낫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시고는 혼자는 어려울 터이니 같이 굶자고 하시면서 하루 종일 저와 함께 굶으셨습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저의 아픈 배를 어루만지면서 정성껏 돌봐 주셨습니다.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 없는 감옥 속에서 받은 그 은혜를 어떻게 해서라도 갚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는 처지라 선생님의 집 마당이라도 쓸어 드리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듯이 은혜를 잊기 쉽습니다. 사람의 은혜라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감사로 표현하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인간다움입니다.
  김종래씨가 쓴 ‘CEO 칭기스칸’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칭기스칸의 리더십에 대한 재미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세계의 장수 가운데 왠지 칭기스칸이라면 우리에게는 친근감이 있습니다. 칭기스칸은 인간관계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특히 인간에 대한 은혜와 관계를 무척 중요시 여겼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전쟁에서 개인적 약탈을 금했습니다. 모든 전리품을 공동으로 나누게 하였습니다. 승리의 은혜를 모두가 함께 나누게 하였습니다. 자신을 칭기스칸이라 부르지 말고 테무친이라고 부르게 하였습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옷을 입히고, 자기 말을 태웠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는 꼭 옆에 참모나 아내들이 함께 있게 하였고 독대가 없었습니다. 이 말은 야합이 없고 모든 일을 합의에 따라 처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관계가 그를 위대한 정복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부모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너의 친구가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은혜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통하여 은혜로 전달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를 혼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창세기 33:11에는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넉넉하오니”라고 합니다. 많은 소유는 기대 이상의 소유의 은혜를 뜻합니다. 야곱에 많은 소유를 얻은 것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입니까? 라반에게서 얻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얻은 소유입니다. 야곱의 많은 소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형님의 은혜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소유의 공급자이십니다. 사람의 은혜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받게 하시는 통로로서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공급자가 아니라 분배자입니다.
  복의 근원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찬송에도 “복의 근원 강림하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기 12:2에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지만 창조자도 공급자도 아닌 복의 분배자이며 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는 여차하면 주시려고 쌓아두신 은혜가 있습니다. 시편 31:19에는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라고 합니다. 쌓아 두신 은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쌓아두셨다가 사람을 통하여 공급하게 하십니다. 사람을 통하여 주시기 때문에 사람의 은혜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은혜 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 무수합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준비하신 은혜의 통로들입니다. 이 통로를 잘 활용해야 은혜를 많이 누립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27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자신의 간수를 취임식 연단으로 초청함으로 은혜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람의 은혜도 잊지 않아야 하나님의 은혜로 잊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 형님의 은혜를 반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론

  옛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신교 목사와 랍비와 신부가 호수에 낚시하러 갔습니다. 한참 낚시를 하다가 목사와 랍비가 한사람씩 보트 밖으로 나가 물위를 걸어 매점으로 갔습니다. 신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의 믿음도 그만큼은 된다고 생각한 신부는 보트 밖으로 나갔으나 곧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목사가 랍비에게 말했습니다. “바위가 어디 있는지 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바위는 디딤돌이기도 하고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물위를 가는 사람은 바위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은혜이기도 하고, 원망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바위가 우리의 디딤돌 되게 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원망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똑같은 사물과 사건이지만 어떤이게는 은혜가 되고 어떤이에게는 원망이 됩니다. 믿음의 눈,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디딤돌이며 모든 일이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무한정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느끼며 삽시다.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강과 같겠고”라고 하십니다.

  이런 강 같은 은혜를 하나님과 사람을 통하여 체험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성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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