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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의 회복 (고전15:50~58)

by 【고동엽】 2022. 9. 11.

부활 신앙의 회복  (고전15:50~58)

부활절 아침 주 앞에 모인 여러분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절기가 있습니다.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감사절 등 ... 여러분, 이런 절기를 매년 반복해서 지키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본래 태만해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냥 두면 절대 신앙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정체하거나 퇴보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으로 훈련하기 위해 절기를 제정하고 지키는 겁니다.  
  그러므로 절기는 그냥 형식적으로 지나치는 기념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 회복과 부흥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부활절을 지켜야 될까요? 부활 신앙을 회복하는 모멘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신앙생활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신앙이 무기력하고 형식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면,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부활 신앙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부활 신앙의 3대 요소
  ① 예수 부활의 역사성(歷史性) :
  2천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전무후무한 기적이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십자가 죽음이 인간의 죄를 담당한 대속의 죽음이었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악한 원수 마귀는 사악한 인간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습니다. 무덤을 찾아가 부활을 처음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 등 여인들이 무덤을 착오했다는 둥(무덤오인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다 숨겨놓고 거짓말을 했다는 둥(시체도난설),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깨어나 탈출한 거라는 둥(기절설),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워한 나머지 헛것을 본 것이라는 둥(환각설), 원래 예수님이 세상에 온 적이 없고 지어낸 이야기라는 둥(신화설)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같이 맹랑한 주장들입니다.  
  근자에도 매년 사순절이나 부활절 때가 되면 이상하게 억지 주장들이 등장합니다. 수년 전에는 『다빈치 코드』라는 추리 소실이 나와서 실화인 것처럼 미혹했고, 작년에는 『유다복음』이란 책이 발견되었다며 미혹했습니다. 유다복음은 우리가 사용하는 정경(Canon, 현재 성경 66권을 말함)에 들어가지 못한 책인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혀 인정받을 수 없는 겁니다. 금년에도 그런 억지 주장이 있었습니다. 조금 그러다 말았지만 ... 지난 3월에 카메론 감독(영화『타이태닉』제작자)의 다큐멘터리 영화『예수의 잃어버린 무덤』이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예루살렘 근교에서 예수님의 가족묘가 발견됐다는 겁니다. 유골 함에 예수,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요셉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까 틀림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무식한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나 마리아 등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아주 흔했던 이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를 때 ‘그리스도’를 붙이는 겁니다. 그런 이름을 갖고 있다고 무조건 예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게다가 예수님 부활 당시 반대자들이 예수님 시체를 찾으려고 혈안이 됐었는데, 무덤 위치를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아닌 말로 제자들을 잡아다 고문하면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아직까지 못 찾고 있다가 이제야 찾은 겁니까? 앞뒤가 맞질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의 증거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전15장(부활 章)을 보면 ... 고전15:3~8 “ 3 ...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바울에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은 갑자기 등장하시고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혔다 부활하신 분이 아니라,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 지기 전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목격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성경 외에도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거지만, 변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이런 사료들을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검토한 결과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이 판명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하면 토머스 아놀드(Thomas Arnold 1795∼1842, 前 옥스퍼드大 역사학 교수, 『로마사』저자)의 증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학자적 양심을 갖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수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을 위해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결과 기적의 사건인 예수의 부활보다 더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실(史實 Historical Fact)은 인류 역사 상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예수님의 부활 사건만큼 사료가 많은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장 드라마틱한 증거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존재입니다. 순교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할 수 없어서 목숨까지 바친 사람입니다. 거짓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수천만 명의 순교자가 나온 것으로 추산됩니다. 지금도 매년 세계 도처에서 십만 명 정도의 순교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 직후 초대교회 시대에는 사도들은 물론이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오죽하면 ‘증인’이란 말이 나중에 ‘순교자’라는 말이 됐겠습니까? 헬라어로 ‘증인’(μαρτυ?)이란 말이 영어에서 ‘순교자’(martyr)라는 말로 바뀐 겁니다.
  부활 신앙은 무엇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진실을 믿는 신앙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그것이 부활 신앙의 기본입니다.
  ② 성도 부활의 미래성(未來性) :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성도들에게 미래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며 샘플입니다. 고전15:23에 보면,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 부릅니다.(고전15:23) 무슨 뜻입니까? 과수에 열매가 처음 열리면 다음에 계속 열릴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의 사인(Sign)이요 보증입니다.

  본문 51절~52절 보면, 장차 예수님이 재림할 때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을 증거합니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런고로 육신의 죽음은 잠시 대기하는 겁니다. 영혼은 먼저 천국에 들어가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 대기하다 재림 시 새로운 부활체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썩지 않고 죽지 않고 강하고 아름답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 때는 사망 끝! 질병 끝! 장애 끝! 부활은 완전한 회복이요, 완전한 치유입니다. 여러분, 우리 각자가 이렇게 변화된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것이 부활 신앙의 두 번째 요소입니다.
  ③ 예수 임재의 현재성(現在性) :
  예수 부활의 역사성과 성도 부활의 미래성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와 함께 하신다는 ‘현재적 임재’를 믿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 역동적인 에너지가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이 말씀은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어떻게 영원히 함께 있나요? 말이 안 되죠. 이 말씀은 육신적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보내신 성령님을 통해서 함께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요14:18~19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지기 전날 밤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live)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이 말씀은 재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 강림을 통해 예수님이 성도들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해 주실 거라는 약속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이미 승천하셨는데도 계속 등장합니다. 성령을 통해서 사도들과 함께 역사하셔서 기적을 행하시고, 복음이 전파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使徒行傳)을 가리켜 ‘성령행전’ ‘예수행전’ 등으로 부를 수도 있는 겁니다. 행8:39 (빌립에게 나타나심)?주의 영이 ... ? 행9:11 (사울에게 나타나심)?주께서 ... ? 행11:21 (안디옥에서 복음전도자들에게 나타나심)?주의 손이 ... ? 행16:7 (바울에게 나타나심)?예수의 영이... ?
  이처럼 예수님은 늘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 삶에 임재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주십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부디 이 믿음으로 항상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2] 부활 신앙인의 삶  
  이와 같은 세 가지를 다 믿는 사람이 부활 신앙인입니다. 부활 신앙인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① 확신(確信) :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어도 천국이요 부활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 이런 믿음을 가지면 우리 신앙은 확실해 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죽음 아닙니까?
   프랑스의 루이 14세 이야기입니다. 그는 절대 군주요 폭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점쟁이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당장 끌어다가 그 앞에 꿇어 앉혔는데, 마음속으로 사형시키려고 작정하고 잠시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했다고 하던데, 너 자신이 언제까지 살 수 있으려는지 예언해 봐라!” 그랬더니 그 점쟁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대왕께서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죽을 것 같사옵니다.” 루이 14세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결국 죽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죽음이 두려웠던 겁니다. 죽음 앞에서는 천하장사도 왕후장상도 예외 없이 다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너 죽고 나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람은 죽어도 산다는 믿음을 가진 부활신앙인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58절(상) 보면, 바울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 ” 부디 이런 확신으로 항상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② 성결(聖潔) :
  성도들은 장차 부활할 몸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령님이 내주하는 몸입니다. 귀하신 몸이죠. 그러므로 함부로 굴릴 수 없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현세가 전부니까 그냥 닥치는 대로 삽니다. 먹고 마시고 ... 내일을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고전15:32~34 “ 32 ...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 ”
  부활신앙인은 장차 예수님 재림 시 부활하여 공중에서 예수님과 혼인잔치(계19:7~8)를 하게 됩니다. 그때 세마포 흰옷을 입는데, 그것은 곧 의롭고 깨끗한 행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만날 때 빛나는 세마포를 입을 수 있도록 늘 조심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 헌신(獻身) :
  현명한 사람은 미래를 위해 투자합니다. 성도는 미래의 천국과 부활이 있기에 오늘 거룩한 투자를 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러기도 하지만,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받을 영광과 상급을 위해 오늘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힘주어 강조합니다. 58절(하). “ ...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매년 부활절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땅을 찾은 선교사들입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개신교 최초로 언더우드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 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민족에게 천국 문이 열리고, 진정한 개화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들이 왜 머나먼 이 땅에 왔겠습니까? 천국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결코 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는 우리가,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대리자로 분신으로 수고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 증거를 위해 수고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수고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롬8:17~18)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고, 혹 그렇지 못하다면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선교지로 돌아가야 되는데 인간적으로 얼마나 내키지 않겠습니까?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랜 만에 와 보니까 한국에 정말 좋아졌네요. 천국이 없다면, 부활이 없다면 저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을 확신하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가장 크게 남기는 투자입니다. 세상에서도 미래에 조금 더 편하게 살려고 사람들이 투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투자는 변수가 많습니다. 망할 수도 있고,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오직 천국과 부활을 소망하며 주의 일에 수고하는 것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 확실한 투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부활절을 지키는데, 이전의 내 모습과 이후의 내 모습은 분명 차이 가 나야 합니다. 사그라졌던 부활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며 세상을 이기고, 성결한 삶을 살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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