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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한나의 신앙 (삼상 1:10-11, 20, 24-28)

by 【고동엽】 2022. 9. 11.

한나의 신앙   (삼상 1:10-11, 20, 24-28)  

이조 500년 동안 우리 나라는 공맹(孔孟)의 윤리관에 모든 사회 규범과 가치를 두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철저한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은 지금까지 뿌리깊게 자리를 잡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모든 여성들이 결혼하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습니다. 이것을 못하면 여자들 스스로가 위축되고, 여자 구실을 못한 것 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사회적 공통점이라고 봅니다.
아마 지금도 이 아들을 못 낳아서 속을 앓고 있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아들을 못 낳으면 마치 여자 탓인 줄 그렇게 알았고,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면 어디 밖에서 낳아 들어와도, 소실을 얻어도, 아니면 소박맞고 친정으로 쫓겨남을 당하여도,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회의 규범과 가치기준이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에 어느 가정에서나 일단 시집을 가면 그 가문에 대(代)를 잇는다는 뜻에서 아들을 못 낳으면 마치 죄인처럼 취급을 받아야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 유대인 사회의 전통은 유교사상보다 더한층 강했다고 봅니다.
모세의 출애굽 과정에서도 보면 여자와 어린애들은 수(數)에 넣지 않았고, 남자도 20세 이상 된 사람만으로 60만이라고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여기 한나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한 나는 레위 족인 가문으로 시집와서 남편 ??엘가나?? 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믿는 가정으로 시집왔다는 말입니다. 믿는 가정 중에서도 <목사>나 <장로>의 집으로 시집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아예 임신을 못하였습니다.
남편이 소실을 얻어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소실의 이름은 ??브닌나?? 였는데 그는 아들을 낳았기에 큰 소리를 쳤던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정실과 소실 사이에는 하품도 함께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첩으로 들어온 브닌나에게 남편의 사랑을 빼앗긴 한 나는 억울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소실로 들어온 브닌나는 본 부인을 멸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나는 본시 성격이 얌전하여 들어내 놓고 질투하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해 속으로 삭이다가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여 해나님께 나아와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하다 지쳐, 입술로만 아뢰고 있었는데, 당시 제사장 엘리는 그를 보고 술에 취한 줄로만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때 한 나는 자신은 마음이 괴로운 여자라고 하면서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받아야할 신앙이 바로 한나의 믿음입니다.
1. 한나는 마음이 괴로운 여자이었습니다. (삼상1:10)
15절에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나의 슬픔은 아들이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오늘도 한나처럼 마음의 슬픔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소원이 사무치게 그리워 마음이 슬픈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늘 질병 때문에 슬픔이 살아지지 않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의 문제로, 혹은 남편의 문제로 슬픔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한나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한나는 그냥 기도하지 않고 서원(誓願) 기도를 하였습니다.
서원(誓願)기도란 맹세하면서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아들을 낳게 해 주면 내가 그를 평생에 여호와께 드리겠다는 맹세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였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상 1:20절에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 이라 이름하였으니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사무엘?? 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 이란 뜻은 ‘여호와께 구하여 얻은 아들’이란 뜻입니다.
여호와께 구하였더니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자 그대로 아들을 낳지 못하여 괴로움과 슬픔 중에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마음에 괴로움이 있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또 남에게 무엇인가 들어내 놓을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짐을 지고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마음에 슬픔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한나와 같이 서원 기도를 해 보기를 바랍니다. 한나는 울면서 통곡하면서 맹세하면서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기도를 들이시고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눈물로 기도했더니 그의 생명을 15년을 더 연장해 주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울면서 기도하면, 통회하면서 기도하면, 그리고 맹세하면서 기도하면, 그 뜻을 돌이키는 하나님이십니다. 니느웨성을 멸망시키려고 하였지만, 저들이 왕으로부터 위시하며 평민에 이르기까지 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복 하는 회개를 하였더니 도리어 심판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입니다.

2. 한나는 슬픔을 가지고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이 괴롭거나 슬픔이 있으면 나오던 교회도 안나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을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아뢰었습니다. 이 믿음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처음 엘리 제사장은 술취한 여자인줄 알았습니다.
14절에 보면 “엘 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하였습니다. 술취한 여자로 보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큰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문제가 생길 때 사람들이나를 어떻게 볼까하여 숨기려고 합니다.
교역자들에게까지 비밀로 합니다. 심지어 담임목사에게까지 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성전을 떠나, 어떤 다른 제단으로 갑니다. 산으로 갑니다.
은혜 자를 찾아다닙니다. 이상한 예언기도, 안수기도를 찾아다닙니다.
한나는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15절에 보면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입니까? 엘리 제사장을 대하는 태도를 보기를 바랍니다. 나의 주여! 라고 호칭하였습니다. 주의 종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으로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비결을 보면 먼저 자신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늘 불평스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은혜가 임하겠습니까? 엘리 제사장이 그렇게 존경받을 만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나의 주여!’라고 부르면서 조금도 그에게 대하여 섭섭한 마음을 품지 아니했습니다. 여러분! 시험 중에 교역자와의 시험처럼 얄궂은 시험은 없습니다. 때때로 여러분을 잘 못 알아 오해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신앙으로 극복하면 그것이 자신에게는 은혜와 복으로 돌아갑니다.

3. 한나는 서원한대로 실행하였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과, 소원이 이루어진 후에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것을 극복하였습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들어주신 하나님께 그도 역시 자기가 서원 한대로 아들을 받쳤습니다. 젖뗀 후 아들을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제사장과 함께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엘리 제사장 밑에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단한 용단입니다.
우리는 한나의 신앙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한나나 다 같이 아들을 하나님께 받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신앙이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귀하게 얻은 아들을 어떻게 그렇게 내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 아들 없이는 못산다고 할 그런 아들입니다.
차라리 나를 다려가라고 할 그런 귀한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젖을 떼자 엘리 제사장에게 맡겼으니 이것은 보통 신앙의 결단이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믿음이었기에 아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당시 엘리 제사장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고 하였습니다.(삼상1:12)
그들은 제물을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삼상1:17)
그런데 사무엘은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삼상1:18)
이것은 그 어머니 한나의 신앙이 그대로 전수된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많으나 한나처럼 신앙적으로 키우는 부모들은 적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이 우상이 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무엘이 얼마나 훌륭하게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여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했다” 고 하였습니다. 즉 식언(食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무엘이 살던 시대는 사사시대 말기 었습니다.
사사시대가 어떤 시대이었습니까? 사사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를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삿17:6) 즉, 자기 생각대로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때만해도 감히 그들의 명령에 도전하는 자들이 없었는데, 사사시대에 들어오면서 백성들이 제멋대로 행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나 한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위계질서가 없어지면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것을 평안도 지방에서는 까마귀들이 꿩잡아 먹을 계획을 한다고 합니다. 까마귀가 아무리 모여서 중구난방(衆口難防)식으로 떠들어 보았자, 꿩을 잡을 수 없다는 비꼬는 말입니다. 이 사사시대가 이런 시대이었습니다.
사사기 2:17절에 보면 “그들이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사무엘은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였다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도 이러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모든 백성들에게서부터 신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 신임은 정치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얼마나 함께 하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함으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先知者)란 하나님의 대언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과 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요즘 우리 크리스천들이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할 일은 불신사회 앞에서 선지자의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어졌던 별명처럼 “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야!”라는 인정하는 말들을 들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사무엘과 같은 지도자를 보내 주소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무엘이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된 것은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합니다.
요즘 사이비 은혜 자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불 받았다고 뒤집어진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어려서부터 구별된 섬김의 법을 몸에 배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요즘 급조된 선지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더욱 만인 제사장이란 말의 오용이 우리 개신교의 무질서를 야기 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도자란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지도자란 그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지도자들을 길러 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무엘과 같은 영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교회 안에서 길러 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슬픔 여자이었습니다.
그 슬픔 마음을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자기가 서원한대로 하나님께 아들을 드렸습니다.
그런 결과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도 한나의 신앙을 본받아 위대한 지도자들을 배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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