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믿음 (삿6:11-18)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가운데 ‘300’이란 외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고대시대 페르시아와 그리스연합군의 전쟁인 ‘테르모필레 전투’를 그린 실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전투는 BC 480년 테르모필레라는 협곡에서 일어난 큰 전투입니다. 이 전투로 페르시아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고, 이후 역사를 뒤바꿔 놓았으며, 동서양의 구분에 대한 개념 또한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게 된 시초가 된 역사적인 전투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그리스군의 연합이 지연되자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용사들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킵니다. 100만 대군과 맞서는 그야말로 무모한 싸움이었지만 스파르타의 위대한 용사들은 나라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명예를 위해 맹렬히 싸웁니다. 당시 이곳은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이어서 페르시아군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시간을 지연시켰습니다. 그 사이에 그리스 함대는 무사히 퇴각합니다. 이 전투로 당시 왕을 비롯한 300명의 용사 전원이 장렬히 전사하였으나 후에 그리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스파르타식의 교육이라는 대명사를 남기게 했습니다.
300명과 100만의 무모한 싸움을 그린 이 영화는 프랭크 밀러라는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스파르타 전사들의 열정과 용기, 자유와 희생을 보여줌으로서 스파르타는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문화 중 하나인 것을 알려줍니다. 절대로 퇴각하지도, 항복하지도 않도록 교육받은 그들은 승산이 없는 전투에 나갈지라도 물러서지 않는 용맹으로 싸웠습니다. 그 중심에는 레오니다스라는 탁월한 왕, 장군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300명 용사가 힘을 합쳐 13만 5천명의 미디안 군을 물리쳐 승리한 사건입니다. 그 중심에는 ‘기드온’이라는 탁월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사사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 기드온, 과연 그는 어떤 믿음의 사람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만나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이 반복하여 죄를 짓는 그야말로 악순환이 계속되던 시기였습니다. 6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이런 때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우신 사람들이 바로 사사들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사들이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6장에 기드온이란 사사가 부름을 받고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기드온을 ‘선택’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그를 예비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런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와 부르심, 소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줍니다. 11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렇게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셨고, 기드온은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며 믿음의 삶을 결단하여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그의 부르심을 보여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귀한 믿음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아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선택하셨고, 때가 되었을 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 앞에 믿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선택과 은혜가 중요하고, 믿음과 결단이 또한 아울러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내가 내 입으로 주님을 고백해야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둘의 조화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하나님을 만난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녀가 된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내 인생에 한번 만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처음 내 생애의 전환점을 이루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계속해서 인격적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은 한마디로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문제가 풀리고, 난관도 극복되고, 장벽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나는 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때, 내 영혼은 점점 병들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우리 인생에, 우리 신앙생활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는 내편에서의 통로가 역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행위는 한마디로 하나님과 만나는 일입니다. 예배가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입니다. 기도가 만남이고, 말씀도, 설교도 모두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자주 만나야 잘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만남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살고, 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평생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면서, 이제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날마다 하나님을 찾는 믿음으로 그분과 더 가까워지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둘째,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기드온의 만남을 강조하면서 아울러 기드온의 깊은 생각과 신중한 행동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유심히 보면, 기드온은 하나님의 천사와 질문하고 답하는 대화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기드온은 자신을 큰 용사로 부르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다는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이 말에서 보는 것처럼 기드온은 천사에게 그의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솔직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에 대하여 천사는 자세히 답변해 줍니다. 그런 말이 몇 번 오고 갑니다. 그러다가 이제 기드온은 깊은 생각에서 신중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17절에서 그는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라고 말합니다. 은혜와 믿음과 부르심에 대한 증거를 보여달라는 말입니다. 이런 신중한 기드온에게 천사는 19절 이하에서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기드온의 눈에서 확인이 되자 비로소 그는 자기와 말한 사람이 천사요,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게 되었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 이 말씀에서 우리는 기드온의 깊은 생각과 신중한 행동이 돋보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사역과 활동에 중요한 인격과 신앙과 밑거름이 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고, 신중한 행동을 보인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배워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마땅히 생각할 것,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삶에는 생각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에서부터 모든 행동과 인격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하는 대로 다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인격을 만든다” 우리의 말은 절대적으로 생각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지면 습관이 바뀌고, 결국 습관이 인격이 됩니다. 인간은 생각의 결정체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 생각의 결과입니다. 또한 어제의 내 생각이 오늘의 나를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특히 사순절이 절정으로 가는 이 시점에 생각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의 탄생과 생애와 고난과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탄생이었습니까? 누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분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죽어야 했습니까? 바로 나 때문입니다. 영원히 형벌 받을 나를 위하여 주님이 오셨고, 그분이 고난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주님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을 하면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겸손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리고 깊은 생각을 하면서,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드온이 고백한 말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15절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이것이 기드온에게서 돋보이는 모습입니다. 사실 그가 약하지 않습니다. 그의 집이 작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집에서 유력한 사람이고, 작은 자가 아니라 큰 자였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다면, 하나님이 인정하는 큰 용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이런 그의 겸손함은 그가 성경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됩니다. 기드온의 생애와 기록에서 무엇보다도 그의 겸손함이 강조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특히 그가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그의 겸손이 절정에 달합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 전쟁의 영웅이요, 공로자입니다. 탁월한 지도자요,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간곡히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8:23) 이것이 기드온의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춘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부르셨고,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런 겸손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잘 예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마11:29) 그러나 주님은 겸손을 말씀으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겸손하셨습니다. 그의 생각, 말, 행동은 모두가 겸손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하나의 좋은 예가 나귀를 타신 일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종려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날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나귀를 타셨습니다. 주님은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라면 반드시 말을 타고 들어오셔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말을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을 타지 않고 나귀를 타셨습니다. 왜 나귀를 타신 것입니까? 겸손하신 모습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한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온의 딸이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9:9)
믿음은 겸손입니다. 겸손한 것이 정말 귀한 믿음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하더라도 겸손하지 않으면 아직 멀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주님을 닮은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우리는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먹고사는 사람들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단 한순간도 지탱하기가 힘듭니다. 어떤 자에게 은혜를 줍니까? 바로 겸손한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한결같이 모두가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기드온이 그랬고, 모세, 여호수아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다윗이 그랬고, 바울과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참으로 겸손한 자를 부르셔서 그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쓰임을 받아야 하는데, 겸손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겸손한 자를 쓰시고, 겸손한 자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길은 오직 겸손에 있습니다.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겸손한 자를 사람들도 존중합니다. 시대가 타락하고, 세상이 마지막으로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교만해 지기에 이 시대는 겸손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처럼 겸손한 사람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자들로 부름을 받았는데 기왕이면 겸손한 자가 되어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이 종려주일에 기드온의 믿음을 통해 배우는 교훈을 마음에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는 믿음, 묵상하고 생각하는 믿음, 그리고 겸손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한 주간도 승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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