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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거부가 되다!

by 【고동엽】 2022. 9. 7.
 
 

창세기 26:12-25

(창26:12-25)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18)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 지라 (25)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1. 지난 17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유명 대학원에서 부자들만을 위한 특별 강좌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부자 특강의 내용은 다양한 신종 투자기법과 가족 재산 관리 기법, 세제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 좋은 조언자를 선별하는 법, 후손들을 위한 유산 관리, 효율적인 자선활동, 부유층의 자녀를 위한 집중적인 금융교육 등 부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수강료도 비싸다고 합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이 개설한 5일짜리 단기과정을 들으려면 1인당 8,755달러(약 820만원)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는 6월 시작될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의 부자 특강도 4일 강의에 6,975달러(약 650만원)의 수업료가 책정돼 있습니다. 부자 특강은 비싼 수업료 외에 참가자격에도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지만 참가자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한국경제신문. 2007년 1월 18일자) 요즈음은 부자들만을 위한 특별 강좌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저마다 모두 부자가 되기 위해 지대한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공병호의 <인생은 경제학이다>(해냄. 2006)는 책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경제학을 모르고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금리와 환율에 대한 이해를 잘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금리가 인상되는 시기에 주택 대출을 받아서 집을 구입하면 이자 부담에 시달리고 자산(주택) 가격이 하락하여 시달리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에 금리 동향은 상식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한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세상의 경제학이라면, 무한한 욕망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인생의 경제학이라고 합니다. 현명하지 못한 선택은 인생과 세상을 빈곤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명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경제학을 모르면 자유와 부를 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경제에 관한 책을 가장 많이 저술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 공병호는 부자가 되기 위해 부자의 열린 마인드를 가져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은 무엇보다 성경적 마인드를 가져야만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세상 경제학 마인드에서 말하는 부자되는 방법이 아니라 성경적 마인드에서 보여주는 부자되는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삭이 어떻게 해서 거부(巨富)가 되었는지를 보겠습니다. 본문 12,13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삭이 거부가 된 것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고 하셨습니다. 홍수 심판 직후에 노아와 그 자녀들에게도 이같이 복을 주셨습니다.
(창9:1-3)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리고 인류 구원을 위해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된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그 복이 진정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에게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창25:9-11)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낳은 장자 이스마엘에 대해서는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약속의 자녀인 이삭에게만 복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결혼하여 무려 12아들들을 두었지만 이삭은 나이 40세에 결혼해서 20년이 지나서야 겨우 자식 둘을 낳았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복을 받은 이삭보다 받지 못한 이스마엘이 더 번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9:7-8을 보겠습니다.
(롬9:7-8)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이 사람의 뜻과 판단에 따라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을 <육신의 자녀>로 부릅니다. 그리고 자식을 낳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본처 사라를 통해 낳은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말씀하십니다. ‘이스마엘’과 ‘이삭’ 모두 분명 아브라함의 자식들이지만 약속에 따라 낳은 ‘이삭’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면에서 ‘이스마엘’은 사람의 계집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낳았기 때문에 ‘종의 자식’이라고 하고, ‘이삭’은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약속에 따라 낳았기 때문에 ‘자유의 자녀’라고 구분합니다. ‘종의 자식’을 어둠의 자식이라 하고, ‘자유의 자녀’를 빛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유업을 물려준 자녀는 ‘종의 자식’인 이스마엘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 유업은 ‘약속의 자녀’, ‘자유의 자녀’인 ‘빛의 아들들’만이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빛의 아들들’이라 부르는 이유는 예수 믿음으로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갈4:22-5: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약속받은 사람이 받는 복이 참되고 영원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지 못하고 낳은 육신의 자녀인 이스마엘의 번성하는 복은 세상적인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여러분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모두가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갈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복의 내용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과 같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복은 아브라함이 약속받은 복과 같습니다. 바로 그 약속에 따라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인 이삭에게 복을 주시므로 이삭이 마침내 거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세상적인 복, 이스마엘이 받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영원하고 참된 복을 받아 신앙의 거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래서 떠돌이 천민 유목민에 지나지 않는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복을 주시어 그 이름을 창대케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창12:2) 잘나고 똑똑한 형들이 즐비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집 안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다윗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어촌의 무식한 베드로를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미련하고 무능하며, 약하고 천하며, 멸시받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부르시고 택하셔서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지혜롭게 하시고, 세상에서 강하다고 일컫는 자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강하게 하시고, 세상에서 존대받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존귀하게 만드시고, 세상에서 소위 가진 자라로 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부요하게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고린도 전서 1;27이하를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고전1:27-29)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마침내 거부가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려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약속의 자녀가 되어야만 합니다. 사람의 뜻과 사람의 지혜로 번성하는 세상적인 복을 받은 이스마엘의 복, 하나님의 약속받지 못한 복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이삭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마침내 거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진실로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약속된 복을 받아 마침내 신앙의 거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된 자녀에게 주시는 복을 받아 마침내 거부가 되려면 약속의 말씀 가운데 살아야만 합니다. 창세기26:1-4을 보겠습니다.  
(창26: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이처럼 흉년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을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과연 그대로 믿는지 아니 믿는지 시험해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에 들었던 흉년이 이삭 살던 때에 또 흉년이 들자 이삭은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그래서 곡창지대인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그랄 지방까지 내려갔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땅”이 아무리 흉년이 들었을지라도 복이 약속된 땅이기 때문입니다. 사사 시대(B.C.1100년경)에 유다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가 살았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떠난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들을 모두 잃고 다시 고향, 약속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십여년 만에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야단이었지만, 나오미는 이렇게 실토합니다.
(룻1:20-21)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나오미”는 ‘기쁨’, ‘행복’이라는 뜻이고 ‘마라’는 ‘쓰다’,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갔더니 돌아온 것은 기쁨과 행복이 아니라 인생의 쓴 맛과 괴로움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풍족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나갔더니 하나님께서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창26:3-4)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26:6을 보겠습니다. “(창26:6)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농사하여 백 배나 얻었고”(창26:12)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마침내 거부가 된 것입니다. 이삭은 본래 농사꾼이 아닙니다. 그는 양이나 염소를 몰고 다니는 유목민입니다. 그런데도 “그 땅에서”, 곧 약속의 땅에서, “그 해에”, 곧 흉년의 때에 한 번도 지어보지 않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땅”이 어떠한 경작지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리고 가장 힘든 흉년의 때에 농사 경험이 전무한 이삭이 농사하여 백 배의 수확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고기잡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모두 많은 고기를 잡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대대로 어부로 지내 고기잡이에 달인이 된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기잡으신 전혀 경험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며 순종합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자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5:5-6)고 했습니다. 경제학의 대가, 경제의 달인이라고 해서 모두 거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시 경제가 무엇이고 미시 경제가 무엇인지 몰라도 얼마든지 거부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복이 약속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세상의 어떠한 유혹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삭처럼 마침내 거부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이렇게 이삭이 “그 땅에서”, “그 해에” 마침내 거부가 되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에 판 우물들을 모두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부자를 경멸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의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이삭이 어떻게 해서 거부가 되었는지를 열린 마음으로 알아보고, 이삭이 거부가 된 방법을 벤치마킹(Benchmarking)했더라면 그도 역시 거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대기업 GE의 잭 웰치 회장도 “경영에서 남의 성공 경험을 베끼는 것(벤치마킹,Benchmarking)이 뭐가 문제인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이삭이 대대로 물려받은 우물들을 모두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내가 못 먹을 바에야 재라도 뿌리자는 심산이었습니다. 당시 물이 턱없이 부족한 중동 지방에서 그것도 비가 전혀 오지 않아 흉년이 든 때에 우물을 막아 흙으로 메웠다는 것은 수많은 양떼와 소떼를 사육하는 이삭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축떼는 물론이고 거느리고 있는 식솔들만도 엄청난데 모두가 한 순간에 목말라 죽게 될 처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게다가 아비멜렉은 농사를 지어 백배나 수확을 거둔 “그 땅에서”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우물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소유권을 주장하여 권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삭은 그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군말하지 않고 “그 땅”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우물들을 팠습니다.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랄에 거주하고 있던 목자들이 나타나서는 실컷 파논 우물들이 자기 땅에서 판 것이어서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며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중동 지방에서 아무데나 땅을 판다고 해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중동지방은 땅을 파면 석유가 나오기는 쉬워도 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판 우물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자 이를 대수롭지 않게 지켜보고 있던 그랄의 목자들이 또 자기들 소유라고 주장합니다. 정작 우물을 파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힘들여 파서 마침내 생수가 터져 나오니까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날로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번에도 양보하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또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그랄 사람들이 더 이상 쫓아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 우물을 “르호봇(장소가 넓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이삭이 파는 곳마다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는 이삭이 아브라함으로부터 특별한 시추공법을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삭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며 복의 근원, 생수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다툼을 피해 우물을 판 이삭이 이렇게 축복을 선포합니다. “(창26:22)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지혜서인 잠언에 말씀들을 보겠습니다.
(잠28:25)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잠20:03)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마침내 거부가 된 이삭의 성품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다투게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 땅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가축이 많아져 조카 롯의 가축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13: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너와 내가 한 골육인데 서로 다투지 말자, 네 앞에 있는 땅 중에서 네가 좋은대로 택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면서 재산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형제간에 화목이었습니다. 이삭은 어려서 이같은 아버지의 인격을 배웠고 그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다툼을 피해 “르호봇”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다툼을 싫어하는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또한 바울은 “(고전6: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투기 보다는 차라리 손해 보는 것을 택하게 된 것은 이삭이 확실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26:22)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축복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의 지경이 넓어지니까 마음의 지경이 넓어지고, 마음의 지경이 넓어지니까 삶의 지경, 축복의 지경이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그 밤에” 나타나셔서 “(창26:24)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며 다시 한 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재확인해주십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시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차라리 손해를 볼지라도 화목케 하는 자가 되어 마침내 거부가 되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 축원합니다.

결론입니다. 이삭이 그야말로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게 되었다는 소문을 아비멜렉이 듣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친구들과 함께 이삭을 찾아왔습니다. 이삭이 말합니다. “(창26:27)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노라”(창26:28-29)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 아비멜렉과 그 친구들이 별 볼일 없는 이삭을 하나님께서 거부가 되게 하신 것을 깨닫고 이삭이 두려워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으며, 앞으로 넘어져도 복을 받고 뒤로 넘어져도 복을 받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삭이 잘 되는 것을 틀어막고자 아무리 우물을 메우고 땅을 빼앗고 쫓아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면 거부가 된다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삭에 대해 실토합니다. “(창26:29)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삭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복이 약속된 하나님 말씀 가운데 거하는 생활로 신앙의 거부가 되어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로부터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는 인정을 받는 거부들이 되시기 축원합니다.  

출처 : 이동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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