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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by 【고동엽】 2022. 9. 7.
 
 

신명기 8:11-18


1. 지난 해에 미국 대학 입학 수능 시험(SAT)에 2400점 만점을 받은 중국계 <지안 리>가 미국 명문대 중 하나인 프린스턴대 입학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지안 리>는 자신이 시험에서 떨어진 것은 인종차별이라며 진상 조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생은 또 다른 명문대인 예일대학에 합격해서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조선일보 2007.1.25) 대학 입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해서 어느 대학에서나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재작년에는 서울 대학교에 불합격된 학생이 미국 하바드 대학교에 합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학마다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기준을 두고 합격여부를 판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누구든지 합격할 수 있는 시험(TEST)을 보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에 모두 합격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람이 배부르고 좋은 집에서 살며 날로 재산이 증식되어 가만히 있어도 모든 일에 풍부하게 되면 마음이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지난 날 애굽에서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일, 그 위험한 광야, 곧 독사와 전갈의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그리고 물 없는 땅에서 생수로 마시게 하며 땀흘려 일하지 아니하고도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먹이신 일 등,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잊어버리고 교만할까 염려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교만한가 겸손한가를 시험하십니다.

1)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며 제멋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10: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며,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지 아니면 인색하게 사는지, 마음과 뜻을 다해 예배를 드리는지 아니면 할 수 없어 억지로 드리는지를 감찰하십니다.(전12:14,고후5:10)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시면서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가 있는가 보고 계십니다.(시14:2)

2) 그리고 오늘 본문 17절 말씀처럼,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부유하게 되었노라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건강과 재능, 힘과 환경을 축복하셔서, 한 마디로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되었다고 믿으며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마음과 생각을 교만이라고 합니다.(렘9:23-24)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 인간의 생사화복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기가 잘나고 똑똑해서 왕이 된 줄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느브갓네살 왕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7년 동안 짐승처럼 들에서 풀을 뜯으며 지내게 만들었습니다.(단4:25-33) 7년 동안 짐승처럼 살며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사람으로 돌아온 느브갓네살이 이렇게 신앙고백합니다.
(단4: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느브갓네살 왕의 아들 벨사살은 이러한 아버지가 겪은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아버지의 신앙고백을 들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교만을 부리다가 결국 그날 밤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단5:22-30) 과연 지혜자의 말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는 말씀대로입니다.

3)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늘 꼭대기까지 쌓으려 했던 탑이 바벨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벨탑을 쌓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언어를 혼잡케 만들어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창11:4-9) 교만한 가정은 하나님께서 흩으십니다. 교만한 교회도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십니다. 교만한 나라 백성은 분열되게 만드십니다.(단4:33)

4) 교만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면서도 전혀 회개할 줄 모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3:25-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가정, 회개하는 교회를 기뻐하시고 은혜를 더하시며 복을 주십니다. 자신의 소경된 모습의 신앙생활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여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에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7-19) 자신이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회개할 줄 모르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신은 부족한 것이 없다며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교인들은 겸손히 회개하므로 마침내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검은 수탉과 붉은 수탉이 있었는데 매우 친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사는 마을에 예쁜 암탉이 이사를 왔습니다. 검은 수탉은 예쁜 암탉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붉은 수탉도 암탉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검은 수탉과 붉은 수탉은 구경꾼 닭들을 이끌고 넓은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드디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검은 수탉이 이겼고 붉은 수탉이 졌습니다. 붉은 수탉은 원통했지만 솔직히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붉은 수탉을 이긴 검은 수탉은 얼마나 신이 났던지 지붕으로 올라가 목을 곧추세우고 한바탕 노래를 불렀습니다. 검은 수탉의 노랫소리가 잠자고 있는 숲속의 독수리를 깨웠습니다. 독수리는 닭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수탉을 채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여러분이 마음을 낮추어 겸손하게 신앙생활하는지 아니면 교만하게 사는지 그 여부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모두 합격하여 마침내 복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아시고자 시험하십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지 한 달이 되던 때 광야에서 그간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모두 떨어지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종살이했을지라도 그 때는 고기도 얻어먹었고 밥도 배불리 먹었었는데 차라리 그 때 먹다가 죽게 내버려두지 왜 이 모진 광야까지 끌고 와서 우리를 굶어죽게 만드냐며 원망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출16:4-5)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이제부터 하늘에서 만나를 비같이 내려 일용할 양식으로 날마다 거두게 할 텐데, 제 육일에는 갑절로 거두어 제 칠일 곧 안식일에는 거두지 않아도 먹을 수 있도록 해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같이 하여 과연 이스라엘 백성이 이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욕심이 생겨 일용할 양식 외에 더 거두어 다음날까지 쌓아두었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그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전, 제 육일에는 갑절, 즉 이틀 양식을 거두어 보관했다가 안식일에 먹어도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칠일에는 만나를 내리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만나를 거두러 밖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를 시험하시겠다고 하셨음에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시고 과연 예수 믿는 성도들이 주일을 성수(聖守)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시는데 주일을 성수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애굽에서 나온 사람가운데 이같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원망 불평을 일삼았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약속된 축복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이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주일을 성수하며,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준행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십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사흘 길을 갔지만 마실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겨우 우물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물이 써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이에 하나같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그 나무를 물에 던져서 그 쓴 물을 달게 만드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마시도록 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께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시험하셨습니다.(출15:22-26)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세상에 살면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쓰디 쓴 환경에 처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지 여부를 시험하십니다.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부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22:2)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그리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후 25년이 지나 100세가 되어서야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얻게 된 이삭을 번제, 즉 불로 태워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같은 말씀을 아내에게 알리거나 의논하지도 아니하고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묶어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사자가 불렀습니다. “(창22:11-12)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합격한 것입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곧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위해 짐승을 제물로 바치지 않고 사람을 번제물로 바친다고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볼 때나,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네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약속에 따라 주신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도 어찌 보면 하나님 스스로 약속을 파기하시는 것이어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의심하거나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이성이나 윤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말씀을 지킬 때 마침내 복을 내려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에서 독자 이삭과 같은 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말씀하시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지키시므로 마침내 복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셋째,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 여부를 아시고자 시험하십니다. 신명기 13:3을 보겠습니다.
(신1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1) 어느 선교사가 글이 없는 미개한 지역에 들어가 글자를 만들어 주고 성경을 번역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중 미개한 부족들에게 “순종”이라는 단어를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이 부족들이 가지고 있는 말 중에 순종이라는 개념과 가까운 말이 없을까 하고 찾는 중에 말을 하나 찾았는데, 그 말은 “마음을 나누지 않는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찾은 선교사는 순종이라는 말을 그 말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나뉘지 않은 오직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이란 마음과 성품, 힘이 하나 되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베드로는 새벽 첫 닭이 울기 전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며 배반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를 부활하신 예수께서 찾아가 이렇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에 베드로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합니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시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두 번째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두 번째 사랑을 확인하시고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세 번째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니까 베드로가 근심하여 대답합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며 양을 먹이고 치는 목자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요21:15-17) 예수께서 이렇게 세 번씩이나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 것은 앞으로는 어떠한 생명의 위험이 따른다할지라도 마음과 성품, 그리고 힘이 나뉘어지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따르며 섬길 수 있는지 여부를 알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과연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까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의 마음이 물질 때문에, 세상 일 때문에, 핍박 때문에, 두 마음을 품는지 아니면 오직 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지를 시험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시119: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2)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마16:18)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기뻐하시고 형통하게 하신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을 향한 다윗의 마음, 몸이 쇠약해질 만큼 성전을 사모했던 다윗의 마음이 시편에 고백되었습니다.  
(시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6:8)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시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 성전 건축을 위해 아낌없이 금, 은 보화를 바쳤습니다.
(대상29:3)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이렇게 성전을 사모하며 사랑했던 다윗은 그야말로 형통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습니다.(대상18:13) 그래서 다윗이 성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시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의 교회를 향한 마음을 시험하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세우신 교회, 인류 구원을 위해 영원한 반석위에 세우신 교회, 인류 구원을 위해 생명수와 생명의 떡이 넘치는 시온성과 같은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를 위해 눈물과 기도로 생명을 다 하기까지 늘 사랑하며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금을 연단하시듯이 시험하십니다. 시편 66:10-12을 보겠습니다.
(시66:10-12)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12)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구약의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할 만큼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욥1:1,8) 그런데 하루는 사탄이 와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시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시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해도 좋다며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욥은 하루 아침에 종들이 살해당하고 모든 재산이 불에 타고,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져 자녀들이 모두 압사를 당하는 엄청난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게다가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들어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으며 길바닥에 나 앉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자 욥의 아내가 이렇게 쏘아붙이고 가출해버립니다. “(욥2:9)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아내의 이같은 저주에도 불구하고 욥은 이렇게 대답하며 입술로 범죄치 아니합니다. “(욥2:10)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나중에는 세 친구들이 위로한답시고 찾아와서는 별별 유식한 철학과 변론으로 욥을 시험하며 공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믿음이 변치 아니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환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단련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욥은 이렇게 하나님의 단련하시는 시험에 거뜬히 합격하여 마침내 갑절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42:10)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 중 때로 욥과 같이 시험받으실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은 욥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무려 42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단련된 마음, 단련된 믿음이 가치가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벧전1:7) 성도 여러분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누구든지 합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시험에 모두 합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이동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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