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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믿음 (삼상16:28-31)

by 【고동엽】 2022. 9. 5.

삼손의 믿음  (삼상16:28-31)

동양의 문화는 서열이나 계급, 나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입니다. 유교의 영향권에 속해 있는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만큼 서열문화가 사회에 깊숙이 들어온 나라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가 부모 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나이가 몇이냐’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몇 학번이냐, 사회에서는 몇 년 생이냐, 직장에 가면 몇 년 차냐 라고 묻습니다. 아마도 서열문화를 가장 잘 나타난 곳은 군대입니다. 하루라도 군대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고참이고,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기보다 계급이 높으면 고개를 숙이고, 경례해야 합니다. 그래서 웃지 못할 해프닝과 자존심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이런 사회구조나 눈에 보이는 현상만이 아니라 말까지도 심지어는 몸도 서열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항상 우리는 오른쪽은 좋게 표현하고, 왼쪽은 덜 좋게도 표현됩니다. 우익과 좌익이 거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곳으로 가게 되면 좌천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지칭하는 말조차 나, 저, 본인, 소인, 불초소생 등으로 말하면서 그때마다 서열이 정해집니다. 방안에서도 윗목과 아랫목이 있습니다. 우리 몸도 대접받는 머리가 있는가 하면 천대를 받는 발이 있습니다. 이것이 서열문화요, 사회입니다.

   이런 동양문화에 비해, 성경의 문화는 다릅니다. 성경도 물론 서열과 나이를 강조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 성경의 세계의 모습입니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믿음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나중 된 자도 먼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히브리서 11장에도 이것이 잘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1장 32절에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여기에서 소개된 사람들을 보면 한마디로 서열파괴입니다. 원래 나이와 연대로 하면 바락이 제일 처음이고, 기드온, 입다, 삼손, 사무엘, 그리고 다윗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서열이 무너진 채로 소개합니다. 우리말 성경만이 아니라 영어성경도, 원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4명의 사사가 나오는데 동시대에 살던 기드온과 바락이 바뀌었고, 삼손과 입다가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바뀐 사람 중에 소개된 인물이 바로 삼손입니다. 믿음에 있어서 삼손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사사 중에서 선별된 사람이고, 입다 보다도 먼저 소개됨으로서 성경은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믿음의 사람일까요?

   첫째, 힘이 있는 믿음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사사기 13장부터 본문을 포함한 16장까지 다른 사사에 비해 비교적 많은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자세히 보여주는 삼손의 이야기에서 삼손,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이 바로 ‘힘’입니다. 그가 가진 힘이 대단했습니다. 우선 그의 신체의 모습이 어떤 사람보다도 장대하고 우람했습니다. 성경에서 골리앗이 가장 장대한 사람인데, 아마도 그와 버금가는 모습이 삼손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얼마나 힘이 센지 사자의 입을 염소새끼를 찢음같이 찢었다고 강조합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옛날에도 사자는 동물가운데서는 가장 강한 짐승입니다. 그런 사자를 아무런 도구 없이 입을 찢을 정도라면 가히 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런 놀라운 힘은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을 물리치는 곳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블레셋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힘의 비밀을 알고, 그의 힘을 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삼손은 더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나귀의 턱뼈 하나로 블레셋의 용사 천명을 순식간에 죽이는 괴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본문도 바로 그런 삼손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을 알려줍니다. 그가 블레셋 신전의 두 기둥에 두 눈이 뽑힌 채 맥없이 끝나는 것 같았지만, 마지막순간에 힘을 발휘하여 신전이 무너짐으로서 그 안에서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성경은 당시 그 신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삼손이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고 강조합니다. 처음에 삼손이 30명의 블레셋을 죽였고, 다음에 크게 도륙 했고, 나중에 일 천명을 죽였는데, 이날 여기서 죽인 숫자가 그 모든 숫자보다 많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삼손은 큰 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삼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음과 함께 건장한 신체, 강인한 체력, 놀라운 힘이 있던 인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삼손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모두 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이 강인한 체력, 힘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믿음이 곧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곧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달려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게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믿음생활이 힘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건강하고, 힘이 있습니다. 모세는 120세에 삶을 마칠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갔습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믿음이 힘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영혼이 평안하고,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힘은 결국 마음, 영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치 않는 것에서 모든 질병과 고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평안하고, 영혼이 잘 된 사람은 그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강력한 힘이 육체로 표출됩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가 잘되고, 또 강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믿음이요, 제대로 된 믿음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혼의 잘됨과 마음의 평안과 믿음의 튼튼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삼손처럼, 많은 선진들처럼, 힘이 있는 믿음으로 육체와 영혼이 날마다 강건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깨닫는 믿음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순탄하지가 않습니다. 삼손만큼 우여와 곡절의 인생도 드물 겁니다. 힘과 능력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위해 일했던 삼손이지만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를 대적하는 무리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은 삼손의 힘을 빼기 위해 삼손이 가장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서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힘을 주셨고, 힘의 근원이 머리에서부터 나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머리를 자르면 안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의 약점인 이성문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들릴라라는 여인에게 힘의 비밀을 알려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규례대로 살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가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지나간 뒤에, 삼손에게 깨달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서게 됩니다. 본문이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삼손의 이 간절한 외침과 고백에서 우리는 그가 그의 삶을 통해 큰 깨달음이 임한 것을 발견합니다. 깨달음이 임하는 순간부터 삼손의 생애는 극적으로 반전이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깨닫는 믿음이 귀한 믿음입니다.

   아쉬운 것은, 삼손의 이런 깨달음이 너무 늦게 왔다는 것입니다. 조금 일찍 왔더라면, 조금 일찍 생애 반전이 일어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삼손은 늦게 깨달았지만 그의 깨달음은 개인과 공동체와 역사에 커다란 교훈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우리에게도 임해야 합니다. 많이 깨닫고, 깊이 깨닫고, 날마다 깨닫고, 결단과 헌신으로 사는 것이 믿음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마디로 깨닫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타락한 이후에도 인간에게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가운데 하나가 깨달음입니다. 동물이나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깨닫는 존재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깨달음이 결국 하나님을 믿게 하고, 인생을 제대로 살게 하고, 참 사람의 길을 걷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 치고 깨닫지 못하는 존재가 없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파렴치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청개구리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엄마청개구리를 살았을 때 그렇게 말썽만 피고 반대로 했던 아들 청개구리가 엄마가 죽은 뒤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청개구리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못 깨달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보면서 언제 철이 들려나 답답할 때가 있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철이 듭니다. 다 깨닫습니다. 모든 인간은 다 깨닫는 존재입니다. 단지, 시간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 깨닫느냐, 아니면 내일 깨닫느냐 하는 것입니다. 젊어서 깨닫느냐 아니면 늙어서, 건강할 때 아니면 병들 때, 평온할 때 아니면 어려울 때, 지금 아니면 죽음의 순간이 올 때, 바로 그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깨닫는 것이 인생이라면, 기왕이면 빨리 깨닫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깨달음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날마다 나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큰 깨달음으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삼손의 생애에 마지막 모습입니다. 아울러 삼손 이야기의 절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돋보이는 삼손의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큰 깨달음을 가진 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삼손은 기도합니다.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결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삼손은 간절히 하나님께 메어 달립니다. 삼손의 생애에 이것처럼 애절하고 간절한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삼손의 모습은 오직 육체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삼손은 영적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온 힘을 다해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힘이 있던 것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 생애 어떤 모습보다도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삼손의 생애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잘못한 모든 죄와 허물을 다 덮어 버렸습니다. 실수와 약점과 허점이 많은 삼손이었습니다. 더럽고 추하고 약하고 냄새나고 부끄러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의 간절한 기도로 모든 것이 덮어졌고, 회복됩니다. 이것이 삼손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아름다운 것,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도는 놀라운 것입니다. 삼손의 기도는 아름다움으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의 부르짖는 기도로 능력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삼손이 힘을 다하여 기도하면서 몸을 굽힐 때 집이 무너져 하나님의 능력이 응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삼손의 힘이 아니라 분명 기도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기도에 이런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놀라운 것,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살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가장 놀라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가장 보기가 좋은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큰 감동을 줍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놀라운 것입니다. 기도로 어떤 능력과 기적과 역사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사람이 힘이 있는 사람이고,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기도할 때입니다. 이 깨달음이 없으면 믿음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개인과 가정을 위한 기도가 절실하지만, 교회를 위한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특히 성전건축이 진행중인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기에 성전건축을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나님이 모두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삼손의 기도로 능력이 나타난 것처럼, 분명 우리의 기도로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 기도의 자리로 우리를 날마다 순간마다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나 대안이 없습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찾아야 하겠지만 믿는 자에게는 기도 외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시험이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기도는 신앙생활에서 모든 것의 예방책입니다. 문제가 생겨서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기도는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기도할 때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 엠 바운즈 라는 사람이 ‘성공적인 기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죽음이 없다. 기도하는 입술은 죽음으로 닫히며, 그것을 느끼는 심장 고동은 그칠지 모르지만, 드려진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있게 된다. 기도는 세대의 시간과 세상을 초월하여 살아남는다.”

   피의 여왕이라 불렸던 영국의 메리 여왕의 복수심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지만,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믿음의 사람 존 낙스의 기도였다고 합니다. 여왕은 그를 군대 2만 명 보다 더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두려운 사람이요,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차는 동서남북 어디든지 갑니다. 하지만 철로가 깔린 곳만 갑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는 기차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우리가 기도로 철로를 깔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삼손을 통해 주시는 믿음을 기억하십시오. 삼손의 믿음은 힘이 있는 믿음, 깨닫는 믿음,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삼손과 같은 믿음으로 한 주간도, 남은 생애도 승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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