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의 원리 (민14장 11 ~ 25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위 ‘가데스 바네아’ 사건입니다. 먼저 그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습니다. 우선 저들을 2달 만에 시내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11달 체류케 하셨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저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율법을 주셨고, 제사 제도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과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시내광야 훈련을 마치고 가나안 입성 준비를 끝낸 출애굽 제 2년 2월 20일에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출발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진군해 가는 도중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들이 하나님 앞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험악한 광야 모습에 겁을 먹고 불평을 했습니다. 다베라 사건입니다.(민 11:1-3) 그리고 먹거리 때문에 불평을 했습니다. 기브롯 핫다아 사건입니다.(민 11:4-35) 또한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민 12:1-6) 하세롯 사건입니다.
이런 불평과 원망 사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부족함을 암시해 줍니다. 비록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었고, 11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훈련을 받았지만 충분치 못함을 말해 줍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바로 가데스 바네아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입구인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습니다. 저들이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케 했습니다. 저들의 보고는 한 가지 점에는 일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점에서 엇 갈렸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민 13:30-31)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이 두려워 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를 버리고 새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반응을 민 14:11-12은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 말씀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대노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멸시를 당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화가 나신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로의 집요한 방해도 10가지 재앙으로 물리치신 하나님, 홍해를 놀라운 기적으로 가르신 하나님,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저 광야생활을 지켜주신 하나님, 만나로 먹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저들을 전염병으로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저들을 버리시고 모세를 통해서 다시 큰 민족을 이루어 구원 역사를 새롭게 펼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결정적인 위기 상황이 발생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게 된 것입니다. 자칫 전염병에 걸려 몰살당할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중보기도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모세가 나섰습니다. 본문 1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멸절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20절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키로 하신 것을 철회하셨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모세가 드린 이런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부릅니다. 중보기도란 영어로는 ‘intercession’이란 말을 씁니다. 여기서 ‘inter’는 ‘사이’ 그리고 ‘cession’은 라틴어 ‘cedere’에서 나온 말로 ‘간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intercession 이라는 것은 “둘 사이로 나간다.”라는 뜻입니다. 즉 양편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런 뜻에서 중보기도는 그 누군가와 하나님 사이에 위치해서 그를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여기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중보기도의 놀라운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진노를 가라앉히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키로 하신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출애굽 구원역사를 계속 이어가시기로 하셨습니다. 바로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모세 한 사람의 중보기도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살 길을 찾은 것입니다.
제가 4월 첫 주로 상도중앙교회 부임 10주년을 맞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부족하지만 대과 없이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선배들의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나름대로의 열매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차분하게 감사의 제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 좋은 당회원들과 함께 사역할 수 있었던 것 감사했습니다. 너무 좋은 교우들 만난 것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목회 사역을 펼칠 수 있었던 참 좋은 시기를 주신 것도 감사했습니다. 열 손가락으로 다 손꼽을 수 없었습니다.
본당 옆을 지나다가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흔드는 기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 목사님 능력의 종이 되게 하시고, 건강을 지켜주시고... ” 저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는 소리였습니다. 누군가 하고 조용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분입니다. 근자에 새로 등록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지난 10년 나름대로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교우들의 중보기도 때문이었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부족한 목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교우들의 사랑의 중보기도 때문이었구나...
그렇습니다. 중보기도에 눈을 뜰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중보기도의 위력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도 현장에서 체험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핵의 위력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중보기도는 핵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하게 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보기도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삼상 12:1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중보기도를 청하는 내용입니다. 백성들이 중보기도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2:23을 보면 사무엘이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사무엘 선지자가 중보기도에 헌신할 것을 약속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무엘도 중보기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기가 할 일들이 많지만 이 중보기도를 최우선적으로 할 것이며 또한 마지막까지도 중보기도에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또 서로 중보기도의 짐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주의 종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도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봉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봉사도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중보기도의 원리
오늘 본문은 중보기도의 원리에 대해서 귀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사랑의 원리
오늘 본문의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모세를 중심으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밤새 통곡하고 한 자리에 모여 모세에 대해 원망했습니다. 지금까지 1년 넘게 자기들을 이끌어 온 지도자입니다. 목숨을 걸고 자기들을 위해 헌신해 온 하나님의 종입니다. 대들고 공격하고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르지 않기로 하고 다른 지도자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민 14:5를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렸다고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면당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14:10을 보면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돌을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죽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저들이 돌로 두 사람을 죽였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분명히 모세도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될 상황입니다.
모세도 당연히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동안 자기들을 위해 목숨 걸고 헌신했는데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입니다. 저들이 돌까지 들고 치려하는 모습을 보고 미움이 솟구쳤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저들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시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 편에 섰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중보기도는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중보기도는 응답될 수 없습니다. 사랑 없는 중보기도는 그야말로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형식적이고 체면치레로 하는 기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할 때 먼저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를 향한 사랑이 가득 차야 합니다.
둘째, 영광의 원리
모세의 중보기도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3-16절에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모세의 중보기도의 근거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병으로 멸절시키신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방 세계에 하나님께서 무능한 신이라 소문이 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실 능력이 없는 분으로 소문이 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중보기도가 기도가 자신의 유익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역시 중보기도가 또한 대상자의 유익에 초점을 맞춰도 안 됩니다.
12절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습니다.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시키고 모세로 하여금 다시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모세가 아브라함을 대신해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과 가문을 생각해 보면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영광이나 가문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게 돌아올 유익이 무엇인가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따라 중보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셋째, 말씀의 원리
모세의 중보기도 내용을 묵상하다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안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감히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답에 본문 17-18절에 나옵니다.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바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것을 어기실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식언치 못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따라 두 번째 돌 판을 깎아들고 시내 산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출 3:6-7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말씀대로 드려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기도드려서는 안 됩니다. 내 감정 따라 기도드려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소리를 따라 드려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할 때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따라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는 소위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능력이 있어서 응답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보기도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우리가 이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중보기도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딤전 2:1-2)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중보기도 할 때 따라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사랑의 원리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드리는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박봉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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