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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지(山地)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장 1-15절)

by 【고동엽】 2022. 9. 3.

  이 산지(山地)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장 1-15절)


땅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게 되는 본능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 밖에서 친구들과 놀면서도 '땅 따먹기' 놀이를 하고 미식축구 같은 운동경기를 통하여서도 '땅 빼앗기' 시합을 합니다. 소유재산을 따질 때에 동산(動産)과 부동산(不動産)으로 크게 구분하는 것에서도 땅을 소중히 여기고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이 잘 반영됩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땅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가장 크게 표출되는 것은 역시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옛날에는 '전쟁' 하면 곧 '땅을 지키느냐 혹은 빼앗느냐' 하는 것을 두고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기는 쪽은 자신의 삶의 영역을 더 넓게 차지할 뿐 아니라 부와 권력이 그 얻은 땅과 함께 절로 따라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하여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그 어떤 사람에게나 대표적인 인생 최고의 성취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저 유명한 갈렙에게 바로 그런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1절부터 5절에 보면, 요단강 건너편 지역에서 이미 자기네 기업을 얻었던 지파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지파들과 므낫세 반(半)지파에 대한 땅 분배가 시작됨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제일 먼저 갈렙이 등장하면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자기가 받고자 하는, 그리고 원래부터 받게 되어 있던 기업을 얻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몫부터 먼저 차리고자 하는 급한 마음이나 욕심에서 나온 말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평생을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신앙생활했던 성도가 그 축복의 기업을 받는 일에 있어서도 당연히 제일 돋보이며 앞서게 됨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주일은 우리 경향교회가 바로 그런 '축복의 산지'를 또 하나 더 받게 된 소식을 모든 성도들과 함께 공식적으로 나누게 된 아주 기쁜 날입니다.
  본 교회 당회는 작년 가을에 우리 교회의 교육관 확장을 위하여 지금 강서성전 앞에 있는 지역의 땅과 건물들을 구입하고자 결의를 하고 추진 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일을 진행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중에 드디어 그 중에서 일단 지금 선교원이 있는 대지와 건물에 대한 구입 매매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제 이 선교원 터를 또 하나의 발판으로 삼아 30만의 경향백성들을 모으게 될 소망의 미래를 향하여 힘찬 도약을 하게 된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성도가 이처럼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땅의 기업'을 남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넓게 얻게 되는지를 이 시간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산지를 쟁취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좇아 '소망하며 기다리는 신앙인'입니다.

  6절부터 9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6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유다 자손에 대한 땅 분배가 시작되었을 때, 갈렙이 여호수아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옛날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추억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출애굽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접경에 도달했을 때 사전 탐지를 위해서 정탐군 12명을 파송했었습니다.
  하지만 탐지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들과 나머지 10명은 서로 전혀 딴판의 보고를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했었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갈렙은 그때 자기의 보고는 "마음에 성실한대로" 한 것이었다고 했는데, 이 말은 자기 심령에 느껴진 그대로 보고했다는 뜻입니다.
  즉 그때 갈렙의 눈에는 그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셨던 말씀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분명히 확신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정탐꾼들은 꼭 같은 땅을 보면서 '사람을 삼키는 땅'이라고 악평을 했습니다.
  그들 역시 꼭 같이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받았으면서도 오직 인간적인 판단과 불신의 눈으로만 보았던 까닭에, '사람 죽일 땅'이라고 얼토당토 않는 악평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 열 정탐군들은 8절에 있는 대로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으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그들은 결국 온 백성을 낙심케 하고 끝내는 광야에서 다 죽도록 만드는 비극을 초래했던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갈렙은 "나는...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에서는 좀 드물게 쓰이는 표현인데, '빈틈없이 바짝 붙어 따르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하나도 잊지 않고 잘 기억했으며 그것을 그대로 소망했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하나님을 바짝 가까이 따르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갈렙은 '우리는 그보다 강하다'고 백성을 격려하는 보고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신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가 얼마나 극단적인지를 잘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갈렙은 그뿐 아니라,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축복해 주셨던 약속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9절에 "네 발로 밟는 땅"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지역은 실제로 갈렙이 45년 전에 가나안 땅에 정탐하러 갔을 때 자기 발로 걸어 다녔던 가나안의 주요 정탐 지역으로서 바로 지금 곧 얻게 될 '헤브론'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이 차지하고야 말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갈렙은 지난 45년 동안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그 45년 동안 단 한 순간도 의심치 않고 살아왔던 것이었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것은 무슨 큰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외가 없이 적용되는 원칙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바로 그런 정신으로 대기업까지 이루게 된 사람인데, 그에 대한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아직 18세 젊은 나이에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내던 노동자 합숙소는 빈대가 얼마나 많았던지 밤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밥상 위에 올라가서 잠을 자려고 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와서 또 사람을 물어뜯는 것이었습니다.
  미물이지만 정말 만만치 않은 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주영 씨는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그 밥상다리 네 개들을 각각 물을 담은 양재기에 담가 놓고 자려고 했습니다.
  빈대들이 설마 헤엄쳐서 물을 건너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빈대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에 그것들은 벽을 타고 천정을 가로질러서, 누워 있는 정주영 씨 바로 위에서 정확하게 떨어져서 또 들어붙어 피를 빨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바로 그때 그 빈대들의 집념을 보고서, 평생토록 그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고 붙들고 나아감으로써 그처럼 굴지의 대기업을 이룩했던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뜻도 품지 않고 있는데 그것이 절로 들어올 리가 있겠습니까?
  평소에 그것을 가지고 싶다는 꿈도 꾸지 않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호기가 온다 하더라도 보지 못하고 넘어가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받기 위해서 마음에 소원을 품고 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약속을 가슴에 담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것이지, 그런 축복에 대한 여망조차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바라거나 기다리지도 않는 선물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내려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는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경향교회가 강서성전을 받게 될 때에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경향학원이 된 이 터를 여의도에서 바라보면서 '정탐'을 하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이 땅을 두고 '사람 삼키는 땅'이 될 것이라고 '악평'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리하면 경향교회는 곧 망한다.'고 교인들의 사기를 꺽으려 하던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이 축복의 강서성전에 결국 들어오지 못했고, 오직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우리의 땅이라고 '마음에 성실한 대로' 믿고 오직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았던' 성도들은 바로 그 믿음 그대로 지금은 자신의 발로 이 '가나안 땅'을 밟고 다니며 이 아름다운 성전을 출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 '산지'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 선교원 건물은 우리가 강서성전을 짓기 전부터 세를 내어서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서는 어린이 선교원을 운영해 왔던 공간이었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는 그때부터 '이 건물과 땅은 우리 밥이다.'라고 이미 생각하고 계셨으며, 경향선교회 회원들도 오래 전부터 이렇게 될 줄을 벌써 믿고 함께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원로목사님과 장로님들과 경향의 성도님들에게는 이 강서성전에 입당하기 전부터 이미 그 땅은 우리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마음으로 드려왔던 기도는 오히려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응답이 와서 지난 화요일에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미래를 바라보고,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소망하면서 기다리는 성도에게만 축복의 산지를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이런 믿음으로 이 땅을 함께 얻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산지를 쟁취할 수 있는 자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용기와 힘을 내어 '싸울 줄 아는 행동인'입니다.

  10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에 "10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11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12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지난 사십 년 동안의 광야생활 중에서 자신의 수명을 지켜주시고 더욱이 오 년 동안 계속된 가나안 정복 기간에 그 숱한 전투의 위험 중에도 자기를 살려 주신 것을 두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즉 가나안에서 자기 땅을 가지게 해 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이상,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코 죽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그 기다리던 땅 분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까닭에, 갈렙은 "이 산지" 즉 자기가 옛날 정탐할 때 보았던 '헤브론' 지역, 그리고 하나님께서 "네 발로 밟는 땅"이라고 약속해 주셨던 바로 그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즉시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앞장 13장에 보면, 이 땅 분배는 완전히 정복된 땅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정복되지 못한 땅까지 포함해서 미리 나누어 주는, 아주 특이한 땅 분배였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자기에게 배당된 땅을 자기 자신이 직접 가서 아직도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을 무찌르고 빼앗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갈렙에게 약속된 땅, 여기서 그가 "이 산지"라고 일컫고 있는 헤브론도 바로 그처럼 아직까지는 정복되지 못한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 땅은 "아낙 사람" 바로 옛날에 열 명의 정탐군들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바로 그 거인족이 여전히 살고 있었으며 게다가 그들의 "성읍들은 크고 견고한"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지금까지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왔던 갈렙의 신앙은 이제 행동으로 발휘되게 시작합니다.
  "내가 팔십 오세지만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는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라고, 그 땅 정복에 대한 자신감을 당당히 피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혹시'라고 번역된 부분은 의심이나 근심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강한 소원을 뜻합니다.
  즉 그런 자신감을 가지게 해 준 배경은 오직 하나님의 동재와 도우심을 철저히 의지하고 있기 때문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갈렙은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는 45년 전의 일을 공으로 내세우고 그저 쉽게 배당받을 수 있는 땅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85세의 노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갈렙의 그 적극적, 전투적 자세는 오히려 청년을 뺨칠 정도였던 것입니다.

  결국 갈렙은 바로 그 믿음과 또한 그 믿음과 일치하는 행동을 통해서 그 산지를 얻게 됩니다.
  바로 13절 이하 15절에 "13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15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아낙 족속 중에서도 또 가장 뛰어났던 "아르바" 족속이 85세의 갈렙에 의하여 제압되었으며, 그는 드디어 "헤브론" 땅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말은, 가나안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갈렙의 그 아낙 자손 진멸과 헤브론 정복이 당분간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의 제일 마지막 전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기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은 적당히 해 나가다가 중단하거나 포기해 버렸지만, 이 늙은 갈렙만은 끝까지 싸우고 완전히 빼앗는 유종지미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를 두고 본문은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라고 아까 9절에서 나왔던 말을 또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믿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좇았던 갈렙은 이처럼 신행일치의 행동을 통해서도 역시 하나님을 바짝 따라감으로써, 그 멋진 축복의 산지를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말 역시,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좌우명입니다.
  이 말은 바꾸어 하자면, '신은 스스로 행동하는 자를 돕는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도와 줄 길이 없습니다.
  같은 거지라 해도 그냥 깡통만 앞에 놓고 앉아 있는 거지보다는, 피리를 불든지 기타를 치든지 하여튼 뭔가를 하고 있어야 지나가던 행인도 그를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들게 됩니다.
  머리는 좀 나빠도 일단 학생이 열심히 해 보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선생이 도울 수 있으며, 백수건달로 방안에서만 뒹굴고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직장을 찾으려 노력하고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시도를 해야 주변 사람들도 도와 줄 길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산지를 얻고자 하는 성도도 꼭 같습니다.
  성도가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입에 넣어주는 떡을 그냥 받아먹기만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싸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땅이 주어졌다는 그 자체가 이미 갈렙에게는 축복이었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을 완전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가 직접 싸워야 할 과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경향교회의 개척 시절부터 함께 동참해서 지금 이 강서성전 시대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경향인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남이 차려 준 밥상을 그냥 먹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34년 동안 숱한 전투들을 치러온 역전의 용사들이며 특히 이 '강서 본토 정복 작전'을 위하여서는 '생애 최고의 것'을 바쳐서 희생하고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투의 승리로 인하여 이 기가 막히도록 좋은 경향학원의 터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 아름다운 강서성전을 짓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특히 강서 시대에 경향제단에 오신 성도들은 이 교육관 구입은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몫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경향의 1세대 성도들은 '가나안 본토 정복전'에서 문자 그대로 힘에 지나도록 모든 것을 다 쏟아 바쳤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다 기쁨과 감사 가운데서 충성한 것은 틀림없지만, 솔직히 이제 힘이 좀 달리게 된 것도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본토'에 붙어 있는 작은 땅 '헤브론' 정도는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나서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 최전방의 임무만큼은 좀 교대를 해 주고,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제일선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말이 경향의 1세대 성도들은 이 '산지'를 정복하는 전쟁에서는 열외가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개척 공신'이니 이제는 뒤로 물러나서 '이미 정복된 땅'이나 분배 받고 평안히 지내겠다는 따위의 생각은 꿈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34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실로 숱한 고난과 역경을 통과해 오면서, 또 이미 많은 전투를 힘들게 치러왔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오늘까지 우리를 '생존케' 하신 이유는 바로 이 새로운 축복의 산지도 꼭 함께 밟아보게 하기기 위함인 줄로 믿어야 합니다.
  85세 노구의 갈렙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써' 크고 강한 아낙 자손을 쫓아내는 혁혁한 전공을 세울 수 있었다면, 우리들 역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도와주실 것만 믿고 함께 싸우기만 한다면 이 영광스러운 유종지미의 축복까지도 반드시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전쟁이 완전히 그칠 때까지'는, 우리는 그저 싸우고 또 싸워야 하며, 정복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또 정복하고 마저 정복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오직 우리가 산지를 향해 진격해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미(未)정복 산지'를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호기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줄로 깨닫고, 함께 용기를 내어 행동하고 힘을 모아 싸움으로써 경향의 산지를 더 넓게 펼쳐가는 축복을 반드시 쟁취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설교를 들으면서 고개는 끄덕여도 그 말씀을 믿고 소망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실상 아무 축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아니하면 역시 오십보백보로서 실제의 산지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의 약속을 늘 마음에 새기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좇는 신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시 구체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신행일치로써 하나님을 바짝 따라가는 신자에게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미 예비해 놓으신 '여호와이레'의 좋은 것을 그 약속하셨던 대로 반드시 손에 붙잡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 경향교회가 지난 34년 동안 사사건건을 통하여 원로목사님과 1대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고스란히 체험해 왔던 역사적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이 산지' 역시 우리가 바로 그런 믿음으로 소망하고 바로 그런 행동으로 쟁취하기만 하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는 이 강서성전의 교육관들조차 공간이 비좁아질 정도로 급속도의 성장과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적시에 타이밍을 맞추어서 이 산지를 우리에게 분배해 주셨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먼저 '할렐루야'로 영광을 돌리고 아예 '우리의 밥'으로 여겨야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니 우리도 지금 이 눈앞에 있는 선교원뿐 아니라 그 주변 땅과 건물들 역시 바로 그와 꼭 같은 마음으로 또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언젠가 주실 기회를 반드시 붙잡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처럼 믿고 소망하며 그처럼 기회가 올 때 신행일치의 용기와 힘을 발휘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반드시 우리의 손에 쥐어 주실 것입니다.
  '이 산지(山地)를 내게 주소서' - 갈렙이 믿었고 또한 성취 받았던 축복, 오늘 우리 경향인들이 꼭 같이 소망하고 쟁취하는 멋진 축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석기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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