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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롯으로 말미암은 인종 (창19장 30-38

by 【고동엽】 2022. 9. 3.

롯으로 말미암은 인종  (창19장 30-38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참극들은 정말 이루 말로 다 표현할 길도 없으며,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도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수용소 내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근친상간(近親相姦)입니다.
  북한 공산정부는 정치범들의 가족은 아예 그 씨를 근절시킨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부모와 같이 정치범 수용소에 잡혀 들어간 자녀들은 결혼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성욕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은 그처럼 극도로 자유가 제한되고 아무 희망도 없는 생활 속에서는 오히려 더 강력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용소에 갇힌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근친상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죄수들은 오누이가 있는 가족을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거기에서는 한 가족 당 무조건 방 한 칸씩 밖에 배당되지 않으니까 남매지간이 한 방에서 함께 자면서 성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곁에는 부모도 멀쩡히 같이 누워 있지만, 그들도 어차피 자기 자녀들이 결혼할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눈감아 준다는 것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런 정치범 수용소에 살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이 증언하는, 실제로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비절참절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모르기는 하지만, 부녀(父女)나 모자(母子)만 수용된 경우에도 그 사이에서 근친상간이 일어나고 있을 가망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정말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는 상상까지도 절로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근친상간은 다른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오랜 옛날부터 인류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며, 바로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납니다.
  좀 특별한 것이 있다면, 오늘날의 근친상간은 부모가 어린 자녀를 성학대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겠지만, 본문에서는 딸들이 아버지를 속여서 관계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루어졌든지 간에 근친상간도 분명히 간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근친상간을 비롯하여 이 현대사회 구석구석에서 더욱 만연해 가는 온갖 성범죄들은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정이라는 혈연공동체를 그 기초에서부터 파괴하는, 가장 큰 죄악인 것입니다.

  오늘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소중한 가정을 파괴하려 하는 이런 성범죄에 대하여 성경 말씀이 뚜렷이 선포해 주는 경고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어떤 상황이나 이유도 결코 성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본문 30절부터 32절에 “30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31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32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라고 기록했습니다.

  소돔성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멸망당했을 때 천사의 손에 이끌려 극적으로 구원을 받은 롯은, 처음에는 자청해서 “소알” 성으로 피신해 놓고서도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는 거기에 살다가 소돔성과 꼭 같은 변을 당할까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 가서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사해 주변에 많이 남아 있는 굴들을 보면, 우리나라 산지에 있는 것처럼 습기 많은 흙동굴이 아니라 석회암 등으로 이루어진 건조한 동굴들입니다.
  즉 동굴이지만 그런대로 살 만한 거주지였으며, 신약 시대 가까이 와서는 실제로 그런 동굴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에센파라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하여튼 그런 동굴에서 무료하게 살던 롯의 두 딸들이 참 기막힌 착상을 해내었습니다.
  그녀들은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라고, 즉 ‘지금 우리 집안이 되어 가는 꼴과 사는 모습을 보고 우리와 결혼해 줄 남자는 없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러니 우리가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하고 아버지와 동침해서 아버지의 인종을 전하자”라는 계획을 그 두 딸들이 함께 짰습니다.
  그것은 성욕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네들이 앞으로 결혼하고 자식 낳을 기회를 영원히 못가지게 될 것이라는 초조함과 걱정 때문에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그 두 딸들은 어릴 때부터 악한 소돔성에서 자라면서 그 보고 들은 문란한 것들 때문에 이미 그 성도덕 관념이 오염되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롯 역시 자기 딸들에게 성적 순결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았음에 변명의 여지가 없고 그들에게 신앙의 배우자를 제대로 찾아 주지 못한 잘못을 분명히 저질렀습니다.
  그런 배경과 상황 속에서 그의 두 딸들은 자기네들의 근친상간을 정당화시키려는 이유를 처음부터 분명히 설정해 두고 서로 합의를 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나름대로는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롯의 두 딸들이 행한 일은 여지없는 범죄행위라고 성경은 곳곳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레위기 18장 6절과 7절에 보면 “6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7네 어미의 하체는 곧 네 아비의 하체니 너는 범치 말라 그는 네 어미인즉 너는 그의 하체를 범치 말라...”라고, 이하 18절까지 온갖 종류의 근친상간을 하나하나 언급하면서 엄금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 20장 11절에서는 “11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하면서, 그 외에도 이하 21절까지 “자부, 장모, 자매, 이모나 고모, 백숙모, 형제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 죄를 당하여 죽으리라”고, 근친상간의 죄는 예외가 없이 다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 외에도 신명기와 에스겔 등에서, 또 신약에서는 고린도전서 등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그런 근친상간들을 강력히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정의에 따르면 비단 근친상간뿐 아니라, 순결한 부부관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성관계는 다 간음 행위입니다.
  즉 모든 혼전(婚前)관계와 혼외(婚外)관계는 하나도 예외가 없이 다 간음일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간음들은 하나도 예외가 없이 다 범죄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정의하고 그렇게 정죄한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그 어떤 변명도 이유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문란한 사생활을 두고 ‘사랑하는 게 죕니까?’라는 항변으로 정당화시키려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론 사랑하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큰 축복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결코 사랑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간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가문이 끊어질 것을 염려해서 그랬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없는 간음이었는데, 어떻게 자기가 바람나서 저지른 일을 두고 ‘간음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 온갖 다른 비정상적 성관계들을 하나씩 둘씩 더 많이 인정해 주고 있는 불신사회에서도 최소한 근친상간만은 분명히 범죄라고 인정하고 있으며 실제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은 아무리 당사자들이 합의하고 남에게 직접적 피해는 없는 성관계라 해도, 그저 기본적인 인륜만을 따져도 분명히 범죄가 되는 성관계가 본질적으로 있음을 반영해 줍니다.
  단지 저 음란한 불신자들이 그 기준의 선을 이미 엄청나게 끌어내렸으며 점점 더 낮추고 있는 까닭에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착각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강간이나 아동 성학대만 성범죄가 아니라 부부관계 이외의 모든 성관계가 다 간음이며 다 성범죄이다.’ - 오직 이것만이 하나님께서 제정해 놓으신 원래의 성도덕이며 결코 범할 수 없는 불변의 율법임을 기억함으로써,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온갖 변명과 유혹을 물리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음주는 성범죄에 빠지게 되는 가장 대표적인 요인입니다.

  33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에 “33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이튿날에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35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자기 딸들과 근친상간을 저지른다는 것은 아마도 롯이 제정신이었다면 차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소돔성에 살고 있을 때에도 나름대로 성도덕에 대해서는 양심을 발휘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천사들이 자기 집에 들어온 후에 소돔성의 폭도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그 두 사람들을 내어놓으라고 협박을 했었습니다.
  그것은 외지에서 찾아온 객들을 상대로 동성연애와 윤간을 하려는, 실로 그 악하고 음란함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들릴 정도로’ 극심했던 소돔성의 죄악상이 고스란히 나타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그 폭도들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고 그들 앞에서 외칠 정도로 선한 양심은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롯의 딸들도 아마 그런 아버지를 알고 있었던 까닭에 롯에게 술을 먹여서 인사불성 상태로 만든 후에 일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롯의 제정신이 발휘되지 못하도록 만든 것, 롯의 양심조차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린 술이란 것의 위험과 그 위력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롯의 집안에 술이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동굴에서 사는 처지에도 대취하도록 마실 만큼의 충분한 술이 그 집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소돔성에서 천사의 손에 끌려서 다급하게 도망쳐 나온 몸이니 기껏해야 그저 주머니 속에 넣을 수 있는 돈이 전부였을 것이고, 실제로 굴속에 거주하는 쪼들리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쉬운 생활비에서도 술 살 돈은 있었고 장만해 둔 술은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롯은 딸들이 자기에게 술을 권해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주는 대로 계속 마셨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서로 대작하며 대취하도록 술 마시는 것이 그 집안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며, 어쩌면 평소에도 자주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술이 롯으로 하여금 근친상간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게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소위 ‘술과 섹스’는 치명적인 결합관계에 있습니다.
  오늘날 대학교 신입생들이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바로 음주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라는 것은 대부분이 다 문자 그대로 ‘술독에 빠지는’ 자리입니다.
  미국의 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일 년 동안 맥주 사 마시는 돈이 미국 대학교의 모든 도서관들의 일 년 예산액수보다 훨씬 웃돌고 있다는 통계까지 나와 있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술기운이 대학생들 간에 온갖 혼전관계의 촉진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학가들마다 술집들과 모텔들이 나란히 장사진을 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물어볼 필요 없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쌍방이 동의한 일이고 설혹 약혼까지 한 사이라 해도 혼전관계는 변명의 여지없는 간음일 따름입니다.
  어렵게 키워서 대학교에 입학시켜 놓은 자녀들이 대학생이 되자마자 공부하고는 담을 쌓아 버리고 음주와 간음에 빠져 버리는 이 무서운 올무들을 우리 부모들은 정말 정신 차리고 경계해야 합니다.

  몇 년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어느 대도시의 남녀 중학생들 중에 40.3퍼센트, 고등학생들 중에는 77.4퍼센트가 음주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가운데 남학생들은 66.5퍼센트, 여학생들은 57.5퍼센트였고, 전체적으로 남녀 중고등학생 중에 61.8퍼센트가 음주 경험이 있다고 했으니, 거의 세 명 중에 두 명에 가까운 비율인 것입니다.
  또한 모 신문사에서 올해 수도권의 8개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10명 중에 3명꼴로 이미 성관계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벌써 음주와 성경험의 비율이 그 정도라면 대학생들이나 미혼청년들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될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잘 알고 사귀는 사람과 데이트하다가 갑자기 강간을 하는 소위 'date rape'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사용되는 것이 바로 상대방의 술에 몰래 타 넣는 강간용 최음제인데, 이런 약들이 인터넷 상에서 버젓이 거래까지 되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은 비단 대학가뿐 아니라 성인유흥업소에서, 그리고 이미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벌써 얼마나 퍼져 나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술꾼들은 ‘술이 웬수다’라고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계속 술을 마심으로써 죄를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술에 자신의 의식과 자제력을 다 빼앗기고 그 결과 절로 죄악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이 어리석고도 미련한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성령에 취함으로써 자신의 양심과 육체를 동시에 순결하게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원수가 되는 인종입니다.

  36절 이하 38절에 기록하기를 “36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37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38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족속의 조상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하면서 롯의 딸들이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라고 했던 소원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들들이 각각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던 것이며, 그 롯의 인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모압과 암몬이라는 인종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선민과 영원한 원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83편 3절 이하 8절의 말씀에 보면 “3저희가 주의 백성을 치려 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의 숨긴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4말하기를 저희를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5저희가 일심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 6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 7암몬과... 8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라고 그 영원한 대적관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롯의 자손들은 이 시편이 기록된 후대에 와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저희로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자”라고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롯의 인종’은 ‘주의 백성’인 성도를 ‘치려고 의논하며’ 저희들끼리 ‘서로 언약하여’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롯 자손’의 그런 행위는 곧 “주를 대적하는” 적대행위라고 분명히 단언하고 있습니다.
  즉 불신자들이 신자들을 치려하고 불신사회가 교회를 ‘끊어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려 하는 모든 적대행위들은 곧 하나님께 덤벼드는 반역 그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인종이 그 때부터 오늘까지 나누어져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신앙의 자손들과 불신앙의 자손들은 영적으로 뿐 아니라 이처럼 육신적으로도 완전히 차이가 나는 혈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육체의 순결을 지키는 인종이며 후자는 육체로 죄악의 도구를 삼고 있는 인종입니다.
  실로 피부색으로 나누어지는 인종보다 내면적으로는 훨씬 더 뚜렷하고도 중대한 차이가 바로 이 두 인종들 간에 여전히, 아니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욱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대립은 단지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불신사회 사이에서의 적대관계로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프랑스를 두고 ‘섹스 스캔들이 없는 건전하게 야한 나라’라고 묘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온갖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이미 전 국민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인 까닭에 섹스 스캔들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이며 그래서 소위 ‘건전하게 야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아예 ‘건전한 간음’이라고 떳떳이 자랑까지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온 세상이 점점 더 온갖 음란한 죄악들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보란 듯이 행하는 불신자의 자손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어떤 토크쇼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자기 남편을 다른 애인에게 빼앗겨 버린 어떤 아내가 나와서 자기 신세를 하소연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사실 불신사회에서야 흔히 생기는 것으로서, 그런 토크쇼에 나올만한 이야깃거리는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보니 그 ‘남편의 애인’이라는 사람이 다른 ‘여자’가 아니라 바로 그 ‘아내의 동생’ 그것도 여동생이 아니라 ‘남동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남편이 동성연애자가 되면서 자기 남동생과 사귀게 되는 바람에 졸지에 남편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매형 처남 지간이 부부가 되어 버렸다는 셈이 아닙니까?
  자기 어머니인 동시에 아내도 되는 희한한 관계 같은 것은 무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따위의 옛날 신화에서만 나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 정도 가지고는 상대도 안 되는 별 괴상망측한 관계들이 이 현대사회에서는 끝없이 새로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그런 것이 콤플렉스가 아니라 소위 ‘건전하게 야한 것’이 되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혼전관계나 사생아 같은 것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죄악시하거나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뭔가 모자라는 인종인 것처럼 되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혼외관계를 두고 ‘사랑하는 게 죕니까?’라고 당당히(?) 대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를 서로 맞바꾸어 관계를 가지는 낮 뜨겁기 짝이 없는 일까지도 무슨 동호회 활동처럼 버젓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기기묘묘한 ‘롯의 인종’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와 같은 성도덕 타락을 배격하고 책망하는 기독교인들을 오히려 비난하고 치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처럼 더럽고 음란하고도 철면피하기 짝이 없는 ‘롯의 인종’들과 혈통을 섞을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타락한 자들과 꼭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음란한 자들 역시 틀림없는 하나님의 원수이며 사단에 속한 족속이며 따라서 기독교의 대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의 육신 역시 오직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도구’와 ‘의의 병기’로 지켜내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악하고 음란한’ 인종들 역시 자기네 종족을 보전하려는 본능을 발휘합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저희로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자’라고 오히려 육체의 순결을 지키려 하는 ‘영적 이스라엘’ 족속을 아예 멸종시켜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라고 한 것처럼, 이단과 우상종교, 세속 권력과 무신론 세력 같은 사단의 모든 종족들은 ‘롯 자손의 도움’이 되는 연합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덕의 타락과 성범죄 행위들은 사단의 세력을 더더욱 확장시켜 가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순결한 선민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물결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영적 이스라엘 인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시작되게 하신 인종, 이삭과 리브가를 통하여 이어지게 하신 인종,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통하여 오늘도 자자손손을 낳게 하고 계시는 기독교 신자들만이 이 혼탁한 물 가운데서도 깨끗하고 순결한 인종을 지켜낼 수 있는 것입니다.

  ‘롯의 인종’들은 영적으로뿐 아니라 의학적으로만 보더라도 온갖 성병과 유전적 질환을 이 세상에 만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만들어 주신 이 소중한 육체를 아예 근본적으로, 자자손손에 영향을 끼치도록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롯의 인종’들과는 전혀 다르게 순수한 혈통을 이어가는 인종이 더욱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우리 기독신자 청년들만은 ‘육체의 순결’을 지키고 우리 기독신자 부부들만은 ‘혼인의 정조’를 지키면서 ‘거룩한 자손’을 낳는 ‘깨끗한 인종’으로 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암몬과 모압, 이 ‘롯으로 말미암은 인종’에도 불구하고 ‘순결한 이스라엘’은 존속되었습니다.
  그 영적 이스라엘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우리들 역시 바로 자신의 가정에서 이 순수성과 이 정통성을 지켜 나가야만 합니다.
  자녀들에게 순결 교육을 시키고 자신은 부부로서의 정조를 지킴으로써,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주신 이 귀중한 몸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주님께 헌신하는, 이 시대의 ‘순결한 이스라엘 인종’을 대대에 이어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석기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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