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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미디안 전쟁의 무용담 (사사기 7:15~23)

by 【고동엽】 2022. 8. 29.

미디안 전쟁의 무용담   (사사기 7:15~23)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a militant church)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죄악 세상에서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며 신령한 전투를 감행하여야 되는 교회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엡 6:12). 역사적으로 모든 시대의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외 없이 이 싸움에 참여하였으며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도 결국 승리자의 반열에 올라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역전의 용사들을 망라하고 그들의 무용담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2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오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등은 사사시대의 인물들입니다. 그 중에 기드온은 불과 삼백 명의 의용군을 이끌고 나가 메뚜기 떼처럼 중다한 미디안 대군을 무찔러 이겼습니다. 그가 처음 징병 모집을 했을 때 삼만 이천 명이나 모여 왔지만 그 많은 사람을 다 돌려보내고 겨우 삼백 명의 적은 수를 이끌고 나간 것이나, 무기라고는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을 가지고 간 것도 그렇고 전쟁의 방법도 적과 맞붙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어 올리는 등 특이한 전술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세계 전사에 찾아 볼 수 없는 희한한 전쟁이었습니다. 여기 미디안 전쟁에 얽힌 기드온의 무용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감행하는 신령한 전쟁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이스라엘의 대적 미디안

사사기 6:1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의 거주지인 가나안 일대에는 곳곳에 잔류하고 있는 가나안의 부족들이 조직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침략을 일삼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용하여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한 후에 사십 년 가까이 전쟁이 없는 동안 백성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일으켜 칠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도록 허용하였던 것입니다.

(1) 미디안 부족

미디안 족속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사사시대에 절정을 이루었고 기드온 전쟁이후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디안 족속의 기원은 창세기 25:2에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전에 그들에게 재물을 넉넉히 주어서 멀리 동방으로 이주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적자인 이삭의 후손과 충돌을 피하게 한 배려였을 것입니다(창 25:6). 훗날 이들은 중동지역을 다니면서 무역을 하는 대상(隊商) 노릇을 하였습니다.
창세기 37:36에 보면 미디안 상고들이 요셉을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후에는 미디안 족속이 오랫동안 요단 동편 광야 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왕궁을 떠나 미디안 지역으로 망명했을 때 그는 그곳 제사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양을 치는 목자의 일을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을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요단강 동편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미디안 백성들이 팔레스틴 지역을 침략하고 그곳에서 강력한 부족국가로 세력을 확장했을 때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일정한 국가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지도체제의 공백상태에 있었습니다. 사사기 6:2-6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의 강포에 시달리다 못해 산꼭대기에 성을 쌓거나 땅속에 굴을 파고 숨어서 살았습니다. 또 파종할 때나 추수할 때도 미디안의 눈을 피해서 하였지만 그들은 떼로 몰려와서 토지소산을 거두어가고 소나 양을 약탈해 갔습니다. 사사기 6:11에 보면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도 미디안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어서 밀타작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죄와 마귀의 세력에 의해서 포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곤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 5:8).

(3) 막강한 전력과 훈련된 군사들입니다.

사사기 6:5에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매우 호전적인 부족으로써 일찍부터 미디안 광야를 무대로 하여 병사를 훈련을 시키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장된 군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사막의 전투에 적격인 약대를 말처럼 훈련시켜서 이동수단으로 이용하였고 전쟁에 활용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숫적으로도 메뚜기 떼처럼 많은 대군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볼 때 기드온의 미디안 전쟁은 처음부터 인간적인 관점에서나 물리적인 기준으로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전력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를 둘러싸고 하나님의 백성을 유린하려는 세력의 공통적인 특징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삿 6:6).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고 하였습니다(시 3:1). 유대나라 아사 왕은 구스 왕 세라가 백만 대군으로 쳐들어올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하고 부르짖었습니다(대하 14:11).


Ⅱ. 기드온의 삼백명  용사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군사를 대적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기드온에게 불과 삼백 명의 소수로 출전하게 하였습니다. 상대는 이미 훈련된 군인으로 잘 짜여져 있고 그 숫자도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해변의 모래같이 수다하였다고 했습니다(삿 7:12). 그러나 여기 삼백 명의 적은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군을 삽시간에 이길 수 있었기에 그 사실 자체가 후세에 길이 전할 무용담이 되는 것입니다.

(1) 선발된 사람입니다.

처음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백성 중 미디안 전쟁에 나가기를 원하는 의용군을 모집했을 때 무려 삼만 이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두려운 마음이 있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탈락한 사람이 이만 이천 명이었습니다(삿 7: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은 일만 명도 많으니 그 중에서 다시 더 추려내게 하였습니다. 기드온이 그 사람들을 개울가에 데리고 갔더니 대부분이 무릎을 꿇고 정신 없이 물을 마시고 있는데, 그 중에도 손으로 물을 움켜서 입으로 가져가는 자가 삼백 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전쟁에 나가라고 하였습니다(삿 7:5-7).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마귀와 대적하며 신령한 전투에 임하는 군인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2:3-4). 하나님의 군사들은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고 되돌아가는 비겁한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뿐 아니라 적전에 임하는 사람이 당장 목마른 것만 생각하고 물 마시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는 자도 곤란합니다. 깨어서 경각심을 가지고 용의주도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벧전 4:7).

(2)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령관인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여러 가지 신비로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곧 자기의 힘을 의지하거나 인간적 방법으로는 도저히 대결할 수 없는 그 싸움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고 인도하는 대로 따르게 될 때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가 처음 오브라의 타작 마당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을 때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기드온은 그곳에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이라고 이름 불렀습니다(삿 6:22-24).
그 후에 기드온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종 열 명을 데리고 가서 바알의 산당을 습격하고 아세라 상을 찍어 버렸습니다(삿 6:25-32).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께서 저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 구원하게 될 표징을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늘에서 내린 이슬이 기드온의 말대로 양털뭉치만 적시고 땅에는 내리지 아니하였고, 또 한번은 그 반대로 땅은 적시되 양털은 말라 있는 표징을 보았습니다(삿 6:36-40). 이와 같은 체험들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갖게 하였습니다.

(3) 한 덩이의 보리떡입니다.

그 날 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그의 부하 부라를 데리고 적진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기드온이 야음을 틈타 미디안 진영의 막사에 접근했을 때 그 안에서 미디안 군인들이 저희끼리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곧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난 병사가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내용인즉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동무의 말이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고 답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디안 병사에게 꿈으로 보여준 계시입니다. 보리떡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양식입니다(요 6:9).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신비로운 도구입니다. 메뚜기 떼처럼 중다한 미디안 대군에 비하면 기드온의 삼백 명 용사는 보리떡 한 덩이처럼 작고 볼품 없는 존재였으나 거기에는 위대한 하나님의 폭발적인 능력이 행사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능력을 행사한다고 하였습니다(롬 1:16).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린 성도는 능력 있는 보리떡이 되어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생명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Ⅲ. 승전의 비결

출애굽의 인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그 앞에 어떤 대적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가 대신 싸우신다고 하였습니다(출 14:14).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신령한 전쟁에 동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그 방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12에 보면 하나님의 싸움은 혈과 육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기드온과 그 군대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움에 임하였고 그 결과 상상할 수 없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본문 말씀 20절에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22절에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1) 나팔을 불었습니다.

삼백 명이 나팔을 동시에 불었고 그 나팔 소리와 함께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치켜들며 소리를 지르는 등 다음 동작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에도 일어난 광경입니다. 그때도 양각나팔을 잡은 일곱 제사장이 선두에서 행진을 지휘했고 또 그들의 나팔소리에 따라 백성이 함성을 질렀으며 순식간에 성벽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를 파수꾼이라 했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나팔소리로 표현하였습니다(겔 3:17). 파수군이 망루에서 나팔을 정확하게 불어야 되는 것처럼 주의 종 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정확하게 바로 외쳐야 됩니다. 백성은 그 말씀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며 순종하여야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행사되기 때문입니다.

(2)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육체를 항아리에 비유하였습니다(고후 4:7). 본래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진흙을 이겨 육신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창 2:7). 질그릇은 금이나 은그릇에 비하여 가치가 없는 것이며 또한 깨어지기를 잘하는 연약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군사들에게 나팔소리가 날 때 들고 나간 항아리를 먼저 깨뜨리게 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신령한 전투에는 인간의 육체나 완력이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이 먼저 깨어지고 없어져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5:50). 사도 요한은 이런 것들을 가리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1서 2:16). 갈라디아서 5:24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고 하니 우리 속에 육신의 소욕이 살아 있는 동안은 하나님의 영이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롬 8:7-8).

(3) 횃불을 들었습니다.

삼백 명의 군인들이 동시에 가지고 있던 항아리를 깨뜨리고 그 속에 감추어 두었던 횃불을 치켜들었을 때 미디안 진영은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갑자기 밝은 빛이 충천하면서 사방으로부터 이스라엘의 함성이 터져나오자 미디안 군사들은 정신을 잃고 우왕좌왕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충돌하여 저희들끼리 칼로 치며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피한 방울 흘리지 않고 대승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의 태양이요(말 4:2), 완전한 빛이라고 하였습니다(계 21:23). 그분은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참빛으로 오셨습니다(요 1:9). 빛이 있는 곳에 어두움이 물러가듯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작용하는 곳에는 사망의 그늘이 걷혀지게 되어있습니다(사 9:2).
또한 이 빛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경건한 삶을 뜻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 5:14-16). 마귀의 활동 무대인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밝은 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 되어 그 가는 길을 밝혀 주기 때문입니다(시 119:105).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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