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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떠나 II @

by 【고동엽】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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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떠나 II                       행19:8~10                    출처

 

◑생명의 냄새 와 사망의 냄새

 

고후2:14~16절은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바울의 이 고백의 배경은, 로마 황제 혹은 장군의 개선행진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나 장군은, 수도 로마 시민들 앞에서 대대적인 개선행진을 벌였습니다.

 

그때 황제나 개선장군을 뒤따르는 행렬은,

개선군인들과 결박당한 채 끌려오는 적군의 포로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선행진이 벌어지는 길거리 곳곳마다, 향이 피어져 있어,

사방으로 진동하는 향의 향기가, 승리의 열기를 고조시켜 주었습니다.

 

개선행진에 참여한 개선군인들과, 결박당해 끌려온 포로들은,

사방에서 진동하는 똑같은 향의 똑같은 향기를 코로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 냄새의 의미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종 포상과 진급,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개선 군인들에게,

그 향의 냄새는 승리의 냄새요, 희망의 냄새요, 축제의 냄새였습니다.

한 마디로,지금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주는 생명의 냄새였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비참하게 처형당하거나, 일평생 노예로 살아야 할 포로들에게

그 향은, 절망과 고통의 냄새, 즉 죽음의 냄새일 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논리로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복음은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의 향기가 되지만,

복음을 거부한 사람에게 복음은 죽음의 심판을 초래하는, 죽음의 냄새로 귀결될 따름입니다.

 

인간의 코끝에서 호흡이 멎으면, 모든 인간은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지거나,

땅 속에서 악취를 풍기면서 썩어문드러지게 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화장터와 공동묘지를 뛰어넘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음과 무덤을 깨트리고, 부활하신 덕분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든, 싱싱한 생명의 냄새를 풍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미 그 사람 안에 임해 계시고,

그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통해, 당신 안에 있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훼방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되다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여, 에베소를 다시 찾은 바울은,

그곳의 회당에서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습니다.

석달 동안 계속해서 복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지만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바울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19:9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회당에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석달 내내,

돌처럼 굳은 마음으로, 복음에 순종하기는커녕, 도리어 복음을 공개적으로 비방하면서

바울이 회당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울은, 회당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회당을 떠나,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서

이미 주님을 영접했거나, 새로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계속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회당 안에서 전한 복음과, 회당 밖 두란노서원에서 전한 복음은,

서로 다른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르신 나사렛 예수가, 죽음을 깨트리고 부활하신

구원자, 그리스도이심을 핵심으로 하는 똑같은 동일한 복음이었습니다.

 

동일한 복음을 듣고서도, 복음을 배척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죽음의 악취를 풍기고 있었고,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은,

죽어도 영원한 생명의 냄새를 내어뿜을 그리스도의 향기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듯 인간 생명의 본질에 관한 문제, 다시 말해서 생명의 향기로 영원히 살아남느냐,

아니면 죽음의 악취로, 허망하게 소멸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10절의 증언입니다.

행19: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에베소의 회당에는, 복음을 배척하면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복음의 훼방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로 인해 오늘날 터키 대륙의 서부 지역인 (당시) 아시아에까지,

인종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단지 귀가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듣는 주님의 증인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를 테면, 에베소의 회당에서 복음과 바울을 배척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의 악취를 진동했던 훼방꾼들이, 복음이 에베소를 넘어,

아시아의 전 지역에까지 전파되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셈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본문의 에베소에서 처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시작한 이래, 이런 일은 계속 있어왔습니다.

 

1차전도여행을 시작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아가서,

그곳에 있는 회당에서 두 안식일에 걸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첫 번째 안식일에 바울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그 다음 안식일에 예상 밖의 인파가 회당으로 몰려들자, 바울을 시기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바울을 비방하며, 바울이 더 이상 회당에서 설교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어쩔 수 없이, 회당 밖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그 덕분에 뜻밖에도 비시디아 안디옥의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을 더욱 못마땅하게 여긴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 도시의 유력자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아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정에도 없던 이고니온으로 이동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도, 바울을 배척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바울은 루스드라로 옮겨가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선천성 하반신 마비자를 주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고서도,

유대인들의 돌팔매질을 당했던 바울은, 이번에는 더베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죽음의 악취를 진동하는 복음의 훼방꾼들은,

역설적이게도 바울로 하여금 주님께서 예정하신 다음 행선지로 가게끔 인도해주는

교통신호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2차전도여행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복음의 훼방꾼들이 바울을 배척했고,

죽음의 악취를 진동하는 그 훼방꾼들 탓에, 바울은 예정에도 없던 곳에 찾아가 복음을 전했으며,

결과적으로 주님께서 선택하신 주님의 백성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신비롭게 구원의 은총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3차전도여행을 시작한 바울에게, 에베소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훼방꾼들 덕분에, 복음은 바울을 통해 에베소를 넘어,

아시아의 전 지역에까지 퍼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복음의 신묘막측한 역사

 

성경과 2천년 교회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복음이 마치 강물처럼 흘러갔음을 알게 됩니다.

발원지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일직선으로만 흐르는 강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든 강은, 언덕이나 산과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흐름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강이 굽이굽이 흐른다는 표현은, 그와 같은 강의 속성을 잘 나타내어주고 있습니다.

 

복음 역시 스스로 죽음의 악취를 진동하는 복음의 훼방꾼들로 인해,

사람들이 상상치도 못한 곳, 그러나 주님께서 예정하신 곳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굽이굽이 흘러갔습니다.

 

그 결과 복음은 지난 2천년 동안, 지중해와 대서양,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개개인에게까지 굽이굽이 흘러 왔습니다.

 

이를 테면, 복음이 우리 각자에게 전해지기까지 길목에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주님의 증인들도 있었지만, 스스로 죽음의 악취를 진동하면서,

복음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복음의 훼방꾼들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만약 복음의 훼방꾼들이 전혀 없었더라면, 복음은 우리에게 흘러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로 직행 했을런지도 모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지구 곳곳에서 죽음의 악취를 풍기며, 활개를 치던 복음의 훼방꾼들이,

역설적이게도 죽음의 악취를 역시 풍기던 우리 각자에게 구원의 복음이 굽이굽이 흘러오게 하는 데에,

결과적으로 교통신호 역할을 해 준 셈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죽어도 사는 영원한 생명의 향기를 누리고 풍기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신묘막측한 주님의 구원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향기를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각자의 구원에, 결과적으로 기여했을지도 모를,

죽음의 악취를 진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해 버린 채,

구원받은 우리끼리만 영원한 생명의 냄새, 그 향기를 만끽하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이 복음의 강이, 우리 각자에게 먼저 신묘막측하게 흘러오게 하신 주님의 뜻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사도바울의 답변입니다.

 

 

◑바울의 채무자(빚진자) 의식

 

롬1:14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주님으로부터 신비로운 구원의 은총을 입은 바울은,

그 이후부터 일평생 채무감으로 살았습니다.

 

먼저는 자신이 주님을 알기도 전에,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값을 대신 치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시어, 복음과 교회를 짓밟으며 죽음의 악취를 진동하던 자신을,

영원히 구원해주신 주님에 대한 채무감 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바울의 채무감은, 사람에 대한 채무감으로 나타났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적극적으로 배척하여,

복음이 흘러가던 방향을 바꾸어버린 복음의 훼방꾼들이던,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이던,

 

복음 밖에서 죽음의 악취를 풍기며 살면서도,

자신이 죽었음을 자각하지도 못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채무감이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대적하며, 죽음의 악취를 진동하던 자신을,

신묘막측하게 구원해주신 주님의 뜻이라고, 바울은 굳게 굳게 믿었습니다.

 

▶바울이 고전9:16절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9:16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온 삶을 던져 지중해 세계를 누비고 다녔지만,

바울은 단 한 번도, 자신의 행위를 자랑으로 여겼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진 사랑의 빚을, 사람들에게 갚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책임일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공로나 노력 없이, 오직 주님의 신비롭고도 일방적인 구원의 은총으로

죽음의 악취에서 벗어나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향기를 풍기고 누리게 되었음을 믿는다면,

우리 역시, 바울처럼 주님과 사람들에 대한 채무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를 먼저 죽음의 악취로부터 생명의 향기로

신묘막측하게 구원해 주신 주님의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 일간지 기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종교인은, 갑근세가 면제되는데도, 왜 27년 전부터 굳이 세무서 직원을 설득해가면서까지

여태껏 갑근세를 자진해서 납부해 오고 있는지,

예전에 사업할 때에도, 왜 숨김없이 세금을 꼬박꼬박 성실하게 납부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자에게, 세금은,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한 첫 번째 나눔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도로, 항만, 철도, 전기, 통신, 학교, 병원, 상수도, 하수처리와 같은

국가 인프라가 구축되고, 교육, 복지, 치안, 국방이 확립되면서, 국민 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세금납부보다, 더 확실한 나눔, 더 구체적인 이웃사랑은 없습니다.

 

그 기자가 제 대답을 자신의 칼럼을 통해서 소개하자,

신문에서 그 칼럼을 읽은 어느 저명인사가,

자기가 집필중인 책 속에, 제 말을 인용해도 좋겠는지 양해를 구하면서,

세금은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한 첫 번째 나눔이라는 제 세금론이 이타심에 기인한 것인지를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은 이타심이 아니라, 부채감의 발로’라고 대답했습니다.

먼저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채무감이요,

다음으로는 저보다 먼저 이 세상을 거쳐 간 모든 분들에 대한 채무감입니다.

 

저보다 먼저 이 땅을 거쳐간 분들의 세금과 수고와 노력으로

이 땅에 도시와 도로가 건설되었고, 저는 그 혜택속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저보다 앞서 이 땅을 거쳐 간 모든 분들에게, 빚을 진 채무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살아있는 동안, 이 사회와 미래 세대를 위해 그 빚을 갚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빚을 지고 태어난 채무자의 당연한 의무요, 책임일 따름입니다.

 

▶저는 제 아들들이 군에 입대할 때도 그랬지만,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게

남의 집 아들들에게 진 빚을 당당하게 갚고 오라는 말을 해 줍니다.

 

그동안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집 아들들이 수고의 땀을 흘렸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중에, 얼마나 많은 집 아들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지 모릅니다.

그 아들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음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남성이 군에 입대하는 것은, 단순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이전에,

그동안 남의 집 아들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함입니다.

 

남의 집 아들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국가안보는 누리면서도,

정당한 사유 없이 그 빚을 갚으려 하지는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부도덕한 빚쟁이들임에 틀림없고,

그런 부도덕한 빚쟁이들이 득세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머지않아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세계 IT업계의 신기원을 이룬 스티브 잡스가 2011년에 타계한 이후에

애플사의 최고 경영자 자리를 이어 받은 사람은, 스티브 잡스의 친동료였던 팀 쿡이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잡스와는 상반되는 기질과 언행으로 인해,

당시 팀 쿡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대단히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쿡은 시장의 냉담한 평가에 개의치 않고, 자기 소신대로 애플사를 이끌어,

보도에 의하면, 2014년말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4월 1일 팀 쿡은, 미국 경제잡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10살짜리 조카의 대학학비를 제외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전 재산은 미화로 1억불, 우리 돈으로 8천8백억입니다.

팀 쿡은 그 동기를,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은,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도 많습니다.

나는 확실히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팀 쿡은 자신이 그렇듯, 큰 명성과 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개인의 능력으로 인함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결과이므로,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자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에겐가 빚을 지고 태어나서,

일평생 자신이 닦지 않은 도로를 통행하고, 자신이 수고하지 않은 사회적 혜택 속에서 살아갑니다.

 

비단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그 채무감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그 빚을 갚고 있습니다.

 

잠시 이 세상을 거쳐 가면서, 빚을 떼먹는 파렴치한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진 빚을 갚는 인생이 훨씬 값지고 보배로움을 아는 까닭입니다.

 

성숙한 사회는 그런 채무자가 많은 사회입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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