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23일] 내 귀에 들린 대로(민 14:26~33)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lCeNXkX3sV8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14장 26절로 33절에 있는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구약성경 219면입니다. 구약성경 219면 민수기 14장 26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며,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의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의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스무 살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하는 자 전부가 여분네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드리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의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아멘. 오늘 설교 시작하면서 너무 심각한 말씀을 좀 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제가 인천제일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그 인천에 있는 가까운 곳에 어느 기독교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세운 고등학교. 거기에 교목으로 계시는 목사님인데 저와 친구 관계입니다. 가까이 지냈는데요. 이 목사님에게 자녀가 다섯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세 아이는 일찍이 결혼을 해서 정상적으로 낳았는데, 세 아이가 다 중학교 고등학생인데 그때 가서 막내가 또 태어났습니다. 다섯 번째로 막내가 태어나는데 쌍둥이가 나왔어요. 그래서 결국은 자녀가 다섯 되었습니다. 위로 셋은 중고등학생이고, 아래 아이들은 유치원 학생입니다. 그 어머니는 또 유독 몸이 약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을 시중하는 게 너무 힘드니까 입버릇처럼 실수를 합니다. "저건 왜 태어나 가지고 말썽이야?" 또 힘들 때마다 "저건 왜 세상에 태어나 가지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 자꾸 그렇게 얘기하는 걸 보고,
그 친척 되는 분 권사님이 정식으로 충고했습니다. "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인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여러 번, 여러 번 충고했는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저 "저것들은 말썽이야. 왜 태어나 와 가지고 나를 괴롭히나?" 이렇게 이렇게 살아왔어요. 강화도는 지금은 다리를 놓아서 이렇게 다니지만, 옛날에는 배를 타고 갔습니다. 배를 타고 강화도로 가는 겁니다. 여기서 아이들에게 배를 태워주면 저쪽에서 외가에서 나와서 아이들을 맞이해
주니까 뭐 중간에 잘못될 일이 없어요. 그래서 이 두 아이를 외가에 보내느라고 배에 태웠습니다. 두 아이가 장난꾸러기들이라 배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노는데, 군인 하나가 거기 앉아서 졸고 있는 거예요. 배 끝에 앉아서 졸고 있는데 그 옆에 수류탄이 있었어요. 이 장난꾸러기들이 수류탄 핀을 뽑았어요. 그냥 꽝 하고 터지면서 어린애 둘, 군인 하나, 세 사람이 몰살했습니다. 제가 인천에 있을 때 이 사건을 당했습니다.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사모님께서는 하나님까지 원망합니다.
"내 두 아들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데려갈 수가 있냐고! 이런 사건이 있냐고!" 원망 원망합니다. 그 친척 되는 권사님 찾아가서 엄하게 얘기했습니다. "얘야, 네가 그랬잖아. '저거는 왜 태어나 가지고 말썽이냐'고 네가 했잖아. 내가 여러 번 말렸는데 그렇게 말하더니 네 소원대로 됐구나." 사모님이 꼼짝 못했습니다. 오늘부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전 일생 동안 이 사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에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여러분,
여러분들이 한 말, 하나님께 들려졌습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주신 말씀입니다. 인간은 말의 동물입니다. 사고하는 존재입니다. 말이 마음 안에 있으면 사상이요, 말이 입을 통해 나아가면 언어입니다. 말이 고정되면 뜻입니다. 말이 행동하면 행위가 됩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유명한 학설이 있습니다. 의식, 무의식에 대한 겁니다. 사람은 의식이, 무의식이 있는데, 의식 중에 하는 말, 무의식 중에 하는 말이 있어요. 어느 쪽이 진짜냐는 겁니다. 쉬운 예로,
술 취한 사람이 술 취해 가지고 소리 소리 지르면서 동네방네 다니면서 욕을 하고 다니잖아요. 술 취해서 한 말, 그다음에 술 깬 다음에 "이놈아, 왜 그랬냐?" 그러면 "몰랐는데요?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그럴까요? 술 취해서 하는 말하고 술 깨고 하는 말, 어느 쪽이 진짜입니까?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의식으로 하는 말은 거짓말, 거짓말이 많아 위선이고, 그러나 무의식 중에 하는 말, 자기도 모르게 쑥 나오는 말, 깜짝 놀라는 말, 그것이 진실한 것이고 그게 진짜란 말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 충격적인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죽고 싶다? 죽여주마." 끝입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까지 왔을 때 정탐꾼을 보냅니다. 가나안 땅으로 정탐꾼 12 사람, 12지파의 대표가 갔어요. 가서 한 바퀴 돌고 돌아왔습니다. 와서 회보를 합니다. 보고를 하게 되는데 갔다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 "거기는 아낙 자손들이 있는데, 원래 그렇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은 좀 작고요, 아랍 사람은 큽니다. 아주 큰 사람에 비해보면 우리는 - 성경에 그렇게 나와요 -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 그랬어요. '저 사람들은 너무 장대하고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 그리고 성도 아주 훌륭하고 또 풍부한 땅이요.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왔다니까! 그런 풍부한 땅인데 도저히 우리가 점령할 수 없다. 못 들어간다."라고 열 대표가 보고를 합니다. 온 백성들은 통곡을 합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왔는데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제 못 들어가게 됐다. 다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다." 원망 원망합니다. 그런 장면이에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아니요.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풍부한 땅이고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하나님이 허락 가운데 있으니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하자!" 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으나 열 대표는 절망적인 얘기를 합니다. 백성들이 어느 쪽을 선택했겠습니까?
절망적인 얘기만 듣고 "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왜 애굽에서 나왔을까? 광야에서 일찍이 죽었다면 좋았을 걸. 벌써 죽었더라면 좋았을 걸!" 이 고난의 행군이 여기까지 왔다고 절망 절망 원망합니다.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핍박하니까 "망했다" 하니까 "망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확실한 말씀입니까? 말이 마음이고, 말이 믿음이고, 말이 신앙고백입니다. 원망하는 것,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고 불신앙에서 나오는 거죠. 하나님을 반역하고 은총에 대한 반역입니다.
더 심각한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나이가 지금 80, 저 120세가 됩니다. 나이도 많고 이 상황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비스가 산에 올라가서 높은 산에서 그 요단강 건너편에 가나안 땅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백성이 다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했습니다마는, 내 나이 많아서 이제 지상을 떠나야 될 때가 되는데, 내가 정탐꾼처럼 위장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가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저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한번 이렇게 돌아보고,
돌아보고 와서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수명이 다했으니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안 된다. 너는 내 백성을 저주했느니라." 무서운 책망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가 민수기 20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를 왜 애굽에서 인도해 냈느냐?" 원망 원망할 때 이걸 견딜 수가 없었어요. 원망하는 백성을 향하여 원망합니다. 모세가 실수를 합니다. 세 가지 실수를 합니다. 첫째,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언제 모세가 물을 낸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시죠. 자기가 심부름한 것뿐이지. 그런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그동안에 이 많은 이적을 행하다 보니까 잠깐 이적의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하도 말합니다. "패역한 놈들아!"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한 죄, 실망한 죄, 큰 것입니다. "이 패역한 놈들아!" 저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혈기에 지나쳐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꽉 꽉. 이건 하나님께 대한 반항입니다. 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시편 106편 32절에 말합니다. 모세가 입술로, 자세히 들으세요. 모세가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산 언덕에서 바라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요단강 건너가서 가나안 땅을 발로 밟고 싶습니다."라고 할 때 하나님 말씀합니다. "안 된다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백성을 저주했다." 하나님 앞에 불신하고 불경건하고 외람되게 행한 일에 대해서 "입술로 망령되어 말하였음이니라" 딱 끊어 버리고 비스가 산 언덕에서 요단강 건너편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그리고 느보산에서 모세는 죽었습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망령되어 말하였다. 그 한마디가 엄청난
하나님 앞에 불신앙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무익하다는 말은 행동화되지 않은 별 가치가 없는 말을 말합니다. 무슨 무익한 말 하든지, 장차 말한 바에 대해서 심판을 받으리라. 행동만 심판받는 게 아니에요. 우리 말에 대하여 심판을 받는 거예요. 우리 생각에 대해서 심판을 받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아이가 하도 말썽을 부려서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입버릇처럼 "그럴 바엔 집을 나가라! 보기 싫다! 집을 나가라! 집을 나가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 와서 목사님이 설교를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정말 집을 나갔거든요?" 그러자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대로 됐구나. 내가 하는 말대로 됐구나." 그래서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이에 대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에요."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프린스턴에서 그분이,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이 거기에 있어요. 그 집을 가끔 산책할 때 돌아보면서 "여기서 아인슈타인 박사님 일생 동안 살았다는데?" 하는 이 얘기도 많이 들어보니까 아주 절절하고 깊이 생각하는 에피소드가 있더라고요. 아인슈타인이 자랄 때 중학교 고등학교 때
호기심이 좋아 가지고 선생님에게 이상한 질문만 하는 거예요. 대답할 수 없는 이상한 질문만 자꾸 하니까 선생님이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 어느 날 방학 때가 돼서 성적표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어요. 성적표를 아인슈타인이 어머니에게 내놓았어요. 성적표의 여기에 몇 점 몇 점 있고요, 그 밑에다가 주의 사항을 썼는데요. 이렇게 썼더랍니다. "이 아이는 장차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 이 아이는 무슨 일을 해도... 여러분, 이 정도 되면 우리 가정에서 초상집이 되었을 겁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걱정하지 마라. 너는 다른 사람과 같으려고 하면은 언제나 같지 못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다르다 할 때 가서는 월등한 사람이 될 수 있느니라."라고 희망을 줬다는 겁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여러분,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함부로 입 놀리지 마세요. 그 무서운 하나님 앞에 상달하는 것이라는 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래서 다시 한번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은요. 구약성경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성전에서 계시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 순간 그는 소리를 지릅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입니다. 더러운 백성 중에 있습니다."
라고 울부짖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제단에 있는 숯불, 뜨거운 숯불을 가져다가 입술을 지져 버렸습니다. 지져 버렸어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제 이 불이 닿았으니 너는 청결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좀 말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맨 먼저 변화해야 될 것이 뭡니까? 말이 변해야 됩니다. 마음이 변했으면 말이 변해야 됩니다. 말의 중생이 있어야 됩니다. 좀 더 의역적인 얘기입니다마는, 신약 성경에 보면 초대교회에 사람들이 변했다는 말이 있죠? 방언했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방언을 했다. 그 말을 잠깐 의역하면 언어가 변했다는 말입니다. 말이 변했어요. 성령 받는 순간, 충만한 순간 말이 변했어. 그리고 소통을 합니다. 이건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어의 변화. 조용할까요? 사도 바울 그는 빌립보 감옥에서 억울하게, 아주 억울하게 매를 맞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중생한 입술이에요. 정신 들고 깨어나는 순간 하나님을 찬송했어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어려운 형편에서 찬미, 찬송을 했다는 그 말 속에 내 진실이 있는 거예요.
무의식 속에 있는 잠재의식까지 살피고 가꾸게 하고 성결한 심령, 성결한 언어, 성결한 언어 문화가 그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담입니다마는, 아는 이와 악수를 하는데요. 언젠가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제가 악수하면서 "안녕하십니까?" 그랬어요. 그들이 내 손을 잡고 하는 말이 "안녕하지 못해요." 그래 그 사람 지금 아픈 사람이거든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이에요? 그러나 그건 문안하는 거예요. 물어보는 거예요. 그건 아니죠. 그때부터 제가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을 안 합니다. 뭐라고 해야 될까? 많이 연구해 봤어요. 했더니요. 딱 한마디가 있어요. "반갑습니다." 그런 줄만 아십시오.
어느 집에 가서 "무사합니까?" "무사 못 해." "평안합니까?" "평안 못 합니다." 지금 그런 시대예요. 그러면 우리의 말이 문안, 물어보는 얘기가 아니에요. 복을 빌어야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샬롬."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축복하는 인사가 되어야지. 단지 물어보면 못하다는 얘기요. 우리 언어 문화를 바꿔야겠어요. 이제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하지 마세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저는 승강기 속에서 사람을 만나면 꼭 그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러면 아주 좋아해요. "예,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조금 긴 얘기입니다만, 복을 비는, 계속 복을 비는 마음, 복을 빌어주는 게 기도예요.
이것이 축복의 근원이에요. 언어로 바꿔야 돼요. 오늘 본 말씀에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지금 내 말들이 다 하나님 앞에 가고 있어요. 하나님 앞에 어떤 말로 전달이 되고 있습니까? 무의식 중이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앙적인 언어가 튀어나와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빌립보 감옥에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런 언어, 그런 말이... 여러분, 한번 실천해 볼까요? 당장 얼굴이 달라집니다. 예뻐집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말이 바뀌면 얼굴이 달라집니다. 오늘 주신 말씀
마음에 깊이 생각하세요.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무서운 말씀이면서 동시에 축복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이렇게 비가 오는 여러 가지로 우리 마음을 시험 드는 바도 있지만, 아무쪼록 하나님 앞에 나와 있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비추시면서 우리의 마음이 중생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언어가 우리 입술이 중생할 수 있어서, 내게서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축복을 주고, 은혜를 줄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의 거룩한 언어 문화를 세워 가게 하여, 밝은 얼굴로 대할 뿐만 아니라,
축복의 말로 대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모든 우리의 사회생활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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