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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까요?/마가복음 12장 28-34절

by 【고동엽】 2022. 8. 13.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까요?//

2001-12-07 13:36:59 read : 435

 

마가복음 1228-34

 

지난주에 어느 사모님의 수기를 읽었는데

그 수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하늘이라 말하고 아내는 땅이라고 말하는데,

우리 남편은 비 한 방울 내리지 못하는 원망스런 하늘이었고,

땅은 메마르고 갈라지고 있는데도 그 사정을 모르는 무심한 하늘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하늘로부터 내리는 은혜의 단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새 하늘로부터 단비를 받았기에 저의 심령은 사막이 되지 않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이 되어 이제까지 살아 왔습니다."

 

아마 많은 한국 남편들이 이런 원망스런 하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모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인간 남편이 하늘의 역할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어느 인간 아내가 남편이 원하는 만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는 새로운 하늘이신 예수님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요새 새벽기도에 요한계시록 강해 마지막 부분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요한계시록 21-22장에 나오는 천국 묘사를 보았습니다.

수정 같이 맑은 성, 열 두 보석으로 이루어진 기초석, 열 두 진주문,

맑은 유리 같은 정금길,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강 좌우에 달마다 12실과를 맺는 생명나무와 푸르른 잎사귀 등,

얼마나 찬란하고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이 점만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찬란하고 화려한 것이 좋아서 천국 가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에서 우리 하나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천국에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아는 것보다 우리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천국을 사모하며 사는 것보다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몇 년 전 어떤 부부 세미나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장점을 보면서 부부 관계를 새롭게 하자는 말씀을 한 후에

한 목사님이 서로 기분 좋았던 일, 나빴던 일을 회상하면서

부부간에 서로 마주 앉아 눈을 맞추게 했습니다.

그래서 약 10분간 눈을 맞추었는데 그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의 연구에 의하면 아주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수십 년간 부부생활을 한 사람들도 부부간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눈을 맞추고 바라본 시간은 총 3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10분간 눈을 맞추고 있기만 했는데 여기 저기에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그렇게 눈을 맞출 수 있다면

감격의 눈물이 아니라 사랑의 불꽃이 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눈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잊지 말고

하나님과 눈을 맞춰서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주님의 신부가 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서기관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나와서 묻습니다.

28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모든 계명 중에 첫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할 때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29-3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1. 첫째, 우리는 하나님을 유일한 주님으로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여러분! 한시라도 하나님이 "유일한 주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어떤 것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과

하나님 외에 다른 것 앞에서 비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그 사람의 중심을 받기를 원하시지

어떤 물건을 놓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며 절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지난 월요일 우리 전도사님들과 점심 식사하러 가는데

앞에서 엄청나게 큰 돼지 두 마리를 실은 포터가 제 차를 추월하고 갑니다.

그때 우리들은 한꺼번에 소리쳤습니다. "! 정말 엄청나게 큰 돼지다!"

 

그런데 그 돼지들이 알고 보니까 우리가 식사하러 간 곳에 미리 와 있었는데,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그 두 마리 돼지를 막 죽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곳에서 간이 건물을 짓는데 고사지내기 위해서 돼지를 잡은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돼지 머리 앞에서 빈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왜 사람들이 고사지낼 때 꼭 돼지머리를 쓰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사지낼 때 쓰는 돼지머리를 보면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돼지머리가 야릇하게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어떤 책을 보니까 그 이유가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돼지 머리가 웃은 이유는 너무 기가 막혀서 웃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는 자기를 인정사정 없이 무참히 죽이고 그리고 목까지 자르고는

다시 자기를 부활시켜 자기 앞에 비는 것을 보고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주님으로 알고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예배의 대상을 만드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문선명 사진을 12000원에 사서 걸어놓고 절합니다.

박태선 전도관에서는 그가 축복한 물을

그 물을 신성하게 생각하며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잘못된 행위입니다.

 

오래 전에 일본의 한 신당 꽃병에 아름다운 꽃이 꽂혀 있었는데

그 꽃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하며 신이 행하신다고 난리를 치며 경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꽃병 취급하는 사람이 잘못 취급해서 넘어져 깨졌는데

그때 사람들은 신이 노하실 것이라고 사람들이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깨진 꽃병 안에서 미꾸라지 몇 마리가 기어 나왔습니다.

누가 미꾸라지를 갖다 놓았는데 그것을 신인 줄 안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숭배하는 모습을 보면 거의 그런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여러 가지를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사랑보다 앞서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유일한 주로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2. 둘째,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대제사장은 과부나 창녀와 결혼해서는 안됩니다.

과부와는 첫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고, 창녀와는 온전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깨끗하고 진실한 사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다른 어떤 목적을 얻으려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 그분 자신을 깨끗하고 진실하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일 때 우리를 더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알렉산더에게는 헤페스티온과 크라테루스라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렉산더는 헤페스티온을 더 가까이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헤페스티온은 인간 알렉산더를 사랑하지만,

크라테루스는 알렉산더 대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더의 인격을 사랑한 것이고,

크라테루스는 알렉산더의 조건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헤페스티온을 더 사랑하고 더 가까이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똑같은 심정으로 우리를 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본질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을 생각하고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사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익을 바라지 않듯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욱 큰 축복으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대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면서 피조물을 더 찾습니다.

로마서 12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1:25)

 

그래서 사람들은 창조자보다 피조물을 더 따릅니다.

아쉬운 사실이지만 많은 기독교인도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축복 자체를 축복을 주시는 분보다 더 따르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복 자체를 바라보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을 주시는 분이 귀한 줄 알고 그분에게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3. 셋째, 우리는 하나님을 열렬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다하고"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옵니다.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열렬하게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냉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시는 어떤 징벌도 우리의 죄보다 가볍듯이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별로 쓸모가 없는 값싼 호의가 아닙니다.

사랑은 머리로는 하나님을 탐구하도록 하며

발로는 하나님이 명하신 길을 달려가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모습은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를 하는 자세를 통해서는 나타납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할 때 올바른 주일예배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일예배를 잘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마음의 표현입니다.

몸을 깨끗하게 씻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감사로 헌금을 미리 준비하고, 예배 시간 전에 기도 시간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한 자세 속에서 우리의 진지하고 뜨거운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두 합해 진실로 예배드리는 한 시간이

우리의 인생과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열렬하게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의 수고를 기쁘게 지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척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혀끝에서가 아니라 손끝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념도 손가락 끝에서 나와야지 머리 속에 있는 이념은 공상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사랑의 수고입니다.

 

4. 넷째, 우리는 아낌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역시 30절 말씀에서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한다는 뜻도 있지만,

아낌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를 보여야 합니다.

사랑에는 자비로운 마음도 있지만 자선하는 손길도 있습니다.

사랑으로 마음 문이 활짝 열렸는데 어떻게 손을 꽉 쥘 수 있습니까?

 

그리고 31절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아낌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실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손으로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무용지물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우리의 꽉 쥔 손을 펼 수 있어야 하고,

이웃을 위해서 우리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인들을 칭찬할 때

그들이 가난한 성도들에게 힘있는 만큼 한 것이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자선을 베풀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후한 손길이 되어 드러나야 합니다.

 

5. 다섯째,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맥박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뛰어야 합니다.

극심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어려움을 삼켜버려야 합니다.

쾌락의 단물도 박해의 쓴 물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끊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도 불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깊이 뿌리내린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왕겨나 깃털은 가벼운 바람에도 날아가 버리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어떤 폭풍우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과 역경도 다 견뎌냅니다.

진정한 사랑은 끝이 없고 영원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하면서 정말로 그런 영원한 사랑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끔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의 사랑이 영원한 사랑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켜야 할 첫 번째 계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선의 정수요 지고의 선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해야 하고,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까지도 바치려는 듯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진지하고 간절한 사랑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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