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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올바른 자세 (벧전5:1-6)

by 【고동엽】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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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의 올바른 자세    (벧전5:1-6)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없이 저절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종말을 향해서 중단 없이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임할 주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분들과 일반 성도들이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원 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이성으로, 혹은 인간의 지식으로 대치시켜 버린 현대의 사조들과 수많은 이단 사설들이 나타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어두운 멸망으로 끌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모든 영적 지도자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의 직무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양 무리들을 올바르게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여 마지막 날에 심판 주로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책망 듣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텐데 그때에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나 평신도들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도자들은 각성하여 양 무리들을 쳐야 하며 평신도들은 겸손한 자세로 지도자들에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 서로간에 있어서도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특별히 영적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의 교회 생활에 관하여 교훈 해 주시는 말씀인데 우리가 잘 듣고 성도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취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⑴,교회 영적 지도자들의 자세.(1-4절)
본문에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를 장로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1절) 장로라는 직분과, 감독이란 직분은 같은 것입니다.(행20:17-28) 그리고 목사라는 단어는 종종 감독관이란 말로 번역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장로란 말은 직분의 성숙성을 나타내는 말이며, 감독이란 말은 직분의 책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감독이란 말로 번역되는 목사는 때로는 목자란 말로 이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영적 지도자가 선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그리스도와 생동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1절)
베드로는 1절에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을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라고 소개하지 않고, 다만 한 사람의 장로 곧, 한 사람의 목사라고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이 평범한 지도자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으로서 개인적인 목격자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마26:36이하) 베드로가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후 3년 동안을 주님과 동행하면서 가졌던 경험, 즉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승천, 성령 강림 등을 직접 보고 경험하였던 자로서 생생한 증인입니다. 이같은 베드로의 개인적인 생생한 영적 경험들이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서 더욱더 분명히 성도들의 영적 삶을 가르치고 권면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생동적인 교제의 관계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의 목회자와 영적 지도자들은 베드로처럼 하나님과 함께 걸으면서 그의 영적인 생활에서 성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젊은 목회자였던 디모데에게 권고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라"(딤전4:1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하여 자신이 성장하고 진보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만일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과 교사들이 앞으로 이동해 가지 않는다면, 역시 교회는 앞으로 진보해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②,하나님의 양 무리를 자원함으로 처야 합니다.(2-3절)
  성경에는 성도들을 양 무리라는 말로 자주 상징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교육적인 가치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시23편, 시100편, 사40:11, 눅15:4-6, 요10장, 행20:28, 히13:20-21, 벧전2:25, 계7:17) 사실 우리는 한때 길 잃은 양과 같이 방황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 되신 예수 님께서 우리를 발견하여 생명의 길로 옮겨 주셨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양은 깨끗한 동물입니다. 개나 돼지와 다릅니다.(벧전2:20-22) 양들은 무리를 짓는 습관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무리를 지어 함께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양은 무식하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목자를 따르지 못하게 되면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양은 방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리떼가 물고 도망가도 방어를 못합니다. 양은 전적으로 목자가 양들을 보호해야 합니다.(시23:4) 그리고 양은 매우 유용한 동물입니다. 유대의 목자들은 양의 고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양털과 우유와 새끼를 얻으려고 양을 키웠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께 유용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므로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양들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사용되었는데 우리들도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롬12:1-2) 이렇게 양과 같은 성도들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서는 목자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이 어떤 자세로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처야 합니다.(2절)
2절 상반 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치다'라는 말은 '이끌다, 돌보다'는 뜻이 있습니다. 목자는 도둑과 약탈자로부터 양을 보호해야 합니다.(행20:28-35) 양들은 목자가 그들을 가끔 꾸짖고 경고할 때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자의 사역은 양들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충성된 목자는 그의 양떼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이 목장에서 저 목장으로 그들을 인도하며 적절하게 먹입니다. 목자는 언제나 양떼를 앞서가며 땅을 살피고 그의 양떼를 해치는 것이 없게 합니다. 뱀이나 웅덩이나 독 있는 식물, 그리고 위험한 동물을 조사합니다.

어떤 양이 곁길로 갈 때에 목자는 개인적인 주의를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양이 지나치게 반역적이면 목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징계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만일 양에게 어떤 특별한 필요가 있다면 목자는 그를 품에 안아서, 자신의 심장 바로 다음에 있게 해야 합니다. 충성스러운 목자는 각 양을 검사하여 어떤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목자는 치료하는 기름으로 상처에 부으며 털에 얽힌 가시덤불을 치워 주어야 할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각양을 알며 그 특별한 버릇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충성된 목자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끝이 없는 임무이며 봉사입니다. 제대로 되려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양이 목자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서 맡기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하나님의 양을 어떻게 치리 해야 하는 지를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목자의 사역에 대해 최종적인 계산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들도 역시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순종하였는지를 계산하게 될 것입니다.(히13:17) 그러므로 양과 목자는 둘 다 서로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뜻으로 감당해야 합니다.(2절)
영적인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위험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목회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에 직면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지도자가 피해야 할 죄를 두 가지 지적하고 있는데 게으름과 탐심입니다.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하였는데 이것은 목회의 사역이 어떤 성취를 목표로 하는 무슨 직업과 같은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목회자는 오로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엡6:6) 성도들은 목회자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야말로 게으름 피우기 좋은 장소입니다. 주간 내내 골프나 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토요 일날 다른 목사들의 설교를 빌려다가 자기의 설교인 것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주일을 잘 넘겼다고 만족해할지는 모르나 곧 목자 장 되신 예수 님을 만나서 무어라고 말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라고 하여 탐심을 버려야 함을 말씀합니다. 교회가 목회자에게 봉급을 지불하는 것은 타당한 일입니다(고전9장, 딤전5:17-18). 그리고 가능한 한 정당하고도 관대하게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돈을 번다는 것이 자기 사역의 주된 동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딛1:7) 그러므로 목회자는 돈을 사랑하거나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교회의 목회자는 교회의 형편이 너무 어려워 외부의 일에 고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복음 전하는 자였으나 동시에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목회자가 온전히 주의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목회자가 이와 같은 시험으로부터 충성된 종이 되려면 첫째, 자원함으로 해야 하며 둘째로, 즐거운 뜻으로 주의 일에 수종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뜻이란 '열성 있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3절)
양 무리의 본이 되려면 양 무리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을 뒤에서 몰아 갈 수는 없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앞서서 걸어갈 때에 인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목자들이 자기에 맡겨진 양들을 잘 섬기고 다스린다면 목자 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충성스러운 종이라하여 영광의 면류관으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4절) 오늘날 몇몇 목자들은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보상을 얻으려고 수고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제국을 건설하려고 열심히 일합니다. 다른 이들은 인간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려고 투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교파에서 승진을 하려고 애씁니다. 이러한 모든 인간적인 일들은 어느 날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보상과 상급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뿐입니다.(계4:11)

⑵,교회 성도들의 자세.(5-6절)
①,교회 지도자들에게 순복 해야 합니다.(5절)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활동적인 힘과 진취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때로는 스스로의 자만심과 오만한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좀처럼 나이 많은 노인들이나 지도자들의 충고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아 가려고 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그러한 특징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더 많은 경험과 연륜을 갖고 있는 교회 지도자나 어른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며 그들의 지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②,서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5절)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 님께서 최후 만찬 식사 도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보여주신 섬김의 예를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 받기 전의 제자들은 그들에게 결코 서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자만심에 차 있던 그들은 심지어 예수 님을 중심 한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하여 열띤 논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막10:35-41) 그들은 각기 자신을 섬김 받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님을 근 3년이나 따라 다녔던 제자들은 교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는 그들의 스승이셨지마는 몸소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므로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예수 님께서 본을 보이신 겸손과 섬김의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허리를 동이라"는 말씀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허리를 동이는 것은 종이 주인을 섬길 때 차림을 간편하게 하기 위한 차림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교훈은 서로가 종같이 섬기라는 말입니다. 기독교적 위대함은 남을 섬기는 것과 겸손입니다. 막10:44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출저/이석권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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