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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청지기다 (벧전4:7-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베드로전서 4:7-11
우리는 토끼와 거북이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압니다. 어느 날 이들이 경주를 합니다. 토끼는 뛰는 재주가 있으니까 깡충깡충 뛰고 거북이는 기는 재주밖에 없으니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토끼가 한참 뛰다 보니 거북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토끼는 낮잠을 잡니다. 그래도 자기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거북이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기어갑니다. 결국 결승점에 먼저 도달한 것은 거북이입니다. 우리는 뛰는 기능이 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교만할 것도 없고 기는 기능을 가졌다고 해서 기가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뛰는 기능을 부러워할 것도 없고 기는 기능으로 인해서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뛰는 기능은 뛰는 기능대로 기는 기능은 기는 기능대로 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비슷하게 보일 뿐입니다. 인간은 그 성품이나 성격이 모두 다릅니다. 그 기능도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하다는 것이요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기능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능이 없다고 고민할 것도 없습니다. '열 두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은 끼니꺼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잘하는 한 가지 기능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환영받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능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빌어먹는 것도 기능인가? 속이는 것, 도적질하는 것, 꾀를 부리는 것도 기능인가? 이것이 기능이라면 이 사회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훔치고 사기치고 속이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청지기는 위임받았다는 뜻이요, 위탁받았다는 뜻이요,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회계할 날이 옵니다.
1. 인간은 무엇 때문에 세상에 왔나?
우리는 세상에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흔히 부모가 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미생물에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단군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알아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알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알아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나를 압니다. 나의 과거, 나의 현재, 나의 미래를 압니다. 선과 악을 알고, 의와 불의를 압니다. 뿐만 아니라 유한 세계를 넘은 무한 세계를 압니다. 천국을 알고 지옥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앎(아는 것)이 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를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자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철학과 학문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 자기가 왜 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곧 삶의 의미와 가치, 존재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까? 인간은 무엇 때문에 세상에 온 것입니까? 인간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섬기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전12:13).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롬1:21).
2. 인간의 최대 행복이 무엇이냐?
인간은 다 다릅니다. 그 모습이 다르고 그 기능이 다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 저마다 자기 기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 기능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 하더라도 자기 적성과 취미에 맞지 않으면 그 직업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더 이상 좋은 직업이 아닙니다.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그럴듯하게 보이고 정치하는 것이 좋게 보일지라도 자기 기능과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기능대로, 자기 취미대로, 자기 재능대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남의 것만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불만족하고 짜증을 냅니다. 나는 나대로 되어야 합니다. 누구를 닮을 수도 없고 누구를 흉내내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능과 은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사람이 되면 그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내가 되면 됩니다. 남의 목소리를 흉내낼 필요가 없습니다. 내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 됩니다. 우리 교회의 부교역자들이 나를 닮아간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왜 나를 닮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기능대로 하나님을 섬기면 됩니다. 그러므로 남의 기능을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만 주신 기능을 알고 그 기능대로 살면 축복인 것입니다. 기능을 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능을 묻어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기능을 알고 그 기능대로 살 때에 나는 나로써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두신 목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잘 살려면 교육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백년지 대계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육이 조국의 장래를 바꾸어놓을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전문화 되어감에 따라 우리의 교육도 전문화 교육이 시급히 요청됩니다. 기능을 따라서 교육을 받고 그 면에 전문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기능보다는 명문대학 중심으로, 은사보다는 좋은 학과 중심으로, 적성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지원합니다. 그러니까 대학을 가서도 방황을 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도 서구 여러 나라들처럼 일찍부터 기능을 발굴해서 그 기능대로 교육시키는 전문화교육을 빨리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적인 기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창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창조의 기능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만들고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능을 잘못 사용하여 창조보다는 파괴를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음악, 영화, 오락물 등을 보면 모두 파괴적이고 음란합니다. 젊은이들을 병들게 하고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모두가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우리의 기능을 바로 사용할 때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적인 기능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의 기능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각각 그 은사가 다릅니다(롬12:6, 엡4:11). 그 은사를 가지고 열심히 봉사하면 됩니다. 다 사도가 아닙니다. 다 선지자가 아닙니다. 다 교사가 아닙니다. 다 능력을 행하는 자가 아닙니다. 다 병고치는 자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봉사하면 됩니다(고전12:28-30). 우리는 육적인 기능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능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기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은 왜 나를 남겨두셨나?
하나님께서 나를 아직도 세상에 남겨두신 뜻이 어디에 있을까요? 왜 나를 아직도 살려두신 것일까요? 젊기 때문입니까? 더 살아야 하는 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결코 젊음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남겨두신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의미 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아직도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인은 왜 남겨두신 것입니까? 악한 사람들을 오래 놔두면 둘수록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모두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벧후3:8-9). 오늘도 하나님은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왜 실패하고 병든 우리를 살려두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쓸모 없을 때에 붙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실패했어도, 내가 병들었어도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습니다. 내가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도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병들었다고 해서 하나님도 병든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나를 통해서, 병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래서 남겨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그릇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병기일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한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물건 하나를 쓰더라도 절약하고 아껴 써야 합니다. 국산품을 쓰고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는 국가의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정직하고 충성스런 보디발의 청지기였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창39:1-6). 요셉은 청지기로 주인에게 인정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청지기가 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놀랍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모양새만 내는 자가 되지 맙시다. 이름만 내는 자가 되지 맙시다. 보이지 않게 일하는 진실하고 정직한 청지기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스런 청지기가 됩시다. 그러면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김충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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