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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여 (요삼 1:1-8)

by 【고동엽】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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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여   (요삼 1:1-8)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가 있는가 하면 미움을 받는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사랑받을만하고 어떤 사람은 미움을 받을만 합니다. 그러면 너무나 뻔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사랑받는 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미움 받는 자가 되가 원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랑받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세상 앞에서든 하나님 앞에서든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 아내에게 존경 받는 남편, 부모에게 사랑받는 자녀, 자녀에게 높임 받는 부모, 직장에서 인정 받는 일군, 사회에서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고 주의 종들에게 귀히 여김을 받고 교인들에게는 높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는“사랑받는 자여!”라고 했습니다. 누가 사랑받는 자 입니까? 미국 미네소타 로테스터시에는 유명한 병원이 하나 있는데 그 병원의 이름은「메이요 병원」입니다. 이 병원의 주인은「메이요 박사」입니다. 이 사람의 일화 가운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날, 한 동네를 찾아 언덕을 올라가는데 자동차가 멈췄습니다. 얼마나 당황되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걸어서 동네에 도착하여 한 집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집은 매우 허름한데 그 집의 여주인은 매우 상냥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차가 고장이 나서 그런데 전화한 통 쓸 수 있을까요?”“그러세요, 들어오세요, 전화는 저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더위를 먹으셨는지 매우 힘들어 보이시네요 제가 찬 우유 한잔 대접해 드릴까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자동차 때문에 당황하고, 걸어오는데 지쳐있는데 찬 우유 한 잔을 주겠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한잔을 얻어먹고 나니 여주인은 또 한잔을 더 주겠다고 하여 염치불구하고 우유 두 잔을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니 자동차수리공이 와서 자동차를 고쳐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우유 두 잔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이해와 위로, 격려는 인생의 어떤 경험보다도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그 여인의 행동에서 배우는 것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해 지나 큰 병에 걸린 어떤 사람이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곧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에게 우유 두 잔을 대접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했겠습니까? 메이요 박사는 정성껏 수술을 마치고 나서 청구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청구서에는 수술비, 약값, 입원비, 검사비등을 포함하여 모두 $1500이란 큰 돈이 청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사는 그 청구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상 위의 수술비는 몇 년전 여름, 자동차가 고장난 사람을 위해 제공한 전화 한 통과 우유 두 잔의 값으로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사랑받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1장에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셨겠습니까? 에서가 능력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능력이 많아 아버지의 신임을 얻어 아버지는 당연히 자신의 대를 이을 자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에서는 누가 보아도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인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보다 모든 면에서 낫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을까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나의 소유와 능력 때문에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소유로,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배웠는지를 가지고 판단하고 그를 높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저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저를 사랑할 것이요 저가 나를 찾으면 내가 저를 만나리라”오늘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은 나를 사랑해 주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고 부족해도, 세상사람들이 가난하다고 무식하다고 가진 것 없다고 배경이 없다고 나를 사귀기 싫어해도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시는 것 처럼 다 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이 올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을 상관치 않습니다. 내 형편과 처지를 보지 않으시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찾고 주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그 하나의 조건을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에서는 능력이 많았기에 세상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지고 하나님은 그를 미워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밖의 활동보다 집 안에 활동을 더 좋아하는 부족하고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할 만한 능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주님을 사랑할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사도요한이 가이오 장로에게“사랑하는 자여!”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칭찬한 것이니까? 가이오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나그네된 사람들을 성심 성의껏 잘 대접했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은 것 같습니다.


왕하4장에 보면 수넴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를 대접하는 것을 기쁨으로 알았습니다. 왕하 4:8-10에“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너무나 감사해서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사의 몸종인 게하시가“그 여인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또한 그의 남편은 너무 늙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그러면 내년 이맘때 네가 자식을 얻으리라”고 축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아들은 낳은 복을 받고, 어머니가 되는 복을 받고,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사랑을 낳고 복을 더불어 받는 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가이오를 칭찬합니까? 그것은 가이오의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바울은 그래서 사랑하는 자여라는 칭찬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받을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성경에서는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1.칭찬받는 사람이 사랑받을 자입니다.

칭찬받는 사람이 사랑받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비난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행2장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온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도가 칭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성장이 올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내려가는 이유중 하나는 성도들이 칭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칭찬 받는 일에 힘쓰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칭찬을 받았을까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성령충만을 받으니 남을 도와주었고 남을 도와주니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칭찬을 받은 근본적인 원인은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아서 새 사람이 되니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아주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도“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 범사가 잘 되고...”라고 했던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사람이 범사가 잘 되는데 그 범사가 잘 되는 일 가운데 선행을 하니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내 영혼이 잘 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후 9:8에서“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착한 일이 넘치게 되는 이유는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 15:5에“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고 했습니다. 과실을 많이 맺는 이유는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내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돈이 있고, 지식이 있어야 한다, 뭔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하다보면 작심삼일 처럼 환경과 형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된 사람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병들고 힘들어도 남을 도와주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잘된 사람들은 있을 때만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없을 때, 콩 반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려고 하는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혼이 잘되기를 힘써야 하고 우리의 영혼이 잘될 때에 칭찬받는 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생각하게 되면 내가 칭찬받지 못하는 이유는 영혼이 잘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사람, 주 안에 있는 사람,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선한 일을 하고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 임금은 지혜의 임금입니다. 그래서 그의 지혜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가늠하러 아름다운 꽃 화분 두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한 개는 살아있는 화분이고 또 하나는 사람 손으로 만든 조화였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두개를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는 솔로몬에게 어떤 것이 생화인지 밝혀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난감했습니다. 그리고는 부하를 불러“밖에 나가 벌과 나비를 몇 마리 잡아오라”고 시켰습니다. 부하는 벌과 나비를 잡아 온 후 솔로몬의 명령대로 모든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벌과 나비를 놓아주었습니다. 어디에 앉았겠습니까?


그리고는“생명이 저 꽃에는 꿀이 있어서 벌이 날아들고 향기가 있기 때문에 나비가 날아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꿀과 향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주 안에 있게 되면 생명이 있고 향기가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혼이 잘 되기를 힘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가이오 장로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 내용은 아주 특이한 것입니다. 사람들을 옷 잘 입혔고, 밥 잘 먹였다는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또 이웃 사랑을 많이 했다는 칭찬도 아니었습니다. 그 칭찬은“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 하노라”는 것입니다. 실제 가이오가 한 일은 선행을 하고, 잠자리를 주고, 때로는 물질을 베풀었는데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 사람이 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래서 빌 1:3에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통해 밥을 먹게 되었다, 잠을 잘 자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하지만 사람들은 내 것으로 받지 않고, 나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높이고 높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통해 사랑의 대접을 받다보니‘이 사람이야 말로 예수믿는 사람이구나,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사랑이구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너희가 하나님보기를 원하느냐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니라”사도바울도 얘기했습니다.“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사도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나타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 나를 드러내지 말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나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내 죄를 대신 갚아 주시고 그 사랑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너는 내 아들이라, 딸이라”고 하면서 사랑받은 자로, 천국에 갈 것을 상상하면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리며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가이오 장로는 남을 사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얘기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대접합니다. 그런데 이 점심은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린 후 식사를 권했더니 그 다음주에는 몇 명밖에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교회 나오라는 말도, 예배 드리자는 말도, 아무 조건도 없습니다. 그래도 드시고 돌아가시는 분들은 모두“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가 하니라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가는 것입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저 대접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사랑을 대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적은 대접을 받으면서도 크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와 그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은 하지 않지만 얼마나 정성껏, 겸손히 대접합니까? 그러니 식사하시는 분들이 그 밥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봉사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 사랑은 내가 마음에 결심하고 노력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으로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밖에는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롬 5:5에“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랑이 믿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면 그냥 있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고 참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상대방에게 진정한 힘을 주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는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성도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동역하는 사람이 사랑받을 자입니다.

하나님과 동업, 동역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동역자가 아닙니다. 물론 사람의 동역자가 되어 잘될 수 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잘 도와주었더니 대통령이 그 일을 잊지 않고 갚아주어 잘 되었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게 되어 그분의 허물이 드러나게 될 때 같이 돈 주고 고생한 사람도 다 같이 감옥에 가고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의 동업자가 되는 것은 이처럼 잘될 때는 좋지만 안될 때는 엄청난 실패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동업자가 될 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함께 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요삼 1:8에“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복음의 일군들을 특별히 잘 대접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시의 전도자들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그들에게 대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얻어먹고 신세지기 위해 다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만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믿는 사람들이 복음 전도하는 사람들을 잘 대접해야 했기 때문에 가이오가 이 일에 앞장선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종으로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이「메트로폴리탄 교회」를 목회할 때에 나이 많은 할머니가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교회에 나올 때 마다 초신자 명단이 붙어있는 게시판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가셨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할머니에게 그 이름은 왜 적어가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할머니는“저는 이 사람들을 위해, 초신자로서 시험에 들지 않고 신앙이 바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에 좋은 일군이 되게 하기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루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이 할머니는 나의 목회에 있어서 훌륭한 동역자였습니다.”


한가지 꼭 기억하실 것은“예수님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대접하면 그리스도의 상을 받는다”말씀했습니다. 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그리스도를 대접하듯이 진정으로 하면 그리스도의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런 사랑의 태도가, 이런 대접이 진리를 향하고 함께 일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목사님은 아니지만 목사님을 대접하므로 목사님이 받을 상을 나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주의 일을 한다고 직장과 가정을 팽개치고 신학교에 가서 목사되기만을 원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목사도 좋지만 우리 교인들은 부자가 많이 되어 교회에 필요한 것들을 다 채우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쓰임 받는 훌륭한 경제인들이 많이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로님의 기도대로 우리교회에서 대통령도 나와 하나님의 교회의 복음 위해 귀한 동역자가 나오기 원합니다. 많은 지식인들도 많이 나와 훌륭한 목회의 협력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에게도 목사는 아니지만, 복음 전도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똑같은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지도자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디오드레베”이고 또 한 사람은“데메 드리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목회한다고 하면서 디오드레베는 접대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종들을 향해 접대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았으며 악한말로 헐뜯었습니다. 오늘 사도요한은 이런 사람을 조심하고 본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절대 이런 사람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반면 데메드리오는 가이오 장로를 본 받아 접대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본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여러 가지 일군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역자들도 있고 각종 직분 맡은 자들, 교사로, 성가대로, 꽃꽂이로, 주방에서 도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만약 목사를 도우면 목사의 상을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직분이 없는 사모의 상은 크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돕는 자는 그 돕는 만큼의 상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사를 대접하면 교사의 상을 받고, 성가대를 대접하면 성가대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주방에서 돕는 것으로 인해 내게 상이 오는 것입니다. 전쟁을 할 때는 언제나 두 종류의 병사가 있습니다. 전방에 나가서 직접 전투하는 전투병과 후방에서 전투하는 이들을 지원하는 지원병이 있습니다. 전쟁에 있어서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교에는 직접 나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있는가 하면 그들을 위해서 뒤에서 돕는 후원하는 일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로 돕고 물질로 돕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교하는 이들이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후원선교사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 나가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후원선교사의 명단을 보며 물질로나 기도로 도울 때 우리는 선교사의 상을 받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점심식사를 만들고 대접하는 이들이 있고, 주일에는 차량을 안내하는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봉사자입니다. 이들에게도 후원봉사자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물질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마다 20만원을 가지고 100명의 식사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몸으로는 봉사하지 못하나 물질로나마 봉사하는 사람들이 가정단위로, 구역단위로, 선교회단위로 또한 개인적으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2장에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감옥에 갇힌 사도바울을 위해 수고하고 애쓴 사람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로 인해 “왜 하나님의 사람이 감옥에 갇히는가”하여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헌금을 하여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바울에게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그냥 돈만 헌금한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을 잘 도와주라는 명령에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병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었는데 어떻게 건강하게 되었는지를 물으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한자요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이런 사람이 신앙인이고,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에서 존귀함을 받아야 합니까? 누가 영접 받아야 합니까? 주를 위해 충성하고, 주의 종들을 돕는 목회의 동역자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칭찬받고 높임 받아야 될줄로 믿습니다. 물질과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교회의 일군들을 돕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과 함께 진리를 위해 수고하는 복음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늘의 상이 있고 모든 일군들의 상을 동시에 받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은 비밀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일어나는 마음이 엄청난 열매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아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로 살기 원하십니다. 칭찬받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가 되셔서 하늘의 큰 상을 받는 여러분에게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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