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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로마서 15: 22- 29)
교회는 언제나 모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잘 모이는 것이 경쟁력이고, 잘 모이는 것이 힘입니다. 교회의 구조를 두가지로 진단할 때 첫째가 모이는 교회로서의 구조입니다. 잘 모인다고 하는 것은 그 공동체의 건강성을 측정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회원 수가 20명인 선교속회가 모일 때, 5명 (25%)이 모였다면 그 선교회는 죽은 것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10명 (50%)이 모였다면 정체 상태라고 보아야 합니다. 적어도 15명 (75%) 정도는 모여야 건강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어떤 일을 할 때에 우선적으로 모이는 구조가 든든할 때 사역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선교회가 잘 모이지 않는다는 말은 곧 회원들의 마음을 못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은 말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잘 모여주기만 바란다고 하는 것은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혜로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일날은 그래서 모든 부서의 리더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자기와 관계되는 부서의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의 경주를 다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은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위한 날로서 이미 최선의 날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맡은 바 사명을 위하여서도 최고로 준비되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이는 교회로서의 구조가 확립되었으면, 다음은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구조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을 향해 파송하신데서 근거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비전을 주셨습니다. 곧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2명의 제자를 보내셨고, 70명의 제자를 보내셨으며, 오늘날 전 세계의 수억의 크리스찬들을 보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을 가정으로 보내셨고, 직장으로 보내셨으며, 여러분이 사시는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증인의 사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 속에 새기면서 비전을 키웠습니다. ‘그래, 땅 끝까지 증인 되자...."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전도한 결과 초대교회가 엄청난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상상치 못한 일들이 그들 앞에 벌어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주께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더 나아가 제자들이 사마리아에서 이방인들을 전도했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의 관문 마게도니아로 건너가 생명을 다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의 세계관은 동쪽의 끝이 인도라고 생각했었고, 서쪽의 끝은 에스파냐 곧 스페인이라고 여길 때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고백합니다. "내가 너희를 지나 서바나까지 가기를 원하노라" 바울에게는 불타는 선교적 비전이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왜 비전의 종교인가 하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평안의교회는 미래지양적인 교회인줄로 믿습니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와 변혁을 위하여 최선의 경주를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새로워져야할 부분들이 많이 있지요? 교회의 역사가 120년을 넘다보니 버려야할 구습들도 많이 생겨난것 같습니다. 그중에 서너가지를 든다면, 우선 세습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큰 교회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제일 먼저 각성해야 할 부분으로서, 진정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없이는 개혁이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크다고 하는 교회들이 대부분 세습을 하고 있기에 어느새 교회는 세상을 향해 가져야할 생명과도 같은 지도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두번 째 문제는 대형차를 타는 문제입니다. 이것 또한 참으로 잘못된 현상으로서 하루속히 바로잡아야할 부분입니다. 대형차를 타는 것이 마치 목회성공의 상징처럼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일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형차는 겉보기에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은 목회자에게는 독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이들이 마케팅 목적으로 타는 것은 모르지만 성직자의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러한 종류의 자동차는 목회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번 째는 성직매매의 현상입니다. 이 부분은 참으로 철저한 회개와 자기반성이 필요한 부분입니니다. 교회 임원들, 특히 장로로 임직시키면서 돈을 내게하는 행위는 정말로 근절되어야 할 부끄러운 자화상이요, 끊어야 할 유혹의 사슬입니다. 놀라운 것은 지도자들 대부분이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문제점을 인정하고 수긍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는 적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눈 앞에 현실적인 문제 때문인데 참으로 결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이 세상을 향해서 교회가 지도력을 잃지 않고 성도가 빛과 소금으로서의 몫을 잘 감당하는 것이 곧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교회가 될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요엘서 2장 28절에 보면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며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며 심지어는 너희 늙은이들도 꿈을 꾸리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여러분, 꿈이 큰 사람들에게는 사실은 어려움도 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서 귀한 사역을 감당했던 본케 목사님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가운데 자리한 자그마한 나라 레소토에서 사역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날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의 내용은 아프리카 대륙이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김을 받는 환상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엄청난 환상을 보고 놀라 동료선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아프리카 대륙을 씻어 주시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의 선교 비전을 키웁시다...."
그러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통하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본케 목사님은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면서 레소토 공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대집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놀랍게도 50만명의 군중이 레소토 공원에 모인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가 일제시대를 겪고, 625동란을 겪으면서 너무나도 많은 심령들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한국교회는 열심히 전도해 가며 성장하던 중에 1970년대 중반에 들어 새로운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빌리 그레함 목사님을 초청해서 여의도에서 가진 전도집회이지요.
전에는 여의도 광장을 5.16광장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공원이 있는 곳까지 모두 다 드넓은 끝이 보이지 않는 광장이었지요.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에 탱크와 각종 포를 앞세운 군인들의 멋진 행군을 볼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곳에 가려면 얼마나 교통이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마포에서부터 걸어와야지여, 영등포에서도 걸어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그레함 전도집회가 열렸을 때 무려 100만명이나 모였어요. 대한민국 역사상 단일 집회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불편한 상황에서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가슴에 불을 붙여서 전도할 결과 한국교회가 천만명 시대의 역사를 이룬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증거하기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세상에서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며, 부패된 곳에서 부패를 방지하며 진정한 맛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 믿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평안의 모든 성도들이 진정으로 로마교회가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성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것처럼, 우리 평안의공동체가 이웃을 향해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살아있는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 생명을 다하여 헌신했던 바울 사도, 오늘 이 땅에도 하나님, 그러한 사람들을 통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평안의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아 주시고, 때때로 환경이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평안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진정한 교회의 지도력을 회복하는 건강한 교회로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황요한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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