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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믿음 (창26:23-27:4)

by 【고동엽】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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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믿음  (창26:23-27:4)

오늘은 우리가 여기에서 드리는 마지막예배로 모였습니다. 참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는 1974년 3월 10일에 세워졌습니다. 1974년은 한국에 큰 변화가 있던 해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으로 영부인 육영수가 저격을 당한 때였습니다. 교회적으로는 ‘엑스폴로 74’라는 큰 선교대회가 열린 해였습니다. 1973년 빌리그레함 전도집회의 열기가 계속 이어진 이 대회를 통해 많은 목회자, 선교사의 헌신이 있었고, 한국 땅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뜨겁게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 교회가 큰 길 2층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년 뒤에 현 장소로 이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본당 절반 정도의 예배당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증축하여 1984년 12월 지금의 본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주변의 건물을 하나씩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20년이 지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예배당을 세웁니다. 내일 교회가 이사를 하면 빠르면 이번 주에 철거가 시작될 것입니다.

   감회가 새롭고, 의미가 있는 이 날에 우리가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성전건축의 해에 우리 모두 성령으로 하나되어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다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에 소개된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에 이어 오늘은 이삭입니다. 이삭은 어떤 믿음의 사람이기에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우뚝 서게 되었을까요? 오늘 이삭의 믿음을 통해 주시는 귀한 교훈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째, 이웃과 평화를 만드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이삭의 기록에서 가장 절정에 달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23절부터 25절까지 한 부분, 26절부터 33절까지가 한 부분, 34절과 35절이 한 부분, 그리고 27장 1절부터 4절까지 한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출 부분은 두 번째 부분인 26절부터 3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말씀은 26장 초반부에서 있었던 사건의 연장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삭은 흉년의 때에 가나안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농사가 잘되고 가축이 크게 불어납니다. 그러자 이것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모든 재산의 근원이 되는 우물을 막아 버립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그곳을 떠나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삭은 할 수 없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라는 곳에 장막을 쳤고, 거기에서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런데 또 거기에서도 그랄 사람들과 충돌이 생겨 브엘세바로 옮깁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찾아와서 화해를 요청한 사건이 바로 본문입니다. 블레셋의 아비멜렉은 이삭의 행동과 삶을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음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삭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인 것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이삭도 그렇게 말하는 아비멜렉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런 이삭의 모습을 통해 귀한 삶을 배웁니다. 그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기를 원하던 자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마음이요, 믿는 자의 길임을 알았습니다.

   이삭은 당시 사람들과 평화를 위해 어떤 경우에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에서 양보하는 모습으로 평화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장막을 치던 곳에서 이삭은 다투지 않고 떠나는 편을 택했습니다. 당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오늘과는 다릅니다. 장막을 치는 것도 힘들고, 우물을 파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한 지역에서 정착하여 사는 것이 익숙해지면 가족을 이끌고 떠나기는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사람들이 떠날 것을 요청했을 때 버틸 수 있었고, 싸움도 가능했던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평화를 위해 다투지 않고, 그곳을 떠나는 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그랄 골짜기에 어렵게 자리를 잡았는데, 여기에서도 또 우물로 인해 양측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이삭은 또 그곳을 3번이나 버리고 브엘세바로 옮깁니다. 한번 떠나는 것은 그래도 감당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이런 사건으로 옮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이삭의 가족과 사람들이 이제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다툼이나 싸움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즉각적으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이삭의 기록에서 이것을 유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의 삶이고, 행동이고, 인격이며, 믿음의 귀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의 이런 마음과 믿음과 모습을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블레셋의 아비멜렉이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이처럼 이삭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이루며 살던 사람입니다. 평화를 위해 조금 손해를 본다해도 양보하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삭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곧 평화입니다. 믿음이 역사 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임합니다. 싸움이 있어도 화해를 만들어 냅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다툼과 갈등과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가득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사는 가정에 평화가 임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사는 공동체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가는 길에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사람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고, 평화를 만들고, 그것을 지키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삭처럼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믿음이 사람이 걸어가는 믿음의 길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있는 모든 곳에서 평화를 만드는 믿음의 사람들, peace-maker 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축복의 능력을 아는 믿음입니다. 27장 4절에 이삭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죽기 전에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의 다른 기록에서도 성경은 그가 축복하는 자임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이삭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있던 모습입니다. 그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었고, 그는 축복의 능력이 있음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가 말한 대로, 그가 비는 대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그의 믿음을 성경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분명 이삭의 기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 자녀에게 축복한 것을 중요한 사건으로 강조합니다. 그것이 또한 믿음으로 한 행동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삭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능력에 대하여 민수기 6장 22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 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6:22-27)

   우리는 축복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 축복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빌면, 그 복이 그에게 그대로 임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입을 열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저주를 하면, 그 저주가 그대로 그에게 임하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 축복과 저주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을 열어 축복의 말, 좋은 말, 격려의 말, 힘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을 받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모릅니다.

   ‘축복하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리버티 대학교의 부총장인 엘머 타운즈(Elmer L. Towns)라는 사람이 지은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축복하시는 하나님과 축복 받은 하나님의 백성,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원칙과 방법을 성경을 통해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축복의 말을 할 때마다 그런 일이 현실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할 때 우리도 축복을 받는 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입이 열어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침묵이 금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말조심할 때나 행동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우리는 입을 열어야 합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은 늘 입이 열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입을 열어야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결국 천국에 가면 우리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입을 열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입을 열 때마다 우리의 입에서 축복의 말, 좋은 말, 긍정의 말, 격려와 위로의 말이 쏟아져야 합니다. 입을 열어 다른 사람을 많이 축복해 주십시오. 특히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고, 자라나는 어린이, 학생들을 많이 축복해 주십시오. 축복의 놀라운 능력을 굳게 믿으면서, 우리 모두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대를 이어가는 믿음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삭의 이야기는 그의 단순한 생애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삭을 중심으로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이삭과 연관이 있고, 이삭의 사건이 야곱에게로, 또 요셉에게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4명의 족장들의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만을 떼어서 보아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고리처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생애만이 아니라 인격, 삶, 심지어는 믿음까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삭의 믿음은 대를 이어가는 믿음입니다.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선, 단을 쌓는 모습이 이어지는 것을 보십시오. 본문 25절에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보여주었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는 결단을 통해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정착하여 사는 곳마다 장막을 치고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창12:8) 그리고 그 단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을 그대로 아들 이삭이 이어갑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중심, 예배중심, 경건 중심으로 살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또한, 축복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이삭의 믿음에서 정말 돋보이는 것이 축복의 힘을 아는 믿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마음껏 자녀를 축복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삭의 이런 모습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빼 닮은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순간순간 자기를 안고 축복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이삭은 자랐습니다. 이런 축복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로, 이삭에서 야곱으로, 요셉으로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것이 족장에게서 배우는 믿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순종의 모습이 대를 이어갑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순종이 가장 돋보이는 믿음입니다. 특히 그의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 때에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고, 순종을 통해 큰복을 받은 사람인 것을 압니다. 아브라함의 전폭적인 순종이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이삭의 나이는 건장하고 왕성한 힘을 가진 청년이었고, 아브라함은 100세가 넘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자기를 향해 몸을 묶고 죽이려고 칼을 겨눌 때 이삭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이라는 고통과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 누구라도 발버둥치고 저항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노망이 들었다고 환자취급하며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아들은 말이 없습니다. 힘으로 얼마든지 밀치고 뛰쳐나갈 수 있음에도 아들 이삭은 아버지가 하나님께 순종하듯, 아버지에게 순종합니다. 순종의 대가 이어집니다.

   이처럼 믿음과 신앙의 대가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가는 믿음만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세계와 열방에 우뚝 서서 복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한마디로 대를 이어가는 믿음입니다. 조상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전통과 유산이 후손들에게 이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많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로 삼고 그를 대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보았던 것이 바로 대를 이어가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칭찬합니다. “나의 밤낮 간구 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믿음에 있어서, 대가 이어지는 것만큼 귀한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점점 믿음의 대가 끊어지고 있는 위태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1000대가 이어지는 것은 천문학적인 숫자로 보입니다. 100대도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고, 10대만 생각해도 아주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제는 3대 4대조차, 아니 2대 조차 믿음의 계보가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 때입니다.

   할아버지의 믿음이 아버지에게로, 아들에게로 이어가야 합니다. 할머니의 믿음이 어머니에게로, 딸에게로 이어가야 합니다.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 아들도 신실히 섬기는 믿음으로 잘 이어가야 합니다. 어머니가 읽던 성경책, 딸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부모가 기도하는 신앙의 모습, 자녀들도 이어가야 합니다. 아버지가 받은 직분을 아들도 이어받아야 하고, 어머니가 섬기던 봉사, 이젠 딸도 이어 가야 합니다. 부모가 섬기던 교회, 이젠 자녀들도 대를 이어 자리를 지키고 신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신앙이 유산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우리의 다음세대에 진정으로 물려줄 가장 소중한 유산이 있다면 바로 대를 이어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삭의 믿음은 이웃과 평화를 이루는 믿음이고, 축복의 능력을 아는 믿음이며, 그리고 대를 이어가는 믿음입니다. 교회건축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드리는 예배에 우리에게 주시는 이 귀한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오직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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