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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진주 비유(마태복음 13:45-46)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제 주시는 말씀의 진주 비유는 이름하여 값진 진주 비유라고 합니다. 이 비유의 주제 역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을 말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인간의 자세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본 비유는 앞장에서 말씀드린 감추인 보화와 비슷한 내용으로 두 비유를 쌍동이 비유라고 합니다. 둘 다 발견하는 이야기이고, 발견하고 기뻐하며 그 발견한 것을 위해 가진 것을 다 팔았으며 그리고 자기의 완전한 소유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는 어디까지나 보화로서 금덩어리나 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교환 가치로 말하면 돈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해 오늘 본문의 비유는 진주로서 돈으로 계산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내용으로 보아 돈과는 관계없이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기어이 가져야 하는 가장 소중한 그것이었습니다. 이는 돈이 많고 적음으로 상관될 일이 아니라 문제는 그것을 꼭 가져야만 만족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교환가치가 분명하고 손쉬운 보화나 물질보다도 더 높은 가치를 이 진주는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차이는 보화의 비유는 우연적인 발견에 의한 것이었음에 비해, 이 값진 진주 비유는 찾아 헤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본래 진주를 찾아 헤매는 진주 장사입니다. 그래서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진주를 수집하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데, 이제 이 사람이 너무도 귀한 진주를 만나게 되자 장사는 하지 않고 그것을 내가 가지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찾아다니다가 얻게된 너무도 귀한 것, 그러한 의미에서 찾았다고 하는 것은 진행된 의식의 결과라는 강한 뜻을 갖게됩니다. 그러니까 이는 발견한 것만 아니라 찾아 헤매다가 만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진주는 본래적이요 의도적인 동기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거기에는 예술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에 있어서의 진주란 무엇이며 그 값어치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다이아몬드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인간지 대사라고 하는 결혼식에는 크든 작든 간에 이 다이아몬드가 등장을 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이 다이아몬드는 잘 깎아 다듬어야 아름다운 것이지 그 원석을 보면 볼품없는 차돌에 불과합니다. 그러고 보면 그럴 만한 기술이 없던 옛날의 다이아몬드란 귀한 것도 아니고 필요치도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제일 귀중한 보석은 진주였습니다. 이것은 더 가공할 것이 없는 자연적인 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예쁘고 영롱한 빛을 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최고의 보석으로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주 장사는 잘되는 장사였고 또한 좋은 진주를 구하려는 장사꾼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진주는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갖고 싶어하는, 특별히 여인들이 갖기를 원하는 것으로 돈의 가치 이상의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 소중한 것을 가졌다면 파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진주 장사는 장사하기 위해 이 곳 저 곳으로 다니다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는 아예 장사 그만둘 심산으로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그리고는 다시 내어놓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와 같이 높은 가치의 진주를 발견했다는 것은 돈이나 물질 이상의 가치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진주의 가치는 크기와 색깔에 달려있습니다. 그 둥근 모양이 크면 클수록 값은 비싸지고, 같은 크기에도 티없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띤 것이 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귀한 것은 흔하지 않은 것인데, 요즈음은 진주도 양식을 하여 다량 생산됨으로써 어떤 때는 천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마는 어쨌든 자연적으로 형성된 큰 진주는 아직도 엄청난 값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구나 다른 보석이 없었던 시절의 진주는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옛날 여인들은 이 진주를 들여다보면서 그 우아하고 영롱한 색채를 즐겼다고 합니다.
당시의 진주는 주로 홍해 주변에서 많이 났는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대로 대부분의 진주는 조개 속에서 얻게되지만 보다 좋은 것은 물고기에서 구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가끔은 있는 일이지만 물고기 속에서 얻어진 큰 것은 엄청난 값에 진귀한 보화의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진주를 가짐으로 세 가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내가 이 좋은 것, 이 귀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만족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술적 본능의 충족입니다. 이 아름다운 진주를 놓고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이 그 빛과 모양과 색채, 분위기 등을 즐기며 예술적 감정에 충족을 기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세 번째의 즐거움은 이 진주를 가짐으로써 가진 사람의 값이 올라간다는 생각입니다. 당시에 이 보석은 귀족이 갖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서민들은 가질 필요도 없고 가져도 소용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진주는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해주며, 신분이 승격되고, 귀족화 되는 것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이처럼 귀한 것을 가지게되면 다른 모든 사람이 갖지 못한 것, 그래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것을 나 혼자만 가졌다는 기분에서 자기의 신분이 스스로 높아졌다고 생각하며 즐긴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큰 기쁨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진주를 가져서 기뻐하는 것은 내 자신에 의해서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 가치에 의해서 얻어지는 기쁨입니다. 나는 그대로 있는데 진주 하나를 가지게 됨으로써 나의 값이 올라가고 만족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할 것은 이와 같은 진주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만 그랬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의 일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청년 하나가 같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 청년은 거의 이유 없이 백인들을 향해 욕설을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하도 그러길래 한번은 당신이나 나나 이 곳에서 장학금 받아 공부하는 처지인데 왜 그러느냐고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의 이야기가 옛날부터 자기 나라에는 다이아몬드가 많았는데 그 몹쓸놈의 영국 사람들, 백인들이 와서는 아이들이 다이아몬드를 주워오면 껌 한 개씩을 주겠다고 하여, 다이아몬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처지에서 계속 주워다 주고는 껌 하나씩을 얻어 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인은 껌 갖다주고 다이아몬드 훔쳐간 나쁜 놈들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 몇 마디 일러준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그일 때문에 백인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고로 모르는 자는 임자가 아닙니다.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아는 사람에게 다이아몬드인 것이지 다이아몬드를 차돌덩이로 아는 사람에게는 차돌덩이일뿐 다이아몬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오히려 창피한 일로 생각하고 다시는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는데, 그 후로는 그 일 때문에 소란을 피우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가치는 가치를 아는 자에게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천하에 하나뿐인 보석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그 고귀한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그 가치를 즐기는 것입니다.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가 됩니다만, 1963년 제가 공부하기 위해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먼저 가 있던 친구 하나가 유일하게 마중을 나왔는데 그는 비행장 안에서 나에게 두 가지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 하나는 엘 에이(LA) 근방은 햇빛이 강하기 때문에 짙은 안경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여 선글라스를 하나 주었고, 다른 한가지는 공부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조그만 타이프라이터를 주었습니다. 이 타이프라이터는 자기가 쓰던 것인데 지금은 안 쓰는 것이니 가지라는 것입니다. 가지고 가서 열어보니 아주 많이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쓰기는 쓰면서도 기왕이면 새 것을 사줄 것이지 저 쓰던 나머지 하나 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공부를 해야하고, 특별히 거리가 먼 교회의 주일 설교를 위해 토요일부터 출발하는 경우는 그 곳에 도착하여서도 공부는 해야겠으니 필수적으로 이것을 챙겨 가서 밤이 늦도록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토요일 저녁을 장로님 댁에서 묵으며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밤늦게 대학 다니는 그 댁 아들이 올라왔다가 제가 사용하고 있는 타이프라이터를 보더니 한마디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외국 사람으로 무슨 돈이 많아서 이렇게 좋은 타이프라이터를 가지고 다닙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길래 저는 "내 친구가 쓰다가 내어버린 것 하나 준 것인데 별 것 아니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 학생의 계속하는 말이 이 타이프라이터는 스위스제로 상당히 고급이며 그래서 보통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잘 보니까 메이드인 스위쯜랜드(made in Switzerland)로 정말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닦고 청소를 하고보니 그 때부터는 똑같은 물건인데도 기분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들 때에도 아예 팔의 감각부터 달라지는 기분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가치를 알 때와 모를 때의 기분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모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있는 젊은이들을 보노라면 그들대로의 고통과 고민에 쌓여 인생을 괴로워합니다. 공부가 힘들어서 괴롭고, 애인이 떠나갔으니 죽고 싶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어른들께 묻는다면 그까짓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젊었다는 것, 그 하나만 가지고도 미칠듯이 감격스럽고 밤낮 춤을 추어도 끝이 없을 즐거움인 것입니다. 노인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젊음 그 자체입니다. 일이 좀 안되면 어떻고, 애인이야 가도 그만 와도 그만, 흔하고 많은 사람 중에 다시 만나면 되는 것, 젊었다는 사실만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젊음의 가치를 젊은이들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는 약을 먹었다 토했다 하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도대체 젊었다는 가치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를 모르니, 늙은이의 인생이나 다를 바 없이 무거운 한숨만 쉬고 앉아있는 것입니다. 가진 바의 가치를 알지 못하므로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의 가치, 이 진주의 가치는 다른 사람은 잘 모릅니다. 이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만이 아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진주를 발견하자마자 너무도 소중한 것을 알고 꼭 붙들어놓은 후 있는 재산을 다 팔아 그것을 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생각해보세요. 큰 가치, 최고의 가치, 절대적 가치, 그것으로 만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천국의 가치, 신앙의 가치, 하나님 말씀의 가치, 이것이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팔아야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일 귀한 것이기에 우리는 가장 큰 기쁨을 여기에서 맛볼 수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위해 무엇을 버린다는 것은 문제될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희생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이것이 너무나도 귀중하고, 너무나도 크며 놀라운 감격을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가치는 나만이 알고, 감격하고, 소유하는 소중한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에서의 한 은행장 부인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이 부인에게는 자기 남편이 사준 3천 불 짜리 값진 진주 목걸이가 있는데 이 부인은 아무리 화려한 파티가 있어도 그 목걸이로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꼭 같은 모양의 가짜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그 진짜 진주 목걸이는 한 번씩 거울 앞에서 걸어보고는 그 자리에서 풀어 본래대로 간직해둔다는 것입니다.
나만이 아는 비밀, 나만이 아는 값진 진주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진주에 상관할 바 없이 이제는 더 부러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가진 것이 제일 좋은 것인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이요, 또 그러해야 합니다. 천국의 가치를 아는 사람, 예수를 아는 기쁨과 복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달리 더 부러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이 사람은 진주 장사라는 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진주에 대해서는 전문가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는 전문적인 견해를 가지고 갈구하는 마음으로 찾아 헤매다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의 진주를 찾은 것입니다. 우리는 구도자입니다. 다 같이 진주를 찾아 헤매는 여기 이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도주의가 어떻고 윤리, 도덕을 요청하며 인간관계, 처세학을 제시해가며 인생살이 전부를 논한다 할지라도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복음입니다. 오직 복음!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최상의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사람은 진주를 잘 아는 경험자였기 때문에 좋은 진주는 대략 이 정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오늘 만난 진주는 지금까지 본 일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정말 놀랄 수밖에 없는 굉장한 진주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진주를 만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 교회에는 나오지도 않는 사람이 교회를 평가하는 것은 무식한 망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처럼 기분 나쁜 일은 없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믿지 않는 사람과 지리를 같이 하고 있는데 돈도 많고 상식도 풍부하여 인격적으로 보이는 사람인데, 제가 목사인 줄을 알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하는 말이 "아, 종교란 다 그런 것 아닙니까? 뭐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 할 것 없이 그저 마음 착하게 살아가라는 것 아닙니까?"하고 아는 체 하는데, 제 속으로는 당신이야말로 한참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지를 않았습니다. 흔히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입니다. "그저 마음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지 별 것이냐?" 도대체 그런 멍청한 소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말은 저를 모독하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에 미쳐서 목사가 된 사람 앞에서 무슨 망발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모독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이렇게 눈치도 없고 교양도 없는 사람이 어쩌다 돈을 벌었지만 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몹시 불쾌했습니다. 이쯤 되면 이런 사람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꼭 하고 싶은 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몇천만 배의 가치가 있는 것만 아십시오"라는 겁니다. 당신이 그 가치를 알았다면 지금 여기에서 그 말하고 앉았겠느냐는 말입니다.
대개의 경우 교회에 제대로 들어와 보지도 않은 사람이 멀리 앉아서는 교회를 아는 척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더란 말입니다. 상식적인 판단, 아니 이 사람은 상식적인 정도가 아니라 진주에 관해서는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주에 관해서는 들어 본적도 없고 물론 만나본적도 없습니다.
이 귀함은 처음이요 마지막인 절대적 귀함입니다. 오늘 우리는 진리도 알고 생명도 알며 도덕도 알고 종교도 압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외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하나의 종교가 아닙니다. 물론 도덕이나 철학, 윤리, 교훈도 아닙니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기독교는 비교적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입니다. 이것은 생명이요, 생명의 길이며, 생명 자체로 변화되는 그래서 인간 상식, 인간 철학, 인간의 종교관을 통하여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가치의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기대 이상이요 상상 이상인 놀라움이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가 인간의 종교가 아니라 계시적 종교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종교이기 때문에 갖는 엄청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이 가치의 발견을 뜻합니다. 그래서 늦게 예수를 믿으신 분들이 곧잘 표현하기를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믿었을 터인데"하면서 더러는 이웃을 원망도 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예수를 왜 나보고는 믿으라고 전하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죄 중에 제일 무서운 죄가 전도 안하는 죄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어찌 나만 두고 믿겠습니까?
다음으로 이 사람의 생각은 이것만 소유하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진주를 소유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의 장사는 다 헛 장사가 되고, 따라서 내 인생은 완전히 무효가 될뻔 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여기에 주석을 달자면 이미 가지고 있던 진주까지 다 팔아서 샀다는 것이 됩니다. 이제 다른 진주는 필요가 없습니다. 더는 다른 종교, 다른 윤리, 철학이 필요치가 않습니다. 다 팔아서 하나뿐인 그 진주를 기어코 사야 했으니까요. 만일에 이 진주를 사지 못한다면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다른 진주 몇만 개를 가진다해도 계속 불행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다 팔아서라도 이것만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느낌과 확신이 섰다는 것입니다. 절대 필요, 절대 관계, 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예수"가 정말 그렇게 생각되고 느껴집니까? 예수만으로 족하고, 잘못 이 신앙의 길을 잃어버린다면 내 인생은 허사가 된다는 가치의 근본, 그 가치의 형성이 바로 이 복음 위에 세워진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떠나서는 어떠한 이야기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먼저 예수를 이야기한 다음에야 다른 것을 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복음 외에 다른 것의 상상을 불허하는 믿음,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 때문에 순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라도 예수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예수는 나의 예수여야 하고, 찬양 받으셔야 하며, 나와 예수는 함께 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신앙을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하겠다는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결단이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신앙 태도는 예수 자체를 만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비롯해서 그 무엇을 소유하려는 경향이 적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기복 사상인데, 이 때문에 기독교가 무당화되고 저질화 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예수 자체입니다. 예수만 깨닫고, 예수만 믿으며, 예수만 모시면 아무런 소원도 없는 이것이 바로 진주 장사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앞으로 돈벌어서 나중에 하자는 식이 아니라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바로 이 시간에 이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일생에 다시 못만난다는 생각으로 다 팔아서 사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마음입니다. 신앙의 기회, 복음을 받아들이는 기회, 진리를 깨닫는 기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기회, 이 모두가 얼마나 중요한 기회들입니까? 우리들에게는 각자의 기회가 있습니다. 돈 있을 때 일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 일해야 합니다. 시간이 있을 때 일해야 합니다. 생각이 맑을 때 일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일생에 한 번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 절대적 기회관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 사람은 모든 것을 팔아서 이 진주를 사는 것입니다. 이제 그토록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서는 갖고 싶어하던 그 진주를 소유한 이 사람의 기쁨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천하를 얻은 것과 같고 우주를 얻은 것과도 같으며,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마음입니다.
예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고백과 우리의 감격이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고 모든 시험을 이기며, 모든 불행을 지워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만족해하고 즐기는 이것이 진주 장사의 마음인 바로 우리의 마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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