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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롬6:8-14

by 【고동엽】 2022. 7. 5.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롬6:8-14
(2014/5/25, 웨슬리 회심 기념주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 진실을 찾아서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감리교회를 시작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회심 276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회심이라 하면 탕자처럼 살던 삶을 청산하고 거룩한 삶을 향해 돌아선 것으로 보통 이해를 하지만 웨슬리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18세기 전반에 걸친 그의 삶은 시종일관 반듯했습니다. 성공회 신부의 아들로 태어나 역시 성직자의 길을 걸었고, 죽는 순간까지 치열한 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입니다. 산업혁명기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열정 속에서 살던 사람입니다.

감리교회에 오래 다닌 분들은 웨슬리의 회심 사건을 풍월로라도 들은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교파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많은 분들을 기억하며 저는 간단하게 웨슬리의 회심 사건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려 합니다. 옥스포드 시절 웨슬리는 친한 신앙의 벗들과 어울려 함께 진리 공부에 매진했고, 거룩한 삶을 모색했습니다. 젊은 악동들은 늘 정해진 시간에 모여 희랍어 성경을 읽고, 고전을 읽고,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을 조롱하기 위해 '메소디스트methodist'라는 조롱조의 별명을 붙였습니다. '형식주의자 혹은 규칙주의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조롱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거룩한 삶'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옥스포드에서의 긴 수련 기간을 거친 존 웨슬리는 자기 신학을 적용할 곳을 모색하던 중 북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작정하고, 1735년 그러니까 그가 32살이 되던 해에 북미의 조지아 주에 선교사로 가게 됩니다. 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 무려 57일이 걸렸습니다. 그는 그 배 안에서 자기 인생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입니다. 그들은 체코의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는데, 신앙의 박해를 피해 '헤른후트'라는 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거친 풍랑을 만나 배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모라비안들은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심지어 찬송을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 광경은 웨슬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웨슬리의 북미 선교는 한 마디로 말해 실패였습니다. 옥스포드라는 온실 속에서 살아온 웨슬리의 신학은 식민지의 현실이라는 광야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했습니다. 그에게 쓰라림만을 안겨준 조지아 선교를 평가하면서 그는 자신의 불신과 무능만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무 위험이 없을 때는 복음도 잘 전하고 괜찮은 믿음의 소유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죽음의 두려움에 직면해서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떨며 '죽는 것도 내게 유익함이라'는 고백을 감히 하지 못한다."(<일기, 1738년 1월 24일 자, 김동환의 <'목사 웨슬리'에게 목회를 묻다> p.67에서 재인용)

• 은혜의 시간은 다가온다
어쩌면 이게 제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거룩한 삶에 대한 그의 열정, 지성, 자부심은 자신에 대한 환멸로 변했습니다. 웨슬리는 조지아를 떠나 1738년 2월 1일에 영국의 한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자기에 대한 환멸에 사로잡혔다고는 했지만 진리를 향한 그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신학을 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이 다가옵니다. 웨슬리는 그해 5월 24일 밤 8시 45분경에 일어난 한 사건을 일기 속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어느 집회소에서 열린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낭독하고 있었습니다. 한 리더가 일어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그 때 웨슬리는 자기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고백합니다. 불에 데인 듯 화끈한 경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따뜻함'이었습니다. 생명은 바로 그런 따뜻함 속에서 탄생하는 법입니다.

"나는 그 순간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신뢰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사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앞의 책, 77쪽)

드라마틱한 회심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마음에는 복음의 씨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만 발아하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그의 '지성'과 '정성'과 '열정'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실에 꿰인 바 되었습니다.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깊이 자각하게 되자 그는 깊어졌습니다. 더 이상 그는 메마른 땅에서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이 아니었습니다. 번민과 모색의 시간이 이어졌지만 그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장소는 저 장엄한 예배의식이 거행되는 교회만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이들의 삶의 자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성령에 충만해진 웨슬리의 선포에 점잖은 교권주의자들은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에게 강단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웨슬리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The world is my parish!) 그가 말하는 '세계'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라고 말했던 바로 그 세상일 겁니다. 그는 고통이 있는 자리야말로 복음이 선포되어야 하는 자리요,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어야 할 자리임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감리교회는 경건함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교회를 구원의 방주라고 말하면서 '저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감리교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저 죄 많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감리교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감리교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제1성서는 애굽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는 한 때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들의 정적주의(靜寂主義, quietism)적 태도와는 분명한 거리를 두었습니다. 정적주의에는 '예수 믿음'은 강조되지만 '예수 따름'은 강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비단 감리교 정신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인 됨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 기독자의 실존
바울 사도는 기독교인이 누구인지를 아주 단순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 여기에 뭔가를 덧붙이는 것은 사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정이 있지만 다 이 말에 대한 변주라 할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갈2:20)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자기 부인'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악취를 풍길 때가 많습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부자유하게 하는 세 가지 독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탐·진·치'가 그것입니다. 탐貪은 더 가지려는 마음이고, 진瞋은 눈을 부릅뜬 채 성내는 마음이고, 치痴는 어리석음입니다. 저는 어리석음을 '얼이 석다' 즉 정신이 속에서부터 얼크러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탐진치의 뿌리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자기를 우주에 중심에 놓으려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있는 곳에는 분쟁이 없을 수 없습니다. 탐진치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에게서는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없습니다. 어느 분이 '더럽다'는 말을 파자破字해 '덜 없다'라고 설명하더군요. '덜 없음'이 '더러움'입니다. 나로 가득 찬 이들일수록 남에게 폭력적이고 억압적입니다. 자기를 비운 이들은 누구에게나 품이 되어줍니다.

기독교인은 자기에 대해 죽어야 참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모범이 되셨습니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부활도 없습니다. 그리고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되살아나셨습니다.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죽음의 지배란 어떤 것입니까? 공포와 두려움이 우리 삶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공포를 잊기 위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로 자기 주위를 둘러칩니다. 소유와 명예에 대한 집착 속에서 저는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삶의 무의미에 대한 공포를 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또 가르치는 자로서 제가 가슴에 품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아고 있던 한 랍비는 초승달이 뜬 어느 날 자기 책상 앞에서 제자들과 의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은총에 대해 말하던 중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책상 옆에 멈춰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상아, 흠 없는 책상아, 너는 내가 적절하게 먹고,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쳤다고 나를 위해 증언해주겠지?" 며칠 후 그는 사람들에게 그 책상으로 자기 관을 짜달라고 부탁했습니다(Martin Buber, , Schoken, p.120). 이 랍비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말함이 담박淡泊했습니다. 죽음은 그에게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맑고 조촐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싸움닭이 자기를 크게 보이려고 목덜미 털을 부풀리고, 짐승들이 제 몸을 크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를 근사하게 보이게 만들 것들을 모으느라 참 사람의 길에서 벗어나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6:11). 성경공부를 할 때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일상생활을 할 때는 이 말을 까맣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입니다. 몸에 밴 죄의 습성은 지금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다'라고 자꾸 되뇌일 필요가 있습니다.

• 의의 연장으로
그뿐 아닙니다. 우리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진정한 예배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롬12:1). 지금 우리 몸을 부리는 주체가 누구인지 돌아보십시오. 최근에 교계의 몇몇 사람들의 망언으로 개신교회가 또 다시 구설에 오르고 있습니다. 한기총의 부회장인 어느 목사는 긴급임원회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의식 속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멸시가 들어 있습니다. 그는 강자와 자기를 합일화한 후 약자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눈물을 보고도 함께 울지 않는 자는 백정과 다를 바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따로 없습니다. 이런 이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인양 행세하는 현실이 참담할 뿐입니다. 또 오랫동안 엄청난 교회건축과 논문표절로 물의를 일으켰던 어느 목사는 정몽준 전 의원의 아들이 한 발언을 인용하면서 '국민들이 미개한 것은 맞지 않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를 공격한 이들을 미개인으로 몰았습니다. 서슬 퍼런 그의 언어는 그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이 대표하는 기독교는 순전한 기독교가 아닙니다. 자기 확장의 욕망을 믿음으로 치장하는 것은 타락한 기독교일 뿐입니다. 믿음의 기본은 자기 죽음입니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이 영적으로 죽은 자임을 만천하에 내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곤혹스럽습니다. 내 몸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사랑의 수녀회'를 만들어 빈민들을 돌봤던 마더 테레사는 자신은 다만 하나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상에 보낼 사랑의 편지를 쓰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생의 이야기를 적어가고 있습니까? 헛된 욕심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우리 인생의 저자가 하나님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를 가리켜 '몸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 피부에 생긴 상처가 나으려면 속에서부터 자꾸 새 살이 차올라야 하듯이, 정욕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열망이 자라나야 합니다. 존 웨슬리의 회심을 기념하는 오늘이 하나님의 마음을 향한 순례의 기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등 록 날 짜2014년 05월 25일 12시 22분 1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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