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버지 삼하19:31-40 (2014/5/11, 어버이주일) [그 때에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도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왕이 요단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요단 강 가에 이르렀다. 바르실래는 아주 늙은 사람으로, 나이가 여든 살이나 되었다. 그는 큰 부자였으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왕에게 음식을 공급하였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말하였다. "노인께서는 나와 함께 건너가시지요. 나와 같이 가시면 내가 잘 대접하겠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얼마나 더 오래 산다고, 임금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습니까? 제 나이가 지금 여든입니다. 제가 이 나이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어떻게 가릴 줄 알겠습니까? 이 종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신들, 그 맛을 알기나 하겠습니까? 노래하는 남녀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들, 제가 이 나이에 잘 알아듣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종이 높으신 임금님께 다시 짐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이 종은 임금님을 모시고 요단강을 건너려는 것뿐인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이러한 상을 저에게 베푸시려고 하십니까? 부디 이 종을 돌아가게 하셔서, 고향 마을에 있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곁에서 죽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대신에 이 종의 아들 김함이 여기에 있으니, 그가 높으신 임금님을 따라가게 하시고, 임금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그에게 잘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왕이 약속하였다. "물론, 내가 김함을 데리고 가겠소. 그리고 노인께서 보시기에 만족하도록, 내가 그에게 잘 대하여 주겠고, 또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드리겠소." 드디어 온 백성이 요단강을 건넜고, 왕도 건너갔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복을 빌어 주니, 바르실래가 자기의 고장으로 돌아갔다. 왕이 길갈로 건너갈 때에 김함도 왕을 따라서 건너갔다.] • 슬픈 어버이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으면서도 차마 마음껏 기뻐하지 못합니다. 지난 8일에는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을 단 이들도 더러 보였습니다. 엄마 아빠께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려야 할 아이들의 영정 앞에 흰 국화를 놓아야 하는 심정이 참담합니다. 희생된 이들에 대한 애도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며칠 전 사고 당일 세월호에서 김시연양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지하철 참사를 떠올리며 가만히 있다가 다 죽지 않았느냐고 서로 말하기도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서 자기들만 빠져나간 것 같다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김시연 양은 기도를 올립니다.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지요? 선상에 있는 애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 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갔다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제가 공부해온 신학은 시연 양의 이런 기원 앞에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아파하고 분노할 뿐입니다. 진정한 애도는 희생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시스템을 바꾸어나가는 것일 겁니다. 공적인 책임을 위임받은 이들이 국민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간 모래 위에 집을 짓느라 분주했습니다. 빠른 성장을 자랑했지만, 우리는 속으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게 우리 실상입니다. 갈라진 벽에 회칠만 해놓는다고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부터라도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더뎌보여도 사실은 그게 더 빠른 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한국교회의 몰락은 되돌리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다움의 근본을 잃어버린 물질적 풍요 혹은 겉만 번드르르한 성장은 더 큰 파멸과 환멸을 우리에게 안겨주게 마련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은 세월호 참사 이후 20여일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구할 생각도, 능력도 없었던 이들을 우리는 지도자라 불러왔습니다. 애통하는 이들을 앞에 두고도 의전에만 마음을 쓰는 이들을 보며 참담했습니다.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우리의 민낯이 송두리째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였습니다. 저는 군대에 있을 때도 여러 번의 장례를 집전하거나 입회했습니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던 어머니는 발인하려는 순간 영정을 등에 들쳐 업고는 "아이고, 우리 아들! 엄마가 마지막으로 업어줄께!" 하며 통곡했습니다. 저는 먼 산만 바라보며 내 평생 그런 광경을 다시는 보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살기에 위험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공감의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이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짜증스런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슬픔조차도 몸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 새의 사랑법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우리가 어버이주일을 지키는 까닭은 분주함 속에서 까맣게 잊고 사는 근본을 돌아보자는 뜻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수고와 돌봄으로 빚어진 존재입니다. 자칫하면 잊기 쉬운 이 사실을 자꾸만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남 귀한 줄도 알게 됩니다. 도종환 선생의 <새의 사랑>이라는 시는 한 생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시인은 나뭇가지 위에 지은 둥지에 앉아 처연히 비를 맞고 있는 새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새끼들이 비에 젖을세라 두 날개로 꼭 품어 안고 쏟아지는 비를 다 맞는 새의 모습이 시인의 가슴에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새들도 저렇게 새끼를 키우는구나" 생각하니 숙연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미 새의 사랑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새들의 깃털이 돋아나고 마침내 나는 법을 가르쳐야 할 때가 오자 어미 새는 조금 떨어진 옆 나무에 벌레를 물고 앉아 새끼들이 제 힘으로 날아올 때를 기다렸습니다. 새끼들이 노란 부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울어대도 제 스스로 날아올 때까지 어미는 숲 어딘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 덜 자란 날개를 퍼덕이며 떨어지다가 가까스로 날아오르자 어미는 새끼 새의 입에 벌레를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미 새의 사랑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시의 마지막 연을 직접 들어보시지요. "새끼들이 스스로 먹이를 구할 만큼 자라고숲 그늘도 깊어가자 어미새는 지금까지 보여준숲과 하늘보다 더 먼 곳으로 새끼들을멀리멀리 떠나보내는 거였습니다어미 주위를 맴돌며 머뭇거리는 새들에게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정을 접는 표정을 보이는 거였습니다사람이나 새나 새끼들을 곁에 두고 사랑하고픈 건본능일 텐데 등을 밀어 보내고돌아서는 거였습니다 눈물도 보이지 않고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사랑하기에 어미 새는 새끼들을 멀리 떠나보냅니다.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어미는 새끼를 독립적 존재로 키우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 저 ‘거리를 거니는 어미 새들’(?)의 사랑법은 새의 사랑법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은 자식 사랑법이 아니라 자식 망치는 법입니다. 부모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버릇이 든 사람들은 주체적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부모에 대한 진짜 효도는 부모보다 더 큰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삶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 뿐만 아니라,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책임에 응답할 줄 아는 것 말입니다. 오늘 저는 성경에 나오는 두 아버지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 인간 다윗 우리는 '다윗!' 하면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목동으로 살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시련과 고통도 많았지만 그는 특유의 겸손과 온유함과 지혜로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갔습니다. 시인이요, 하프 연주자요, 용사이기도 했던 그는 그러나 평범한 이들이 겪기 어려운 시련을 많이 겪었습니다. 외부에서부터 오는 시련도 시련이려니와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가족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식을 잃는 참척慘慽의 고통도 맛보았고, 자식에게 쫓겨 도망자의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다른 문제는 슬기롭게 잘 처리했는지 모르겠지만, 가족 간의 치정-->형제 살해-->도피 생활-->귀환-->모반-->내전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지는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아들 압살롬이 모반을 일으켰을 때 그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울면서 그의 뒤를 따른 이들도 있었지만, 그에게 싸늘하게 등을 돌린 이들도 있었습니다. 세상 인심이 그렇습니다. 양지만을 찾아다니는 이들은 권력의 향배에 민감합니다. 누구 뒤에 줄을 서야 할지 잘 파악합니다. 삶의 위기가 찾아올 때면 누가 그런 사람인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다윗의 곁에는 소수의 사람들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사방에 적이었습니다. 마치 천지간에 '혼자'인 것 같은 쓸쓸함이 다윗을 괴롭혔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따르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 자식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 때문일 겁니다. 다윗은 나중에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을 때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차례나 "그 어린 압살롬이 평안하냐?"(삼하18:29, 32)고 묻습니다. '어리다'는 것은 나이의 연소함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친밀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윗은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울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18:33)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반란이 진압되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 것이 아니라 철없는 자식이 자기 죄를 깨닫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 못내 가슴이 아파 울부짖는 다윗의 모습은 처절하기만 합니다. 이게 부모 마음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묵상하다가 자식의 영정을 들고 거리에 나선 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뻔히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부모들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안다 하겠습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분노의 물결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겁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절통해하는 다윗의 울부짖음보다 더 큰 울부짖음이 이 땅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 동맹의 상징 이제 다른 아버지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후 다윗은 피난처로 삼았던 마하나임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마하나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돌아오던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곳입니다(창32:2). 야곱은 '이 곳은 하나님의 진이구나!' 하면서 그곳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고향을 떠날 때 벧엘에서 그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역시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한 곳이니 '마하나임' 곧 하나님의 진지였습니다. 그러니 마하나임은 도망자 다윗의 피난처로 적격이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다윗은 몇몇 지역 유지들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나하스의 아들 소비', '암미엘의 아들 마길',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는 침대와 이부자리와 대야와 질그릇 등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은 물론이고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씨, 그리고 꿀과 버터와 양고기와 치즈도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인 '마하나임'에서 다윗과 그 일행을 맞아준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압살롬의 반란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꿰뚫어보고 다윗 편에 가담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들의 그 따뜻한 환대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환궁하던 다윗 일행이 마하나임을 떠나 요단강가에 이르렀을 때에 왕의 환심을 사려는 많은 이들이 요단강 동편 지역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다윗이 피난 길에 올랐을 때 '영영 가거라! 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야! 이 불한당 같은 자야!'라고 악담을 했던 베냐민 사람 시므이도 있었고,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르실래도 있었습니다. 그는 큰 부자였고 나이 80에 이른 노인이었습니다. 왕은 바르실래의 진정성을 알고 있었기에 자기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이것은 공직에 올라달라는 청입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완곡하게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자기는 이미 늙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도 못하고, 음식의 맛도 즐길 줄 모르고, 귀가 어두워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왕에게 짐만 되고 싶지 않다면서 자기 고향 마을에 머물다가 조상 곁으로 편안하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바르실래는 서운해 하는 다윗에게 자기 아들 김함을 소개하면서 자기 대신 왕을 섬기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어찌 보면 인사 청탁처럼 보이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달리 볼 수도 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의 지도력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반란이 이어졌고, 다윗의 측근들의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바르실래는 아들 김함을 다윗에게 보냄으로써 자기 가문이 어떤 경우에도 왕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함은 동맹의 상징입니다. 바르실래는 이처럼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충분히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기가 그 일을 하기에 부적절하다고 말합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윗은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다윗은 그 고마움을 잊을 길 없어서 나중에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서, 늘 가까이 두라고 유언합니다(왕상2:7). 다윗과 압살롬, 바르실래와 김함, 이 두 부자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는 비극적으로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바르실래와 김함의 관계는 아름답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신뢰하기에 떠나보내는 그 사랑이 참 보기 좋습니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부자관계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말입니다. 예수님은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셨습니다. 상호 신뢰와 사랑이 그렇게 밀접할 수가 없습니다. 어버이 주일을 지나면서 자식 된 이들은 부모님이 하나님의 지속적인 창조의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들을 통해 왔지만 하나님께 속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재확인 하면 좋겠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실 때 그 관계는 건강해집니다. 다시 한 번 눈물과 아픔 속에서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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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날 짜 | 2014년 05월 11일 12시 00분 34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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