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양보
고전10:23-24, 31
에스더 김이라는 아가씨가 미국에서 미담의 주인공이 되고 있습니다. 태권도 선수인 에스더는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친구인 케이 포와 준결승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케이가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친구를 위해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96년 이후 핀급과 플라이급에서 우승을 휩쓴 케이가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동문수학하며 우정을 다져왔던 이 두 친구는 서로 자기가 포기해야 한다며 옥신각신했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하던 관중들도 자초지종을 알고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에스더도 올림픽을 목표로 해서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 친구를 위해 자기의 꿈을 접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스무 살 짜리 아가씨가 보여준 그 깊은 우정과 성숙함은 오늘의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인간의 고귀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들은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에스더와 그의 아버지 김진원씨가 시드니 올림픽을 참관할 수 있도록 경비 전액을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한국일보 5월 28일자, 6월1일자).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면 에스더는 최선을 다했겠지요. 하지만 에스더는 친구 케이의 눈물과 아픔을 마음으로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힘겹지만 양보를 한 것입니다. 에스더는 올림픽 출전권을 잃은 대신 영원한 우정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다움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돈주고도 살 수 없고, 배운다고 알 수도 없는 거예요. 에스더는 오직 자기 헌신과 희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은 것입니다.
남을 위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버스나 전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하는 것도 망설이는 게 사람인데, 그보다 더 큰 것을 남을 위해 포기할 줄 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 양보하기는커녕 남의 몫을 가로채지 않는 것만도 장하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대개 자기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무정합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그것을 부풀려서 전파하는 일에 힘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성경에 보면 남의 허물을 비웃다가 저주를 받은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의 아들 '함'입니다. 포도 농사를 짓던 노아는 술을 좋아했나 봐요. 하루는 술에 취해 천막 안에서 잠이 들었어요. 몸에 열이 나서 그랬겠지요? 그는 옷을 훌훌 벗어버렸습니다. 함이 들어오면서 보니까 아버지가 벌거벗었어요. 그렇게도 근엄하던 아버지가요. 그래서 그는 형과 아우에게 가서 아버지 흉을 봅니다. 그런데 셈과 야벳은 함의 야유에 맞장구를 치지 않아요. 오히려 그들은 근심하면서 겉옷을 집어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질로 들어 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 드렸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일의 시종을 알고는 함은 저주하고, 셈과 야벳을 위해서는 복을 빌어주었습니다(창9:18-29). 여러분, 될 수 있는 대로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게 좋아요. 보았다 해도 덮어주세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워요.
옛날에 '은별'이라는 여관이 있었어요. 주인은 시설을 편리하게 하고 서비스를 친절하게 하고, 가격을 조절하는 등 애를 썼지만 수지를 맞추기가 힘들었습니다. 마침내 자포자기한 그는 현자를 찾아갔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듣고 난 현자가 말했어요.
"아주 간단하다네. 여관의 이름을 바꾸게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은별이라는 이름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데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다네. 여관 이름을 '다섯 종'으로 바꾸고 '종 여섯 개'를 입구에 매달게나."
"에이, 그건 말도 안 돼요."
"한번 해 보게나." 현자는 미소지으며 말했어요.
여관 주인은 현자가 시키는대로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어요. 그곳을 지나던 여행자들이 모두 자기만 그것을 발견했다고 믿으며 종이 다섯 개가 아니라 여섯 개라는 것을 지적해주기 위해서 여관에 들어왔던 겁니다. 그런데 여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여관의 서비스가 융숭한 데 마음이 움직여 그곳에 머물곤 했어요. 그리하여 여관 주인은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대요. 이 이야기를 들려준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이셨어요. "다른 사람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보다 즐거운 일도 드물 것이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흉보는 게 사람의 중요한 오락거리인가요? 하지만 그런 오락거리는 버리세요. 남의 실수를 지적하고, 허물을 들추어내면 당장 즐거울지는 몰라도, 그 순간부터 우리 영혼은 자라기를 멈추고 맙니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의 유익을 구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후서에서 바울이 가르쳐주는 아주 중요한 성도의 윤리가 있어요. 기독교인들은 두 가지를 늘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일이냐 아니냐를 물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용어로는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인지 여부를 깊이 생각하라는 겁니다.
둘째, 기독교인들은 남의 유익을 위해 자기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줄 아는 영적인 성숙함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나 다 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이 건설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의 (유익)을 찾지 말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찾으시오…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시오.(고전10:23-24, 31)
여러분, 오늘은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청파 신앙공동체가 한마음이 되기를 연습하기 바랍니다.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온몸으로 체험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등 록 날 짜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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