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 다음에 로마서 9장 21절을 보시면 토기장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자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데요, 여러분 여기 보게 되면, ‘귀히 쓴다, 천히 쓴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 ‘천히’라고 되어있는 번역은 ‘덜 귀히’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귀히 쓴다, 천히 쓴다’가 아니고요, 귀하게 쓰임 받은 그릇이 있고, 덜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토기장이의 주권이라는 거죠. 한 마디로 토기장이의 마음이라는 거죠. 이걸 그릇이 문제제기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자,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냐면, 하나님이 이방인을 당신의 백성 삼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 되는 거라는 거예요. 그걸 유대인들이 가로막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아니 하나님, 당신은 우리만의 하나님이 되셔야지 이방인의 하나님까지 되시는 것 안 됩니다!”라고 그 누가 주장할 수 있냐는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게 뭐냐면 하나님을 독점 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 독점의 결과 구약의 이스라엘은 어떻게 된 겁니까? 배타적 선민사상에 빠져버렸잖아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임해야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임해야 된다 그러면서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단 말이에요. 여러분 그러면 안 되죠. 우리를 은혜 가운데 당신의 백성 삼아주신 그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이 다른 존재에게도 확장 되어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면 안 되죠. 그래서 귀하게 쓰는 그릇과 덜 귀하게 쓰임 받는 그런 그릇을 만드는 것은 토기장이의 절대주권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이방인들도 당신의 백성 삼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을 로마서 9장 토기장이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 11장을 보시면 ‘구약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유대인이었다가 신약에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학에서 이런 것들을 대체 신학 이렇게 이야기 하거든요. 그러니까 구약의 하나님 백성이 누구였냐? 유대인, 그런데 신약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으로 대체 되었다는 거예요. 이걸 소위 대체 신학이라고 말하는데 로마서 11장은 이 대체 신학을 반대합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모두 하나님께 버림받은 게 아니에요. 로마서 11장에 보게 되면 “돌감람나무, 원감람나무” 비유를 통해 갖고요, 유대인들 중에 일부, 일부 가지가 짤림을 당한 것이고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그 짤리어진 가지에 접붙임을 당한거지 유대인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제외 되어졌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로마서 11장에 보시게 되면요 유대인의 우선성은 유효하다는 거예요. 이방인인 우리는 접붙임을 당한거지 유대인으로부터 이방인으로 대체된 것은 아니다, 이걸 말하는 것이 바로 로마서 11장입니다.
자, 그 다음에 로마서 13장 1절에 보면 우리가 흔히 권력신수설이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죠.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여러분 오랜 세월 동안 로마서 13장 1절을 가지고요,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된다. 왜? 위에 있는 권세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세이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을 이렇게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위에 있는 권세는 하나님이 세워주셨기 때문에 그 위에 있는 권세가 행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다. 따라서 위에 있는 권세가 행하는 정책, 위에 있는 권세가 행하고 있는 모든 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절대 복종해야 된다’ 여러분 이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사실 로마서 13장 1절의 말씀은요, 이 땅에 있는 모든 권세, 그 권세가 정치 권세가 되었건, 경제 권력이 되었건, 종교 권력이 되었건, 이 땅에 있는 모든 권력을 겸손하게 만드는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내가 지금 쥐고 있는 이 정치 권력, 내가 쥐고 있는 문화 권력, 언론 권력, 사법 권력 이 모든 권력이라는 것이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얻어낸 나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권세를 누가 주신 겁니까?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뭐 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겁니까? 4절에 보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돼야 된다는 거죠. 그 다음 6절에 보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일군이 돼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정치 권력을 주기도 하고, 경제 권력을 주기도 하고, 문화 권력을 주기도 하고, 사법 권력을 주기도 하고, 종교 권력을 주기도 하는데 그 권력을 그들에게 주신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자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게 하도록 함,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권세를 주시는 이유와 목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3장의 말씀은요, ‘이 땅에 있는 모든 권력, 나에게 주신 권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이고, 따라서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너희는 절대 복종해야 돼’ 이걸 말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에요. 도리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권력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얻어낸 나의 것이 아니다, 나에게 권력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권력을 주실 때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게 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따라서 ‘내가 오늘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제대로 행하고 있는가, 이걸 겸손하게 성찰하도록 만드는 말씀입니다. 이걸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자, 그 다음에 로마 교인들이 편지를 쭉 읽다가 잡자기 로마서 끝나기 직전에 16장 2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22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자, 여러분 보시면 로마서 누가 쓰고 있습니까? 더디오라고 하는 사람이 쓰고 있는 거예요. 로마서 저자가 누구냐? 그러면 우리는 바울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런데 16장 22절에 보면 로마서를 쓴 사람은 누구냐 하면 더디오예요. 그런데 우리가 왜 로마서를 더디오가 쓴 거라고 보지 않고 바울이 쓴 편지라고 보죠? 자 바울은 말로 하고 있어요. 바울이 말로 뭔가를 말하면 더디오가 그것을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더디오는요, 대필자인거죠. 대필자. 여러분 AD 1세기에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여러 명의 종과 노예를 소유했던 주인들 같은 경우에는요, 그 종과 노예 가운데에서 글자를 알고 있는 종과 노예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주인은 말을 해요. 그러면 글을 알고 있는 종과 노예가 그 주인이 말하는 바대로 쓰는 거예요. 여러분, 바울의 편지 대다수는 바울이 직접 쓴 것도 있지만 대다수는 대필자를 통해서 기술 되어진 겁니다. 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뭐냐면 그 바울의 펼지를 대신 썼던 사람들을 우리는 공동발신인 이렇게 이야기 하거든요. 자 예를 들자면 고린도전서 1장 1절을 보시게 되면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 소스데네 라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대필자인 겁니다. 바울 서신을 보시게 되면 바울의 편지를 대필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 편지의 서두에 나온단 말이에요. 그런데 로마서만 특별하게도 바울의 편지를 대필하고 있는 더디오라는 사람이 편지 말미에 나옵니다. 자 그래서 이 로마서의 독특한 특징이 3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첫째가 뭡니까? 로마교회는 바울이 개척하거나 만남을 가진 적이 없는 교회이다, 이것이 독특하고요, 그 다음 두 번째는 대다수 이방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두 부류의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다수의 유대-기독교인 교인들과 소수의 이방-기독교인. 그런데 로마 교회는 글라우디오의 칙령 이후에 이방인 중심의 교회가 되었다. 이게 두 번째 특징이고요. 세 번째는 바울의 편지를 보게 되면 대필자들이 보통 편지 서두에 나오는데 로마서만 편지 말미에 더디오라고 하는 대필자 즉 공동발신인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로마서의 독특한 특징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저희가 고린도전서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미리 한 번 성경을 읽어주시고 제 강의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주간도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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