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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정받는 입술 (누가복음 12장 8-12절)

by 【고동엽】 2022. 5. 23.

 하나님의 인정받는 입술 (누가복음 12장 8-12절) 

 

< 두렵고 떨림으로 고백하라 >

 

 예전에 한 교단 총회 때 A 목사가 성찬식 기도 순서를 맡았다. 그러면 3분 이내로 기도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15분 이상 치유 집회를 하듯이 맘대로 진행했고 나중에는 “아무개 사모님이 치유되었습니다.”라는 선포까지 했다. 그 사모는 얼마 후 소천했다. 그 후로 그 목사는 공동체에서 자기 분수와 책무에 대한 인식도 없고 심지어는 거짓 선포를 했다고 여겨져 교단에서 거의 퇴출되다시피 했다.

 

 일전에 한 교단 총회 개회 예배 때 B 목사가 축사 순서를 맡았다. 그러면 5분 내외로 자기가 맡은 축사 순서만 잘 이행하면 되는데 15분 이상 부흥회 설교를 하듯이 했고 심지어는 일부 구호를 복창시키고 “아멘이십니까?”라고 했다. 설교가 아닌 축사를 맡은 사람이 그러는 것은 자기 분수와 책무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으로서 자기도취에 빠진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

 

 왜 마이크를 잡고 대중 앞에서 성격에 안 맞고 분수와 책무를 넘는 언행을 보이는가? 점잖게 표현하면 공동체 인지 감수성 부족 때문이다. 조금 생생히 표현하면 무대체질, 자아도취, 그리고 영성과시 등의 산물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청중을 가볍게 보거나 아래로 보기 때문이다. 만약 청중 중에 존경받는 큰 인물이 하나라도 있다고 인식하면 그런 언행을 주의한다. 그런 인식이 없기에 무의식적으로 일탈적인 언행이 나오는 것이다.

 

 예배나 총회에서 어떤 순서를 맡았으면 자기 순서가 다른 순서를 침해하지 않도록 사려 깊은 공동체 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언행을 절제해야 한다. 광고도 절제해야 한다. 그것이 청중을 소중히 여기는 표현이다. 다수의 청중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전의 일부 부흥사는 설교할 때 저질의 말과 유머를 함부로 내뱉었다. 그것을 카리스마인 줄 알고 은혜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설교 강단에 오르면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선 것이다. 그때 청중을 우습게 알면 오히려 자신이 우스워진다. 하나님과 청중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는 참된 카리스마를 가질 때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 인물이 된다. 왜 이사야가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는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사 6:5). 겸손하게 고백하라. “나는 복 받을 수 있다. 이제 곧 내 때가 온다.” 그 고백은 조만간 실체가 될 것이다.

 

< 하나님의 인정받는 입술 >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삶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특히 입술 관리가 중요하다. 입술을 잘 관리해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담대히 예수님을 시인하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천사들 앞에서 그를 시인하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천사들 앞에서 부인당할 것이라고 하셨다(8-9절). 사람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나타내려는 본능이 있다. 그 본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잘 절제해서 나보다 예수님을 더 나타내라. 생색내고 싶은 말도 꾹 참는 훈련을 잘하라.

 

 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가끔 내가 기도하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싶고 나의 기도한다는 말을 통해 그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싶다. 그래도 그 말을 꾹 참으라.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라고 생색을 내면 상대에게 약간의 위로는 되어도 더욱 중요한 기도 응답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기도를 정말로 하는지 객관적으로 확인도 안 되는데 스스로 드러내는 기도한다는 말은 신빙성과 신뢰성에 의구심을 낳는다. 진실한 기도자는 그런 말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보편적인 사실이다.

 

 왜 강단에서 치유를 과시하고 선전하는 말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되는가? 입술을 자기 영성 과시의 도구로 삼으면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치유 선전자에게 미혹되지 말라. 거짓된 치유자를 통해서는 치유되어도 문제다. 육신이 나아도 영혼이 병들기 때문이다. 치유 문제에서 치유를 자신이 일으키는 것처럼 말하거나 자기 공로가 있듯이 말하는 사람을 심히 주의하라. 그의 의도는 영혼과 물질 탈취에 있기 때문이다. 치유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다. 나의 자랑을 감추고 하나님만 높이고 자랑하는 사람을 통해 참된 치유의 능력이 나타난다.

 

 입술에 자랑과 과시가 맴돌지 않게 하라. 하나님이 내 믿음을 보고 축복과 치유를 주셨다는 간증도 신중하게 하라. 간증에 자랑과 교만의 영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치유 받은 간증을 과시하다가 병이 재발되어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또한 과시적으로 남발된 간증을 들으면 치유와 기복주의에 집착해 바른 믿음을 잃을 수도 있다. 늘 입술을 잘 절제해서 나를 감추고 예수님을 시인하고 앞세울 때 하나님은 큰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이다.

 

2. 성령님을 모독하지 말라

 

 예수님은 입술의 말로 자신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아도 성령님을 모독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10절). 이 말씀은 삼위일체의 다른 위격이신 성령님을 상처 받지 않게 힘써 지키려는 말씀으로서 참된 사랑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 욕하는 것을 자기 욕하는 것보다 더 싫어한다. 사랑으로 하나 된 부부의 경우에 남편은 남이 아내 욕하는 것을 자기 욕하는 것보다 더 싫어하고 아내는 남이 남편 욕하는 것을 자기 욕하는 것보다 더 싫어한다. 그런 깊은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은 성령님을 모독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성령님을 모독하는 말은 어떤 말인가? 기본 믿음도 없이 성령님께 상처를 주는 말이다. 기본 믿음이 있다면 원망과 불평 등으로 성령님께 상처를 주어도 그것이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 믿음이 그만큼 중요하다. <월간새벽기도> 교정 때 교정 팀이 수백 군데 이상 수정 제안을 해도 제가 상처받지 않는 이유는 교정 팀과 저 사이에 기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본 믿음도 없이 무례하게 제안하면 한 번의 제안도 상처를 줄 수 있다. 결국 좋은 충고나 제안 전에 기본 믿음이 형성되도록 평소에 십자가의 헌신을 보여 주라.

 

 또한 성령님을 모독하는 행위로서 가장 흔한 행위 중 하나는 진실한 믿음도 없이 “예수 이름으로!”라는 말을 남발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거짓말로 영혼을 미혹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유명인을 사칭해서 물질과 명예를 탈취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 경우에 사칭 도구가 되는 유명인은 큰 모독감을 느낀다. 하물며 이단 교주와 거짓 종교인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해 영혼을 미혹하면 성령님이 얼마나 큰 모독감을 느끼시겠는가? 성도가 바른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할 때 성령님은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인정받는 존재가 된다.

 

3. 마땅히 할 말을 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정치권력의 핍박을 받아 법정에 설 때 어떻게 말할지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11절). 성령님이 그때마다 마땅히 할 말을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2절). 성령님은 상황에 맞게 마땅히 할 말을 가르쳐 주신다. 말을 완벽하게 잘하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 다만 다양한 상황에서 그때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적합하고 마땅한 말을 하면 그나마 오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삶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기에 성령님이 상황에 따라 마땅히 할 말을 가르쳐주시는 복은 엄청난 복이다.

 

 말할 때 겉만 보고 쉽게 말하지 말라. 누군가 내 곁을 떠나려고 할 때 그것을 무조건 막는 것이 겉으로는 사랑이 많은 태도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떠나게 하거나 멀리하는 것이 사랑하는 태도다. 상황에 맞는 최적의 생각과 태도와 말을 구하라. 자기 영성을 자랑하거나 자기가 사랑이 많은 사람인 것처럼 하는 말도 주의하라. 한 영혼도 소중하고 한 교회도 소중한데 영혼과 교회는 서로 안 맞을 수 있다. 그때는 영혼이 더 좋은 길을 가도록 교회 뒷문을 넉넉하게 열어 주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한다고 꼭 같이 붙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혼도 지키고 교회도 지키는 최적의 길은 다양하게 있다. 그런 상황을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잘 파악해서 행동할 수 없기에 성령님이 시시때때로 마땅히 할 말과 할 일을 가르쳐주셔야 한다. 영혼과 교회 문제에 대한 해결 방식에 정형은 없기에 “왜 그렇게 하지 않아요?”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그저 영혼과 교회를 위한 최선의 길을 달라고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라. 또한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을 다 알고 해답을 다 가진 것처럼 쉽게 말하지 말고 입술에 파수꾼을 잘 세우라.

 

< 믿음으로 말하라 >

 

 사람이 다양한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마땅한 말을 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때마다 성령님의 가르치심이 필요하다. 그래도 늘 완벽하게 마땅한 말을 할 수는 없기에 기본적으로 믿음의 말을 하는 삶을 습관화시키라. 부정적인 말이 많으면 풍성한 축복을 얻기 힘들다. 나의 말은 미래의 축복과 저주를 좌우할 수 있다. 믿음으로 축복의 말을 많이 하고 힘들어도 믿음으로 나직이 선포하라.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 안에서는 가능하다.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그 비전 성취에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다.”

 

 말을 현재 상황을 묘사하는 도구로만 쓰지 말고 현재 상황을 변화시키는 도구로도 쓰라. 사랑과 용서와 감사의 말을 많이 해서 입술을 상황을 묘사하는 입술로만 만들지 말고 상황을 변화시키는 입술로도 만들라. 승리와 행복과 축복을 자주 말하면 그 말대로 된다.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말하라. “오늘도 복된 하루가 될 것이다. 내 앞에는 찬란한 미래가 준비될 것이고 내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넘칠 것이다.” 그 말은 결코 헛되지 않다.

 

 미국에 사는 한 사람이 몸무게로 인해 늘 패배감에 젖어 생각했다. “나는 결코 살을 뺄 수 없어. 가족들도 다 쪘어. 희망이 없어.” 그렇게 절망하다가 어느 날 말씀을 듣고 자신에 대해 선포했다. “나는 건강할 수 있다. 살을 빼서 아름답게 될 수 있다.” 그 반복된 말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냈다. 그리고 점차 노력해서 60kg을 빼고 건강도 얻었다. 나의 삶은 나의 지속적인 믿음의 말대로 펼쳐진다. 그렇다면 계속 승리를 말하라. 믿음으로 선포하고 나아가면 마침내 찬란한 비전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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