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가기 |
성경 상에 등장하는 빌립보는 두 곳이다.
마게도냐 빌립보(Macedonia Philppi)와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ppi)이다.
성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한 곳은 마게도냐(그리스) 빌립보를 말한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이스라엘에 있다.
(지도) 마게도냐 빌립보의 위치
헬라도시 빌립보의 지금의 현대화된 시내 모습 (인터넷에서 퍼옴)
마게도냐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Philip) 2세가 ‘작은 샘들(The Little Fountains)’이라는 뜻을 가진 크레니데스(Krenides)를 점령, BC 360년경에 도로를 깔고, 성벽과 신전과 부대시설 등, 건물을 세우고 쌓으면서 도시를 건설, 확장한 후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립비(Philppi)라 했던 도시가 성경 상의 마게도냐 빌립보다. 이 빌립보 지역에는 금광이 많았는데, 빌립 2세는 이곳에서 캐낸 금으로 자신의 군대를 유지하고 계속 정복의 야욕을 채워나갔다.
헬라~로마시대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신전들과, 목욕탕, 부대시설 유적지 (인터넷에서 퍼옴, 왜 사진을 안찍었을까?ㅋㅋ)
빌립 2세와 그 뒤를 이은 알렉산더 대왕은 그들의 정복 야욕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동방으로 동방으로, 남방으로 남방으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고, 드디어 마게도냐~북아프리카(이집트)~지중해 연안의 모든 섬들~팔레스타인(이스라엘,시리아~소아시아(터키)~이란 땅(메대/바사(페르시아)~인도접경지역에 걸친 거대한 땅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①헬라어가 모든 지역에서 통용되게 했고, ②헬라 문화가 제국 전체를 점령하게 만들었다. ③그리고 모든 도로가 로마로 향하여 통하도록 깔아 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빌립 대왕과 알렉산더 대왕이 깔아놓은 이 기초들을 토대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일행은 예수복음을 전하러 다녔던 것이다. 예수복음이 동방에서 서방으로 가는 기초를 깔아 놓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다. 한 시대의 전쟁 영웅은 칼을 들고 동방으로 동방으로! 또 한 시대의 복음의 영웅은 복음을 들고 서방으로 서방으로!
(빌립보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몇점 소개)
바울도 저 문을 통과했으리라 생각하는데, 바로 그 장소에 나도 서있다는 게 벅찬 감동으로 다가 온다.
빌립보 유적지에도 원형경기장이 있었다. 로마제국은 어디를 가든지 이런 원형경기장들을 건설했다.
원형경기장을 둘러 본 뒤, 우리 일행은 빌립보 유적지 안에 남아 있는 빌립보교회 유적을 방문하기 위해 내려갔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빌립보 유적들이다. 저 멀리 두 개의 붉은 기둥이 빌립보교회 유적이다.
로마의 문화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떤 건물이었는지... 건물 기둥을 떠 받치고 있던 하트 모양의 지주
하트 모양의 지주를 둘러 앉아서 인증샷^^
거대한 신전 기둥을 보라! 기둥의 크기를 보면 그 신전의 규모가 어마어마 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기둥 좌우로 세워진 두 개의 기둥이 빌립보교회의 유적이다.
신전 앞에서 일차적으로 인증샷^^을 한방 남긴다.
<빌립보>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3가지가 있다.
1. 루디아 (Lydia)
바울은 드로아의 환상을 따라 배를 타고 ~ 사모드라게 섬에서 하루를 체류한 후 ~ 네압볼리에 도착한 후 ~ 이곳 로마의 식민지 빌립보로 와서 복음을 전파한다. 바울이 수일을 유하다가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바로 루디아다(행 16:14). 루디아는 여성이다.
(개역개정) 사도 바울, 루디아를 만나 세례를 베풀다.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마게도냐 최초의 세례자, 빌립보의 루디아
바울 일행은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13절)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 나섰다. 나가다가 문 밖 강가(개울가)에서 여자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바울과 일행은 일단 이 여자들을 모아놓고 예수복음을 전파했다. (14절)복음을 들은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헬라인 여성이 있었는데, 이 헬라인 여성은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소아시아(터키) 지역) 출신이요, 평소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문 밖 개울가(Gangitis River)
13절의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라는 성경 말씀을 증명하는 개울가 (인터넷에서 퍼옴)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폭우가 온직후라서 인지 물이 범람해 있어서, 정확한 개울 장면을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지금 거기에는 루디아를 싱징하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퍼옴)
루디아의 빨래터 : 루디아가 여성이었고, 세탁기가 없었으니까 이곳에서 빨래를 했을 거라는 추정하에 이렇게 불리고 있다.
루디아 빨래터와 루디아기념교회를 한장의 사진에 담았다.
1972년에 세워진 루디아기념교회(그리스정교회)
이곳에서도 기념으로 돌 하나를 주었다. 이 돌들을 가져와 우리 교회 안에 세팅해 놨다.
루디아기념교회 안으로 들어갔는데, 바울의 마게도냐 선교의 최초 세례자인 루디아를 상징하면서 세례그릇이 세팅되어 있었다.
세례그릇에 기대어 기도를 해 보면서 인증샷 하나를 부탁했다.
루디아기념교회 안에 루디아 초상화를 입구에 세팅해 놨다. 김연철 목사님과 함께 인증샷^^
바울과 루디아 스테인드글라스
루디아
①루디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여자였다.”고 기록하는 성경을 먼저 좀 더 깊게 묵상하기를 원한다. 자, 보자. 당시 헬라의 모든 도시가 신상과 신전과 황제를 숭배하는 우상문화에 너도나도 저절로 배어 있었을 텐데, 루디아는 그 어느 우상에도 끌리지 않고, (루디아 입장에선) 얼굴도 실체도 확인이 안 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양심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말은 핏줄로는 이방인이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정식으로 유대교에 입교는 안 했을지언정, ⒜유대교에서 전하는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사상에 동조하는 여자였고, ⒝안식일을 지키고 정결례를 행하며. ⒞금기 식품법을 지키고 ⒟십일조를 바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던 중 저 ‘섭리의 안식일’에 바울의 설교를 듣고 마게도냐는 물론, 유럽 땅에서의 최초로 그리스도인이 된 여인이다.
②당시 자색 옷감을 만드는 염료는 고둥(또는 꼭두서니) 뿌리에서 얻었기 때문에 소량으로만 생산되었다. 그래서 당시 자색 옷감은 헬라의 귀족들이 입는 매우 값진 고급 옷감이었다. 이로 미루어 루디아는 다소 부유한 여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바울의 서신을 보면 빌립보교회 교우들이 물심양면으로 바울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바울은 원칙적으로 교우들의 물질적 도움을 사양했지만(살전 2:9, 고전 9:4~18), 빌립보교회의 물질적 도움만은 기꺼이 받아들였다(빌 4:10~20, 고후 11:9). 그들만은 바울의 본심을 늘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빌립보교회가 바울의 비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울 때 누가 앞장섰을까? 성경에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루디아가 그 일을 책임지고 떠맡았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③이런 바탕의 여성에게 바울이 전한 복음이 꽂힌 거다. 주께서 그의 마음을 여셨고, 루디아는 사도바울의 메시지를 귀담아 들었다. (15절)그리고는 그 즉시 자기가 먼저 세례를 받고, 자기 집안 식구들도 세례를 받게 했다. 그런 후, “바울 선생님, 이제 나를 주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 여기신다면, 우리 집에 오셔서 머물러 주십시오.” 하면서 강권해서 바울 일행을 초청하였다. 사실 바울 일행 분들이 주님의 종들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그네들이었기 때문에, 거처가 마련된다는 것은 아주 유익한 일이었다. 그렇게 바울과 루디아가 만났고, 루디아를 통해 빌립보교회가 시작됐다. 또한 며칠 후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올 때, 두 사람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떠난다(행 16:40).
2. 바울 일행의 빌립보 사역
・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심. (행 16:16~18)
・ 이 일로 결박당하고, 옷을 찢기고,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심. (행 16:19~24)
・ 그러나 감옥에 갇힌 채로 기도하고 찬송하니 차꼬가 풀리는 기적을 체험함. (행 16:25~26)
・ 바울과 실라가 탈옥한 줄로 착각하고 간수가 자결하려 하는 것을 막음. (행 16:27~30)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선포함. (행 16:31)
・ 그 밤 그 시각에 그들을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음. (행 16:32~34)
・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느냐?” (행 16:37~39)
・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데살로니가로 떠남. (행 16:40)
빌립보 유적지 안에 있던 원형극장 (이걸 보면 '에베소 원형경기장'을 똑같이 본 거라 한다.)
원형경기장에 걸터 앉아서 지방 목사님들과 인증샷^^
이게 원형경기장 바닥에 설치된 사자굴이다. 이곳에서 사자가 튀어 올라오게 해서 초대교회 교인들, 검투사들과 싸우게 했단다.
사도 바울이 투옥되었던 빌립보 감옥이란다. 그러나 목사가 생각하기를 '바로 이곳'에 바울이 갇혔다기보다는
'이런 식의 감옥'에 갇혔다는 설명이 더 정확하겠다.~~
입구 표찰에 '바울의 감옥(Prison of st. Paul)'이라고 적혀있다.
바울이 이런 형태의 감옥에 투옥되었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꼭 바울이 여기에 투옥되었다고 말하는 건 무리다.^^ㅋ
빌립보교회를 배경으로
빌립보교회 주변을 순례하다가 발견한 모자이크. 바울이 여길 머물었음을 증명하는 모자이크다.
바울이 복음을 당시가 아니라, 후대에 기독교가 공인되고 빌립보교회가 세워진 후 디자인해서 남겼던 것이다.
빌립보유적지 바닥에 이런 것들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로마제국의 화려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3. 에그나티아 가도 (Via-Egnatia)
로마는 길로 흥했다가 길로 망한 민족이다. 먼저 쉽게 잘 알아두라. 로마의 모든 도로는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이는 로마가 자국을 방어하며 국력을 키워 나간 것이 아니라, 개방적으로 주변나라들을 공격, 점령하며 국력을 키워 나가는 것을 선택한 국가방침에 기초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제국의 군대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효율적으로 전진 배치할 수 있도록 도로망을 네트워킹하고 이것을 시스템으로 완성해 놓았다. 로마에게 있어서 도로는 천하를 지배하는 데 아주 중요한 기간시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인 용도 외에, 로마는 이 길을 따라, 헬라문자와 그들의 신전, 신상, 황제숭배, 종교, 로마법, 통화, 건축술, 과학, 예술, 의술, 패션, 철학, 사상, 발명품 등 최고급의 헬라문명이 거의 그대로 전 지역에 동일하게 전파되어, 전제국을 무대로 사회・문화・정치・경제적으로도 통합을 가져왔다. 이렇게 로마의 도로는, 이 도로가 지나는 수많은 도시들에게 팽창과 발달을 가져다주었다.
이와 같이 수많은 용도로 사용되어진 로마도로에는, ①로마와 동부 아드리아 해의 염전도시를 연결하는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 ②그리스를 향한 타렌툼에서 브룬디시움(오늘날의 브린디시)까지 그리스인 식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비아 아피아(Via Appia)’가 있고, ③알프스-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이베리아반도까지 이어지는 ‘비아 이울리아 아우구스타’가 있으며, ④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알바니아의 디라키움 항구까지 이어지는, 그리스 마게도냐를 관통하는 로마 제국의 거대한 대동맥의 길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가 있다.
우적지에 남아있는 옛 에그나티아 가도, 잘 보면 로마시대 당시에 이미 중앙분리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빌립보 유적지 안에 남아 있는 에그나티아 가도 길바닥
로마시대에는 이미 차마들이 좌측통행을 했었다.
이런 형태의 에그나티아 가도도 있다. (인터넷에서 퍼옴) 바울은 복음을 들고 이런 길도 걸어갔던 것이다.
바울이 지나갔다는 에그나티아 가도 위의 표석. (인터넷에서 퍼옴)
여기 어딘가에 바울의 발자국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 바울~
신약성서에 주로 등장하는 도로는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다. 사도바울은 이 에그나티아 가도를 따라 네압볼리(행 16:11) ~ 빌립보 ~ 암비볼리 ~ 아볼로니아 ~ 데살로니가 ~ 베뢰아 계속 복음을 전파하러 다녔다. 당시 바울이 도보로 걸어갔던 에그나티아 가도는 현재 암비볼리에, 빌립보 유적지 등에 그 형태가 잘 남아 있다. 다만, 우리 일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확인하고, 느끼려는 욕심에 죄송스럽게(?) 차로 다녔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차전도여행 [제2-5순례] 믹도니스의 아볼로니아(Apollonia) (0) | 2022.04.29 |
---|---|
2차전도여행 [제2-4순례] 암비볼리(Amphipolis) (0) | 2022.04.29 |
2차전도여행 [제2-2순례] 헬라제국, 마게도냐 대륙 첫 도착지, 네압볼리(Neapoli (0) | 2022.04.29 |
2차전도여행 [제2-1순례] 무시아 ~ 드로아 ~ 사모드라게 (0) | 2022.04.29 |
(터키~그리이스)제2차 전도여행의 코스와 사역 요약 (0) | 2022.04.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