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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5

by 【고동엽】 2022. 4. 21.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5

 

자유한 그리스도인 1
인간의 자유의지
오늘날 현실에서 비 신앙인이 자유한가 신앙인이 자유한가 라는 질문은 무익합니다.
무신론에서 필연과 우연의 우주는 인간 자유의지를 부정합니다. 생산과 소비라는 자본주의 종교에서 인간은 무력합니다. 생산자는 살아남기 위해 무한 생산 증대를 꾀하고 소비자는 그 생산물을 소비해야하는 숙명을 지녔습니다. 인구 증가와 무한 소비로 인한 지구 생태 환경 파괴에 인간은 무력합니다.
 
 
유신론에서 전지전능한 신은 인간 자유의지를 부정합니다.
신이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사회로부터 소외된 약자와 고통을 함께 하시며 신도 아파한다는 삼위일체 신이 아닌 지배하고 통치하는 전지전능 신론은 자유의지를 부정합니다.
자유의지를 부정한 종교개혁자 루터와 자유의지를 존중한 에라스무스 논쟁은 유명합니다.
종교개혁 전통을 잇는 한국 교회는 삼위일체 신론이 실종되었습니다.
편협한 과학과 편협한 신학은 자유의지를 부정합니다.(1)
 
 
2 차 대전에서 히틀러가 유대인과 집시 6 백만 명을 학살한 현실을 본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걸 계획하신대로 섭리하시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데 다시 숙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고 합니다.(로마8:26)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우주에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그렇게 소중합니다.
머 한국 교회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그리스 신론 고백이 대세입니다.
그래서 김삼환 목사가 세월호 사건은 더 큰 재난을 막으려고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으키셨다고 설교했습니다.
 
 
전지전능 신개념은 살아 남은자 강자 기득 세력을 위한 신론입니다.
우리 현실에 우연이 있음과 에덴동산 창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인간 자유의지를 허락한 증거입니다.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형 가인에게 다른 사람에게 해 당하지 않도록 보호표주시며 가인을 지키시는 하나님 이야기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만든 죄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인간 자유의지를 허락한 하나님 은혜로만이 설명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 자유 문제가 오늘날 기독교 혼란 중심에 있습니다.
한국 유사 기독교인 수가 5 백만 명입니다. 가나안(안나가) 신도가 2 백만 명입니다. 유사 기독교인 5 백만 명 중에 3 백만은 법을 강화하여 안전한 신앙 생활을 꾀하는 유사 신도입니다. 자유를 스스로 반납한 꼴 입니다.
 
실은 기성 교회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 백만 명은 이와는 정 반대로 한국 교회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잃어버리고 율법 신앙하므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한 신앙을 찾기 위해 구원파라는 박옥수 유병언 등 교파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유가 책임 속에 있음을 모릅니다. 세월호 사건이 구원파 그리스도인 사건입니다. 이때 기관실 선원들이 무선을 통해 자기들만 전원이 빠져나왔습니다. 선장과 선원 전원이 구조를 방기하고 자신들만 빠져나온 사례는 인류 해난사에 전무합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인 자유를 주창하는 구원파 신도입니다.
이들은 자유를 주장하며 책임과 우리 전통 문화 규례 등을 무시합니다.
구원파 교회는 교회 이름 앞에 기쁜소식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믿음에서 해방과 자유는 기피 용어입니다. 군사 정권 시절에 남미 해방 신학이 기득 세력과 불의한 정권에 위협되는 것을 두려워 하여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권력과 결탁한 보수 우파 교회들이 해방을 기피 용어로 만들었습니다.
19 세기에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주의 신학이 발흥했습니다. 이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자세보다 그분 가르침을 중요시하여 그 가르침을 도덕화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성서 비평을 시작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로부터 외면 당했습니다. 이후로 보수 신학계에선 성서 비평주의 계열 신학자와 성직자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방과 자유가 기피 용어가 되고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재로 인해 한국 교회는 자유가 부재하거나 구원파처럼 자유가 오남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기독교 믿음은 이스라엘 노예 해방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믿음 전통을 이어받습니다. 해방과 자유는 기독교 믿음 중심입니다. 기독교 중심인 해방과 자유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진리가 그리스도인 삶을 인도하겠습니까
 
(요한복음 8장)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들은 우리가 왜 자유가 없다고 자유를 준다고 하는냐며 항의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자유 없는 믿음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자유 없는 믿음으로 삽니다. 정해진 규범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고 편해서 인데 기독교 신학 출발부터 그랬습니다.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행복에 관하여'(호르텐시우스)를 읽은 후에 즉 신플라톤주의 사상 속에서 기독교에 귀의했습니다. 이로인해 기독교가 자유 신앙을 잃고 안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믿음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상태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울은 편안하고 충만한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모든 지상 존재는 행복 속에서 자신의 몰락을 추구하며 그러면서 행복 속에서만 그 몰락을 발견하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2)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책상이나 의자같은 사물 하나로 존재하는 즉자 존재와 상대와 관계하여 세계로 뻗어가는 대자존재를 구분합니다.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스스로 사물 하나가 되는 즉자존재로 전락합니다.(3)
 
자유는 생명 속성입니다.
그동안 물질은 고정체인 원자가 최소 단위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입자와 파동으로 구성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입자와 파동 각각 위치와 움직이는 속도를 측정할 수 있으나 둘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모든 물질과 생명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자유가 기본이라는 의미입니다.
변화와 생성은 생명 과정에 내재한 특질입니다. 따라서 자유란 행동하는 능력입니다.(4)
불안은 부족함 없는 곳에서 발생합니다. 여유있는 삶에서 질투와 우울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질투 우울 미움은 변화와 자유가 없는 충만한 정서입니다.(5)
 
우리는 공산주의가 인간 해방과 자유를 위해 태동했음을 주목합니다.
80 여년 간 실험으로 끝난 공산주의는 인구 40 %가 자유가 박탈된 농노인 러시아에서 발흥했습니다.
칼 마르크스(1818 - 1883)는 진정한 자유는 외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를 극복하는데 있고 이것은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합니다.(6)
마르크스는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했으나 전체주의가 인간 자유와 존엄 훼손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인간한계를 인식하지 못하여 검증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마르크스와 달리 개인소유를 주장한 프랑스 공산주의자 프루동(1809 - 1865)은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 자격을 부정하는 것이라 합니다.(7)
 
러시아 귀족 출신 공산주의자 미하일 바쿠닌(1814 - 1865)은 개인 인권과 자유를 소중히 했습니다. 그는 개인 소유를 부정하는 집단화하고 사회주의화한 공산주의가 인간 존엄과 자유를 훼손할 것이라 주장하여 마르크스가 주도한 코민테른에서 추방되었습니다.(E H 카 미하일 바쿠닌)
 
우리가 소련 공산주의에서 보듯이 자유는 인간 스스로 힘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통해 성령 인도하심으로 얻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신앙하는 이유는 의미있는 삶(생명)과 자유 평화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기독교 핵심은 영과 자유입니다. 그리스도 영이신 성령은 죄와 법으로부터 해방을 통해 우리를 생명 자유 평화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자유는 느끼며 견디고 살아가는 힘입니다.
기억 이해 등은 뇌 특정 부분 헤마 등에서 활동 결과 입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관장하는 뇌 등 신체 기관은 없습니다. 자유 힘은 자신 전체 살 속에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고 느끼는 자기 감정입니다.(
순수 순결 유지에는 자유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공허한 추상과 칩거를 벗어나서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교제하는 가운데 발생합니다.(9)
만일 자유가 우리를 부단히 쇄신해 나가지 않는다면 습관이 우리를 질식시킬 것 입니다.
살아있는 사상이라 할지라도 그 공식 속에 동결되고 말 것입니다. 언어는 관념을 배반하고 문자는 정신을 죽입니다.(10)
 
성서는 고정된 존재론인 고대 기계론 세계관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대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지 오늘날 현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성서는 오늘날 세계관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성서 문자가 말씀이 아닙니다. 그 문자가 성령 감동으로 나에게 올 때 말씀입니다.(칼 바르트)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립니다.(고후3:16)
믿음이 원인이 되어서 말씀에 순종한다는 이유로 억압과 굴종 세계로 들어가 비신앙인보다 더 부자유한 삶의 길 가는 그리스도인이 많은 현실이 실로 안타깝습니다.
자유는 부단히 찾는 그리스도인에게 영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인 자유를 받는 사람은 진정한 자아와 주체로서 믿음에 도달하고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 갑니다.(11)
 
(요한복음 6장)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로마서 8장)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성령하나님 인도로 생명 자유 평화 누리시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축원합니다.
다음회는 죄로부터 자유 법으로부터 자유에 대하여를 올립니다.
 
1. 현우석 과학자들은 종교를 어떻게 생각할까? 동연 2014, 49p
2.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5 「신학적 정치적 판단」129p
3. 장 폴 사르트르 존재와 무 2 동서문화사 703p
4. 볼테르 관용론 한길사 291p
5. 홍준기 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212p
6. 이사야 벌린 칼 머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 미다스북스 90p
7. 프루동 소유란 무엇인가 아카넷 78p
8. 미셀 앙리 육화, 살의 철학 자음과 모음 2013, 344 - 345p
9. 쇠얀 키르케고어 불안의 개념 임춘갑 치우 2011, 247 - 248p
10. 베르그송 웃음 창조적진화 도덕과종교의두원천 이희영 동서문화사 2016, 229p
11. 칼 바르트 하나님의 인간성 신준호 새물결플러스 2017, 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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