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제16강 사마리아의 죄악과 그 결과(3:9-12)

by 【고동엽】 2022. 4. 16.

제16강 사마리아의 죄악과 그 결과(3:9-12)

 

3:9-12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 모르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퉁이에나 걸상에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져냄을 입으리라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9절과 10절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의 죄악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과 12절은 사마리아 성의 죄악의 결과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한 대적이 일어나서 포학과 겁탈에 쌓인 이스라엘의 궁궐들을 완전히 멸망시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3:9)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본문은 이방 나라 블레셋의 한 도시 아스돗이나 애굽 땅의 궁궐보다도 오히려 사마리아의 왕궁 가운데서 포학이나 겁탈이 훨씬 더 많이 자행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이스라엘의 죄악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나라보다도 더 많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역사적으로 블레셋이나 애굽은 억눌린 자를 억압하고 학대하기로 유명한 나라였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막 땅에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를 만들 정도니까 얼마나 애굽 사람들이 피지배계급에 있는 자들을 학대했겠습니까? 이런 악명 높은 애굽 궁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만큼 이스라엘은 학대와 포학과 겁탈이 심했다는 것입니다.
9절에 나오는 내용을 여러분이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스돗 궁에서 또는 애굽의 궁에서 파견된 조사단이 이스라엘에서 자행되고 있는 억압상을 견학하기 위해서 사마리아 성에 왔습니다. 저들은 어디로 올라갔습니까?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라고 했습니다. 왜 사마리아 산들에 모이라고 했습니까? 그곳이 제일 높은 꼭대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주위가 다 환하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한눈에 온 이스라엘이 다 들어옵니다. 조사단이 이제 제일 높은 사마리아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은 완전히 휘둥그레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저 아래 사마리아 성에서 부르짖고 있는 모습들이 한눈에 다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보이는 광경을 9절에서 무엇이라고 묘사를 했습니까?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요란하다는 것은 왁자지껄하고 시끄러운 소리입니다. 학대받는 자의 울부짖는 소리와 학대하는 자의 고함소리가 어우러져서 요란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요란함이 보통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인지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애굽 사람이나 블레셋 사람도 깜짝 놀랄 정도라는 것입니다.
10절을 읽어봅니다.
(3:10)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 모르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에 보면 아모스가 지금 정죄하고 있는 자들을 무슨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궁궐이라고 하는 말은 어느 나라나 상류계급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다고 했습니다. "쌓는다"는 말은 다이아몬드나 루비와 같은 보물을 쌓아놓는다고 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저들은 마치 보물을 집안에 쌓아놓듯이 무엇을 계속해서 쌓아놓았다는 말입니까? 금강석 대신 포학과, 루비 대신 겁탈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한두 번 실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집 안에 보물을 차곡차곡 쌓아두듯이 포학과 겁탈을 계속해서 자기 궁궐 안에 쌓아두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 가서는 궁궐 안이 온통 무엇으로 가득 차게 되겠습니까? 포학과 겁탈로 가득 찰 수밖에 없지요.
뿐만 아니라 포학과 겁탈을 쌓기에 바빠서 그들의 도덕적 양심은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무엇을 할 줄을 모른다고 했습니까? "바른 일 행할 줄 모르느니라."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깨끗하고, 무엇이 정당한지 양심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포학과 겁탈은 하나님께로부터 정죄함을 받을 뿐 아니라 애굽이나 블레셋에서 온 사람들, 그 악명 높은 사람들조차도 혀를 내두르면서 다음과 같이 질책하게 될 것입니다. "저런! 어찌 저들은 인간으로서 저렇게 심할 수 있을까? 정말 너무했어."
이러한 죄악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11절과 12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11절을 읽어봅니다.
(3:11)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듯이 자신들도 억압받게 된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에 의해서 억압을 받게 되었습니까?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잔인한 대적의 손에 자신들이 억압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억압받는 모습이 세 단계로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양사방으로 적들이 완전히 포위해서 점점 조여오고 있습니다. 3:6 초반부에 있는 말씀 그대로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암3:6)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그야말로 두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사방에서 조여오니까 어디 한 곳 도망갈 데가 없습니다.
둘째, "네 힘을 쇠하게 하며." 여기서 "네"라고 하는 대명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네가 자랑하는 너의 힘이 이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쇠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네가 높은 성곽을 자랑하느냐? 그것이 무너지리라." "네가 튼튼한 성문을 의지하느냐? 그것도 부서지리라." "네가 달리는 말과 힘 있는 병사들을 의지하느냐? 그것도 다 쓸데 없이 되리라." "너의 모든 힘이 다 쇠하여지리라!" 이런 뜻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대적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왕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포학과 겁탈로 쌓아놓은 모든 궁궐의 보화들을 약탈해가리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약탈해서 이루어놓았던 모든 부귀가 이제는 역으로 잔인한 대적의 손에 의해서 약탈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갈6:7의 진리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줄 압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랑으로 심는 사람은 무엇을 거두게 됩니까? 사랑을 거두게 됩니다. 미움을 심는 사람은 무엇을 거둡니까? 미움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포학과 겁탈을 심는 사람은 무엇을 거두겠습니까? 똑같은 것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의를 심어야 합니다. 때가 되면 그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갈6:9에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울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선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의를 심으시기 바랍니다. 화평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정직을 심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12절을 읽어봅니다.
(3: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퉁이에나 걸상에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져냄을 입으리라
여기서 묘사해주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파멸되는 모습입니다.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광야에는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목자가 조심스럽게 양무리를 친다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맹수의 공격을 받아서 양들이 희생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목자는 양의 찢겨진 부분을 주인에게 가지고 가서 양이 맹수에 찢겨서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사사로이 그것을 도둑질하지도, 또 남에게 도둑질당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밝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출22:10∼13)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자기에게서 봉적하였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거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않을지니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건져낸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 여기서 말하는 두 다리는 살이 붙어 있는 다리가 아닙니다. 뼈다귀만 남아 있는 다리입니다. 맹수가 양의 뼈다귀까지 다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귀 조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질기기만 해서 먹을 수도 없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이라는 표현은 사자가 다 먹고 나서 먹지 못할 찌꺼기만 남았음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사자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아모스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의 운명이 바로 그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가 그 정도로 황폐하여져서 건져낼 아무런 가치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2절 하반부는 사마리아 궁궐이 약탈당하고 난 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12절 하반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2절 상반부와 서로 비교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줄 압니다. 12절 상반부에서 공격자로 나오는 사자는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비유해볼 수 있고, 공격당하는 양은 대적에 의해 약탈당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과 대칭을 이루는 것은 "침상 모퉁이와 걸상에 비단 방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침상 모퉁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침상의 쪼개진 모퉁이는 별로 보잘 것 없는 쓰레기같은 품목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걸상에 비단 방석"이라는 말이 문맥에 잘 맞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히브리어 원문을 아래에 기록해봅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번역을 하면 "침상의 다메섹에"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말이 안되니까 우리말 성경에서는 다메섹을 비단 방석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에 다메섹에서 비단 방석이 많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메섹이라는 말이 비단 방석을 상징한다고 보아서, "걸상에 비단 방석에 앉은"이라는 말로 의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것은 바람직한 해석이 아닙니다. 또 문맥에 적합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띄어쓰기를 조금 달리해서 읽으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위의 말은 "걸상 다리의 한 부분"이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읽어ㅊㅊ보면 "사마리아에 거하는 이스라엘 자손이 침상 모퉁이나 걸상 다리의 한쪽 부분처럼 건져냄을 입으리라"는 말이 됩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양의 두 다리뼈와 귀 조각이 사자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부서진 침상, 걸상 조각 같은 것들만 사마리아 궁에 남아서 이제는 적으로부터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이 황폐하게 되리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자기들이 가난한 자를 짓밟고 억누른 것처럼 이제는 그들이 하나님이 보내시는 대적의 손에 짓밟혀서 완전히 황폐하게 되리라고 하는 말씁입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절대로 폐할 수 없습니다. 이 법칙을 무시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지은 이스라엘이 결국 죄의 값을 당하고 하나님의 보응을 받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남은 생애는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고 항상 성령을 위하여 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