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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강 벨사살 왕의 잔치(5:1-4)

by 【고동엽】 2022. 4. 13.

제47강 벨사살 왕의 잔치(5:1-4)

 

 

5:1-4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느부갓네살 임금이 옛날에 꿈에서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신상은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었고, 두 팔과 가슴은 은으로 되어 있었고, 배와 넙적다리는 놋으로 되어 있었고, 종아리와 발가락의 일부는 철, 발가락의 일부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장래 일을 계시해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금은 어디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바벨론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은은 팔이 두 개이듯이 메대와 바사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놋은 헬라 제국, 그 다음에 철은 로마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하고 나서 메대 바사가 서고, 메대 바사가 멸망한 후에는 헬라 제국이 서고, 헬라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로마 제국이 설 것을 미리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나라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그 꿈대로 바벨론이 어떻게 해서 멸망당했는지, 바벨론이 멸망당하고 어떻게 메대와 바사가 들어서게 되었는지를 다니엘서 5장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의 임금은 누구였습니까? 벨사살 왕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43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바벨론을 통치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죽고 나서 23년 있다가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되었습니다.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그때 나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15세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43년을 통치했습니다. 죽고 나서 23년 있다가 바벨론이 멸망했습니다. 그러면 이 숫자들을 다 합하면 얼마가 됩니까? 15+43+23=81입니다. 그때 다니엘의 나이는 81세였습니다. 이미 다니엘은 공직에서 물러나서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죽고 나서 23년 뒤에 바벨론이 멸망했는데 그 사이에 왕들이 몇 명이 더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미쳤을 때는 그의 아들 아벨말둑이라는 사람이 왕좌에서 바벨론을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벨말둑은 자기의 처남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벨사살 왕과 느부갓네살 왕은 어떤 관계였겠습니까? 2절을 보니까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언뜻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은 벨사살 왕의 아버지고, 벨사살 임금은 느부갓네살 임금의 아들로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옛날 중근동 지방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개념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자기들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과 지금의 자신들과 수천 년의 차이가 있지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또 예수님도 다윗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년수의 차이가 있지만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라는 것은 선조를 말합니다. 실제로는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 임금의 외손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의 딸이 벨사살 임금의 어머니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벨사살의 선조이지만 부친, 아버지라고 한 것입니다. 알기 쉽게 요즘으로 말하면 김영삼 대통령의 아버지가 노태우도 될 수 있고, 전두환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성경을 보겠습니다.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일천 명이 모인 잔치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엄청난 잔치였겠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바벨론 도성이 발굴되었는데 일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연회장이 여러 곳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바벨론은 바사 나라에 멸망당했습니다. 에스더 1장을 보면 바사 나라의 임금이었던 아하수에로가 잔치를 베풀었는데 며칠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고 나옵니까? 180일 동안 계속 잔치를 했습니다. 6개월 동안, 반년 동안이나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은 어느 결혼 잔치에 일만 명을 초대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벨사살이 일천 명을 모이게 한 것은 그다지 큰 잔치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벨사살 왕이 자기 신하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했는데, 지금 바벨론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벨사살 임금이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 바벨론 도성 밖에는 누가 와 있습니까? 5:30∼31을 보십시오.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메대와 바사 사람이 지금 바벨론 성 밖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공부했습니다만 바벨론 도성은 외벽과 내벽으로 된 큰 성이었습니다. 든든한 성이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메대와 바사 사람들이 큰 강 유브라데 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서 물의 힘을 이용해서 바벨론 성을 무너뜨리려고 물길을 파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큰 잔치를 배설하고 신하 일천 명을 초청해서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백성들이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는 것을 "괜찮아, 일없어!" 하고 객기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호기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무릎 꿇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텐데 벨사살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술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니 멸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3:1을 보면 벨사살 임금의 부친이었던 느부갓네살 왕이 큰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낙성 예식에 참석하라고 신하들을 다 초청했습니다. 그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벨사살 왕은 큰 잔치를 배설하고 수많은 귀인들을 다 초청했습니다.  
벨사살 임금은 자기 할아버지 느부갓네살이 교만에 빠져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멸시했다가 결국은 벌을 받고 정신병을 7년 동안 앓았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기 할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아픔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벨사살 임금은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자기 할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십시다.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보통 임금 같으면 신변의 안전 때문에 대중 앞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연회를 베풀어도 자기 몸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을 텐데 일천 명 앞에 모습을 당당히 드러냈습니다. 연회장 앞에 높은 단상을 놓고 벨사살 임금이 좌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들자!"고 하면서 축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벨사살 왕이 직접 연회를 주관하고 앞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술을 마시니라"고 했습니다. 원문에 보면 이 말은 분사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분사형이라는 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한 잔 마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고 또 마시는 것입니다. 술을 계속 마시다가 벨사살 임금이 결국은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는 술이 언제부터 나옵니까? 누구 때 술이 나옵니까? 노아 때 나오지요? 노아가 홍수 뒤에 포도원을 가꾸었습니다. 노아가 낮잠을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노아가 낮잠을 자는데 악한 마귀가 와서 노아가 가꾼 포도원에 짐승의 피를 뿌렸습니다. 먼자 양을 잡아서 양의 피를 뿌리고, 그 다음에는 사자의 피를 뿌리고, 그 다음에는 돼지 피를 뿌리고, 제일 마지막에 원숭이 피를 뿌렸습니다. 그 덕분인지 짐승들의 피를 거름으로 해서 포도가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 뒤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양의 피를 뿌렸기 때문에 사람이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면 양순해지고 차분해집니다. 그러다가 세 잔 네 잔 들어가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십니다. 사자처럼 무서운 게 없어집니다. 그래서 벨사살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성전에서 쓰는 금 은 그릇을 가져다가 술을 부어 마셨습니다.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로 돼지 피를 뿌렸기 때문에 더 마시면 돼지처럼 미련해집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 제일 마지막에 원숭이 피를 뿌렸습니다. 원숭이가 별별 해괴한 짓을 다 하지 않습니까? 술이 꼭지까지 취하면 전봇대를 붙들고 씨름을 하지 않나, 아무데나 싸지 않나, 별별 희한한 짓을 다 합니다.
잠언을 한번 찾아보시겠습니다. 잠언 20:1을 찾아봅니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넘어가서 잠 23:29 이하에서 술 취한 사람의 모습을 보십시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술 취한 사람의 모습을 잘 묘사해주는 말씀인 줄 압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는 술을 즐기는 분은 안 계신 줄 알지만 우리에게 어떤 걱정스런 문제가 있을 때,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이런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더 아프고 결국은 더 파괴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난관이 있을수록 누구를 더욱 의지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께 무릎 꿇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간구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오늘도 문제가 있으면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께 다 아뢰어서 깨끗하게 해결받고 오늘 하루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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