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강 분벽에 나타난 손가락(5:5-9)
5:5-9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때에 왕의 박사가 다 들어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여 그 해석을 왕께 알게 하지 못하는지라 그러므로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 낯빛이 변하였고 귀인들도 다 놀라니라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이 바벨론을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바벨론은 국가적으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 바벨론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마땅합니까? 그 옛날 니느웨 도성처럼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금식하면서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면서 회개의 운동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불쌍히 여겨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벨사살 왕은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귀족 일천 명을 초대했습니다. 술을 마셨습니다. 여자들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그 옛날 하나님의 성전에서 탈취해 와서 바벨론 신의 보고에 두었던 거룩한 기명들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거기에 술을 부어서 마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들을 이용해서 바벨론의 헛된 신들을 찬양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결국 벨사살 왕과 바벨론 사람들은 심은 그대로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벨사살 왕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지 못하고 사시는 하나님, 참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모독했을 때 결국 패망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과 바벨론을 벌하시는 심판의 장면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때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흥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에"라는 말입니다. 술잔치가 다 끝났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잠에 곯아 떨어져 있을 때에, 또는 그들이 서로가 서로의 손을 끼고서 잠자리에 들어갔을 때가 아니고, 한창 지금 술잔치가 무르익은 그때라는 말입니다.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났습니다. 조금 더 실감나게 표현한다면 "나타났다"는 말은 "툭 튀어나왔다"는 뜻입니다. 벽에서 뭉클뭉클 하더니 사람의 손가락이 튀어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떠들면서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쥐죽은 듯이 조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옛날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장래의 일을 꿈속에서 계시했던 것처럼 얼마든지 벨사살 왕의 꿈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사람의 손가락들을 보내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벨사살 왕 혼자만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따라서 같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글을 쓰기 시작을 했습니다. 또 보시기 바랍니다. "왕궁 촛대 맞은편"이라고 했습니다. 촛대가 있고 그 맞은편 벽이기 때문에 환한 곳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환히 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분벽에"라고 했습니다. 색을 칠해 놓은 벽이 아니라, 하얗게 회칠해 놓은 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손가락이 나타나서 움직이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분명히 보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 써놓은 글씨도 뚜렷하게 보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무엇을 했습니까? 글자를 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누가 그것을 보았다고 했습니까?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고 했습니다. 물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에 참여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벨사살 왕에게 있습니다. 왕이 술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귀족들 일천 명을 초대했습니다. 왕후와 빈궁들을 불러온 것도 왕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객기를 부리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취하여 온 금은 기명들을 가져오게 한 것이 벨사살 왕이었습니다. 또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명에 술을 부어서 바벨론의 헛된 신을 찬양토록 주도한 것도 역시 벨사살 임금이었습니다. 따라서 벨사살 왕이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벨사살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또렷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6절의 말씀은 벨사살 왕이 보인 반응입니다. 6절을 보십니다. "이에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벨사살 왕은 마셨던 술기운으로 얼굴이 붉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쓰는 것을 보는 순간 낯빛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아마도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새하얗게 창백한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아마 이런 반응도 보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가 찬양했던 우리 바벨론의 신들이 우리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우리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저렇게 사람의 손가락을 보내서 우리를 위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쓸 때 그것이 나쁜 징조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양심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큰일났구나!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했더니 신이 내게 노했구나. 이제 내가 벌을 받게 되었구나. 그 옛날 내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높이지 못하고 자기를 높였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아서 정신병에 걸렸던 것처럼 내가 이제는 당하게 되었구나." 이런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람이 마음이 괴로우면,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 사실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따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눈이 밝아지니까 무화과 잎으로 자기들의 부끄러운 것을 가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저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순간에는 쾌락이 옵니다. 즐겁습니다. 그러나 곧 양심이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를 지켜주셔서 악한 죄에서 다 떠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마음이 떳떳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마음 편안하게 하루를 보낼 수가 있습니다. 절대 죄악 된 길에 들어서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6절을 계속해서 보십시다. 왕의 즐기던 빛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라고 했습니다. 벨사살 왕의 모든 용맹이 다 사라지고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또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번째 보니까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라고 했습니다. 관절이 힘없이, 연결 마디가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는 말입니다. 힘이 없으니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네번째로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고 했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을 때나 아주 무서운 일을 당했을 때에 무릎이 막 떨리지 않습니까?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벨사살이 어떻게 했습니까? 7절에 보니까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왕이 크게 소리하였다고 했습니다. 비명을 지른 것입니다. 두려움에 크게 소리를 질러서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바벨론 박사들을 다 불러서 그것을 물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벨사살 임금이 사실은 또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영적인 일에 사람을 부른다고 해결이 됩니까?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사람 만나는 일에 너무 마음 바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보다도 참 하나님, 사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오늘 여러분이 하실 일들을 낱낱이 고하시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사업 문제, 또 여러분의 건강 문제, 그 어떠한 문제라도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빠른 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실수가 없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적인 꾀를 써서 누구누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서 부탁을 하면 그것이 빠를 것 같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조용히 이 아침에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문제들을 하나님께 하나 하나 아뢰시면서 하나님께 물어보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큰 평안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 아침 주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 받고 오늘도 주님의 손 붙들고 기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실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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